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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노동요만 133수, 전설·신화 7편, 시·소설 수두룩
이어도 둘러싸고 한중일 분쟁도…"상세한 연구 필요"

사람들은 '이어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대부분 이어도의 존재를 전설 또는 문학작품을 통해 신비의 낙원, 이상향 정도로 기억하거나 제주도 남쪽 먼바다 어딘가에 있는 작은 섬 정도로 알고 있을 것이다.

 

무심코 이어도에 대해 말은 하지만, 관련 전설이나 문학작품을 찾아 직접 읽어본 사람도, 이어도를 둘러싸고 어떤 논란이 이어지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 민요 속 '이여도'는 우리가 알던 '이어도'일까

 

'이여도사나 이여도사나!'

 

제주도민은 물론 관광객들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 민요는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1호 '해녀노래'(해녀 노 젓는 소리 또는 물질소리 등으로도 불림)다.

 

노래의 후렴구에 등장하는 이여도는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이어도'가 맞을까?

 

비단 해녀노래 뿐만 아니라 제주 민요 중에는 '맷돌 가는 소리', '방아 찧는 소리' 등에도 비슷한 후렴구가 등장한다.

 

조성윤 제주대 교수는 2011년 '이어도에 관한 제주도 주민들의 이미지'라는 논문을 통해 "민요를 부르던 제주도민들이 과연 이어도를 하나의 섬으로 인식했었는지에 대해 학자들 간 논란이 분분하다"며 1920년대 제주 민요를 채집했던 일본 학자 다카하시 도오루와 김진하 서울대 교수의 주장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다카하시는 지난 1929년 11월 민요 수집을 위해 제주에 처음 방문했다. 이후 여러 차례 제주를 오가며 300수 가까이 수집한 뒤 1933년 '조선'(朝鮮) 1월호에 '민요에 나타난 제주여성'이란 글을 실어 자신의 해설을 덧붙였다.

 

다카하시는 이어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주의 노래에는 방아 찧는 노래에도 뱃노래에도 농가(農歌)에도 그 밖의 노래에도 노래의 첫 부분과 끝부분에 '이여도야 이여도'(또는 이허도라고도 한다)라는 후렴이 붙어있다. 어떤 이는 이허도(離虛島)라고 쓴다. 이 섬은 공상 속의 섬이며 제주와 중국과의 중간쯤에 있다고 믿어지고 있다. 가는 배이건 오는 배이건 이 섬까지만 오면 우선 안심한다는 곳이다. 그래서 떠나가는 배에 대해 이허도까지 무사하기를 기원했던 것이며, 또 가서 돌아오지 않는 배가 있다면 최소한 이허도에라도 가서 재난은 면했겠지 하며 슬퍼했다'('민요에 나타난 제주여성', 2008 제주특별자치도인력개발원, 제주발전연구원)

 

일본 학자 다카하시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 지식인이었던 강봉옥은 1923년 '개벽'(開闢)에 제주 민요를 소개하며 이어도를 '제주도 사람들이 동경하는 이상향'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다카하시는 이어도 관련 전설도 소개했는데 짧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고려 25대 왕인 충렬왕 당시 제주가 원의 지배 아래에 있을 때 강씨라는 선원 우두머리가 공물을 싣고 대정 모슬포에서 출항해 중국으로 갔지만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항로 중간에 '이허도'라고 하는 섬이 있다는 꿈같은 이야기가 섬사람들에게 전해졌고, 강씨의 부인은 슬픔에 '아아 이허도야 이허도'로 시작해 끝나는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는 전설이다.

 

다카사시는 이어 "500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는 이 슬픈 곡조가 의미를 다 잊힌 채로 섬 여인네들에 의해 노래 불려 대부분 그네들의 노래 모티브가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것은 그녀들의 마음이 그것에 공명공조(共鳴共調)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전설 속 강씨의 부인이 슬픔에 빠져 부른 이어도 노래가 오랜 기간 제주 여인들에 의해 불리며 퍼졌고, 각 민요의 후렴구가 됐지만, 그 의미는 사람들에게 잊혔다는 설명이다.

 

다카하시가 채록한 제주 민요와 이어도에 관한 전설, 설명은 후대 학자들은 물론 문학 작가 등에게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다카하시의 견해를 부정하기도 한다.

 

김진하 교수는 2006년 '제주 민요의 후렴 '이여도'의 다의성과 이여도 전설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을 통해 민요 후렴구에 나오는 '이여도사나'는 '이엿싸'라는 단순한 후렴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는 논문에서 "제주민요에 이처럼 보편적으로 붙은 후렴인 이여도가 단 하나의 전설로 수렴된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한 개인의 노래가 모든 민요 가락의 발생 기원이 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고 말한다.

 

이어 "제주 섬 옛사람들이 '이허도'라는 어려운 한자 교양을 염두에 두고 그 섬의 이름을 구태여 불러야 했을 이유가 있겠느냐"며 "다카하시의 주장대로라면 이여도 후렴의 여러 변이형인 '이여 이여', '여여싸 이여싸', '이여도흥 이여도흥' 등은 모두 이허도(離虛島)에 대한 무지의 소산인 셈이 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다카하시의 주장은 민중의 지혜를 간과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여도 후렴의 보편성을 한 개인의 창작으로 보는 견해는 집단적 창작의 산물인 민요의 성격과 배치된다. (중략) 이여도 전설이 민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봐서 지식인들에 의해 빠르게 수용된 후 근대적 문학 양식에 힘입어 거꾸로 민중의 세계로 퍼져나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주장은 각기 설득력이 있으면서도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근대적 학문이 시작된 일본 강점기에 기록된 이어도 관련 자료를 토대로 보면 이어도를 '이상향'으로 보는 생각이 제주도민 사이에 일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제주 민요에 등장하는 후렴구가 과연 '이어도'를 가리키는지 또는 단순히 후렴구에 불과한 것인지에 대한 이견이 존재하며, 실제로 민요를 부르는 가창자들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학자들은 이와 관련해 이어도의 실체에 관한 논의를 위한 자료 수집과 더 상세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 환상의 섬이자 실재하는 섬 '이어도'

 

제주에는 이어도와 관련한 수많은 전설과 민요, 시, 소설 등 문학작품이 전해오고 있다.

 

풍랑을 만난 선원이 이어도로 흘러 들어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는 전설, 배를 타고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찾기 위해 아내가 이어도로 떠났다는 내용의 전설, 이어도를 과부들의 섬(여인국)으로 설정한 전설 등이다.

 

이어도와 관련한 본풀이(신화)도 있다.

 

한 남성이 풍랑을 만나 과부들만 사는 이어도에 갇혔다가 우여곡절 끝에 고향 제주로 돌아오게 됐다. 당시 이어도에 있던 여인도 남성과 함께 왔는데, 그 여인은 여돗할망이라 불렸으며 세상을 떠난 뒤 마을의 신(神)이 됐다는 내용이다.

 

제주학연구센터가 내놓은 주민욱·최미경 이어도연구회 연구위원의 '이어도 설화 스토리텔링 방안 연구'를 보면 지금까지 수집된 이어도 관련 제주 노동요는 총 133수에 이르고, 이어도 관련 전설과 신화 등은 총 7편이다.

 

이어도는 제주 민요와 전설을 통해 구비 전승됐지만, 시·소설·희곡·영화 등 다양한 예술작품으로 표현돼 사람들에게 더 알려졌다.

 

김정한의 소설 '월광한'(1940), 이시형의 소설 '이여도'(1944), 정한숙의 소설 'IYEU도'(1960), 고은의 산문집 '제주도'(1976), 이청준의 소설 '이어도'(1976), 이용상의 시조 '이어도 처녀'(1976), 강문규의 시 '잊혀지는 땅'(1981), 박재형의 동화집 '이여도를 찾는 아이들'(1994), 장일홍의 희곡집 '이어도로 간 비바리'(2003) 등이다.

 

특히 제주도 사람들이 꿈꾸는 환상의 섬에 대한 믿음을 소재로 한 이청준의 소설은 많은 사람에게 이어도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이청준의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소설을 바탕으로 1977년 김기영 감독의 '이어도'가 제작돼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출품됐고 이어도를 소재로 한 각종 드리마, 평론 등이 쏟아져 나왔다.

 

이후 이어도는 제주 사회의 생활문화 속에 자리 잡으며 지역사회 단체명 또는 상호명, 도로명 등에 붙이는 친숙한 명칭이 됐다.

 

전설 속 이어도가 문학 작가들에 의해 한층 더 민중 속에 녹아 들어간 셈이다.

 

그런데 환상의 섬으로 일컬어졌던 이어도는 어느 순간 실재하는 섬이 됐다.

 

이어도로 불리는 암초는 사실 1900년 영국 상선 소코트라(Socotra)호에 의해 항해 도중 처음으로 발견됐다. 영국 선박의 이름을 따서 '소코트라 록'(Socotra Rock)으로 알려졌다. 이후 1984년 국립해양조사원에 의해 그 실체가 공식 확인된 것이다.

 

남북으로 1800m, 동서로 1400m 크기의 타원형인 이어도는 암초 정상이 바다 표면에서 4.6m 아래에 잠겨 있어 파도가 심할 때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 2001년 1월 16일 이어도가 해도(海圖)에 공식 표기된 데 이어 2003년 6월에는 이어도에 각종 해양 관측시설을 갖춘 종합해양과학기지가 건설되면서 더욱 주목받았다.

 

게다가 한·중·일 3국의 영유권 분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3국의 방공식별구역(KADIZ)이 겹치고 한국과 중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해안선에서 370㎞ 이내의 경제주권이 인정되는 수역)이 중첩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2007년부터 8·9·10대 제주도의회에서 '이어도의 날' 지정을 위한 조례 제정 논의가 추진됐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이어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일각에서는 이어도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낙원이자 이상향의 존재였지만 그 실체를 드러내면서 그 가치를 훼손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즉, 자원 민족주의에 의해 해양 자원을 확보하려는 탐사 결과 찾아낸 섬의 이름을 이어도로 명명한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어도를 전설·신화와 수많은 문학작품 속에 깃든 이상향으로서 기억하고 또 영토로서 간직하고 있다.

 

주민욱·최미경 이어도연구회 연구위원은 "바람, 파도, 그리고 돌투성이의 척박한 환경, 철저하게 고립된 섬에서 살아야 했던 제주인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중노동 속에서 어떤 희망을 품고 살아왔겠느냐"며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죽음을 희망으로 받아들였고,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으로 자탄가를 지어 부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제주 사람들은 이승을 떠나가고 싶은 이상향으로 '이어도'를 그려냈다는 것이다.

 

이어도연구회는 발간물 '이어도 깊이 읽기'를 통해 "인간의 관념 속에서 전설이나 신화 속 대상으로 막연히 존재하던 이어도가 현실 속에 실재하는 섬으로 이미지의 탈바꿈이 이뤄지고 있다"며 "(문학작품과 사회 속에 나타나는 이어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더 나아가 이어도가 대한민국 영토의 일부라는 인식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는 문화적 증거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성윤 제주대 교수는 "제주도민이 갖고 있던 '평화로운 이상세계이자 낙원'의 이미지와 대립하는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이미지는 우리들을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 서게 만든다"며 우리가 확인해야 할 하나의 포인트는 이어도의 이미지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제주도민들은 어떤 이미지를 선호하고, 받아들이려고 하고 있는가에 대한 노력과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연합뉴스=변지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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