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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에 널린 돌 … 극복해야할 대상이자 생활의 원천
밭담에서 돌가마까지 가지각색 '돌문화' 생겨나

 

문화는 지역의 자연환경과 역사적 배경 속에 사람들이 만들어낸 생활양식이다.

 

따라서 문화는 그 지역의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화산섬' 제주 지천에 널린 돌은 제주 사람들에게 극복해야 할 대상이자 생활의 원천이었다.

 

삶의 지혜와 예술적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는 제주 돌문화를 들여다 본다.

 

◇ 돌이 많아 곤궁한 섬…돌문화 기원

 

'우르르 쾅 쾅!'

 

제주 전역을 뒤흔들 만큼 커다란 폭발음이 연이어 터져나왔다.

 

화산에서 분출한 뜨거운 용암이 쓰나미처럼 흘러내리고 폭발과 함께 뿜어져 나온 화산재가 화산가스, 수증기와 뒤엉켜 사막의 모래폭풍처럼 지표면 전체를 훑고 지났다.

 

용암은 지표면으로 흘러내려 식어가고 또다시 흘러 쌓이기를 반복, 대지를 이루고 수많은 동굴과 지형지물을 만들었다.

 

제주는 지금으로부터 170만년 전 신생대 제4기 동안 진행된 여러차례 화산활동으로 형성됐다.

 

중국·한반도와 육로로 연결됐던 제주가 오늘날과 같은 섬으로서의 환경을 갖추게 된 것은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불과 1만년 전 무렵이었다.

 

돌이 바람과 바다에 쓸려 깎이고 깎여 모래와 흙이 되고, 그 위로 풀이 돋고 나무가 자랐다.

 

 

'돌이 많은 섬' 제주는 이렇게 생겨났다.

 

돌은 그 자체가 화산섬 제주의 자연환경이었고, 사람에게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으며 자연스레 제주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밭과 들판 등 곳곳에 널린 돌은 농사짓는 데 많은 어려움을 줬고, 해안가에 솟아난 바위와 돌은 배를 대기 어렵게 해 제주를 고립시켰다.

 

1520년 제주도에 유배 온 김정은 저서 '제주풍토록'을 통해 "자갈이 많고 평토가 절반도 되지 않아 밭을 가는 자는 마치 생선의 배를 도려내는 듯하다"며 돌을 생선의 가시에 비유해 밭갈이의 어려움을 표현했다.

 

17세기 간행된 김상헌의 제주 기행문인 '남사록'은 당시 제주 사람들의 삶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백성은 곤궁한 자가 많다. 이 땅에는 바위와 돌이 많고 흙이 덮인 것이 몇 치에 불과하다. 흙의 성질은 부박하고 건조하며 밭을 개간하려면 반드시 소나 말을 달리게 해서 밟아줘야만 한다. 내가 밭 가는 자를 보니 농기구가 매우 높고 작아 마치 아이들 장난감 같아 물으니 대답하기를 '흙 속에 몇 치만 들어가도 모두 바위와 돌이니 그래서 깊이 밭을 갈 수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조선 숙종 때 제주목사를 지낸 이형상 역시 저서 '남환박물'에서 "(제주의) 사방 둘레는 칼날 같은 돌로 둘러쳐져 있어, 썰물과 밀물에 관계없이 배를 붙일만한 포구가 없다"고 기록했다.

 

 

◇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돌문화

 

돌이 제주 사람에게 부정적인 영향만을 준 것은 아니다.

 

제주의 많은 생활용품이 돌을 재료로 만들어졌고, 돌은 제주 사람들의 생활 일부분과 다름이 없었다.

 

사람들은 우선 집이나 밭, 무덤의 경계를 돌을 쌓아 만들었다. 집 울타리의 돌담을 '집담', 밭의 돌담을 '밭담', 무덤의 돌담을 '산담'이라 일컬었다.

 

집담과 밭담이 서로 이어져 '올레'라는 골목길이 생겼고, 크고 작은 올레는 다른 지역에서는 느끼기 힘든 은은하면서도 정겨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산과 들에 시커먼 현무암을 쌓아 구불구불 끝도 없이 이어진 돌담은 마치 검은 용이 용틀임을 하는 듯하다 해서 흑룡만리(黑龍萬里)라는 별칭이 붙여졌다.

 

제주 사람들은 소와 말을 집 안에 가둬 기르지 않고 집 밖에 풀어놓아 길렀는데, 마소의 침입을 막고 거센 바람으로부터 화산회토가 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집·밭 주변에 돌담을 둘렀다.

 

 

심지어 망자(亡者)의 무덤(죽은 사람의 무덤) 주위에도 집 울타리 처럼 '산담'을 쌓아 망자가 편히 쉴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일까.

 

옛말에 제주 사람들은 '돌 틈에서 나고 자라서 돌 틈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쉬는 공간에도, 마을의 신당을 모신 성스러운 공간에도 돌담을 쌓았다. 밀물을 따라 들어온 바닷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에 쌓은 돌담인 '원담' 등 다양한 돌담은 제주만의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돌하르방을 필두로 한 다양한 석상들과 마을의 허한 곳을 막아주는 일종의 액막이 역할을 하는 방사탑은 현대인들에게 예술적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집안에 들어가는 길목을 지켜주는 정주석, 곡식을 찧는 말방아, 말방아로 보리를 찧기 전에 알맞게 수분을 적셔주는 보리통, 실내 온도를 높여주던 화로의 일종인 봉덕, 현무암 솥뚜껑, 밭갈이에 쓰이던 곰돌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돌을 이용한 각종 살림도구는 민속 공예품으로서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이외에도 화산석으로 빚어낸 선사시대 고인돌과 돌로 이뤄진 불교유적, 제주의 성곽, 조선시대 국영목장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잣성, 세계 유일의 제주 전통 돌가마(石窯·석요),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지역 고유의 옛 등대인 도대불 등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제주의 중요한 문화재다. [연합뉴스=변지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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