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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간 이어진 고사리철 1년치 제수용품 마련에 분주 조상에 대한 정성
자손 번성에 대한 애틋한 마음 담겨

 

봄이 되면 드넓은 한라산 자락 곶자왈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고사리다.

 

4월 중순에서 5월 중순에 이르는 한 달 남짓한 기간 제주 토박이는 물론 이주민들도 고사리 꺾으러 산과 들판으로 향한다.

 

많은 사람이 재미 삼아 또는 용돈벌이 등 목적으로 이들 대열에 합류하곤 한다.

 

하지만 단순히 이러한 이유만으로 고사리 열풍을 설명하고, 이해한다는 건 부족함이 없지 않다.

제주 사람들에게 고사리는 어떤 의미일까.

 

◇ 제주의 고사리철…욕심은 부리지 않았다

 

'부슬부슬 비가 오길래/ 홀로 숲으로 나갔어/ 그대와 늘 함께 걷던 길/ 놀랍게 달라 보여/ 그토록 찾아봐도 안 보이더니/ 어느새 소리 없이 솟아 올라온 고사리들/ 당신을 보내고 난 뒤/ 이렇게 훌쩍 자랐네….'

 

제주에 이주해 사는 뮤지션 장필순의 곡 '고사리 장마'의 첫 소절이다.

 

어느덧 제주에 고사리철이 돌아왔다.

 

고사리를 꺾으며 제주의 봄을 만끽하는 한라산 청정 고사리 축제가 한창이다.

 

노래 제목처럼 고사리 장마라 불리는 짧은 봄장마가 시작될 무렵이면 싹을 틔운 고사리들이 조그만 얼굴을 들고 경쟁하듯 솟아오른다.

 

 

4월 중순을 전후해 짧게 반복되는 비 오는 날씨.

 

적당히 햇빛을 가려주는 한라산 곶자왈의 나무와 덩굴들.

 

제주의 모든 환경이 고사리가 자라나는 데 안성맞춤이다.

 

비가 그치면 제주 토박이는 물론 제주에 이주한 사람들까지 너나 할 것 없이 고사리를 채취하러 산과 들판으로 향한다.

 

남녀노소·지위고하·빈부격차 상관없이 모두가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커다란 앞치마를 두르고 앉아 덤불 숲을 헤치며 고사리 꺾기에만 열중한다.

 

장필순·이효리씨를 비롯한 이주민들에게 고사리를 채취하는 일은 서서히 제주에 녹아들어가는 과정이다.

 

'고사리 많은 곳은 며느리에게도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하는 제주 사람들을 서운해 하면서도, "고사린 세어지민(채소 따위가 억세게 굳다) 튿지(뜯지) 말라!"고 퉁명스레 가르쳐주는 이웃 삼춘들의 말에 서운함은 눈 녹듯 사그라든다.

 

이른 봄의 고사리는 독성이 거의 없지만 시간이 지나 잎이 피고, 줄기가 단단해지면 독성이 배가 돼 먹을 수 없게 된다. 들판에 방목하는 말과 소도 독성이 있는 고사리를 먹지 않는다.

 

경험이 없는 이주민들이 혹여나 탈이 날까 걱정하는 제주 토박이들의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함께 또 따로 고사리를 꺾으러 다니다 보면 어느새 한 자루 가득한 고사리를 얻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가진 땅 한 뼘 없는 사람들에게도 골고루 아낌없이 주는 자연의 소중한 선물이다.

 

흔하게 얻을 수 있는 봄나물이지만 옛 제주 사람들은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제주에 '고사리 한 웅큼이믄 식게(제사), 멩질(명절) 다 헌다(한다)'는 말이 있다.

 

연중 제사, 명절에 쓸 고사리만 정도껏 채집해 푹 삶고 봄볕에 말려뒀다가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쓰는 게 제주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이었다.

 

 

◇ 고사리, 제사의 시작과 끝

 

"고사리는 산 자의 음식이 아니다."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장은 제주의 음식을 소개한 책 '제주식탁'에서 고사리는 제주의 제사상과 명절 차례상에 "빠지지 않고 올라가는 음식"이라며 이같이 설명한다.

 

제사상에 올리는 나물을 제주어로 '탕쉬'라고 하는데 보통 고사리와 콩나물 등을 삶아 참깨 등 양념을 넣고 버무려 만든다.

 

고사리, 콩나물 외에도 미나리, 양하, 무, 호박 등을 계절에 따라 골라 탕쉬로 만들어 쓴다.

 

제주 사람들은 또 고사리로 '느르미전' 또는 '고사리전'을 만들어 제사상에 올린다.

 

느르미전은 일정한 길이로 자른 쪽파와 고사리를 가지런히 늘어놓고 달걀물에 부친 전(煎)이다.

 

고사리만 넣으면 고사리전이 된다.

 

옛날 살림이 어려워 계란조차 구하지 못할 때는 메밀가루로 묽은 반죽을 만들고 고사리 한두가닥이라도 넣어 전으로 부쳐 제사상에 올렸다고도 한다.

 

양용진 원장은 "얇은 전병과도 같은 고사리전은 나름대로 제수를 음수(陰數,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몰래)로 진설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빚어낸 애틋한 음식"이라며 "달걀로 부친 고사리전은 고소한 맛에 아이들이 달려드는 귀한 식게퇴물(제사음식)이어서 그 작은 한 장이 여러 조각으로 나눠지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고사리는 제사의 시작과 끝을 담당하는 나물이다.

 

제주의 제사는 제일 먼저 고사리 한두가닥 정도를 앞 그릇에 놓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이는 무덤에 있는 조상을 집 안으로 모시는 의미라고 한다.

 

제사가 끝난 뒤에는 조상이 넓적한 느르미전 또는 고사리전에 제사음식을 싸고, 기다란 고사리 탕쉬로 묶어 어깨에 짊어지고 가도록 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무언가 애틋하면서도 조상을 섬기는 데 정성을 다한 제주 사람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왜 하필 고사리일까.

 

다른 재료로도 전과 탕쉬를 만들 수 있을 텐데 굳이 고사리를 쓰는 이유는 뭘까.

 

제주의 세시풍속을 다시 되새긴 책 '그리운 제주 풍경 100'은 손녀와 할머니의 대화를 통해 이 물음에 답을 한다.

 

"할머니, 고사릴 제사상에 꼭 올리는 이유가 뭐우꽈?"

 

"고사린 아홉 손(筍, 순)이렌 헌다. 보통 낭(나무)이나 풀덜은 손이 세 개이고. 싹이 나민 꺾어불곡 꺾어불곡 허민 세 번 이상은 나질 못헤여. 힘이 다 헌 거주. 고사린 꺾어도 꺾어도 아홉 번 열 번을 악착같이 싹이 도나거든. 그치룩(그렇게) 자손이 악착같이 끊어지질 말게 해줍센(해주세요) 조상님께 올리는 거."

 

'고사린 아홉 성제(형제)다'라는 제주어 속담과 같은 맥락이다.

 

꺾어도 꺾어도 새로 자라나는 고사리의 왕성한 생명력 덕분에 제주의 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풍성하다. [연합뉴스=변지철 기자]

 

[※ 이 기사는 '제주식탁'(양용진), '그리운 제주 풍경 100'(김순이 글·김동연 그림), '할망 하르방이 들려주는 제주음식이야기'(허남춘·허영선·강수경), '섬사람들의 음식 연구'(문순덕) 등 책자 등을 인용·참고해 제주의 고사리 음식문화를 소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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