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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이면서 전설이고, 전설이면서 신화로 규정할 수 있어"
"죽어간 여신 되살려 신화의 시간 다시 기억, 의미 있는 일"

 

제주를 만든 여신(女神) 설문대할망.

 

제주의 1만8000 신들의 이야기 중에서도 거대한 스케일과 블록버스터급 흥미진진한 소재를 자랑한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구전문학의 특성상 진위를 따지는 건 소모적인 논쟁일 수 있지만 그런데도 설문대할망 이야기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잘 아는 것 같아도 잘 모르는 설문대할망을 둘러싼 흥미로운 논쟁거리를 2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 제주를 만든 창조의 여신 '설문대'

 

설문대할망은 커다란 거인의 모습을 한 여신이다.

 

바다 깊은 곳도 무릎까지밖에 차지 않을 정도로 크고 힘도 세서 까마득히 머나먼 옛날 하늘과 땅을 나누고, 이어 흙으로 제주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치맛자락에 흙을 퍼 담아다가 한라산을 만들었는데, 이때 치마의 터진 구멍 사이로 흘린 흙이 제주 섬 곳곳에 있는 360여개의 오름이 됐다고 전해진다.

 

도대체 얼마나 크길래 한라산과 오름 등 제주 섬을 만들었다는 것일까.

 

실제 설문대할망의 키를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있는데 '한라산을 베고 누우면 다리가 제주 앞바다 관탈섬에 걸쳤다'는 구절이다.

 

 

인터넷 지도를 통해 거리를 재보면 한라산 정상에서 소관탈섬까지는 약 40㎞, 대관탈섬까지는 약 43㎞ 정도다. 설문대할망이 적어도 40㎞(4만m)가 넘는 엄청난 거구였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제주돌문화공원에 따르면 한라산 백록담에서 관탈섬까지의 거리를 49㎞(4만9000m)라 말하기도 한다.

 

제주 곳곳에는 설문대할망과 관계 깊은 공간이 많다.

 

하루는 한라산에 앉아 빨래하려는데 산이 너무 높아 불편했다.

 

설문대할망이 한라산 봉우리를 툭 떼어 던지니 그게 산방산이 됐고, 산꼭대기 웅덩이가 진 곳이 백록담이 됐다고 한다.

 

거대한 원형 경기장을 연상케 하는 다랑쉬 오름의 분화구는 설문대 할망의 주먹질 한 번에 패인 자국이라 한다.

 

성산일출봉에는 설문대할망이 길쌈할 때 등잔으로 썼던 등경돌이 남아있고, 제주시 오라동의 한천에는 할망이 썼던 족두리로 알려진 커다란 돌덩이인 일명 '족감석(族感石)'이 있다.

 

또 설문대할망이 오줌을 누니 과거 육지로 이어져 있던 우도가 떨어져 나가 섬이 됐다는 일화 등 일일이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그런데 돌연 신은 죽음(?)을 맞는다.

 

설문대할망은 큰 키 자랑을 하려 용연(龍淵)에 들어갔지만 겨우 발등에 찼을 뿐이고, 홍리물(서귀포)은 무릎까지 찼다.

 

그래서 이번엔 끝이 없다는 한라산 물장오리의 깊이를 재보려고 물 속에 빠져들었는데 결국 영영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고 한다.

 

이외에도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이야기가 있다.

 

설문대할망이 아들 500명에게 주려고 죽을 쑤다 솥에 빠져 죽었으며, 아들들은 자신들이 나눠 먹은 죽에 어머니가 빠져 죽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슬픔을 못 이겨 결국 제주를 지키는 바위가 됐다는 내용이다.

 

한라산 서남쪽 중턱 '영실'에 솟은 기암절벽들을 가리켜 오백장군 또는 오백나한이라 부른다.

 

설문대할망 이야기는 TV도 없고 연극 무대도 없던 시절 손자, 손녀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전해 듣는 단골 메뉴였다.

 

지금까지도 동화책과 연극 등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제주도민은 누구나 다 알뿐만 아니라 제주 여행 온 관광객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하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도민과 학자들 사이에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논쟁거리가 있다.

 

지금까지 발표된 여러 연구자의 논문이나 서적 등은 물론, 지난 12일 열린 설문대할망 페스티벌 학술대회 '설문대, 세계의 여신들에게 길을 묻다'에서도 이와 관련한 많은 논의가 이뤄졌다.

 

 

◇ 신화냐 전설이냐 여전히 논쟁적

 

우선 장르적 성격 문제다.

 

설문대할망 이야기는 신화(神話, myth)일까, 전설(傳說, legend)일까, 민담(民譚, folktale)일까.

 

이들 장르를 나누는 연구자들의 정의를 보면, 신화는 신앙적 성격을 띤다.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믿고 그에 대한 신앙행위가 이뤄지는 등 신성한 것이라 여겨지는 이야기를 말한다. 제주 무속신앙에서는 이를 '본풀이'라 한다.

 

그리고 전설은 지명이나 바위·폭포 등 구체적인 증거물과 함께 전해 내려와 사람들이 있었을 법하다고 여기는 이야기를 일컫는다.

 

이와 달리 민담은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로 시작하는 믿거나 말거나 식 흥미 위주의 옛이야기 정도다.

 

신화, 전설, 민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구전문학인 '설화'의 하위범주에 속한다.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보면 하늘과 땅을 나눠 인간세상을 만들고 이어 제주를 만들었다는 대목에서 '창세신'(創世神), '창조신'(創造神)이라 일컬어지는 등 신화적 면모를 갖췄다고 본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설문대할망 이야기가 애초에 신화였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해체돼 전설, 민담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인다고 주장한다.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신화의 영역에서 제외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제주큰굿'을 비롯해 다양한 제주의 무속 본풀이에 등장하지 않는 등 의례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라 지적한다.

 

또 제주에 남은 숱한 지형지물 등 증거물과 함께 전설의 형태로 설문대할망을 엿볼 수 있는 점, 설문대할망의 배설 행위 등이 신으로서의 위엄을 상실한 채 희화화되는 점, 설문대할망의 죽음과 같은 비극적 요소 등을 이유로 든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설문대할망 페스티벌 학술대회에서 김헌선 경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설문대할망 신화의 신화학적 위상'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설문대할망 이야기는 명확하게 신화"라고 강조했다.

 

그는 "체계적으로 갖춰진 특정한 사제자 집단의 신화와 성격이 다른 신화일 가능성이 작지 않다"며 "심방을 중심으로 하는 사제자 신화인 본풀이, 무당신화와 다른 일반만이 전승하는 일반신화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스로마신화에 이어 최근 제주신화에 대한 관심도 커지면서 실제로 많은 일반인들이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신화로 받아들이고 있다.

 

제주도 조례로 운영되는 공영관광지인 제주돌문화공원은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신화'로 규정, 지난 2007년부터 해마다 5월을 설문대할망의 달로 정해 제(祭)의식을 지내고 있다.

 

 

설문대할망 페스티벌의 본행사 역시 '설문대할망제'다.

 

돌문화공원 설문대할망제단에서 열리는 제의식은 설문대할망이 제주를 창조한 뜻을 기려 여성 제관 9명이 헌향(獻香)·헌다(獻茶)·헌화(獻花)하고, 설문대할망제 고유문(告由文)을 낭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류진옥 제주도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은 "제주도를 창조한 여신이 자신이 만든 물장오리에 빠져 죽더니, 다시금 아들들을 위한 죽을 쑤다가 죽 솥에 빠져 죽는 모습으로까지 변화했다"며 "이렇게 죽어간 여신을 되살려 꿈꾸는 신화의 시간을 다시 기억하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구비전승되는 이야기의 특성상 신화, 전설, 민담 등 '설화'는 변화하기 때문이다.

 

한편, 신호림 안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이러한 장르적 논쟁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설화 연구 초기에 활발하게 이뤄졌던 '갈래론'은 더 이상 주된 연구 경향이라 보기 어렵다. 다양한 갈래적 해석이 존재할 수 있는 문학의 특성을 무시한 채 특정 갈래로만 귀속하려는 문제가 있고, 이는 '3분법' 체계를 유지하는 한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설문대할망은 신화이면서 전설이고, 전설이면서 또 신화로 규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특정 장르에 포함하는 문제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그래서일까.

 

많은 연구자가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논할 때 신화·전설·민담의 상위 범주인 '설문대할망 설화' 등으로 표기하곤 한다. [연합뉴스=변지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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