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13일 제주 동남부 지역인 표선면에 갑작스럽게 폭우가 쏟아졌다.
낮 시간대 1시간여 동안 40㎜가량 퍼부은 폭우로 도로에 물이 차 차량들이 한때 고립되고 주택 일부가 침수됐다.
반면 같은 날 한라산 동북쪽 월정리에는 아예 비가 내리지 않았고 서부지역인 고산리에도 1.7㎜의 약한 비만 내렸다.
2017년 7월 5일에는 동부지역(난산)에 시간당 90㎜가량이 비가 내려 하루 누적 강수량이 244㎜를 기록했다.
같은 날 제주 북부와 서부지역에는 비가 전혀 내리지 않거나 약한 비만 내렸다.
제주 섬은 가로 길이가 70㎞가량이고 세로로는 30여㎞ 거리쯤 되나 지역별 강수량 편차는 이처럼 크게 나타난다.
특히 제주 동남부 지역에는 5월 말부터 더위가 채 가시기 전인 9월 중순까지 일부 지역에 국한돼 단시간에 기습적인 폭우가 종종 쏟아진다.
기상청에 따르면 2000∼2018년 6∼9월 시간당 20㎜ 이상 강수 횟수 분석 결과 제주 남부(서귀포 동지역)에서는 6월 22회, 7월 34회, 8월 64회, 9월 38회 등 총 158회나 많은 비가 쏟아졌다.
동부지역(성산)에서도 6월 20회, 7월 37회, 8월 67회, 9월 31회 등 총 155회 가량 강한 비를 퍼부었다.
반면 같은 기간 제주 북부(제주시 동지역)와 서부(고산)의 시간당 20㎜ 이상 강수 횟수는 각각 121회, 57회에 그쳤다.
제주 남부에는 서부에 비해 대략 3배 가까이 집중 호우가 더 발생했다.
동남부 지역 강수 횟수를 합산하면 313회로, 서북부 합산 178회보다 75.8% 더 많다.
유종인 민간예보사와 방익찬 전 제주대 교수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1993∼1998년 5년간 도내 강수의 절반인 50%의 양이 남부지역에 쏠렸다.
행정구역상 서귀포시 동남쪽 지역에도 32% 가량의 강수량이 집중돼 이들 지역은 '다우형'으로 나타났다.
동남부 지역의 집중호우는 특정 시기에만 머물지 않고 오래전부터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여름철에 접어들면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에서 습한 공기가 지속해서 유입되고 사방의 바다에서도 해풍이 불어온다.
그런데 제주 지형은 한라산 정상이 제주도 정중앙에서 서쪽으로 약간 치우쳐 제주 동쪽 사면이 다른 사면보다 완만하고 넓게 펼쳐져 있다.
이에 따라 한라산을 돌아 불어온 여름철 습한 공기와 바다에서 불어오는 습한 해풍은 완만하게 넓게 펼쳐진 제주 동남부 지역에 모이고 섞이며 대류운을 형성한다.
대류운은 대기 하층부 온도가 점차 상승하면서 대기 불안정에 따라 발생하는 적운형 구름을 말한다. 적운형 구름이 발달하면 소나기성 강우를 동반해 호우 발생 빈도가 높다.
제주 동부지역에 불어오는 해풍은 또 대기 중 수증기량을 증가시켜 이슬점 온도 상승을 동반하게 된다.
이슬점 온도의 상승은 공기 중 수증기량이 증가함과 동시에 빗방울을 다수 머금은 대류운을 낮은 고도에서도 발달하게 해 단시간에 폭발적으로 강수를 뿌리는 원동력이 된다.
여기에 높이 100∼300m의 동부지역의 많은 오름의 능선은 대기 중 습한 공기를 더 빠르게, 다량으로 상승하도록 도와 결과적으로 많은 양의 비가 내리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여름철 국지적 기습 폭우는 제주도 날씨를 잘 모르는 관광객들을 매우 당황스럽게 한다.
동남부 지역으로 여름철 휴가를 와 나들이나 물놀이를 즐기려다가 갑작스러운 기습 폭우에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구르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제주에는 '달리는 말도 한쪽 귀만 젖는다'라는 말이 전해진다.
말이 제주 들녘을 빠르게 달리는 동안 한쪽에서는 비가 내려 귀가 젖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비가 오지 않아 귀가 젖지 않는다는 의미다.
한쪽은 비가 내려 말의 귀가 젖는데 얼굴 하나 떨어진 반대편은 맑은 날씨로 귀가 젖을 일이 없다고 하니 제주의 지역별 강수량 편차가 얼마나 심한지를 과장 섞인 말로 잘 설명해 준다.
제주 날씨에 낯선 관광객들이 '달리는 말도 한쪽 귀만 젖는다'는 제주 옛말을 기억한다면 갑작스레 쏟아지는 비에 마음 졸이지 않고 안전한 곳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여유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연합뉴스=고성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