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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헤이트풀8 (12) 혐오로 물드는 동북아시아 3국
혐오는 또 다른 혐오 불러올 뿐 ... 혐오금지법, 혐오 막을 수 있나

존 루스(커트 러셀 분)가 워런 소령(새무얼 잭슨 분)의 신원 확인 절차를 마치고 마차에 동승을 허락하면서, 자신이 호송 중이던 데이지에게 워런을 소개한다. 미국인들은 워낙 사교적이라 그런지 상대방이 모르는 사람이 있다 싶으면 거의 본능적으로 ‘소개’를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소개를 한다. 워런 소령이 모자챙을 조금 들어 인사를 한다. 

 

 

현상수배범인 데이지에게도 ‘문명인’답게 최대한 예의를 갖춘다. 그러자 마차에 앉아있던 데이지가 조롱하는 듯한 미소를 머금고 “안녕, 깜둥이(Hi, Nigger)”라고 답례한다. ‘Nigger’라는 말은 요즘도 점잖은 사람들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워 ‘N-word’로 순화해서 옮기는 혐오 표현이다.

워런 소령은 백인들의 그런 혐오 표현에 이미 익숙한지 그저 저능아처럼 웃어 보인다. 사회적 약자는 혐오를 감내해야 한다. 혐오가 혐오스러운 장면이다. 남북전쟁 당시 흑인이 소령까지 진급했다면 최고로 출세한 흑인이다. 그러나 데이지 같은 가장 ‘저렴’한 백인도 자신이 최고의 흑인보다 서열이 높다고 믿는다.

소개가 끝나고, 루스가 워런 소령에게 마차에 동승할 것을 허락하자, 데이지는 현상수배범 주제에 “나더러 깜둥이(nigger)와 동승하란 말이냐!”고 루스에게 거칠게 항의한다. 잘생긴 얼굴 하나로 모든 문제를 덮어버리는 것을 ‘얼굴 깡패’라고 한다면, 흑인 앞에서 백인 데이지는 피부 깡패인 셈이다.

◆ 혐오는 반드시 혐오를 부른다 

 

최소한 1960년대까지 화장실, 식당은 물론 버스도 ‘흑백분리’를 하는 소위 ‘버싱(busing)’을 했던 미국이니 1872년 와이오밍주(州)에서 ‘깜둥이’와 함께 마차를 탈 수 없다는 피부 깡패 데이지의 분노는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겠다.

흑인 워런 소령의 봉욕(逢辱, 욕된 일을 당함)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눈 폭풍을 피해 들어간 ‘미니의 잡화점’에는 남군 출신 스마이더 장군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다. 워런 소령이 통성명(通姓名)이라도 하려고 하자 스마이더 장군의 무지막지한 대꾸가 돌아온다. “네가 흑인이라는 것만 알면 됐다. 너에 대해 그 이상 알아야 할 건 없다.” 스마이더 장군이 내뱉은 흑인 혐오 발언의 수위는 정도(程度)를 넘는다.

결국 ‘Nigger’라는 욕설까지는 참았던 워런 소령도 스마이더 장군의 도를 넘는 혐오 발언에는 인내의 한계를 느낀다. 그들로부터 받은 모욕과 수모를 그들에게 고스란히 돌려준다. 스마이더 장군에게 심장마비 일으킬 만한 모욕을 퍼붓고 총알을 박아버린다. 자신에게 “안녕, 깜둥이”라는 인사를 건넸던 데이지를 목매달아 놓고 데이지가 고통 속에 버둥거리는 ‘마지막 춤(last dance)’을 바라보면서 즐거워한다.

혐오는 혐오를 부른다. 워런 소령이 저지르는 작태는 분명 저질스럽고 비인간적인데, 관객들은 그가 백인들에게 당한 도를 넘는 모욕을 떠올리면 누구를 비난해야 할지 ‘판단 유보(Epoche)’의 상태에 빠져버린다. 
 

 

‘혐오(嫌惡)’란 말 그대로 ‘나쁜 것(惡)을 의심하고 멀리한다(嫌)’는 뜻이라고 풀이한다면, 어찌 보면 현명한 처신책이다. 불에 데어보면 불조심하고, 식중독에 걸려보면 음식을 조심한다. 송나라를 창업한 용인(用人)의 귀재였다는 조광조(趙光祖)도 ‘의인불용(疑人不用,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자는 아예 쓰지를 말라)’이라는 유훈(遺訓)을 남겼다. ‘혐(嫌, 의심하고 멀리하다)’자에 ‘계집 녀’가 들어간 것이 조금 괴이하긴 하다.

하지만 미국의 마이크 펜스(Mike Pence) 전 부통령이 공연한 성적(性的)인 위험ㆍ논란을 원천차단하기 위해 아내 이외에는 어떤 여성과도 단둘이 점심 식사도 하지 않는다는 처신술이 소위 ‘펜스 규칙(Pence Rule)’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공감을 얻은 것을 보면 그것도 이해할 만하다.

이렇듯 본래적 의미의 혐오란 다분히 경험적인 것이며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지혜에 가깝다. 그런데 영화에서 보여주는 스마이더 장군의 ‘일단 흑인이면 무조건 인간말종’이라는 태도는 특정 인종과 집단을 난폭하게 ‘낙인찍는’ 행위다. 물론 흑인 중에 쓰레기가 많을 수도 있지만, 백인 중에도 ‘허여멀건 돼지(white swine)’라 불려 마땅할 만한 쓰레기들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요즘 어느 중국인 관광객이 경복궁 담장에 쭈그리고 앉아 대변을 봤다는 뉴스가 인터넷을 달군다. 역시 대륙의 진상은 차원이 다르긴 하다. 그러나 모든 중국인 관광객들이 경복궁 담장에서 집단배설하지는 않을 듯하다. 그보다는 양식 있는 중국인이 아무래도 더 많지 않겠나 싶다. 

◆ 앞·뒷마당 함께 쓰는 한중일의 갈등 
 

밥에 제아무리 돌이 많이 들어가도 세상에 쌀보다 돌이 많은 밥은 없다. 축구는 예외일지 모르겠지만, 모든 분야에 걸쳐 탁월한 중국인들도 많다. ‘착짱죽짱(착한 짱깨는 죽은 짱깨)’ 식으로 일반화할 일은 아니다. ‘집단 낙인찍기’는 그 집단에 속한 훌륭한 사람들까지 모두 적으로 돌리는 일이다. 

이를 우리에게 빗대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어느 덜 떨어진 ‘K-쓰레기’ 몇몇이 스페인이 자랑하는 바르셀로나의 파밀리아(Familia) 대성당에 한국말로 낙서를 하고 튀었다는데, 스페인 사람들이 모든 한국인 입국금지를 외친다면 우리도 무척이나 억울할 듯하다.

앞마당ㆍ뒷마당을 함께 쓰는 한중일이 혐중, 혐한, 혐일로 들끊는다. 혐오의 삼국지(三國志)를 쓴다. 언제인가부터 전통적인 혐일보다 새롭게 혐중이 기세를 떨친다. 중국과 중국인을 향한 혐오의 표현 양식들이 정도를 넘어선 사회문제가 되고 국익까지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자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혐오 표현의 처벌 장치를 속히 마련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집권당 역시 ‘혐오 집회 금지법’을 발의했다. 그러나 법적인 단속과 처벌이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흑인 혐오에 치를 떨고 흑인 민권운동에 종신(終身)했던 마티 루서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도 ‘흑인 혐오 금지법’을 제정하면서 투쟁하진 않았다. “폭력(법)으로 혐오자를 죽일 수(가둘 수)는 있겠지만, 혐오를 죽일 수(가둘 수)는 없다(Through violence, you may murder the hater, but you do not murder the hate)”는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

어쩌면 ‘혐오 금지법’보다는 독일의 현자(賢者) 괴테(Johan Wolfgan von Goetheㆍ1749~1832년)의 말에 귀를 기울여 봄직도 하다. “혐오란 특이한 것이다. 혐오는 항상 문화 수준이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폭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Hatred is something peculiar. You will always find it strongest and most violent where there is the lowest degree of culture).” 소위 ‘일베’가 그러하다. 한중일 세 나라 중에서 아마도 문화 수준이 가장 낮은 나라가 혐오의 경쟁에서 승리할 듯하다. 우리나라가 그 나라가 아니기를 소망한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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