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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5.09.12 14:19:16

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헤이트풀8 (1) 함의 지닌 영화 속 링컨의 편지
정상회담 후 날아든 트럼프의 편지 ... 대한민국 뒤흔드는 서글픈 현실

영화 ‘헤이트풀8(Hateful Eight)’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8번째 작품이다. 타란티노는 클래식 음악 대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순서대로 Op.(Opusㆍ걸작)라는 접두어로 작품번호를 명기하듯 자신의 작품에 일련의 작품번호를 붙인다. 헤이트풀8은 타란티노의 ‘작품번호(Op.) 8’인 셈이다. 영화 ‘장인’이라면 자신의 작품에 대한 그만한 자부심은 가져도 좋을 듯하다.

 

 

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1877년이고, 공간적 배경은 미국 중서부 와이오밍주(州) 허허벌판이다. 지금도 한반도보다 조금 넓은 면적에 인구는 경기도 평택시 인구에 해당하는 50여만명이이니 1877년에는 거의 황무지라고 해도 무방한 곳이다. 그곳에 미국 북서부의 악명 높은 눈폭풍 ‘블리자드(Blizzard)’가 몰아치는 어느 날 영화가 시작된다.

남북전쟁이 1865년에 끝났으니 전쟁이 끝나고도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시점. 하지만 남북전쟁의 상흔이 여전한 혼란기 속 와이오밍은 미국의 주로 편입되기 이전의 무법천지 구역이다. 그런 위험한 황무지에 ‘미니(Minnie) 잡화점’이 있다. 사막 여행자들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영화의 주인공 중 하나인 존 루스(John Ruthㆍ커트 러셀 분)는 내로라하는 현상금 사냥꾼이다. 살인적인 블리자드가 몰아치는 와이오밍 설원에서 루스가 현상금 1만 달러가 걸린 살인마 데이지 도머그(Daisy Domergue)를 ‘사냥’해 마차에 싣고 호송해 가고 있다.

현상금 사냥꾼에게 현상금이 1만 달러가 걸린 수배범이면 어부가 ‘바다의 로또’라는 밍크 고래 한 마리 잡은 것과 같은 ‘대박’이다. 개선장군처럼 마부까지 딸린 호화로운 육두마차를 전세 내는 호기를 부린다. 그 정도 비용은 곧 받아서 챙길 현상금에 비하면 ‘껌값’이다. 루스의 마차는 살인적인 눈폭풍을 피하기 위해 미니 잡화점으로 향하는 중이다.

눈폭풍에 쫓겨 허겁지겁 설원을 달리는 루스의 마차 앞에 난데없이 북군 장교 정장차림의 한 흑인이 3구의 시체를 포개놓고 의자처럼 깔고 앉아 파이프 담배를 피우면서 루스의 마차를 막아 세우고 ‘히치하이킹’을 한다. 미니의 잡화점까지 태워달라고 한다. 행색과 기세가 범상치 않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마퀴스 워렌 소령(Marquis Warrenㆍ새무얼 잭슨 분)이다. 워렌 소령은 남북전쟁 당시 북군에 소속돼 싸운 장교지만, 지금은 ‘먹사니즘’에 따라 현상금 사냥꾼으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워렌의 범상치 않은 출현에 루스는 아연 긴장한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떠오르는 장면이다. 천신만고 끝에 5m 자리 초대형 청새치를 낚아 배에 매달고 의기양양하게 항구로 돌아가는 노인의 배로 청새치 피 냄새 맡은 상어 떼들이 집요하게 달라붙어 청새치를 노린다. 노인은 청새치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상어 떼와 사투를 벌인다.
 

 

노련한 현상금 사냥꾼인 루스는 워렌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천신만고 끝에 잡은 1만 달러짜리 청새치 피 냄새를 맡고 달려든 상어임이 분명하다고 짐작한다. 미니의 잡화점까지 태워달라는 히치하이커 워렌 소령에게 대포 같은 장총부터 들이댄다.

워렌의 현상금 사냥꾼 허가증명서와 시체 3구가 모두 현상수배범이라는 서류를 확인하고, 워렌의 총을 모두 압수하고서야 마차에 동승을 허락한다. 루스와 워렌은 처음 마주친 순간 서로 8개월 전 채터누가(Chattanooga)라는 곳에서 한번 만났던 사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렇다고 루스가 워렌을 8개월 전에 한번 본 ‘구면(舊面)’이라고 신뢰해서 그를 마차에 태워 준 것은 결코 아니다. 루스가 안 태워줘도 그만인 위험한 흑인 현상금 사냥꾼 워렌을 신뢰하고 마차에 태워준 진짜 이유는 오직 ‘링컨의 편지’였다는 것이 차차 밝혀진다. 

채터누가에서 만났을 때, 자기와 같은 현상금 사냥 업종에 종사하는 워렌이라는 흑인이 ‘무려’ 링컨과 친구처럼 사사로운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마차에 동승하고 루스는 워렌에게 그 편지를 다시 한 번 보여줄 수 있겠냐고 거의 비굴 모드로 청한다. 워렌이 자못 거만하게 품속에서 꺼내 건네 준 링컨의 편지를 황제의 칙서(勅書)처럼 황송하게 받아들고 읽어 내려가는 루스의 표정은 거의 황홀경을 헤맨다.

채터누가라는 도시는 미국 남부 테네시주에 있다. 1870년대 당시 테네시주는 해방된 흑인들을 도륙하고 돌아다녔던 악명 높은 ‘KKK단’의 본거지와 같은 곳이다. 아마도 워렌은 그 흉흉한 곳에서도 백인들에게 링컨의 편지를 신원보증서나 통행증처럼 내보이며 현상금 사냥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제 아무리 ‘극우’ KKK단도 감히 링컨의 펜팔(penpal)은 건드릴 수 없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 링컨 편지의 진위(眞僞)를 둘러싼 공방이 벌어지지만 명확한 감정은 내려지지 않는다.

지난 8월 25일 워싱턴에서 한미정상회담이 있었다. 왠지 시장 상인대표가 가게 보호세 뜯어내는 조폭 두목 만나러 가는 듯한 고약한 느낌의 ‘정상회담’이었던 듯하다. 얼마 전 백악관 집무실에서 집단 린치당하고 거의 실신해서 나갔다는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 꼴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다 싶기도 했던 꽤나 긴장된 외교 이벤트였는데, 예상 밖으로 ‘정상적’으로 마무리된 모양이다.
 

 

보호세 인상에 관한 별다른 구체적 합의내용은 없는데, 우리 대통령에게 보낸 ‘신원보증서’와 같은 ‘트럼프의 즉석 친필 편지’가 가장 큰 외교적 성과물로 부각된다. “이 대통령님. 당신은 위대한 사람이자 지도자다. 당신이 이끄는 한국은 엄청난 미래를 갖게 될 것이다. 나는 여기서 항상 당신과 함께 할 것이다!(President Lee. You are a great man and leader. Korea has a tremendous future with you at the helm. I am always here for you! Best wishes).

세계 극우의 ‘대마왕’이 한국의 친북·친중·좌파 대표에게 발급한 신원보증서가 성조기를 흔들며 ‘메시아’를 기다리던 극우들에게는 기절초풍할 일인 듯하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는 없으니 도대체 국익을 얼마나 갖다 바치고 이런 신원보증서를 받아왔는지 당장 밝히라고 다시금 전의(戰意)를 불태운다.

미국 대통령의 편지 한장이 세계 10대 강국이 됐다는 대한민국을 아직도 이처럼 뒤흔든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서글프다. 우리의 처지는 아직도 링컨의 편지를 신원보증서처럼 소중히 품고 다녀야했던 1877년 흑인 현상금 사냥꾼의 그것인가.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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