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어머니와 벌이는 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투는 옷 입기와 벗기기다. 입고 또 입고 다시 껴입는 어머니를 상대로 벗기고 또 벗기는 나는 결국 두 손을 들고 만다. 완전한 항복이다. 오로지 안방에 앉아서 입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어머니의 수비 작전에 비해 나는 이방, 저방, 부엌, 마당, 개집, 쓰레기통 등 공격해야 할 대상들이 산재하다. 오늘 아침도 어머니는 웃옷 5벌, 아래옷 4벌을 입으시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콩 고르기를 하신다. 하기야 요즘 같은 날씨에 깨·조·고구마 밭에 앉아서 숨이 턱턱 막히도록 헐떡거리면서 김을 매던 일과 비교하면, 선풍기 두 대가 마주 서서 바람을 일으키는 거실에서 하는 소일거리란, 아이들의 소꿉장난에 진배없으리라. 아, 새벽같이 밭으로 나가서 불볕더위에 불한당처럼 뒤덮은 잡초들을 뽑다 보면, 온몸이 땀에 절어서 체열과 지열이 합쳐질 즈음 재열(매미)이 목청을 다해 위험을 경고하던 그때가 생각난다. ‘매앰 매앰 매앰, 지금 당장 땡볕과의 싸움을 중단하고, 어서 이 나무 그늘로 피신하시오. 그러다가 숨이 막혀서 쓰러지거나 죽을 수도 있음을 경고합니다. 맴 맴 맴'라고 급하게 울어대던 그 소리가 얼마나 고맙고 시원하던지...
‘세상이 좁다’는 건 매스컴의 세계에 더 적합한 말이 아닐까. 적어도 이 글을 게재해 온 <제이누리>에 관한 한은,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동안 어머니의 백세 일기를 여기에다 기록해 온 건, 순전히 어머니를 요양보호하면서 함께 버텨내는 삶이 버거운 탓이었다. 기실은, 어머니가 요양원의 주간보호(아침 9시~오후 5시)에 다니는 동안 몇 차례의 긴급 호출이 있었다. 내용은 ‘아무래도 병원에 모시고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것인데, 정황은 돌봄에 대한 애로와 곤란의 우회적 표현이었다. 주간보호는 활동력과 인지력이 단체 생활에 가능한 정도라서 사회복지사 한 사람이 여러 어르신을 돌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어머니처럼 손이 많이 가는 경우는 요양원에 입소해서 생활 전반을 전적으로 기관에 의존하는 게 적절하다. 다만 비용도 많이 요구되고, 집을 떠나야 하는 문제가 걸림돌이다. 더욱이 어머니는 ‘요양원에 보내지 않기’를 약속하고 한국으로 모셔 왔다. 보통 미국에서는 노인이 아프다 해서 병원으로 갔는데, ‘요양원으로 옮겼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얼마 없어 장례식장의 부고장이 날아든다. 바로 이 ‘병원-요양원-장례식장’의 루트가 어머니에게는 가장 견디기 힘든
제주방언으로 쓰신 김종두 선생님의 시집, ‘사는 게 뭣 산디’는 ‘제주여인’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무려 12편의 ‘제주여인’은 4.3을 겪은 어머니가 화자(말하는 이)가 되어 그 시절의 삶을 조곤조곤 들려준다. 그 중에서 ‘제주여인 10’은 자식들이 살아갈 4.3 이후를 이야기한다; 4.3 그 시절, 제주 사름이민 고슴 안 아픈 사름 어디 이서시냐. 동드레 가민 동엣 사름 혼맺힌 사연, 서펜드레 가민 서촌 사름 피맺힌 사연. 이제 왕 아명 도시려 봐도(이제 와서 아무리 얘기해 보아도), 어느 누게가 그 한을 씻어주코. 이 할망 고만히 살당 가크메, 호다 느네 도투지 말앙 살라. 나 죽엉 골총되어 불민 그 뿐. 이제 혼 두 해 더 지나믄 그런 일도 이서싱가 홀꺼여. 오죽하면 4.3으로 한이 맺힌 할머니가 ‘이제 4.3을 두고 더 이상 다투지 말라’고 하실까. 4.3은 이제 화해와 상생의 역사를 쓰고 있다. 2000년 1월에 공포된 ‘제주4.3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그 기초다. 이어서 8월 28일에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설치되어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결과 2003년 10월 정부의 제주4
왠일일까? 요즘들어 어머니께서 자꾸 고향 이야기를 하신다. “닌 대포 소문 들어지느냐? 강 방 오라게(가서 보고 오거라). 할망·할으방을 누게가 책임지느니? 할망·할으방은 하근디(여기저기) 아팡, 날 소뭇(자못) 기다렴실 건디...나가 이추룩 아팡 못 가는 줄도 모르고.... 강, 죽이나 쒕 드려동 오민 조키여만은....” 그래도 내가 선뜻 대답을 하지 않자, 갑자기 아버지가 생각나신 듯, 얼굴이 해맑아지신다. ‘허태행씨가 여자 곹으민 할망·할으방 죽 쒕 드리민 될건디....’ 아버지가 마치 대포마을에 살고 계시기나 한 듯이 아쉬운 눈치다. ‘강, 발 막앙 눠시민 조키여....’라고 혼잣말을 하시는 걸 보니, 정말 그렇게 생각을 하시나 보다. 문득 가슴 저 밑에서 뭉클하고 뜨거운 것이 솟구쳐 오른다. 얼마나 외로우시면..., 얼마나 그리우시면..... 아버지는 22년 전, 미국에서 돌아가셨다. ‘아이들을 돌봐주시면 공부를 더 해보겠다’는 아들을 위해 선뜻 이민을 떠나신 아버지는, 미국 시민으로 17년을 사시다 그곳에 묻히셨다. 아버지의 관을 땅 속으로 깊숙하게 내려서 흙으로 덮는 것을 보시고 엎드러지며 따라서 묻히려던 어머니는, 지금도 ‘아버지를 골충에 버렸
오늘 따라 햇볕이 따사롭게 창가를 두드리며, 어머니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정월 바람이 무색하도록 노랗게 피어난 배추꽃도 어머니의 마음을 포근하게 어루만진다. 마당을 비추다가 어머니의 품을 파고드는 햇볕이, 산산이 부서지며 어머니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햇볕과 바람의 재롱에 마음이 녹아든 어머니가 당신의 18번 고백을 노래하듯 털어놓는다. “우리집은 남향이난 이추룩 또똣헌 게 이(이렇게 따뜻하구나)! 경 허난 니네 아방이 집은 남쪽으로 들어앉아사 헌댄 고라신고라(그러니까 너희 아버지가 집은 남쪽으로 자리해야 한다고 말했나 보다). 오늘은 해가 들어왕 굴묵을 때주난(들어와서 난방을 해주니까), 아방이 왕 보민 잘도 좋아허키여만은(아버지가 와서 보면 무척이나 좋아하겠다만은)... 경헌디(그런데), 허태행씨는 어디로 가신고? 난, 니영 살아도 영 궁금헌디(너랑 살아도 이렇게 재미없고 외로운데), 니네 아방도 나추룩 잘 살암신가, 이?" 요즘들어 20여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들먹이며, 궁금증과 외로움을 드러내시는 어머니가, 한편으론 걱정스럽고, 다른 한편으론 안쓰럽다. 올해 102세가 되신 어머니가 새삼스레 아버지의 안부를 묻고 궁금증을 드러내시니, 무어라 대답할 말
한 해를 무탈하게 보내게 됨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2023년을 보내는 12월의 끝 무렵, 그 마지막 주는 참으로 힘이 들었습니다. 아마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 가는 저녁 무렵이었던 듯 합니다. 어머니가 동녘방에 가시더니 무언가를 가슴에 소중히 품고 오셨습니다. 어느날 마치 골목에서 정신 없이 놀던 아이들이, “춘자야, 저녁 먹으라”고 부르는 목소리에, 저마다 집을 향해 신바람나게 달려갈 때의 상기된 얼굴을 닮았습니다. “정옥아, 내일은 이 옷 입곡 손 심엉(잡고) 교회에 곹이 가게 이!”라는 어머니의 표정이 사뭇 진지합니다. 두 손으로 소중하게 받쳐서 내 눈 앞에 펼쳐진 건, 아, 빛이 바랜 저고리였습니다. 하얀 색이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서 누렇게 퇴색된 것일까요. 어머니의 화안한 미소와 달리 시무룩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는 그것은, 자기의 정체를 숨기고 싶은 저승옷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입고 가신다며, 아마 70대 초반에 마련해 놓으셨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30년 세월을 장롱 깊숙한 곳에서 숨을 죽이며 지내느라, 저 옷도 속이 많이 저렸던가 봅니다. 글쎄요. 요즘은 장례업자가 관이고 수의고 일체를 세트로 계약해서 장례를 치른다니,
요즘들어 어머니의 잠꼬대가 늘었다. “나 살려도라”고,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외칠 때는 가슴이 서늘해 온다. 얼른 어머니를 부둥켜안고서, “어머니, 나 여기 이시매 걱정 맙서 예!”라고 달래면, 마치 어린 아기가 엄마품을 파고들듯 매달린다. “정옥아, 나 살려도라 이!”라고 애원을 한다. 아마도 악몽을 꾸신 게다. 내가 무슨 힘이 있으랴. 그저 어머니를 바라보면, 가슴이 아플 뿐. 얼마나 외로우실까? 주위를 돌아보면, 어머니 연배의 어르신들이 하나 둘.... 거의 모두 이 세상을 떠났다. 한 때는 우리 고향 대포마을에 96세까지 장수하는 부부가 계셔서 참으로 부러워한 적이 있다. 부고 소식이 날아오면, 저도 몰래 아버지가 소천하시던 때의 나이와 비교를 하게 된다. 아버지는 80세에 미국땅에 묻히셨다. 당신 말씀대로, “보통으로 살면 60, 말씀대로 살면 80”이라 하시더니, 그렇게 가셨다. ‘만족하게 살았다’시던 아버지가 오늘 따라 가슴저리게 그립고 서럽다. “어머니, 나가 미신 힘이 이수과... ‘하나님, 나 살려줍서!’랜 기도를 헙서!” 어머니는 나의 담담한 반응에 딴 데로 시선을 돌린다. 그 담대하던 믿음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제 오늘, 아침마다
"정옥아, 차롱에 떡 받아 와시매 먹으라!"(차롱의 표준어는 채롱이고, 채그릇의 하나다. 싸릿개비나 버들가지 따위의 오리를 결어서 함(函)처럼 만들고 안팎에 종이를 바르기도 한다.) 한밤 중에 뜬금 없이 나를 깨우시더니, 무슨 비밀이나 되는 듯이 속삭이며 하시는 말씀이다. 요즘은 어머니가 아주 오래 전 기억을 소환해 내서는, 마치 지금 막 벌어지는 일처럼 얘기하실 때가 많다. 치매 증세는 대부분 기억력 감퇴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발병 초기에는 건망증과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다. 약속을 잊고 물건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수일 전 혹은 수 주일 전의 일에 대한 단기 기억력 저하가 먼저 생기고, 병이 심해지면서 장기 기억력 저하가 온다. 점차 언어능력, 방향감각 등 인지능력이 떨어지면서 심한 경우 옷을 입거나 세수하는 것을 잊어버리기까지 한다. 더욱 심해지면 가족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에 이른다. 또한 정서 변화로 인해 불안·근심·분노 등의 감정 표현이 잦아지면서 우울증이 심해져 자살충동까지 일으키기도 한다(요양보호사 표준교재, p.188). 어머니가 나타내는 치매 증세도 그 선봉이 기억력 감퇴다. 사실, 기억력 저하나 감퇴는 ‘혹시 내가 치매가 아닐
어머니가 내 얼굴을 고즈넉이 바라보신다. 얼마나 부드럽고 다정스런 표정인지, 어머니가 ‘참 곱게 늙으셨구나’ 싶다. 내 가슴으로 싸〜아 하니 밀려드는 물결에, 지난 20년의 세월이 순간처럼 파도친다. 아버지를 미국의 공원묘지에 장례하고서, 어머니 손을 붙잡고 돌아온 게 엊그제 같은데.... 그동안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고, 어머니도 두 세 차례 죽음의 강가를 헤매셨다. 하지만 내 어머니만 예외인 듯, ‘어머니는 영원히 내 곁에서 어머니가 되시겠거니...’ 하고, 연약해지는 늙음을 알아채지 못하였다. 그 어머니가, 새삼스레 내 손을 가만히 붙잡아서 당신의 가슴에 대신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어 하시는 말씀. “정옥아, 고맙다, 고맙다, 촘말로 고맙다 이!” “아니 미신 말이우꽈게! 나가 고맙주, 어떵 어머니가 나한티 고마울 수 이시우꽈?”라면서, 어머니를 부둥켜 안는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면서 커다랗게 밀려온 파도가 가슴을 친다. 가슴이 아프게, 심장이 저리게.... 아 이토록 고맙고 귀한 어머니를 제대로 돌봐드리지 못하였구나. 그런데, 어머니가 전에 없이 왜 이러실까? 불길한 예감에 정색을 하고, 다짐을 받는다. “어머니,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낮잠을 주무시는 어머니가 코를 고신다. 잠이 달콤하게 느껴지는 게 평화롭기도 하다. 하지만 전에 없이 코를 고시는 게 이상하다 싶어서 인터넷 바다로 들어가 본다. ‘노인의 코골이’를 검색어로 넣자, 주르륵 주르륵 정보들이 쏟아져 내린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기대했던 평화나 안녕은 눈을 씻고 보아도 없고, ‘코골이와 치매’가 대세를 이룬다. 최근 노인의학이 발전하고 다양한 노인 대상 임상연구가 진행되면서 치매와 코골이 간 연관성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단다. ‘코콜이는 수면 중에 생길 수 있는 현상으로 호흡이 불규칙해지거나 숨이 막혀서 생기는 소리다. 노인의 경우 코골이가 심할수록 치매와 관련된 위험이 커진다. 코골이로 인해 발생하는 저산소증(무호흡수면)은 뇌 손상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호흡 수면은 무엇일까? 수면 중에 호흡이 일시적으로 멈추거나 느려지는 현상으로, 보통 10초 이상 지속되면 진단된다. 심한 경우에는 2분에 한 번씩 호흡이 끊어지기도 한다. 수면 무호흡증은 코골이와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며, 노인들은 젊은 사람들보다 더 취약하다. 노인들은 노화로 인해 기도 주위의 근육이 약해지고, 턱이 앞으로 내려가서
100세 어머니를 모시고 살다 보면, 소소한 일에도 특별한 의미를 두게 된다. 까마귀가 유난스레 까악까악 거리거나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면, ‘이게 뭐지?’ 싶은 생각에 마음이 심란해진다. 어머니가 혼잣말로 ‘살암시민 끝이 이실테주(살다보면 끝이 있겠지)’라고 하시거나, 정색을 하고서 ‘정옥아, 고맙다, 이!’라고 하실 때에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그러므로 무사안일(無事安逸), 국어사전의 의미 그대로 ‘아무런 일이 없이 편안하고 한가함’이 아침의 기도가 된다. 저녁이 되어서, ‘오늘도 무사안일로 지나가서 다행이구나’라고 중얼거릴 때, 깊은 안도와 평안이 스며든다. 백세 노인에게는 어제와 같이 오늘도 이어지는 게 최고의 복이다 그런데 뜻밖의 전화가 걸려 왔다. 처음에는 나를 찾더니, 이런저런 특성상 맞다 싶으니까 어머니에 대해 묻는다. 나는 서론이고, 어머니가 본론인 게다. ‘무슨 일이냐’라고 직설적으로 묻자, ‘뿌리 찾기’를 하고 있단다. 아무래도 우리 할머니가 당신들이 찾는 이모 할머니 같다고.... 아프리카에 고향을 둔 아메리카의 킨타쿤테(‘뿌리(Roots)’라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우리들에게도 무슨 사연이 있는가
청려장 때문에, 하마터면 어머니를 잃어버릴 뻔 하였다. 토요일 아침, 서울로 떠날 지인을 아침 식사로 송별하고 나니, 마음이 울적하였다. 우리끼리 농담으로 주고받은 노랫말 가사처럼, 왜 ‘가을엔 떠나지 마세요’라고 하는지가 새삼 가슴에 와 닿았다. 한라산을 바라보니, 오늘 따라 설문대 할망께서 누워계신 자리가 사뭇 쓸쓸하다. 성공해서 떠난다 해도 이별이란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닐 터인데...., 제주 바다를 터전 삼아 벌였던 사업을 접고서 가는 길이라...., 아침 내내 미안하였다. 애꿎은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는지, 속이 많이 쓰라렸다. 아픈 건지, 슬픈 건지, 속상한 건지.... 가슴 한켠이 뚫려서 바람이 제멋대로 내 속을 휘적이는 탓이겠지. 몹시도 바람부는 가슴을 안고서 집으로 향하자, 문득 어머니가 걱정이 된다. 잠깐 잊었던 나의 일상이, 드디어 내 중심을 차지한다. ‘별 일 없으시겠지..... 겨우 토요일 아침, 2시간을 비운 것 뿐인데.....’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집으로 와보니, 대문이 열려 있다. 이 시간에 누가 왔을 리도 없는데……. 싶은 순간, 불안감이 엄습한다. 얼른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 방문을 열어본다. 세상에……. 어머니가 안 계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