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들어 어머니의 수면시간이 불규칙하게 길어졌다. 보통 저녁 8시쯤 주무셔서 이튿날 아침 8∼9시면 일어나시던 분이, 엊그제는 점심시간이 되어도 눈을 뜨지 않으신다.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서, 요양보호를 잘 아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가만히 두어라. 기력이 모여지면 저절로 눈을 뜨실 게다’. 참으로 그러실까?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서 어머니 귀에다 대고, “일어나십서, 어머니! 점심 때가 다 되어부러수다!”라고 외쳐 본다. 반응이 없으시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눈꺼풀을 뒤집어본다. 그러자 짜증을 내면서 내 손을 잡아 치우시더니, 다시 잠 속으로 들어가신다. 아이쿠, 다행이다. 그렇게 저녁까지 계속 주무시더니, 이튿날 새벽 4시쯤에야 눈을 뜨셨다. 속 옷이 다 젖도록 축축해진 기저귀를 갈아드리자, 구태여 이동변기로 기어가서 스스로 소변을 보신다. 그리고 당신의 자리로 돌아가서는 다시 깊은 잠으로 빠져든다.
어제는 낮잠을 주무시다가 갑자기 헛소리를 하셨다. “어머니, 무사 이제사 오란?”이라고. 무슨 말씀이시지? 내 책상은 마치 회장님의 비서실처럼 어머니 방 입구에 놓여 있다. 언제라도 어머니가 호출을 하시면 달려 나갈 요량이다.
무슨 말씀이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 꿈속에서 당신의 어머니를 만나신 듯하다. 나는 본 적이 없는 외할머니를 말이다. 단지 가족관계증명서에서 ‘본인 김성춘, 부 김광용, 모 임하용’으로 기록되어 있는 서류로만 뵈었을 뿐. 그래도 어머니를 통해 들어보면, 외할머니는 막내딸 성춘이를 많이도 아끼고 안쓰러워 하신 게 분명하다. 5살에 ‘우리 성춘이 꽃신을 사고 오마’라며 일본행 함경환을 타시려다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어디 아니 그러셨으랴.
함경환은 1918년부터 제주~시모노세키~오사카를 정기적으로 운항하던 배였다. 일본으로 출항할 때는 조천에서 출발해서 애월 포구 등 제주섬을 한 바퀴 돌았다. 접안시설이 없어서 종선(풍선)으로 승객과 화물을 실어 내렸다. 중문에서는 우리마을 대포리의 몰레바당(지금의 주상절리 동쪽 지경)에 정박하면, 큰갯물 포구(지금의 약천사 근처)에서 중문면 관내 주민들을 태워서 본선(함경환)으로 노를 저어 갔다.
1928년 정월 초닷새, 35명을 실은 풍선에서 막 본선으로 승선하는 도중, 갑자기 폭풍이 몰아쳤다. 순식간에 종선에 탔던 35명 중 32명이 사망하였다. 대포리 최초의 큰 사건이며, 정월 초나흘 날 제사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사건 후부터 대포리에 함경환을 대지 않고, 성천포(배린내)로 승선장소를 옮겼다(큰갯마을, 2001, 대포마을회, P. 241).
어머니는 어디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들으셨을까? 43세의 장년이던 외할아버지는 힘이 세고 심지도 굳은 분이셨다. 사력을 다해서 폭풍을 타 올라서 가까스로 함경환에 승선하셨다. 생사의 기로에서 생을 붙잡은 4명에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등에 아기를 업은 이웃집 아주머니가 허우적대면서 소리를 질렀다. “삼춘, 우리 아기만 살려줍서게! 이 아기도 돌앙갑서!”라고. 할아버지는 배에서 뛰어내렸고, 그 순간 돌풍이 휘몰아쳐서 모두를 삼켜버렸다.
그렇게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은 외할머니는, 바람만 불면 바닷가로 나가서 할아버지의 흔적을 찾고 또 찾았다. ‘신발이나 옷가지, 양말 한 짝, 머리카락 하나라도 남겨놓지 않고서야 어떻게 대포마을을 떠날 수 있겠느냐’라면서 울고 또 울었다. 이후로는 마을에서 장례가 나서 상여가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장지로 떠날 때면, ‘어떤 사람은 복도 많아서 시신을 매고서 영장을 하는고....’라며 고개를 돌리셨다.
할머니가 물질을 할 줄 알았더라면, 아마도 태왁을 짚고서 바닷속으로 깊이 들어가, 숨을 죽여가며 몇 날 며칠이라도 엉장(커다란 바위로 둘러싸여 동굴 같은 곳) 속들을 샅샅이 찾아보았으리라. 도순리에서 시집을 온 할머니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물질을 하지 못하였다. 하기야 물질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던가. 이후로 할머니의 서러움은 막내딸을 볼 적마다 한층 더 복받쳐 올랐을 거고, 어머니는 할머니에게서 아버지의 마지막 이야기를 듣고 또 들었으리라.
어머니는 물질을 배웠고, ‘대포에서 1등은 못 해도 2등은 한다’는 상군해녀가 되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강원도 속초까지 원정물질을 다녔고, 대포마을의 기록에 의하면 잠수회의 제 10대 해녀회장을 역임하는 리더십을 보이기도 하였다(큰갯마을, 2001, P. 533).
어쨌든 어머니는 아버지 없이 서럽게 자랐고, 그만큼 어머니와의 정도 더 깊었을 것이다. 1923년 3월 22일생, 새해 들어 만 나이로 102세가 되신 어머니는 치매 증세가 있으시다. 그동안은 주로 물건이나 음식을 숨기거나 침을 뱉는 등(요양보호사 표준교재에서는 기타로 분류함)의 약한 증세를 보이셨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옷을 입을 때 속옷을 겉옷 위에 입거나 보이는 옷들을 모두 껴입어서 거동이 불편할 지경이다. 음식도 스스로 드시지 못하고 가만히 있거나, 좋아하는 음식(생선)이 보이면 그냥 손으로 마구 집어 먹기도 하신다. 집안에서도 화장실과 안방을 구분하지 못해 헤매시거나, 시간 개념이 없어서 날짜·요일·시간을 아예 모르고 지내신다. 이따금, ‘오늘이 며칠이니’라고 물으시지만, 대답을 해드려도 정작은 그 의미를 모르시는 눈치다.
간혹은 ‘우리 집에 머리 검은 쥐가 들었다(누가 당신의 돈이나 물건을 훔쳐갔다)’라며 화를 내시기도 하는데, 그저 서럽고 슬프고 가엾을 뿐이다. 기저귀를 채워드리지만, 낮에는 화장실에 가서 스스로 대소변을 해결하려고 애쓰시는 편이다. 요즘 들어 대변 실수(실금)를 간혹 하셔서 이부자리를 빨고 급작스레 목욕을 하는 등 소동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환청(실제로 나지 않는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환각 현상), 환시(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마치 보이는 것처럼 느끼는 환각 현상) 등의 정신증은 그다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마치 돌아가신 어머니가 실제로 보이는 것처럼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니, 참으로 마음이 아프고 쓰리다.
문득 어머니의 인생 여정을 살펴보자 싶은 생각에 동사무소에 가서 제적등본을 발급받아 보았다. 외할아버지 김광용님은 1886년(일본제국 명치 19년)에 출생하셨고, 외할머니 임하용님은 1880년(명치 13년)에 출생하셨다. 어머니는 1923년(대정 12년)에 두 분의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 막내딸을 안아보면서 할아버지는 얼마나 흐뭇하셨을까? 오죽하면 ‘일본에 가서 꽃신을 사고 오시마’ 하면서 기꺼이 일본행 함경환으로 떠나셨을까?
이 글을 쓰는 지금, 어머니는 정색을 하시고선 아주 중요한 당부를 내게 하신다. “정옥아, 범벅 먹단 남은 거, 어떵 먹어부러살 건디...., 니가 책임지라, 이!”. 아, 우리가 대포마을에 살던 시절에는, 일을 하느라 저녁이 늦어지면 얼른 범벅을 해서 먹기도 하였다.

범벅이란 끓는 물에 밀가루를 넣어서 휘저으면 되는 초간편 음식이다. 고구마를 넣으면 감저범벅, 호박을 넣으면 호박범벅이 된다. 범벅도 갓 만들었을 때는 뜨거운 맛에, 신선한 맛에 그런대로 별미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식어버리면, 식은 죽 먹기처럼 간단치가 않다. 별 맛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리저리 돌리다가 어머니 차지가 되는데, 어머니는 지금 그게 걱정이신 게다. “어머니, 걱정 마십서! 남은 범벅은 맥스(개) 줘부러동(주어버리고서), 우리랑 허영 헌 쏠밥에 솔라니(옥돔) 굽곡, 매역(미역)에 쇠고기 듬박허게(큼직하고 풍성하게) 썰어 놩, 어머니 생일추룩 하영 하영 먹게, 예!”.
부디 올해도 유채꽃 만발한 꽃길을 걸으시고, 다섯째 딸이 캐어 온 고사리도 맛보시고, 추석날 섶섬 앞에서 가족사진을 찍으시며, 그렇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주시기를....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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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