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가 교수로 있는 제주대에 가봤다. 작은 학교인 줄 알았는데 캠퍼스가 매우 넓고 쾌적했다. 제주의 대학캠퍼스 방문은 처음이었다. 그동안 제주도 곳곳을 다녀봤지만 인터넷에서 제주대를 찾아가보라는 내용은 본 적 없다. 제주분들은 “거기 뭐가 있다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도시에 살다 보면 넓고 여유로운 공간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여행가인 나로서는 뭔가 느낌이 있는 곳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기분이 남다르다. 바깥에서 근사한 식사를 대접해주려는 후배한테 캠퍼스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 교수식당에서 점심을 사달라고 했다. 몸국과 돔배고기를 맛있게 먹고 앞 건물 라운지에서 커피까지 여유롭게 마셨다. 제주도의 이런 장소도 여행 온 외지인들이 와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유로운 매력이 넘치는 코스다. ‘여행 콘텐츠’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젊은 세대들의 여행은 자연물 감상 대신 편안한 휴식과 색다른 공간에서의 색다른 느낌을 따라간다. 그들이 찾는 곳을 기성세대의 눈으로 보면 ‘대체 저기에 왜 갈까?’ 싶다. 기껏 비행기 타고 날아와서 실내카페에 들어가 커피 마시며 앉아있으니 말이
▲ 어린이들이 즐겁게 감귤따기 체험을 하고 있다. 좀 여유 있는 일정으로 제주에 오면 귤부터 한 상자 산다. 차 뒷자리에 놓고 틈나는대로 까먹는다. 과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제주도에 와서 귤을 까먹을 때는 체질과 입맛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 같다. 도대체 제주에서 서울까지 가는 동안 어떤 작용이 있길래 이렇게 산지(産地)의 귤맛은 다를까. 올레길 걸으면서 가장 기대하는 것도 귤이다. 가끔 귤밭을 지날 때면 밭주인에게 3000원 어치 정도만 팔라고 부탁한다. 들고 가기 무거울까봐 그 정도만 사려는 것인데 인심 좋게 너무 많이 담아줘 길 걸으며 힘들 때도 있다. 물론 무슨 돈을 받냐며 그냥 주는 때도 많았다. 가장 아쉬운 것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 때다. 아무리 풍성하게 달려있고 주머니에 돈이 있어도 주인 없는 귤밭은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다. 서영춘씨가 하던 만담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떠있어도 고뿌(컵) 없으면 못마십니다.”가 실감난다. 어떤 곳에서는 무인으로 가져다놓고 돈통에 1000~2000원 넣고 가져가도록 한다. 사막의 오아시스만큼이나 반갑다. 돌, 바람, 해녀, 바다, 말… 외지인
▲ 올레길이 그렇게 유명한데도 하루 종일 걸어봐야 두어 명 마주칠 뿐이다. 제주공항의 그 많던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로 다 흩어진 걸까? 만일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 처음 서울에 와본다면 서울은 엄청나게 넓고 큰 곳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차가 막히지 않는 시간에 달려도 한 시간 넘게 걸리고 온통 높은 빌딩으로 빽빽하니 실제 크기보다 더 넓게 생각될 법 하다. 그런데 제주도의 면적은 서울의 세 배다. 물론 다른 비교는 필요 없다. 오늘 이야기를 풀기 위해 그저 넓이만 비교하려 한다. 서울 사람들은 제주도를 '만만한' 크기로 생각한다. 대단한 착오이고 그로 인한 손해는 고스란히 본인 몫이다. 관광계획 세우는 것을 보면 렌트카회사에서 나눠준 쿠폰북 지도를 보며 여기저기 동그라미 치는데,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사방팔방으로 동선을 짰다가 여행 내내 길바닥에 시간과 기름 뿌리며 고생하다 올라가는 경우가 빈번하다. 물론 일상에서 벗어난 드라이브 자체가 휴식이자 여행의 즐거움일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곳을 찾은 여행자들의 거리개념은 좀 다를 수도 있다. 생활인의 눈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여행자의
▲ 대부분의 서울사람들은 처음에는 갈치국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갖지만 일단 한번 맛을 보면 빠져들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너무 비싼 음식이 되어 아쉽다. 어제 너무 무리했다. 올레길 12코스를 걸어 도착한 용수포구에서 숙소를 잡았어야 했는데 그대로 지나쳐 오버 페이스 하는 바람에 깜깜해진 후에야 모슬포에 겨우 돌아왔다. 11월의 모슬포 방어를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한라산 소주에 방어를 실컷 먹고 잤더니 아침에 도저히 못 일어나겠다. 며칠 동안 걸었던 게 몸에 무리가 왔고 포구의 가을 정취에 빠져 과음했나보다. 겨우 기어나와 포구의 한 식당에 들어가 갈치국을 부탁했다. 해장을 위해 국물이나 두어번 떠먹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런, 영화나 만화에서 보면 상처에 바르는 순간 치지직~ 하면서 상처가 아무는 것처럼, 퍼런 배추와 노란 호박을 넣고 칼칼하게 맛을 낸 갈치국 국물이 짜르르하게 두어번 식도를 통과하자 신기하게도 몸이 살아났다.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내게 제주 음식의 신기원은 갈치국과 고등어회였다. 고기국수, 몸국, 보말국, 옥돔, 오분자기, 빙떡 같은 것은 그저 제주 음식이라 하니 ‘그런가?&rsquo
▲ 저비용항공사를 비롯해 항공사가 다양해진 후로 제주까지 가는 길이 훨씬 수월해졌다. 지난해 말에는 아주 작은 비행기를 타보았다. “소요시간은 이륙 후 50분입니다.” 비행기 기장의 이 친절한 안내 멘트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 제주도는 한 시간이면 가는 섬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늘 이상한 게, 열한 시 비행기를 예약해도 아침 일곱 시부터 서둘러야 한다. 씻고 준비하면 여덟 시, 공항에 도착하면 아홉 시 반이다. 아무리 일찍 체크인 해봐야 15분 전 탑승이지만 그래도 공항이라는 장소는 한 시간 이상 여유를 두어야 안심이 되니 아침부터 부산을 떨게 된다. 11시 비행기는 정오 조금 넘어 제주에 도착하고 짐 찾고 렌터카회사에서 차 받아서 콘도에 체크인까지 마치고 들어가면 점심도 먹지 못한 채 오후 세 시 가까이 된다. 집 떠난 지 여덟 시간, 우리 인식 속의 ‘한 시간 거리’ 제주와는 차이가 있다. 여유 있게 휴식하러 가는 서울 사람들보다 일이 있어 올라오는 제주 사람들 입장에서는 더 멀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서울 사람 가운데 여유만 된다면 나중에 또는 노후에 제주로 이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 서울 사람에게 제주는 늘 ‘설레고 즐겁고 기뻐야만’ 할 것 같은 공간이다. 그러니 매번 그 감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10여 년 전부터 제주에 ‘꽂혀’ 일년에 적게는 두어 번, 많게는 대여섯 번 정도 다니다 보니 제주에 대한 잡다한 지식이 꽤 쌓인다. 그런데 내가 제주에 대해 좀 안다고 생각하는 주변 지인들이 내게 묻는 것은 항상 정해져 있다. “제주도에선 뭘 먹어야 하느냐?”다.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예전에는 잘 안다고 생각해서 신나게 떠들어댔는데 제주 속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모르겠다. ‘제주의 전통음식을 묻는 건가?’ 싶어 이것저것 알려주다 보면 좀 이상한 생각이 든다. 만일 제주에 세계 최고의 스파게티나 스테이크 전문점이 있다면 어떡해야 하나? 이미 외지인에게는 ‘마라도=짜장면’ 아닌가. 나는 마라도 짜장면을 먹어보지 않았지만 사람들 말로는 특별한 맛은 아니라고들 한다. 그래도 거기 가면 꼭 먹어봐야 할 것 같은 느낌, 그게 바로 ‘문화’로 자리잡은 것이다. 사실 ‘제주에서는
▲ 성산읍 N수산의 천왕돔. 여기에 잘 끓인 지리까지 나오면 완성이다. 회 먹으러 와서 무엇이 더 필요할까? 제주 사람들이 잘 모르는 제주의 매력 가운데 하나가 ‘생선회’다. 아니, 모르지는 않겠지만 서울 사람들이 좋아하는 포인트를 잘 모르는 것 같다. '모슬포 방어'를 많이 홍보하고 자랑스러워 하는데 정말 된장에 찍어먹는 고소한 방어 맛은 별미 중에 별미다. 그런데 서울에서도 방어는 어렵지 않게 구해먹을 수 있다. 방어보다 더 먹고 싶은 것은 서울에서 좀처럼 맛보기 힘든 벵에돔과 고등어회다. 춥고 물가 비싸고 공기도 나쁜 서울, 소주라도 실컷 마시고 싶은데 생선회라고는 맨날 흐물거리는 광어와 우럭뿐이다. 서울 사람들 사는 게 참 딱하지 않은가. 제주에 올 때마다 성산읍에 거처를 마련하는데, 이곳에는 거르지 않고 찾는 식당이 있다. 고성리에 있는 N수산이다. 택시를 타고 이 식당에 가자고 하면 성산읍의 기사님들이 어떻게 거기를 아냐고 묻고, 몇 년 전부터 다니던 집이라고 하면 그때부터 친근감을 표시한다. 제대로 잘 찾은 집이란다. 처음에는 그 식당의 벵에돔 맛에 반했는데 요즘 몇 번은 벵에돔이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수필가 박헌정의 ‘서울사람의 제주느낌표(!)’입니다. 박 작가는 서울서 태어나 한국의 386시대를 고달프게 살아온 전형적인 ‘서울공화국’ 국민입니다. 하지만 그가 청·장년기를 보낸 삶의 교훈은 ‘쉼표’입니다. 그리고 우리 산하에 대한 ‘느낌’입니다. 그의 ‘느낌’은 발길 가는대로 훌쩍 날아간 ‘제주도’란 공간에서 그 절정을 찾습니다. 그가 만난 제주의 산하, 문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주 안’이 아닌 ‘제주 밖’ 사람의 시선으로 풀어봅니다. 제주가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 주 ▲ 이틀 동안 달게 자고 일어나 올라간 대수산봉. 제주를 모처럼 찾는 사람들이라면 “거기까지 가서 잠만 자고 겨우 야트막한 산 하나 올라갔냐?”고 할지 모른다. 4박 5일의 제주여행이라고 하면 그리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일정이다. 그런데 당일로 업무 보고 올라가는 사람도 있고 한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