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 처음 서울에 와본다면 서울은 엄청나게 넓고 큰 곳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차가 막히지 않는 시간에 달려도 한 시간 넘게 걸리고 온통 높은 빌딩으로 빽빽하니 실제 크기보다 더 넓게 생각될 법 하다. 그런데 제주도의 면적은 서울의 세 배다. 물론 다른 비교는 필요 없다. 오늘 이야기를 풀기 위해 그저 넓이만 비교하려 한다.
서울 사람들은 제주도를 '만만한' 크기로 생각한다. 대단한 착오이고 그로 인한 손해는 고스란히 본인 몫이다. 관광계획 세우는 것을 보면 렌트카회사에서 나눠준 쿠폰북 지도를 보며 여기저기 동그라미 치는데,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사방팔방으로 동선을 짰다가 여행 내내 길바닥에 시간과 기름 뿌리며 고생하다 올라가는 경우가 빈번하다.
물론 일상에서 벗어난 드라이브 자체가 휴식이자 여행의 즐거움일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곳을 찾은 여행자들의 거리개념은 좀 다를 수도 있다. 생활인의 눈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여행자의 행태가 한두가지인가. 눈밭에서 들뜬 표정으로 기념촬영 하는 동남아 관광객들처럼, 제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감귤밭이나 한라산을 보며 감탄하는 서울 사람을 이상하게 생각할 건 없다. 새로운 느낌은 누구에게나 값진 선물이다.
그러니 제주에만 오면 비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거리감각 역시 흥분된 여행감정의 부작용 정도로 이해해주시라. 실제로 나 역시 초기에 제주시의 친구에게 "지금 성산포인데 와서 소주 한잔 하자" 전화했더니 곤혹스러워하던 기억이 난다. 제주 시내에서 성산은 45km, 매우 먼 거리다. 만일 서울 강남역에 근무하는 친구한테 술 마시러 경기도 오산까지(45km다) 오라고 하면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여행객들처럼 기꺼이 움직일만한 거리가 아니다.
서울 사람이 남산이나 방송국에 가본 적 없는 것처럼 제주 사람들은 매일 눈에 보이는 한라산에 서울 사람보다 적게 올라갔을 가능성이 높다. 제주시 출신인 어떤 사람이 50 평생 서귀포에 단 한번 가봤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것도 고등학교 때 같은 동네 사람과 미팅하는데 누가 볼까봐 일부러 멀리까지 간 거였단다.
원래 서울 사람들은 자기 중심으로 생각한다. 그건 서울 사람들의 인격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중심'에 살다 보면 평형감각을 잃을 수밖에 없다. 미국인들이 세상의 언어는 곧 영어라 생각해서 전세계 아무한테나 영어로 말 거는 것과 비슷하다.
언젠가 부산출신 친구가 처음 서울에 올라와서 충격 받은 일을 이야기했다. 하나는 고향집에 내려갈 때마다 친구들이 "시골 내려가?"하는 것, 인구 400만의 대도시 부산이 시골취급 받는 게 짜증났을 것이다. 또 하나는 "부산 출신이면 수영 잘하겠네?", 이 역시 황당했단다. 부산 어디에 바다가 있는지 평생 모르고 사는 사람이 태반일 테니까. 제주에서 온 사람한테는 "귤 많이 먹었겠네?" 묻는데 오직 이것만이 사실이고 “말 많이 타봤겠네?”, “한라산 자주 가겠네?” 같은 것들은 전부 일상의 고정관념 아닌가. 그런데 모두 악의 없는 말이다.
서울 사람에게 ‘시골’은 촌스럽거나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애초 시골 출신 아닌 서울 토박이는 거의 없고 스스로도 ‘나는 대구 사람, 전주 사람’ 식으로 정체성을 갖는다. 서울이 수백 년 동안 중앙집권적 왕권정치의 중심이었던 만큼 서울 사람에게 시골은 농사 짓고, 숲과 산이 울창한 곳이 아니라 그저 ‘서울 아닌 곳’일 뿐이다. 어쩌면 어린 시절에 국어숙제로 받은 ‘비슷한 말, 반대 말 열 개씩 적어오기’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그 지역을 어떤 특성으로 한정해서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호감과 찬사, 나아가 상대방과 친해지고 싶은 의도인데, 너무 단편적인 상식선에서 획일화되니 듣는 입장에서 질리는 것일 수 있다.
같은 차원에서 제주에서 표출되는 서울 사람들의 들뜬 분위기와 황당하고 우왁스러운 여행방식들 역시 이해의 범위를 넘어서는 게 가끔 있을지 몰라도 기본 감정은 모두 ‘설레는 제주’에서 비롯됨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박헌정은? = 서울생. 연세대 국문과를 나와 현대자동차, 코리안리재보험 등에서 25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50세에 명퇴금을 챙겨 조기 은퇴하고, 책 읽고, 글 쓰고, 여행하는 건달이자 선비의 삶을 현실화했다. 공식직함은 수필가다. 은퇴 후 도시에 뿌리 박혀버린 중년의 반복적이고 무기력한 삶에 저항하기로 했다. 20대는 돈이 없어 못하고, 30-40대는 시간이 없어 못하고, 60대는 힘과 정보가 없어 못하던 일들, 꿈만 같지만 결코 꿈이 아닌 현실이 되어야 할 일들, 50대의 전성기인 그가 그 실험에 도전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인생 환승을 앞둔 선후배들과 공유한다. 직장생활 중 대부분을 차지한 기획, 홍보 등 관리부서 근무경험을 토대로 <입사부터 적응까지(e-book)>를 썼다. 현재 중앙일보에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을 연재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