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여유 있는 일정으로 제주에 오면 귤부터 한 상자 산다. 차 뒷자리에 놓고 틈나는대로 까먹는다. 과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제주도에 와서 귤을 까먹을 때는 체질과 입맛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 같다. 도대체 제주에서 서울까지 가는 동안 어떤 작용이 있길래 이렇게 산지(産地)의 귤맛은 다를까.
올레길 걸으면서 가장 기대하는 것도 귤이다. 가끔 귤밭을 지날 때면 밭주인에게 3000원 어치 정도만 팔라고 부탁한다. 들고 가기 무거울까봐 그 정도만 사려는 것인데 인심 좋게 너무 많이 담아줘 길 걸으며 힘들 때도 있다. 물론 무슨 돈을 받냐며 그냥 주는 때도 많았다.
가장 아쉬운 것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 때다. 아무리 풍성하게 달려있고 주머니에 돈이 있어도 주인 없는 귤밭은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다. 서영춘씨가 하던 만담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떠있어도 고뿌(컵) 없으면 못마십니다.”가 실감난다. 어떤 곳에서는 무인으로 가져다놓고 돈통에 1000~2000원 넣고 가져가도록 한다. 사막의 오아시스만큼이나 반갑다.
돌, 바람, 해녀, 바다, 말… 외지인의 뇌리에 떠오르는 제주의 상징물은 다양하겠지만 내게 가장 와 닿는 것은 귤이다. 아무리 멋진 상징물들이 있다 한들 결국 내 입을 통해 내게 ‘섭취’되는 것이 가장 가깝지 않겠는가.
그러니 올레길을 걸으면서도, 제주항공을 타도, 제주 유나이티드팀의 경기를 봐도 본능적으로 감귤색이 떠오른다. 자기 지역이나 나라의 상징색을 분명하게 갖는 것은 큰 행운이자 즐거운 일이다.
제주사람들이 귤에서 느끼는 정서 역시 매우 유별난 것 같다. 제주 출신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대개 집에 감귤나무가 있고, 귤 농사 덕분에 대학까지 공부했다며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부모님 생각에 젖는 사람도 몇 명 보았다. 그러니 제주도의 '귤'은 농작물 이상으로 애잔하고 진한 느낌이 있다. 그래서 나 역시 차가운 귤을 손에 쥘 때마다 제주도 사람들의 마음을 느낀다.
나는 좀처럼 뭘 사지 않는 사람이지만 어떤 지역에서 깊은 인상을 받거나 흥취가 오르면 기념이 될만한 것을 산다. 주로 그 지역을 대표하는 물건이다. 따라서 제주공항을 출발할 때는 귤나무를 사야 하는데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서울에서는 자랄 수도 없고, 누가 보아도 엉뚱한 짓이다.
그래서 생각해본 게 감귤나무 분양이다. 이런 사업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들어본 적 없다. 콘도나 골프장 회원권처럼 감귤나무도 분양하는 것이다.
몇 그루씩, 아니면 몇 평씩 일정 금액을 받고 분양해서 제주에 내려가면 내 귤나무의 것을 내가 직접 따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올레길을 걸으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아이들이 강아지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다가 결국 엄마에게 강아지 키우자고 조르는 것처럼 나도 올레길을 걸으며 귤나무에 얼마나 애정을 느꼈으면 이런 생각을 했을까.
만일 바빠서 제주에 못 내려가면 분양한 원래 주인이 따서 일정 수고비를 받거나 귤의 일부를 제하고 택배로 뭍에 보내준다면? 꽤 괜찮은 아이디어 같다. 물론 농사는 제주도 주민이 지어주지만 “내 밭, 내 귤나무에서 난 내 귤을 먹는다!” 사업구상이야 누가 못하냐고 타박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용기 있는 누군가가 나선다면 나는 다섯 그루 정도 분양 받을 의향이 있다. 소유욕 치곤 참 건강하지 않은가. 내 감귤나무를 갖고 싶다.
박헌정은? = 서울생. 연세대 국문과를 나와 현대자동차, 코리안리재보험 등에서 25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50세에 명퇴금을 챙겨 조기 은퇴하고, 책 읽고, 글 쓰고, 여행하는 건달이자 선비의 삶을 현실화했다. 공식직함은 수필가다. 은퇴 후 도시에 뿌리 박혀버린 중년의 반복적이고 무기력한 삶에 저항하기로 했다. 20대는 돈이 없어 못하고, 30-40대는 시간이 없어 못하고, 60대는 힘과 정보가 없어 못하던 일들, 꿈만 같지만 결코 꿈이 아닌 현실이 되어야 할 일들, 50대의 전성기인 그가 그 실험에 도전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인생 환승을 앞둔 선후배들과 공유한다. 직장생활 중 대부분을 차지한 기획, 홍보 등 관리부서 근무경험을 토대로 <입사부터 적응까지(e-book)>를 썼다. 현재 중앙일보에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을 연재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