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편 -. 나이 서른다섯 이후에나 수필을 쓸 수 있다던 어느 수필가의 나이의 의미를 어렴풋하게 이해할 듯하다. 살아서 꼭 해야 할 일을 알아가는 것이 나이듦의 의미이지 않을까. 살아서 꼭 해야 할 일을 알아가는 것은 내겐 이해이며 수용이었다. 환자들에게서 의사인 내가 배운 행동은 경청이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꼭 닮은 환자였다. 닮았다기보다는 피부색깔로 받은 선입감에 떠오르게 한 인상착의였다. 분명히 그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은 알콜중독이다. 수차례 나를 빤히 쳐다보기만 하던 그가 정색을 하며 애틀란타에 가보았느냐고 물어왔다. 처음엔 미국의 동해바다인 대서양으로 알고 자주 가는 바다라 그렇다고 끄덕여줬다.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보고 왔느냐고 그가 다시 물었을 때 목사의 고향인 애틀란타 시임을 알아차렸다. 가보지 못했다고 했다. 꼭 가보라던 그의 목소리가 정중했다. 그래 보겠다고 했지만 환자와의 약속은 건성으로 한 게 되고 말았다. 그 후 삼년이 지나서 미시시피강 하구의 도시 뉴올리언즈로 2박 3일의 긴 자동차여행을 떠났다. 59번 하이웨이를 나와 뉴올리언즈로 들어서자마자 화장실이 급해 맥도널드로 들어갔다. 화장실 문이 잠겨있었다
28 pageturner. 환자에게 그렇듯이 나에게도 희망을 심지 않는다. 더욱이 용기를 불어넣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할 일, 그 날 할 일, 그 날 그 날 할 일에 충실하다 보면 희망도 용기도 생겨났다. 다음 페이지를 넘기기 전 지금 페이지에 성실할 뿐이다. 삶은 픽션이 절대 될 수 없다. 영화관이나 인터넷 창의 화면에 갇힌 좁은 공간의 픽션이 결코 삶일 수 없다. 삶은 무한히 넓고 무한정 열려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작더라도 의미가 있거나 재미가 있기를 바라지만, 희망으로 포장하거나 용기로 과장하려 하지 않는다. 반전을 꾀하지도 않는다. 반전은 픽션일 뿐인 소설과 영화의 몫이다. 내가 넘겨야 할 책장은 작은 것일지라도 변화에 있지 비현실적 반전에 있지 않다. 결코 현실주의자는 아니다. 허무나 염세는 더욱 아니다. 지금주의자라고 해야 가깝다. 그러나 이러한 말장난에 휩쓸리지 않는다. 휘둘리지 않으려고 이런 말을 경계하는 편이다. 출근하면 처음 하는 일이 책상 맞은편 옅은 하늘색 벽에 걸린 꽃그림들을 하나하나 바로 세워보는 것이다. 십호 크기의 작은 꽃그림이 넉 장 걸려있는데 모두 내가 그린 세밀화다. 수련, 진달래, 붓꽃 그리고 수선화다. 내가 특히 좋
29 가슴을 안으면서 사랑한다고 한다. 또는 가슴을 안지 못하는 사랑도 사랑이라고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랑은 품는다. 그러나 우리는 품는다는 의미를 알 만큼 성숙하지 않은 어린 아이였다. 안겨야 하는, 보이는 사랑에 갈급할 뿐 마음 안에 숨겨진 사랑을 헤아리기엔 아직 미숙한 어린 아이였다. 비록 그것이 더 깊다하여도. 깊이는 아이에게 있어 어려운 단어였다. 감정이 아니고 이해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사랑이 강제로 보일 수밖에 없었고 속박일 수밖에 없었던 어린 나이에 뭣 모르고 저지른 놀이를 세 살 위지만 여전히 어린 아이였고 나와 같이 강제와 속박된 사랑에 싸여있었던 오빠가 그 때 왜 그럴 수 있었을까, 얼굴을 붉히면서도 되돌아보곤 했다. 회한이 아니다. 회상이다. 내게 상처를 준 적이 한 번도 없다. 단지 부끄러움만 있을 뿐이었다. 오히려 내게 안겨준 느낌으로 채워진 행복, 그래, 바로 그 행복감에 다시 젖어보고 싶기에 회상이며 그리움이다. 오빠의 우표첩에는 벗어나고 싶다든가 떠나고 싶다는 글귀가 유난히 눈에 띈다. 오빠 방 벽에 붙여 놓은 <온전하기에 흔들린다>도 같은 의미 같았다. 흔들린다는 건 벗어나 떠나고자 하는 마음일진대, 오빠는 갇힌 지
30 나는 과거를 떠올렸고 과거 안의 가족을 떠올렸고 가족 안의 사랑을 떠올렸다. 이것은 모두 집안에서 이뤄졌다. 과거도, 가족도, 사랑도 규정지으며 갇혀있었다. 별로 상쾌하지 않은 미끈한 갯벌에 적신 맨발의 찬기에 스며들어온 밀물의 온기, 그 때처럼 멈추게 하는 시간의 혼합이 과거며 가족이며 사랑이었다. 갯벌에서처럼 자연히 눈을 감았다. 멈춰선 정지된 순간이 아득하게 복사뼈에서 찰랑거렸다. 오빠의 두 손이 내 발목을 감쌌다. “곧 온 몸이 따듯해질 거야.” 몸이 으스스했다. 감기가 올 것 같았다. 집에는 엄마가 없었다. 오빠에게 감기약을 찾아달라고 했다. 오빠는 의사가 돼주겠다며 오빠 방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누워봐.” 오빠가 하라는 대로 했다. 오빠의 침대에 누워 보는 천장이 하늘같았다. 내 방처럼 온통 하늘색 벽지로 입혀져 있기도 했지만 내 방의 침대에서와는 달리 천장이 높아보였다. 그래서 하늘 아래에 누워있는 기분이 들었다. “오빠 방은 높아.” 오빠는 내 발목을 연신 문질렀다. “오빠, 정말 따듯한 것 같아.” 나는 오빠를 올려다봤다. “그럴 거야.
31 십 삼년 만에 보내려는 편지는 쓰는 데도 오래 걸렸다. 오빠의 아내, 오빠의 여자를 묻다가 그만 편지를 멈추고 말았다. 어릴 적에 그랬듯이, 답답한 숨통을 터주던 우표첩을 꺼냈다. 많은 우표 중에 하나가 눈길을 잡았다. 한 남자가 자전거 안장에 올라탄 것처럼 긴 버스 위에 걸터앉아있었다. 보고 그대로 그렸다. 오빠가 그려졌다. 네가 그런 말 안 했으면 그날... 미국으로 떠나기 몇 개월 전 늦은 저녁 무렵, 집으로 가는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오빠를 우연히 만났다. 앞에 걸어가는 오빠를 따라갔다. 위아래 감청색 양복의 말끔한 회사원 차림이었다. 등이 반가웠다. 붙들려다가 더 뒤를 따랐다. 꽤 느린 걸음이라 따라가기 더 힘들었다. 전엔 빨랐는데...... 키가 큰 편이라 보폭도 넓은데 거드름을 피우는 걸음이 일부러 속도를 줄이고 있는 것 같았다. 고개를 떨구고 계속 땅만 쳐다보고 걸었다. 오빠 걸음에 맞춰 보폭을 좁혔다.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내선이다. “문 검사, 지금 바로 올라와 봐.” 오빠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지검장이 등받이가 높은 검정색 인조가죽 의자에서 일어나 소파 쪽으로 옮겨 앉았다. “뭐하고 있나? 앉지
32 아빠와 오빠는 나를 쳐다보았다. 아빠도 오빠도 입을 다물고 끝내 말을 하지 않았다. 긴 지청구 뒤 엄마는 뜨거운 한숨을 내 얼굴에 뿜어냈다. “이애 저애 다 섞인 고등학교 때와 지금이 같은 줄 아니? 최고라고 하는 수재들이 모인 곳에서 이제부터 시작인데 긴장을 내려놔?” 서울의대를 막 입학한 후였다. 우리 집은 욕구에 의한 양육강식이 지배하는 또 하나의 동물의 왕국이었다. 당신이 아이들을 뭘로 책임질 거야. 어린 너희들이 뭘 알아. 엄마의 무엇은 세상을 살아가는 방편, 처세일 것이다. 욕심이며 동시에 사랑일 것이다. 지혜이기도 할 것이다. 표적은 최고지향이었다. 확고한 욕구의지로 거느리는 엄마의 통솔에 끌려가는 가족이 아프리카의 사자 떼와 다를 게 없었다. 너희들이 이만큼 잘 커온 것은 다 너희 엄마 때문이다. 아빠가 엄마 뒤를 따르고 우리 남매도 당연히 그 뒤를 따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엄마는 거실 바닥에 내팽개쳤던 내 그림노트를 다시 집어들었다. “만유인력이 꼭이 질량에 의해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이끌림이란 유혹은 사람이나 사물이나 다 지니고 있다. 귀희를 붙들고 있는 그림도 마찬가지다. 이러니 이 요물을 없애
33 오빠, 그 동안 잘 지냈어? 그 동안이 너무 길었네. 십 년이 넘었구나. 십삼 년? 내가 의대 본과 2학년 마치고 미국에 왔으니, 그래 벌써 그렇게나 됐네. 그 동안 이렇게 편지 한번 못 했고 전화만 고작 두어 번 했나? 육년 전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난 가보지도 못하고. 오빠, 병원에서 인턴하랴 바빴지만 실은 두려웠어. 말없이 누워있을 엄마를 차마 볼 수 없을 것 같았어. 엄마와 풀지 못한 것도 많고. 그 때 내 나이 서른이었지만 남들과 비교하면 스무 살도 안 된 어린애에 불과했지. 미안한데, 오빠도 그럴 걸? 우리 남매가 태어나자마자 책만 꿰차고 있었으니 지식은 남들보다 많을지 모르지만 지나치게 나 자신, 에고적으로만 키워진 우리잖아. 학교에선 통했는데 사회에 나와 보니, 아니다, 미국에 와서 보니 내가 얼마나 잘못 자랐는지를 알겠더라고. 나는 비틀어진 어른이 돼있었어. 그 넓은 초원에 그 작은 구멍에 넣어보겠다고 하는 골프처럼 우리는 만들어졌지. 결국 넣긴 했지만 구멍일 뿐. 내가 아닌 엄마가 넣은 것이고. 내 몸 하나만 넣어둘 수 있는 구멍 속에 나는 갇히게 되었고 내 스스로 나를 가두는 데에 긴 시간을 다 할애하고 말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34 바로 이 자리인데, 하며 엄마는 우체국으로 들어갔다. 우리들은 우표를 무척 좋아하기에 신이 나서 엄마 뒤를 따라 들어갔다. 서울하고는 다르게 아주 작은 우체국이었다. 창구의 한 젊은 여자에게 엄마가 물었다. “그 전엔 여기가 일층엔 식당, 예 맞아요. 빙어요리를 해주던 맛있는 식당이 있었고, 이층엔 다방이 있던 곳이지 않았나요?” “잘 모르겠는데... 잠깐 기다려보세요.” 여자는 소장님, 하며 안쪽으로 허리를 돌렸다. 그랬다. 그 사이에 바뀌었다. 아빠가 알바하던 그 다방도 사라졌고 아빠 월급날이면 빙어튀김을 함께 먹었던 식당도 없어졌다. 참 맛있었는데... 사라지고 없어져도 기억은 더 살아나고 생생해진다. 아쉬움은 상실이 아니라 간직이며 회귀이며 재회이다. 되찾는 만남이다. “엄마, 기념우표가 나왔나 봐요.” 남들은 재롱을 피우며 마냥 뛰어놀 나이에 우리 남매는 일찍이 책상이 우리의 놀이터가 되었고 책은 우리의 장난감이었다. 텔레비전도 볼 수 없었다. 부모나 책 외에 바깥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이 우표들이었다. 오빠와 나에게 아빠가 유치원 입학 때 선물해준 우표첩, 오빠 것은
<제이누리>의 새해 웹소설 연재를 시작합니다. 지난해 신개념 웹연재소설 [라이브카페-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를 연재해 인기를 거둔 오동명 작가의 신작입니다. 문명의 이기에 짓눌린 현대의 일상을 다룬 환상과 추억의 판타지 소설 [옛 우표첩]입니다. 기존의 연재와 달리 거꾸로 추억을 더듬어 가는 소급형 연재가 이번 소설의 특징입니다. 신개념 소설의 재미를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35 엄마와 아빠를 떠올리면 성격·성향·성품·성분이 좌우로 나뉘어 구별이 쉬운 모든 분류표를 생각나게 한다. 마치 구분하기 쉽게 분류해놓은 도표처럼 엄마와 아빠는 상이하고 상반되는 게 많다. 엄마가 아빠한테 종종 하는 말이 대차대조표의 아래에 있을 한 기업의 실적진단 같아 보인다. “당신과 나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었어.” 그렇다고 엄마가 아빠를 싫어하거나 부부관계를 부정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 반대다. 엄마는 아빠를 무척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았고 행복해 보였다. 엄마는 무척 긍정적인 사람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타인의식이 무척 강한 사람이다. 긍정의 힘도 여기서 나온다. 남을 의식하면서 엄마 스스로
<제이누리>의 새해 웹소설 연재를 시작합니다. 지난해 신개념 웹연재소설 [라이브카페-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를 연재해 인기를 거둔 오동명 작가의 신작입니다. 문명의 이기에 짓눌린 현대의 일상을 다룬 환상과 추억의 판타지 소설 [옛 우표첩]입니다. 기존의 연재와 달리 거꾸로 추억을 더듬어 가는 소급형 연재가 이번 소설의 특징입니다. 신개념 소설의 재미를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연재를 시작하기에 앞서 ...... 아래로만 흐르는 강물을 굳이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를 떠올려봅니다. 강물은 시간이고 세월이란 생각이 듭니다. 물이 같은 물줄기를 다시 찾아오는 일은 결코 없다고 해서입니다. 흘러버리면, 흘려버리면 그만인 것, 시간이고 세월이기에 강물입니다. 그러나 다시 거슬러 찾아간다는 연어는 기억이고 추억이란 생각이 듭니다. 귀소라는 본능에 이끌린 되찾기이기에 기억도 추억도 본능입니다. 우리도 연어나 제비나 개미나 게나 기러기나 벌이나 거북처럼 본능의 존재입니다. 지금 적든 많든, 나이가 든다는 것은 추억거리, 그러니까 되찾기의 쌓기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을 바라봅니다. 손에 잡힌 자그마한 기계가 추억의 저
오동명의 기획연재소설에 이어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모옌의 단편소설 <밤게잡이>를 소개합니다. 국내 처음으로 번역, 소개되는 소설입니다.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모옌의 작품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중국문학 전문가인 이권홍 교수가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애독바랍니다/ 편집자 주 내 얼굴이 그녀의 짙은 향기 속에 휩싸였다.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그녀의 옷자락이 내 얼굴을 스쳤다. 시원하면서도 매끌매끌하여 편안했다. 여우는 미인으로 변할 수는 있지만 꼬리는 숨길 수 없다는 어른들의 말이 떠올랐다. “내게 엉덩이 좀 만질 수 있게 할 수 있어요? 꼬리가 없다면 당신이 여우가 아니라는 걸 믿을 수 있거든요.” “어, 이 꼬맹이, 그 핑계로 아가씨 엉덩이를 만지려고?” 그녀는 정색하며 말했다. “여우라는 게 들통날까봐 그렇죠?” 나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말했다. “좋아.” 그녀가 말했다. “만져 봐. 하지만 얌전히 만져. 가볍게. 나를 다치게 하면 물에 빠뜨려 죽여 버릴 테니까.” 그녀는 치마를 들어 올려 내 손을 뻗게
오동명의 기획연재소설에 이어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모옌의 단편소설 <밤게잡이>를 소개합니다. 국내 처음으로 번역, 소개되는 소설입니다.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모옌의 작품성을 엿볼 수 있는 소설입니다. 중국문학 전문가인 이권홍 교수가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애독바랍니다/ 편집자 주 억센 손아귀가 내 목덜미를 잡고 나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자그마한 진주 같은 물방울들이 뚝뚝 떨어졌다. 내 가슴과 배, 번데기만큼 작은 고추에서 데굴데굴 수면 위로 떨어졌다. 나는 튼실한 두 다리로 물을 헤치고 잘바닥 잘바닥거리며 걷는 큰 소리를 들었다. 이어서 내 몸은 내던져져, 허공에서 한 번 공중제비 넘어 도롱이 위로 떨어졌다. 삼촌이 물속에서 나를 건져 올렸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삼촌은 제방위에 단정하게 앉아 여전히 나뭇잎 피리를 부는데 전념하고 있었다. 털끝만큼도 움직인 기미가 없었다. “삼촌!” 큰 소리로 불렀다. 삼촌은 나뭇잎을 입에 물고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은 확실히 낯선 사람의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자신의 연주를 방해라도 했다는 듯 화가 난 눈빛이었다. 물속에서 연꽃을 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