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누리>의 새해 웹소설 연재를 시작합니다. 지난해 신개념 웹연재소설 [라이브카페-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를 연재해 인기를 거둔 오동명 작가의 신작입니다. 문명의 이기에 짓눌린 현대의 일상을 다룬 환상과 추억의 판타지 소설 [옛 우표첩]입니다. 기존의 연재와 달리 거꾸로 추억을 더듬어 가는 소급형 연재가 이번 소설의 특징입니다. 신개념 소설의 재미를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
35 엄마와 아빠를 떠올리면 성격·성향·성품·성분이 좌우로 나뉘어 구별이 쉬운 모든 분류표를 생각나게 한다. 마치 구분하기 쉽게 분류해놓은 도표처럼 엄마와 아빠는 상이하고 상반되는 게 많다. 엄마가 아빠한테 종종 하는 말이 대차대조표의 아래에 있을 한 기업의 실적진단 같아 보인다.
“당신과 나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었어.”
그렇다고 엄마가 아빠를 싫어하거나 부부관계를 부정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 반대다. 엄마는 아빠를 무척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았고 행복해 보였다. 엄마는 무척 긍정적인 사람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타인의식이 무척 강한 사람이다. 긍정의 힘도 여기서 나온다. 남을 의식하면서 엄마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이라고 할까. 이를 테면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해, 뭐 이런 것에 가깝다. 이것이 긍정적인 삶으로 보인다. 엄마의 긍정에 자기부정이 없다곤 할 수 없다. 부정이 긍정으로 옮겨져서는 힘이 된다. 문제는 엄마와 아빠 둘 사이가 아니라 엄마 한 쪽에 있다.
“싫어.”
긍정의 힘을 찰떡같이 믿고 사는 엄마가 유일하게 싫다는 말을 하는데, 친구들을 만나지 않겠다고 할 때뿐이다. 그나마 이 말도 거의 하지 않는다.
“이런 말, 우리 애들에게 좋지 않아.”
엄마는 법대 출신답게 매사에 철저하다. 반면에 아빠는 우리 앞에서도 실수를 잘 하는 덤벙이다. 우유부단해 보인다. 좋게 말하면 따뜻하고 편한 사람이다. 엄마를 이런 식으로 달리 말하면 차갑고 까칠한 사람이다. 엄마는 대학을 졸업했지만 아빠는 미대를 2년도 채 다니지 못해 대학졸업장이 없다. 우리 집 졸업장은 학벌의 징표가 아니라 엄마·아빠의 성격 같다. 철두철미한 엄마가 다 끝내지 못한 게 하나 있다면 바로 고시, 사법고시를 중도에 포기한 일이다.
엄마는 춘천가기 전 의암이라는 작은 시골의 한 암자에 들어가 고시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미 대학 2학년 때 1차에 합격하고 난 뒤 한적한 암자를 찾아 시험에 매진하고 있었다. 2차 시험 날, 강촌역에서 새벽 첫 기차를 탔다. 자리에 앉자마자 눈을 감았다. 1년 동안 잠 한번 제대로 자지 못한 탓도 있지만 긴장을 풀기 위해서였다. 꿈 같이 들린 짤막한 한 마디에 눈을 떴다.
“경상도 놈”
옆에서 들려왔다. 남자가 신문을 보고 있었다. 그의 발 앞엔 여러 물감이 섞여 덕지덕지 붙은 지저분한 화구가 놓여있었다. 화구를 보자 그에게서 냄새도 났다. 기름내 같기도 하고 탄내 같기도 했다. 불쾌했다. 다시 눈을 감았지만 화가 치밀어 올랐다. ‘경상도 놈?’ 다시 눈을 뜨고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화구에 붙은 물감이 얼굴에도 튀었는지 여드름 딱지가 다닥다닥 볼썽사나웠다. 니가 뭔데 경상도를, 적극적이고 능동적이어서 호전적으로 보이기도 한 대학생이던 엄마는 다짜고짜 따져 물었다.
“경상도가 어때서요?”
여드름 하나를 뜯어내려는 듯 신문을 잡고 있던 오른손을 이마에 갖다 대고 문지르며 그 사내가 머쓱하게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잠을 깨웠군요. 신문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죄송합니다.”
엄마는 그가 봤다는, 그리고 경상도놈이라고 질러대게 했다는 신문을 내려 보았다. 대통령선거에 관한 기사였다. 그 때는, 1971년, 여당의 영남 후보와 야당의 호남 후보가 막상막하 접전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그 신문을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사내는 공손하다 싶을 정도로 보던 신문을 엄마에게 바쳤다. 엄마는 글을 매우 빨리 읽어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 더욱이 신문기사쯤이야.
“경상도에 놈까지 붙일만한 그런 내용은 없는 것 같은데요.”
엄마가 거칠게 신문을 다시 사내에게 돌려줬다. 기차는 망우역을 지나고 있었다. 서울로 진입하고 있었다. 사내가 신문을 좌석 밑에 처박더니 화구를 들고 황급히 일어났다.
“저어...”
엄마는 막아서듯 다리를 앞으로 쭉 밀었다.
“이봐요.”
눈 앞으로 더러운 화구가 밀고 들어왔다. 이름으로 보이는, 그러나 이름 같지 않은 글자 석자도 눈에 들어왔다. 엄마는 웃고 말았다.
“문재수 씨.”
“예?”
“맞군요.”
엄마는 폈던 오금을 오므렸다.
“다음에 보면 용서 안할 겁니다.”
“예?”
눈 앞으로 화구가 지나갔고 퀴퀴한 나무탄내도 지나갔다. 그는 성북역에서 내렸고 차창 밖으로 엄마는 그를 노려보았다. 걸음걸이처럼 미끄러지는 기차 안에서 걷고 있는 그를 따라갔다. 키까지 작은 보잘 것 없이 생긴 그는 내내 큰 머리를 숙이며 기차를 외면했다. 걷던 기차가 달리기 시작하면서 그와도 멀어졌다. 그는 더 작아졌다. 그가 고개를 들어 기차를 바라보는 게 언뜻 급히 뒤로 지나가버렸다.
시험을 끝내고 시험장에 나온 법대 후배들과 경쟁자이기도 한 고시수험생 선배들의 뒤풀이에서였다.
“중앙정보부가 이번 대통령선거에 개입하고 있데.”
“매번 그랬지. 뭘 새삼스럽게. 그러자고 애초 만든 게 중앙정보부잖아. 대외용이 아니라 국내용.”
“이번엔 그 전과 다른가봐. 정권이 교체될 위기로 본 거지. 해서 궁리해 내놓은 궁여지책이 지역감정을 선거에 전략으로 삼자고 했다는 것이고. 중앙정보부가 말야. 영호남 인구를 따져보니 영남이 두 배 이상, 그리고 다른 지역의 호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숫자까지 따지면 세 배나 차이가 난다는 거지. 지역감정, 영남과 호남과의 지역적 싸움으로 몰아가고 부추기면 여당 측에서 열세를 만회할 수 있다면서 중앙정보부가 이번 대선에 직접 개입한다는 거야.”
“그럴 수 있겠군. 박정희가 이번엔 권좌를 내놓아야 할 거라는 말, 주변에서 하더군. 교수들의 움직임에서도 느낄 수가 있겠더라고.”
“우리도 쌔빠지게 공부해서 기껏 시류에 흔들리는 갈대 같이 살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
“그러게. 묵직한 육법전서가 시중에 널려있는 얄팍한 처세술책이 될 수도 있지, 우리에게.” 엄마는 불쾌했던 새벽 경춘선 기차에서의 해프닝이 다시 떠올랐다. 그래서였나? 그래서였구나.
‘연습게임’
만족스럽지 못한 시험을 끝내고 서울 부모 집에서 사흘 간 내리 잠만 자고 깨어난 엄마는 다시 경춘선 기차에 올랐다. 강촌역에서 내려 몇 채 없는 마을길을 따라 걸었다. 따뜻한 커피와 그리고 음악이 듣고 싶었다. 등을 의자에 기대고 쉬고 싶었다. 엄마는 의자에도 철저했다. 등받이가 있으면 안일해지기 쉽다 해서 엄마의 의자는 등받이가 없었다.
마침맞게 다방 간판이 보였다. 홀 가운데에 우람한 난로가 있었다. 나무탄내가 났다. 커피에서도 탄 나무냄새가 났다. 일어나 난롯가로 갔다. 잘 팬 나무들이 가지런히 쌓여있었다. 난로 위에는 방금 얹어놓은 듯 밖으로 물기가 쌕쌕거리며 새어나오는 감자들이 모여 있었다. 다 익으면 하나만 얻어먹자, 하고 다방 안을 둘러보았다. 창가 쪽에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창으로 비쳐 들어온 빛에 검게 덩이져 보이는 사람의 실루엣, 그러나 빛을 받아 유난히 더 흰 스케치북이 그의 앞에서 반사돼 눈이 부셨다. 다시 탄내가 났다. 자리로 가서 신발을 벗고 두 다리를 펴 앞 소파 위에 발뒤꿈치를 걸쳤다. 엉덩이를 앞 소파 쪽으로 쭉 밀었다. 엉덩이로 깔고 있던 소파 바닥에 등을 붙이자 이내 잠이 들었다. 엄마는 나무탄내에 다시 깼다. 찻잔을 날라다 준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한 남자가 난로 앞에 쪼그려 앉아 땔나무를 난로 속에 넣고 있었다. 나무 타는 붉은 기운이 그 남자의 프로필을 비쳤지만 희미하게 뜬 눈에는 스모그필터를 낀 카메라로 보듯 아련했다.
“졸려.”
다시 눈을 감는데 참 편했다. 안온했다. 음악이 바뀌었다. 소리도 줄어드는 듯했다. 눈을 다시 떠보니 음악실에서 한 남자가 가물가물 걸어 나오고 있었다. 난로를 지나오는데 엄마는 다시 눈이 감겼다. 어두운 다방 안의 사위가 몸을 껴안는 듯 포근했다. 다사롭다. 감은 두 눈으로 이 감정을 더듬었다. 이 때였다. 다리를 감싸오는 게 있었다. 어둠의 사위려니... 눈을 뜨지 않았다. 그대로 이대로. 깃털이 다리 위에 내려앉는 느낌. 다리 쪽이 따듯해졌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깊이.
개운했다. 두 손을 올리고 어깨를 제쳤다. 뿌드득, 뼈가 제자리를 찾는 소리로 몸이 가뿐했다.
‘몇 시지?’
벽시계를 찾으려다가 밀어놓은 앞 탁자 위에서 스케치 그림 한 장을 찾아냈다.
여자가 모로 누워 잠자고 있는 모습.
나?
그림엔 글도 적혀 있었다.
그 때는 미안했습니다.
그 때? 둘러보았다. 손님은 없었다. 창가의 실루엣 손님도 없었다. 불 꺼진 음악실 안에 인기척이 눈에 띄었다.
“춥지 않으셨어요?”
마이크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앞 소파 아래에 얇은 군용모포가 떨어져 있었다.
그 화구? 그 화상? 그 문재수?
그가 그렸단 말야? 나는 자고 있었고? 훔쳐봤던 거야? 괘씸한.
“너, 일루와 봐!”
엄마가 소리쳐 그를 불러냈다. 엄마 앞에 불려온 그에게서 나무탄내가 났다.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엄마는 조금 수그러들었다. 그가 생각보다 순순해서였다. 오란다고 오냐? 너, 바보 아냐? 아무리 당돌한 법대 여대생이라 해도 바보 앞에서 더는 강한 여자일 수가 없었다.
“여기가 내 직장입니다.”
매사 철저한 엄마는 가끔 엉뚱한 소리로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곤 한다. 의도적인 것 같기도 하고.
“그림쟁이가 아니구요?”
그러나 엄마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다방의 사면 벽을 훑어봤다.
“도대체 지금 몇 시나 됐나요?”
그가 시계도 보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열한 시가 넘었어요.”
“밤이요? 밤 열한 시? 그럼 버스는? 의암으로 가는 버스는요?”
“내일 새벽에 옵니다.”
“아, 오긴 오는군요. 오늘은 안 오고... 아, 나 어떻게. 근데 손님한테 이래도 되는 거예요? 따져야 할 건 다른 거지만, 우선 당장 불부터 꺼야지. 왜 나를 안 깨웠어요?”
“나도 손님 때문에 퇴근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 다 내 잘못이란 건가요?”
“아니요. 잘못은 누구도 없는 것 같습니다. 잠자는 게 잘못인가요? 그 평화를 깨는 게 잘못이겠지요. 깼다면 말입니다. 나는 안 깼습니다.”
“나를요? 평화를요?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거예요? 좋아요, 그럼.”
엄마는 더 말을 하려다가 멈추고 경상도 놈이라 질러대던 그 자를 째려봤다.
“당신, 전라도 놈인가요?”
“예? 아, 예!”
엄마는 웃기 시작했다. 그 자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엄마가 웃음을 그칠 때까지 서서 엄마를 내려다보았다. 웃음이 멎었다.
“내가 처음으로 그림을 제대로 그렸나봅니다. 자는 당신이 웃고 있었거든요. 웃지는 않았는데 웃는 듯이 자더라구요.”
“그래요? 예쁘긴 하던가요? 내가 나 자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요.”
“웃었어요.”
“예뻤냐구요?”
“웃고 있었어요.”
“허, 문재수, 정말 재수 없어지려고 하네. 당신 문재수 씨?”
엄마는 머리가 팽팽 돌아서 말하다 말고 또 다른 생각을 해냈다.
“내가 방금 전 왜 웃었는지 아세요?”
“좋으니까요.”
엄마는 이 어눌하고 허술해 보이는 남자가 꼭 그렇지만은 않네, 싶었다.
“누가 무엇이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웃기지 않아요?”
“예. 웃기니까 웃었겠지요.”
“문재수 씨도 말로는 안 지시는군요.”
“우리가 싸움하는 것도 아닌데... 웃으면서 싸우시는가보지요? 댁은? ... 이름이 뭐예요? 댁은 나를 알고 있으니, 나도 댁을 알아야 할 것 같지 않아요?”
“그래야 할 것 같네요. 이름이야 뭐. 소연입니다.”
“성은? 내 성씨도 알고 계시잖습니까.”
“성은 나중예요.”
“이름이 예쁘네요. 하 씨만 아니면요.”
이 남자가?
“하 씨는 아니예요. 아무튼 왜 자꾸 딴소리하게 합니까?”
엄마는 이때쯤 고개가 아파왔다.
“저 이불, 문재수 당신이?”
“장작불을 지핀지 오래 되지 않아 추웠을 겁니다.”
“나, 머리 아파요. 저기 앉으시지요.”
엄마는 팔을 들어 손바닥으로 고개를 매만졌다.
“문 닫아야해요. 주인한테 혼납니다. 늦게까지 불을 켜놓으면.”
“아, 이제 나가달라는 말인가요?”
“아니요. 아까 말하려던 왜 웃었는지 말하시는 것만 듣고 문 닫겠습니다.”
“야, 정말 웃기는 문재수네. 웃기는 건 용납해요. 재수 없게는 굴지 마세요.”
“남의 이름 갖고 너무 하는군요. 내가 짓고 나왔나요? 우리 아버지한테 따지세요.”
“아니, 다른 뜻은 없고 ... 좋은 이름이에요. 남을 웃게 해주니까요.”
이 여자가?
강촌, 강원도 땅에서 경상도 놈, 전라도 놈 하고 있는 게 우스웠고, 이 좁은 땅에서 그렇게 갈라놓고 사는 게 우스워보였고, 남이 가른다고 갈라진 채로 적인 양 앙숙인 양 속고 사는 게 우스워죽겠다고 엄마가 그 웃음의 이유를 얘기했다.
“이제 일어나야겠네요. 문 닫아야한다면서요?”
“예.”
엄마는 일어나 다방 밖으로 나왔다. 밖은 깜깜했다. 하늘이 더 밝았다. 무수한 별들이 물안개처럼 뽀유스름하고, 우유빛처럼 뿌유스름했다. 이래서 은하수라 했구나. 이래서 밀키...
갈 데도 갈 수도 없었다. 그 시절은 통금으로 자유를 묶었다. 그 자가 내려오면 여기 지리를 잘 알 테니 하룻밤 묵을 여인숙이나 여관을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기다렸다. 그는 나오지 않았다. 다방의 간판불도 꺼졌다. 그는 여전히 내려오지 않았다. 뒷걸음을 치며 이층 다방을 향해 소리를 질러댔다.
“야, 문재수, 너 뭐하고 있는 거야?”
창문이 삐드득 열렸다.
“아직 안 가고 뭐하세요?”
“안 내려오고 뭐하는 건데요?”
“난 여기서 자는데요.”
“뭐?”
엄마는 당장 다방으로 뛰어 달려갔다. 문은 잠겨 있었다.
정말 웃기는 작자네.
그가 문을 열고 삐끗 열린 문 안에서,
“성 씨, 하 씨 맞죠? 하소연.”
엄마는 다방 문을 발로 세차게 찼다.
“환장하겠네. 너 이 따위로 여러 여자... 관두자. 그림이나 그리고 살려는 것들이 다 그렇지.”
엄마는 다방 문을 다시 한 번 세차게 걷어차며 돌아섰다.
“괜찮으시다면 여기서 자고 가세요. 또 안 깨울게요.”
머리 회전이 무척 빠른 엄마는 그가 한 말을 그 순간 다시 끄집어냈다.
잠자는 게 잘못인가요. 깨는 게 잘못이지요.
엄마는 그 다방을 찾았다.
“없어졌나보구나.”
엄마는 두리번거리며 한참 아쉬워했다.
“뭐가?”
“아니, 그런 게 있어. 너희 아빠 말이야.”
나는 오빠보다 더 빨리 놀랐다. 엄마를 닮았나보다.
“아빠가 없어져?”
엄마가 우리를 보며 해쓱 웃어보였다.
“아빠를 만난 곳 말이다.”
“강촌역 지나왔잖아.”
이번엔 오빠다.
엄마는 다시 머쓱 웃어 보이더니 무언가 입으로 우물우물 중얼거렸다. 그 날, 내 성을 얘기했던가? 했구나. 엄마의 얼굴이 붉어졌다. 얘기한 것은 기억이 안 난다. 그가 한 얘기가 기억난다.
하소연이나 한소연이나.
“아빠가 말이다, 엄마를 무지 웃겼단다.”
“아빠가? 지금은 안 그렇잖아.”
“그 땐 그랬단다, 아빠가. 그러니 너희가 세상에 나왔지.”<34편으로 이어집니다>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전 제주에 정착,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