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에선 격하게 요동치는 계곡과 날카로운 능선, 남쪽에선 중절모를 씌운 듯 봉근 솟은 모양이다. 제주도민은 자신의 고향에서 본 정상 전경을 최고로 여긴다.' 이렇게 시작된다. 그리곤 이렇게 이어진다. 고산평야와 기암괴석, 제주4.3 군경토벌대 주둔소, 원시 모습을 간직한 동굴과 궤, 털진달래와 산철쭉 꽃밭길, 수시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안개. 궁금한가. 그가 새롭게 탐험한 한라산을 소개한다. 결이 좀 다르다. 제주인의 삶, 언제나 가슴을 뛰게 하며 하루가 지나도 달라지는 모습, 다른 눈으로 한라산을 본 이가 있다. 임재영 동아일보 기자다. 제주대학교 사회교육대학원에서 '한라산국립공원지역의 경관자원별 특성과 활용방안 연구'를 석사학위논문으로 발표했다. 이번 달이다. 따끈따끈한 논문이다. 오랫동안 공을 들였다. 한라산 계절을 12개로 쪼갰다. 3년 동안 매달 한라산에 올랐다. 한라산 12번을 그는 논문에 담았다. 그는 물음을 던진다. "왜 자연자원에만 관심을 갖는가?' 물음은 색다른 시도로 이어진다. 한라산에 인문경관자원을 더하는 연구다. 눈이 시린 바위 하나, 풀 한포기에 담긴 제주인의 삶과 풍경을 자원화 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시, 소설 등 문학작품도 자원이
시력을 잃고 홀로 살아가는 슬레이드 중령은 남은 삶을 살아갈 자신이 없다. 미국 대통령 취임식의 백악관 파티에까지 초대받았던 이력을 보면 군인으로서 꽤나 화려한 ‘왕년’이 있었던 모양이다. ‘왕년’이 화려하면 할수록 초라한 현실은 더욱 받아들이기 어렵고 고통스럽다. 마침내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하고 자살여행을 떠난다. ▲ '포기'는 해서는 안 될 것이고, '체념'은 해야먄 하는 것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충동적인 자살이 아니라 말기암 환자처럼 소위 ‘버킷 리스트(bucket list)’까지 마련한 것을 보면 오랜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이었던 모양이다. 슬레이드 중령의 버킷 리스트는 ‘잘나가던’ 시절 화려한 경험을 했던 뉴욕시를 여행하는 것과 절연한 채 살았던 형님 댁에 방문하는 것이다. 비행기 일등석을 타고 미국 최고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스위트룸에 묵으면서, 최고 재단사를 불러 최고의 양복을 맞추고, 리무진 서비스를 받고, 플라자 호텔의 최고급 사교클럽 오크룸에서 술을 한잔하고
▲ 코로나 충격이 연내 끝나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정부는 지금까지 내놓은 재정과 금융 지원책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집행속도를 높여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한국 경제가 두 분기 연속 역성장했다. 2분기 하락폭(-3.3%)이 1분기(-1.3%)보다 커졌다. 당초 예상(-2% 초중반)을 크게 밑돌았다. 분기 성장률로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분기(-6.8%) 이후 22년 만에 가장 낮다. 정부의 올해 성장 목표치 0.1%나 한국은행 전망치 -0.2% 달성은 물 건너갔다. 1분기 역성장은 소비와 서비스업 침체가 주도한 반면 2분기엔 경제의 엔진인 수출과 투자 감소가 직격탄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각국이 국경을 걸어잠그자 수출이 16.6% 급감했다. 1963년 4분기(-24%) 이후 56년여 만의 최악 성적표다. 그나마 민간소비가 긴급재난지원금 덕분에 1.4% 늘었지만 1분기에 6.5% 줄어든 것을 벌충할 수준은 못됐다. 설비투자(-2.9%)와 건설투자(-1.3%)도 성장률을 잠식했다.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은 경기침체(리세션) 신호다. 한국은행도 코로나19 이전부터 경기하강 국면에 있었고, 코로나1
시력을 잃은 퇴역 중령 슬레이드는 그야말로 ‘명예심’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다. 적과의 전투나 임무수행 중 시력을 잃었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슬레이드 중령은 객기를 부리다 수류탄 사고로 시력을 잃는다. 괴팍스러운 성격 때문에 퇴역 후 찾아오는 동료들도 없고, 함께할 가족도 없다. 그다지 살갑지 않은 조카 부부에게 얹혀사는 장애 중늙은이 퇴역 장교일 뿐이다. 그 신세가 딱하고 초라하다. ▲ 위기가 오면 안 보이던 영웅이 나타나고, 우리가 몰랐던 '민낯'도 드러난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슬레이드 중령은 조카의 집 허름한 별채에 떨어져 거의 은둔생활을 하면서 알코올에 의지해 살아간다. ‘알코올 중독’ 같긴 하지만 알코올 중독자나 주정뱅이 모습은 아니다. 소파에 흐트러짐 없이 정자세로 앉아 혼자 마실 뿐이다. 혼자 술을 마셔도 흐트러진 모습을 자기 자신에게조차 보이기 싫을 정도로 자존심 강하고 명예를 중히 여겨서인 듯하다. 보통 알코올 중독자처럼 아무 술이나 걸리는 대로 마셔대는 것도 아니다. 오직 ‘잭 대니얼스’만을 고수한
▲ 부실·불량 급식 논란이 불거진 도내 모 어린이집 급식 사진. [제주평등보육노동조합] 장면 1. 아무런 일도 없는 듯 했다. 보육교사들로 보이는 이들이 마스크를 끼고 아무렇지 않은 듯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비가 와서 그랬는지 아이들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렵사리 알아낸 그 어린이집이었다. 그 근처를 지나갈 일이 있어서 들러봤다. 궁금해서였다. 공포영화에서 나오는 괴기스러운 집을 상상했었다. 2020년 7월 23일 오후 4시였다. 장면 2. 퇴근 후 아이들과 저녁을 먹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딸과 만 나이로 두 살인 아들이 반찬 투정하며 먹는다. 한입 가득 꿀꺽하는 모습이 예쁘다. 이런 게 세상사는 재미인 것 같다. 오랜만에 아내와 저녁밥상 대화 주제가 통한다. 그 어린이집이었다. 맛있게 먹는 애들을 보며 아내 이야기를 듣는다. 아내가 한 마디 한다. '이건 제주사회 시스템이 문제다'라고 한다. 장면 3. 그 어린이집 점심밥상 풍경을 상상한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아이들은 맛있게 밥을 먹는다. 물에 만 밥, 국에 만 밥이다. 반찬은 없지만 어린 아이들은 아직 모른다. 밥상에 반찬이 필요한 이유를
▲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은 차기 정부에서 실행할 일이 더 많다. 현 정부에서 차기 정부에서 할 일을 구분해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는 작업이 긴요하다. [사진=뉴시스] 정부가 14일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내놓았다. 2025년까지 총 160조원(국비 114조원)을 투입해 190만개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도약시키겠다는 거창한 청사진이다. 디지털 혁신과 역동성을 촉진ㆍ확산시키는 ‘디지털 뉴딜’, 친환경ㆍ저탄소 전환을 가속화하는 ‘그린 뉴딜’, 고용ㆍ사회 안전망을 강화하는 ‘안전망 강화’ 등 3대 축으로 구성돼 있다. 코로나19 확산과 그에 따른 경제 충격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 미국ㆍ중국 간 갈등과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대외 환경이 매우 불확실하다. 이런 대내외 상황을 감안할 때 국가 차원의 경제부흥 계획을 마련한 것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제대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럴싸한 구호와 선언적 계획들이 백화점식으로 나열돼 있지만 상당 부분 정부가 이미 추진해온 정책의 재탕삼탕이거나 짜깁기 수준이다. 데이
마틴 브레스트 감독의 ‘여인의 향기(1992년)’는 연기력이나 흥행성 면에서 ‘아카데미 상복’이 없기로 유명했던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쌍벽을 이룰 만했던 알 파치노의 한을 풀어준 영화다.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 후보에만 7차례 올랐던 알 파치노는 마지막 도전에 나선 고시생처럼 ‘미친 연기력’으로 홀로 영화를 이끌어간다. 2시간 30분 러닝타임이 길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그의 연기력 때문인 듯하다. ▲ 탱고엔 '꼬인 스텝'이 없지만, 인생은 한번 꼬이면 '틀린 인생'이 된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프랭크 슬레이드 중령(알 파치노)은 사고로 시력을 잃고 전역한 이후 실의에 빠져 술에 의지해 살아가는 인물이다. 괴팍한 성품 탓에 친구도, 가족도 없이 뉴햄프셔 교외의 허름한 주택에서 조카 부부에 얹혀살고 있다. 그 성격에 당연히 조카 가족들과의 관계도 아슬아슬하다. 함께 살지만 뚝 떨어진 별채에서 홀로 지낸다. 심지어 네댓살 조카손녀하고도 앙숙일 정도이니 거의 스크루지 영감급이다. 추수감사절 휴가를 앞두고 조카 부부는 자신들이 여
▲ 부동산 시장은 다양한 필요와 욕구를 가진 수요자들의 거래를 통해 움직인다. 악덕 투기꾼보다 실수요자가 훨씬 많다. 부동산 정책이 경제종합대책이어야 하는 이유다. [사진=연합뉴스] 6ㆍ17 부동산 대책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인 7월 10일, 대책이 또 나왔다. 한 달도 안 된 23일 만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벌써 22번째 대책이다. 2017년 5월 정부 출범 이후 6ㆍ17대책까지 50일에 한 번꼴이었는데, 이번에는 대책 발표 주기를 절반으로 단축했다. 그만큼 다급했던 모양이다. 6ㆍ17대책에도 집값은 되레 더 뛰었다. 초강력 수요억제책으로 수도권 대부분을 규제지역으로 묶자 수요가 다시 서울로 쏠렸다. 집값이 더 뛸까 염려하는 실수요자들이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음)해서 집 사자’며 매수세에 가담했다. 특히 서울 전셋값은 공급부족 현상을 보이며 54주 연속 올랐다. 부동산 정책 실패 후폭풍은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를 끌어내렸다. 한국갤럽의 7~9일 조사에서 긍정평가가 47.0%로 내려갔다. 부정평가(44.0%)와 차이가 오차범위 내로 좁혀졌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잘못하고 있다(64.0
▲ 지난 10일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가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사진=뉴시스] 안타깝다. 박원순 시장의 죽음도, 편 가르기도 슬프다. 추모와 비난이 오고 가며 내 편과 적을 가르는 모습이 안타깝다. 그래서 궁금했다. 그의 죽음 전 이야기다. 어느 누구도 제대로 알려 주는 사람이 없어서 더 그랬다. 앞으로는 묻혀 버릴 것 같아서 더 걱정됐다. 문제가 어려울수록 난 단순하게 생각한다. 가해자면 벌을 내려야 하고, 피해자면 보호해야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상황은 요샌 흔해서 조심스럽게 봐야 한다. 섣부르게 판단해선 안 된다. 아직은 누가 진짜 피해자인지 모른다. 진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얻어낸 제주4.3진상규명을 보면 그렇다. 수많은 사람들이 옥고를 치르고, 빨갱이라 매도당하면서 얻어낸 진실이었다. 세월이 지나도 진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위해 필요하다. 박원순 시장은 자타공인 대한민국 선출직 '넘버2'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믿고 선택했다. 그 믿음과 선택에 대한 책임은 죽음 후에도 져야 한다. 그게 제대로 된 나라라고 나는 생각한다. '공소권
▲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지금 같은 전시경제 상황에선 노사 양쪽의 취약계층을 함께 보듬는 최저임금 동결이 필요해 보인다. [사진=뉴시스]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1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동계와 경영계의 공식 요구안이 나왔다. 노동계는 올해보다 16.4% 오른 시급 1만원을, 경영계는 2.1% 인하한 8410원을 제시했다. 노동계는 2020년 1만원 달성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맞추고, 경영계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임금 수준은 노사 모두에게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이다. 근로자 입장에선 더 많이 올리려 들고, 사용자로선 가능한 한 인상폭을 줄이려 한다. 노사 양측 모두 명분과 논리를 내세운다. 우리가 6월 29일까지 이듬해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해 8월 5일자로 고시하도록 법으로 정한 것은 노사 모두 변화하는 경제ㆍ사회 환경에 적응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최근 우리 경제 여건과 사회 환경은 몇가지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다. 첫째, 올해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해 보인다는 점이다. 국내외 경제예측기관들이 잇달아 성장률 전망치를 마이너스로 하향조정했다. 정부조차 기존 2.4%에
죽은 자들이 보이고 죽은 자들과 소통하는 9살 소년 콜은 ‘정상적(?)’인 학교 선생님이나 엄마가 보기에 분명 미쳤다. ‘미쳤다’는 말은 우리말의 가장 기본적인 어원으로 일컬어지는 ‘세소토(Sesotho)어’로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 귀에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고,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럼 미친 건 정말 미친 걸까. ▲ '광인'과 '천재'를 구분하는 것은 실로 난감한 일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길을 가다 보면 혼자 심각하게 대화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저 ‘아마 미쳤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피해 지나친다. 콜은 다른 사람들 귀에 들리지 않는 죽은 자들의 소리를 듣고,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말들을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이미 죽은 말컴 박사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화를 내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혼자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처참하게 죽어간 사형수들의 비명소리가 들려
▲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옳은 방향이다. 정규직 전환이 공공 부문에만 그치면 효과가 미미하므로 민간기업의 협력도 긴요하다. [사진=연합뉴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보안검색 요원을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기로 한 것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이해관계가 얽힌 여러 집단이 동시다발로 반발하고 나섰다. 인천공항공사의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화가 원칙이 없고, 과정도 공정하지 않다면서. 공사는 6월 말까지 계약이 끝나는 보안요원 1902명을 자회사 인천공항경비에 편입시킨 뒤 채용 절차를 통과한 합격자를 올해 안에 직접 고용하기로 했다. 이런 방침에 가장 먼저 반발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사자인 보안요원들이다. 인천공항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당선 직후 찾아가 ‘비정규직 제로(0)’를 선언하며 1호 정책으로 정규직화를 약속한 상징적 장소다. 바로 이 시점 이전에 입사한 보안요원과 이후 입사자의 정규직 전환 절차가 다른 점이 불만의 1차 원인이다. 2017년 5월 이전 입사자는 공개경쟁 없이 정규직으로 직고용할 방침이다. 반면 정규직 전환 선언 이후 입사자는 일반 지원자들과 함께 공개경쟁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