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공매도 금지 조치가 5월 2일까지 재연장된다. 5월 3일 공매도가 재개돼도 코스피200이나 코스닥150 등 대형주에만 허용된다. 나머지 대다수 2000여 종목의 공매도 재개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다. 예정대로 3월 16일부터 공매도를 재개하려던 금융당국이 정치권과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에 부닥쳐 부분적 단계적 재개로 절충점을 찾은 것이다.
‘공매도(空賣渡)’란 ‘없는 것을 판다’는 뜻이다. 주식시장에서 공매도란 주식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매도 주문을 내는 것을 말한다. 특정 종목의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면 해당 주식을 빌려서 판 뒤, 주가가 떨어지면 싼 값에 되사서 주식 대여자에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시세차익을 챙기는 투자기법이다.
어떤 주식이 짧은 기간에 기업가치에 비해 과도하게 상승할 경우 매도 주문을 증가시켜 주가를 진정시키고, 증권시장에 유동성을 늘리는 효과도 낸다. 하락 장세에서 손실 위험을 회피시키는 순기능도 갖는다. 대다수 선진국이 공매도를 운용하며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 잡은 이유다.
반면 공매도는 주가가 떨어지는 시기에 하락을 가속화하는 역기능도 갖는다. 외국인과 기관투자가에 비해 자금과 정보력이 취약한 개인투자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 또한 주가 하락을 유도하기 위해 부정적인 소문을 퍼뜨리는 시세조종 등 불법행위나 예상과 달리 주가가 올라 손실을 내는 바람에 빌린 주식을 돌려주지 못하는 결제불이행도 나타날 수 있다.
지난해 3월 코로나19 1차 대유행 시점에 금융위원회가 공매도를 6개월간 전면 금지한 것은 공매도의 역기능 때문이었다. 주가가 급락하는 국면에서 시장 안정화가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그 뒤 우리 기업 주식을 사서 경제를 지켜내자는 ‘동학개미운동’에 참여한 개인투자자들 덕분에 주가가 올랐다. 코스피지수가 코로나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자 9월 15일 공매도 금지 조치 종료 가능성이 점쳐졌다. 그러나 8월부터 코로나19가 2차 대유행하면서 다시 6개월 연장됐다.
이번에 금융위가 공매도 금지를 재연장한 것은 개인투자자들의 반발과 정치권의 압박,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한 고육책으로 보인다. 개인투자자들은 ‘공매도 영구 금지’를 요구하며 집단행동을 벌였다. 국무총리와 여당도 ‘제도 개선이 선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금융당국은 통상 3개월, 6개월 단위로 시장 조치를 취해왔다. 공매도 재개 시점을 5월 3일로 잡으며 50일 더 연장한 점은 4월 7일 서울ㆍ부산 시장 보궐선거를 염두에 둔 조치란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정책 당국과 각을 세우고 정치권을 압박하면서 주식양도세 부과기준과 대주주 요건 완화를 끌어낸 ‘동학개미’로선 세력화의 힘을 거듭 보여준 셈이다.
유럽에선 프랑스, 벨기에, 오스트리아 등이 지난해 3월 19일 전후 제한했던 공매도를 5월 18일 재개했다. 이탈리아는 공매도 금지를 두 차례 연장한 우리나라와 달리 지난해 6월 18일까지였던 것을 한달 앞당겨 5월에 종료했다. 주요국 가운데 현재 공매도를 금지한 곳은 한국과 인도네시아 정도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참고서로 삼는 MS CI(모건스탠리 캐피털인터내셔널) 지수는 1년 이상 공매도 금지 조치를 이어가는 국가의 투자 비중을 낮추도록 돼있다. 한국이 공매도 상시 금지국으로 인식되면 외국인 투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금융당국은 부분적 공매도 재개 이전에 개인투자자들에게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확실히 바로잡아 공매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불법 공매도를 감시감독하는 조치를 강화하고, 개인에게도 공매도를 허용하기로 한 제도개선 방안부터 제대로 실행해야 한다.
개정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4월 6일부터 불법 공매도에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1년 이상의 징역 등 형사처벌을 할 수 있다. 그래도 미국ㆍ영국 등과 비교하면 처벌 수위가 낮다. 개인의 공매도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3조원 규모의 주식 대여 물량을 확보하겠다는 계획도 차질 없이 이뤄져야 한다.
기본적으로 불법 거래를 원천 차단하고, 적발되면 시장에서 퇴출시킬 정도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요구된다. 공매도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해 거래 투명성을 높이자. 공매도 재개에 앞서 불법 거래를 확실히 적발해 엄단하고, 공매도 작전세력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시스템을 완벽히 구축하자. 당국은 공매도가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강조하기 이전에 공매도가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속한 제도 정비에 매진해야 한다.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