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안(李安) 감독에게 2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안겨준 작품 ‘라이프 오브 파이(2012년)’는 스페인 태생 캐나다 작가인 얀 마르텔(Yaan Martel)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2001년 출판돼 전세계 50여 개국에서 1200만부 이상 판매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대만의 거장 리안 감독이 유려한 솜씨로 스크린에 풀어냈다. ▲ 인행의 고생길에서 한탄만 한다면 길가에 핀 꽃의 아름다움은 느낄 수 없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와호장룡’ ‘색ㆍ계’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리안 감독은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2006년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거장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 역시 관객과 평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호평을 받으며 2012년도 아카데미 감독상을 차지했다. 얀 마르텔의 원작소설 「라이프 오브 파이」는 굳이 분류하자면 ‘어른들을 위한 동화’쯤 될 것 같다. 수많은 고정 관념들로 가득 차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된 ‘어른’들의 머리에 신선한 충격과 자극을 선사한다. 인
관타나모 해병대 기지 사령관인 제섭(Jessup) 대령은 부대의 치부를 외부에 폭로하겠다고 위협하는 산티아고 일병을 향해 ‘코드 레드(Code Red)’를 발령한다. 합의되고 위임받은 공권력에 의한 처벌이 아닌 비합법적이고 은밀한 사형(私刑)이다. 문서에 기록된 공식적인 지시일 리 없다. 피라미드 조직처럼 입에서 귀로 전 부대원들에게 전파된다. ▲ 성역은 신계(神界)를 동경한 인간들의 상상에서 시작돼 권력장치로 변질됐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은밀한 명령인 ‘코드 레드’가 발동된 후 산티아고 일병은 같은 부대원들에게 살해된다. 흔한 군부대 사고사로 묻힐 뻔했던 이 사건은 의기충천한 조앤 갤러웨이(데미 무어) 소령과 재기발랄한 군법무관 캐피(톰 크루즈) 중위에 의해 점차 윤곽이 드러난다. 결국 ‘코드 레드’ 발동의 수괴인 제섭 사령관이 군법정에 소환된다. 하지만 제섭 사령관이 누구인가. 전쟁의 신이고, 무수한 훈장을 모두 주렁주렁 매달면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 인물이며, ‘무려’ 백악관 안보회의 참석 멤버다. 한마디로 감히 건드릴
▲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청와대'만 보인다는 비판을 받았다. 출범 두돌을 앞둔 지금은 '문재인 청와대 청부'라는 말까지 나온다. 내각과 여당의 역할이 필요할 때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이미선ㆍ문형배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했다. 두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 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이 불발됐는데도 해외 순방 중 전자결재를 통해서. 이미선 재판관은 과다 주식투자 논란 등으로 야당이 반대한 후보자였다. 이로써 헌법재판관 9명 중 청문보고서 없이 임명된 경우는 4명으로 늘었다. 이들을 포함해 문재인 정부에서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장관급 인사는 모두 13명이다. 이쯤 되면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한 장관급 인사의 자질 검증은 사실상 무력화됐다. 부동산 투기의혹이나 부실학회 참석 논란으로 장관 후보자가 사퇴하거나 지명 철회된 3ㆍ8 개각 참사까지 감안하면 문재인 정부의 인사 난맥상은 과거 여느 정부 못지않게 심각하다. 현 정부의 우군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정운영 설문조사에서 인사 문제가 가장 낮은 점수(10점 만점에 3.9점)를
‘안 되면 되게 하라’는 해병대 정신이 쿠바의 관타나모 해병대 기지에 충만하다. 노력해도 안 되면 더 ‘노오력’하라고 다그친다. 산티아고 일병은 죽을 지경이다. 인간이 느끼는 한계란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이지만 제섭(Jessup) 사령관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해병대의 생명과 같은 군기가 무너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 죽도록 충성하고 죽도록 일히라 다그치는 우리 사회는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구호를 외치는 해병대를 닮았다. [일스스트=게티이미지뱅크] 쿠바의 관타나모 해병대 기지에 배치된 산티아고 일병은 부대의 유별나게 ‘빡센’ 군기와 훈련에 적응하기 힘들어한다. 한계를 느낀 산티아고 일병이 타 부대로의 전출을 청원하지만 제섭 사령관은 못마땅하다. 자신의 탁월한 지휘력으로 일병 하나를 완전히 ‘개조’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싫다. 개인이 집단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집단이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옷을 사람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옷에 맞추는 식
▲ 정부가 재정을 풀어 급조하는 '관제(官製) 일자리’는 고용의 질을 떨어뜨린다. 지금 필요한 건 세금 쓰는 일자리가 아니다. [사진=연합뉴스] 답답해서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가 이제는 화가 난다. 월별 고용통계를 접할 때마다 느끼는 소회이자 한탄이다. ‘이럴 줄 몰랐나’라는 아쉬움에서 ‘이렇게밖에 못 하나’라는 원망이 들 정도다. 지난해 2월부터 취업자 증가폭이 예년의 3분의 1 수준인 10만명대로 주저앉았다. 음식ㆍ숙박업과 도소매 유통업, 사업시설관리(아파트 경비원 등) 및 임대서비스업 등 이른바 ‘3대 최저임금 민감 업종’에서 취업자가 급감했다. 딱 보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라는 사실을 알 텐데도 청와대와 정부는 딴소리를 했다. ‘(취업자 증가폭이 줄어든 것이지) 일자리는 계속 늘고 있다’거나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서 취업자 증가를 제약하고 있다’고 인구구조 변화를 탓하기도 했다. 지난해 여름 월별 취업자 증가폭이 불과 3000명까지 추락했다가 9월부터 수치상으로 조금씩 회복됐다. 그러나 이게
기미년 3.1독립운동 100년이다. 그리고 100년 전 그해 4월 11일은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정부가 그 시작을 알렸다. 임시정부수립일이다. 임시정부는 고국을 떠나 많은 사람들이 독립운동의 길에 들어서는 신호탄이었다. 돈 있는 사람은 돈을 내어, 머리 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힘 있는 사람은 힘을 모아 중국, 만주, 러시아 등지에서 독립의 기치를 높이 내걸었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궁금증이 촉발되는 지점이 있다. 오랜 기간 마음 속에 자리잡힌 의문이다. 3.1 만세운동의 함성을 이끌거나 초창기 독립운동에 참여했건만 돌아선 이들의 의식구조다. 민족의 배신자들의 생각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많은 사람들이 보수화된다고 한다. 보수라고 하면 진보와 대별되는 말이면서 고리타분하다고 보이지만 나는 그것을 포용력이나 이해심이라고 달리 말하고 싶다. 모나지 않으면서 둥글고, 물불 안 가리는 게 아니라 한 발자국이라도 조심하고, 내 주장을 강조하기 보다는 들을 줄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젊었을 때는 사상이나 주의에 심취한다. 다른 생각을 듣지 않거나 무시하기도 했고, 내 한 몸 안 아끼고 정의의 대열에 뛰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미국 해병대의 모토는 ‘Semper Fidelis’다. 모든 개인은 조직에 ‘항상 충성하라’는 말이다. 충성 앞에 ‘항상’이라는 말이 붙으면 불온하다. 조직이 무슨 짓을 하든 무조건 충성하라는 말이 된다. 영화 ‘어 퓨 굿맨(A Few Good Men)’에서 산티아고 일병은 ‘항상 충성하라’는 해병대 모토를 위반해 공공의 적이 된다. ‘항상 충성하라’의 숨은 뜻은 ‘그렇지 않다면 사형선고’일지 모른다. ▲ 우리 사회의 많은 조직도 암묵적으로 '항상 충성하기'를 강요하고, 누군가 거부하면 바로 '코드 레드'를 내린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어 퓨 굿맨’은 미국의 ‘귀신 잡는 해병대’에서 벌어진 불행한 사건을 다룬다. 해병대가 귀신까지 잡았다 하면 그 결과에 찬사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귀신을 때려잡기 위해 인간이길 포기하고 귀신이 돼야 하는 과정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우리나라 해병대의
▲ 따끔한 지적을 새겨듣겠다는 마음가짐이 없다면 누군가를 만나는 건 중요하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필요한 건 있는 그대로의 민심을 듣는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대통령 앞에서 청년은 울었고, 경제계 원로들은 쓴소리를 했다. 지난 1일 문재인 대통령과 시민사회단체 대표 간담회에서 엄창환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대표가 “정권이 바뀌었는데 청년정책은 달라진 게 없다”며 울먹였다. 그의 눈물은 이 땅의 청년들이 마주한 팍팍한 현실 그 자체였다. 뉴스를 통해 이를 지켜본 많은 기성세대들이 미안함과 안쓰러움을 느꼈다. 이틀 뒤 3일 청와대에 초청된 손님들은 경제계 원로였다. 총리나 경제부총리, 중앙은행 총재, 청와대 경제수석이나 장관을 역임한 인사들이다. 상당수는 정부가 밀어붙이는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도 시행의 부작용을 지적하면서 소득주도 성장정책에 대한 보완을 요청했다. 민간 투자 활성화를 통해 혁신성장에 더 힘을 실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문 대통령이 진보ㆍ보수 편 가르지 않고 시민단체 대표와 경제계 원로들을 만나 대화한 것은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시민단체 대표 간담회는 진보 진영 단체뿐만
▲ 대한항공 사태로 도래한 '주주행동주의 시대'는 투명성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그룹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대표직을 내려놓게 됐다.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에 필요한 찬성표를 얻지 못한 것이다. 대기업 대표, 그것도 오너 일가가 자발적 판단이 아닌 기관투자가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개입하는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로 사실상 경영권을 잃는 첫 사례다. 조 회장은 최대주주로서 영향력은 행사할 수 있겠지만, 이사회 참석 등 공식 경영활동에 제약을 받게 됐다. 조 회장의 이사직 박탈에는 국민연금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대한항공의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열어 격론 끝에 조 회장의 연임 반대를 결정했다. 기업가치 훼손 및 주주권익 침해의 이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부와 시민단체의 평가대로 대한항공 사태는 기업가치를 훼손한 대주주 전횡에 경종을 울렸다. 조양호 회장 가족은 ‘땅콩 회항’ ‘갑질 폭행’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조 회장 본인도 납품업체로부터 중개수수료를 받는 등 270억원대 횡령ㆍ배임 등 혐의로 기소됐
영화 ‘어 퓨 굿맨(A Few Good Man)’은 미군의 해외 주둔지 중 하나인 쿠바의 관타나모 해군기지에서 발생한 어느 일병의 ‘의문사’를 다룬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으로 추정되는 1960년대 관타나모 해군기지는 우리나라로 치면 휴전선과 같은 곳이다. 안보 목적상 밝힐 수 없는 비밀도 많고, 군기도 ‘빡센 곳’이다. ▲ '개인적인 이유'로 총기 사열의 일사불란한 아름다움을 깬 산티아고 일병은 '공공의 적'이 된다. [일러스트=케티이미지뱅크] 로브 라이너(Rob Reiner) 감독의 1992년작 ‘어 퓨 굿맨’은 굳이 장르를 분류하자면 ‘법정 드라마’라 하겠다. 우리에게 익숙한 일반법정이 아니라 ‘군대’라는 폐쇄된 사회에서의 법정 이야기라는 점이 특이하다. 영화의 시점(時點)은 명확히 나오지 않지만, 거리에 돌아다니는 자동차들의 모습으로 추정하건대 아마도 1960년대쯤 되는 듯하다. 건물이나 복장은 쉽게 변하지는 않지만 매년 ‘부분 변경’이
영화 ‘라쇼몽’은 여성 관객들이 불편해할 영화다. 일본의 어느 숲속에서 벌어진 ‘강도’와 ‘강간’을 모티브로 한 대단히 ‘동물적’인 이 영화는 강도짓이야 그렇다 해도 강간을 다루는 방식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라쇼몽의 원작자도 남성이고, 감독도 역시 남성이어서인지 강간의 문제를 다루는 시각 역시 철저히 남성적이다. ▲ 여성은 남성의 욕정을 불러일으키지 않게 자기검열 해야한다는 헤이안 시대식 주장은 오늘까지 생명력을 유지한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빚어낸 영화 ‘라쇼몽’의 배경은 11세기 일본 ‘헤이안 시대’이고, 영화가 개봉된 시점은 1950년이다. 그러나 강간의 문제가 다뤄지는 방식은 영화의 배경인 1000년도와 영화가 제작된 1950년도를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또한 ‘미투운동’으로 소란스러운 2019년 오늘날과 비교해도 또한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라쇼몽이 보여주는 여성문제 특히 강간의 문제에 있어서는 11세기와 21세기
▲ 정부 정책의 성과에 대한 평가는 시장에서 이뤄진다. 경제팀이 성과를 운운하면서 자화자찬할 일이 아니다. [사진=연합뉴스] 작금의 한국 경제상황에 대한 정부 진단은 ‘다행스럽다’로 요약된다. 2월 취업자가 1년 전보다 26만명 늘어난 것으로 통계가 나오자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이렇게 말하며 반색했다. 늘어난 취업자가 대부분 세금으로 만든 노인들의 단기 알바(40만명)이고, 나라경제의 허리인 3040세대 일자리(-24만명)가 산업의 핵심인 제조업에서 크게 감소한 것은 괘념하지 않았다. 그런 부총리로부터 경제현안 보고를 받으면서 문재인 대통령도 낙관적 평가를 되풀이했다. 올 들어 경제가 여러 측면에서 개선된 모습을 보여 다행스럽다고 했다. 국가 경제가 견실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과 경제팀의 이런 경제현실 인식과 발언은 국내외 전문기관들이 한국의 경제지표와 기업들에 대한 경고음을 잇달아 울리는 것과 동떨어져 있어 우려를 더한다. 투자ㆍ생산ㆍ고용 등 핵심지표가 부진하고 수출까지 넉달째 감소하는 데도 정부 홀로 낙관론을 펴고 있는 형국이다. 1월 산업활동을 놓고도 기획재정부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