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예산은 진기록을 양산했다. 대한민국 역사, 특히 ‘정부 재정사財政史’와 ‘국회 의정사議政史’에 기록으로 남겨 교훈으로 삼아야 할 대목이 많다. 우선 예산 규모다. 512조3000억원으로 사상 처음 500조원을 넘어섰다. 국회심의 과정에서 정부 예산안보다 1조2000억원 줄었지만, 올해(본예산 기준)보다 9.1% 늘었다.
총지출 증가율이 내년 경상성장률 전망(3.8%)을 두배 넘게 웃도니 세금징수만으론 모자란다. 국채를 역대 최대로 60조원이나 발행해야 하는 적자예산이다. 정부가 재정 건전성 지표로 삼는 관리재정수지가 올해의 두배에 가까운 72조원 적자로 불어난다. 내년 국가채무도 800조원을 넘어선다.
미래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적자예산인 만큼 국회심의를 ‘깐깐히’ 해야 함에도 예년보다 더 ‘깜깜이’로 했다. 예산안조정소위小委에서 하던 증액ㆍ감액 심사를 예산결산특위 3당 ‘간사협의체’로 넘겼다. 회의록도 없이 비공개로 심사가 진행됐다.
간사협의체나 나중에 등장한 ‘소소위小小委’도 법적 근거가 없긴 마찬가지다. 이마저 여야 정쟁으로 한동안 중단됐다가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12월 2일) 전날에야 재가동됐다. 그러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협조적이지 않자 범여 군소정당들과 ‘4+1협의체’를 구성, 밀실에서 심사를 계속했다.
국회는 국회법에 따라 의원 20인 이상 교섭단체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4+1협의체’에는 제대로 된 교섭단체가 더불어민주당뿐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여기서 비공개로 막판 심사를 진행해 수정안을 마련했다. 정기국회 마지막날인 10일 본회의 전날까지 수정안의 윤곽이 나오지 않아 깜깜이 지적을 받았다. ‘사상 최대’ 예산이 ‘사상 최악’ 부실심사 끝에 졸속 처리된 것이다.
정부 예산안도 허점이 많지만, 국회를 통과한 예산은 더 문제투성이다.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23조2000억원으로 정부 예산안보다 9000억원 늘었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 정권처럼 토건으로 경기부양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경기침체가 이어지자 SOC 카드를 꺼내들었다. 여기에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 당대표와 원내대표, 예결위원장 등 실세 의원들과 간사협의체 멤버, 4+1협의체에 참여한 군소정당 의원들까지 지역구의 민원성 SOC 사업을 대거 추가했다.
예산안 심사와 통과 때는 대립해도 지역구 사업 챙기는 데는 여야가 한통속이다. 4+1협의체를 ‘세금도둑’으로 몰아 부치던 한국당 일부 의원들도 잇속을 챙겼다.
정부가 그동안 중점적으로 늘려온 보건ㆍ복지ㆍ고용예산은 정부안보다 1조원 줄어든 180조5000억원으로 확정됐다. 그래도 지난해와 비교하면 19조5000억원(12.1%) 늘었다. 이 분야 예산은 일단 늘리면 줄이기 어려운 경직성 지출이다. 복지 명목으로 지급되는 현금 보조금, 고용통계를 좋아진 것처럼 보이려고 만드는 노인 공공알바 등이 그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사상 최대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경기 활성화의 마중물로 쓰겠다고 강조했다. 그러고선 정작 기업 활동을 지원하는 산업ㆍ중소ㆍ에너지 분야는 심사 과정에서 2000억원 줄였다.
내년 한해 늘어날 국가채무만 60조원이 넘는데, 정부는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낮은 편이라며 괜찮다고 한다. 불요불급한 지출을 걸러내야 할 국회의원들은 지역구 예산 챙기기에 바쁘다. 정부도, 국민의 대리인인 국회도 너무 무책임하다. 내 돈 아니라고 국민 세금, 나랏돈을 함부로 써도 되나.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한 확장적 재정정책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 그래도 선거를 의식해 표를 얻으려는 재정 포퓰리즘과는 선을 그어야 한다. 세수의 뒷받침 없는 무리한 확장재정은 미래세대의 부담을 늘림은 물론 경제 전체를 비효율적으로 망가뜨릴 수 있다.
정부로선 재정 확대에만 의존하지 말고 시중 부동자금, 특히 부동산시장으로 쏠리는 자금의 10분의 1이라도 기업투자와 창업시장 등 생산적 분야로 움직이도록 정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유권자, 특히 시민단체는 국민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감시해야 한다. 2020년 예산안에 기획재정부가 붙인 부제는 ‘국민중심ㆍ경제강국’ 예산안이었다.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