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새해 들어 처음 방문한 현장은 경기도 평택항이었다. 전기차 등 친환경차 468대를 선적한 글로비스 썬라이즈호가 출항 채비를 하고 있었다. 수출선에는 ‘수출강국 대한민국’ ‘친환경차 선도국가’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대통령이 첫 현장 방문지로 평택항을 선택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월간 기준으로 13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수출이 감소했다. 그 결과, 지난해 연간 수출이 전년 대비 10.3% 감소했다.
연간 수출은 2016년에 직전 연도보다 5.9% 감소한 뒤 2017년 15.8%, 지난해 5.5% 증가하며 반등했다가 3년 만에 다시 역성장에 빠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13.9%) 이래 10년 만의 두자릿수 감소폭이다.
수출 의존도가 40%에 이르는 경제구조에서 수출 급감에 따른 영향은 클 수밖에 없었다. 무역흑자가 축소되는 한편 경제성장률 2% 지키기도 버거워졌다. 나름 경기회복을 기대했던 문재인 대통령이나 정부로선 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수출 감소의 원인으로 대외여건의 불확실성 증대와 반도체 및 석유제품 등의 업황 부진을 거론한다. 틀린 분석은 아니다. 미중 무역분쟁이 3년째 이어졌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면이 계속됐고, 홍콩 사태가 불거졌다. 주력 수출품목인 D램과 낸드 등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하락했다. 그 바람에 반도체 수출이 2018년보다 25.9% 감소했다.
상황이 이럼에도 정부 대응은 영 미덥지 않다. 정부는 수출 부진보다 ‘무역(수출+수입) 1조 달러’ 달성 의미를 부각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어려운 대외 여건에서도 3년 연속 무역 1조 달러라는 기념비적 성과를 이뤄냈다”고 자평했다. 수출단가가 하락해서 수출액이 감소한 것이지, 수출물량 증가세는 지켜냈음을 강조했다.
정부는 올해 수출이 플러스로 전환할 것으로 본다. 수출액을 지난해보다 3% 안팎 증가한 5600억 달러로 예상한다. 미중 무역분쟁의 해소 가능성과 세계경제 회복 전망 등이 그 주된 근거다. 미국과 중국이 관세인하 등 1단계 무역협상에 합의해 오는 15일 서명한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은 결코 적지 않다. 미중 무역분쟁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위터 한방’에 언제든 상황이 바뀔 수 있다.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 추세도 여전하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미중 갈등은 여전히 새해를 지배할 주요 화두’라고 보도했다. 이런 판에 세계 경제가 나아지리란 낙관론은 섣부르다.
사실 정부가 내심 기대하는 대목은 따로 있다. 바로 반도체 업황의 회복이다. 최근 PC용 D램의 가격 하락세가 멈췄고, 낸드플래시 가격이 올랐다. 이는 지난해 12월 수출 감소율이 5.2%로 둔화된 배경이기도 하다. 지난해 6월부터 여섯달 연속 두자릿수를 기록했던 수출 감소율이 12월에 한 자릿수로 낮아졌다.
그러나 반도체 업황 회복은 역설적으로 ‘반도체 쏠림’이라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다시 드러낼 것이다. 반도체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20.9%에서 지난해 17.9%로 낮아졌다. 반도체 가격이 회복되면 반도체 수출 비중은 다시 20%대로 올라설 것이다. 전체 수출액도 전년보다 많아질 테고.
이렇게 되면 정부와 여권은 언제 수출 감소와 경기침체를 걱정했느냐는 듯 플러스로 바뀐 수출통계를 과시하려 들 수 있다. 반도체 이외의 미래 신산업을 육성하지 못한 현실은 망각한 채. 그러다가 반도체 가격이 다시 하락하면 또 한숨을 쉬는 악순환에 빠져 들 것이다.
평택항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처음 수출되는 친환경차 니로에 파란색 ‘수출 1호 친환경차’ 깃발을 꽂았다. “여기가 활발하게 가동되는 것이 한국 자동차산업을 살리는 길이자 수출강국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죠(문재인 대통령).” “아프리카와 인도, 중남미 등 신흥시장 판매를 늘려 한국 자동차 수출에 기여하겠다. 모빌리티 등 미래 신사업을 개척해 중장기적으로 해외 판매를 늘리겠다(박한우 기아차 대표).”
문 대통령과 기아차 대표의 대화에 한국 경제와 정부 정책이 나아가야 할 답이 있다. ‘반도체 외끌이’ 경제구조를 벗어나야 한다. 모빌리티 등 미래형 신산업 태동을 가로막는 규제를 혁파해야 한다. 대외여건 탓만 하고 있어서도 안 된다. 수출품목 다각화 및 시장 다변화가 절실하다. 수출의존형 경제구조를 벗어나기 위한 내수 진작책도 긴요하다.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