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제주지방기상청이 올해로 설립 100년을 맞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100년 이상 같은 장소에서 연속적으로 기상 관측이 이뤄진 곳은 부산, 서울에 이어 제주가 3번째입니다. 지난 100년의 날씨는 제주도민의 삶에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제주를 찾는 관광객에게도 날씨는 매우 중요한 정보입니다. 지난 100년간의 기상관측 기록과 제주기상청이 발간한 '제주 역사·문화와 함께 하는 제주기상 100년사'를 바탕으로 다양한 제주 날씨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한반도로 향하는 태풍의 길목으로 불리는 제주. 위력이 강할 때 가장 먼저 태풍을 맞기 때문에 큰 피해가 발생하곤 한다. 또한 과학적으로 증명된 건 아니지만, 실제 태풍이 제주도를 지난 뒤 세력이 급격히 약화하거나 진로를 트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도민들은 '태풍 방패막이론'을 정설로 여기고 있다. 야자수와 유채꽃이 반겨주는 따뜻한 남녘 섬이지만 겨울철 막대한 폭설 피해가 발생하기도 하며, 폭설과 강풍·풍랑으로 섬이 고립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지난 2021년에는 생각지도 못한 규모 4.9의 강한 지진이 발생했고, 국내 대표적으로 비가 많은 지역으로 꼽히지만 가뭄으로 고생한 해도 종종 있다.
제주를 찾은 사람이라면 어디를 가든 쉽게 볼 수 있는 게 밭담이다. 밭을 따라 구불구불 길게 뻗어나간 검은 돌담은 철마다 형형색색의 옷을 갈아입고 맵시를 뽐내며 도민과 관광객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 이면엔 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제주 사람들의 고된 삶과 애환이 묻어있다. ◇ 자연이 그린 미술작품 '밭담' 제주행 비행기에 앉아 창밖 너머 제주 풍경을 바라보면 저절로 외마디 탄성을 지르게 된다. 섬 전체를 캔버스 삼아 검은 돌담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그 안을 유채꽃, 청보리 등으로 색칠한 제주는 그야말로 사람과 자연이 함께 그린 미술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군가는 할머니가 자투리 천 조각으로 정성스럽게 바느질해 만든 조각보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외국인들이 보면 '퀼트' 같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어린아이가 그린 듯 다소 엉성하게 모양도 색도 가지각색이지만, 하늘에서 전체를 바라보면 미술의 거장도 무시하지 못할 조화로움과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점, 선, 면의 조화다. 밭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과 돌로 경계를 가른 밭담, 그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농작물이 점·선·면으로 조화를 이룬다. 게다가 사시사철 끊이지 않고 제주의 색은 변화한다. 노란
문화는 지역의 자연환경과 역사적 배경 속에 사람들이 만들어낸 생활양식이다. 따라서 문화는 그 지역의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화산섬' 제주 지천에 널린 돌은 제주 사람들에게 극복해야 할 대상이자 생활의 원천이었다. 삶의 지혜와 예술적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는 제주 돌문화를 들여다 본다. ◇ 돌이 많아 곤궁한 섬…돌문화 기원 '우르르 쾅 쾅!' 제주 전역을 뒤흔들 만큼 커다란 폭발음이 연이어 터져나왔다. 화산에서 분출한 뜨거운 용암이 쓰나미처럼 흘러내리고 폭발과 함께 뿜어져 나온 화산재가 화산가스, 수증기와 뒤엉켜 사막의 모래폭풍처럼 지표면 전체를 훑고 지났다. 용암은 지표면으로 흘러내려 식어가고 또다시 흘러 쌓이기를 반복, 대지를 이루고 수많은 동굴과 지형지물을 만들었다. 제주는 지금으로부터 170만년 전 신생대 제4기 동안 진행된 여러차례 화산활동으로 형성됐다. 중국·한반도와 육로로 연결됐던 제주가 오늘날과 같은 섬으로서의 환경을 갖추게 된 것은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불과 1만년 전 무렵이었다. 돌이 바람과 바다에 쓸려 깎이고 깎여 모래와 흙이 되고, 그 위로 풀이 돋고 나무가 자랐다. '돌이 많은 섬' 제주는 이렇게 생겨났다. 돌은 그 자체가 화산섬
# 제주도당국이 애써 외면해온 제주고사리삼 곶자왈은 오름이 만든 제주도만의 고유한 숲이다. 그래서 제주도내 동서로 분포하고 있는 곶자왈마다 모태인 오름이 있다. 선흘곶자왈은 북오름이 만들어낸 숲이다. 약 9000년 전, 북오름에서 분출한 용암이 식으면서 거대한 용암동굴과 용암평원을 만들어냈다. 그 바위 평원 위에 9천년 동안 만들어진 숲이 선흘곶자왈이다. 하여, 선흘곶자왈을 1만년의 숲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고사리(양치식물)는 공룡시대에도 살았던 식물이다. 곶자왈은 국내 고사리의 80% 이상이 살고 있다고 할 정도로 남방계열의 고사리뿐만 아니라 추운지방 북방계열의 고사리도 공존하고 있는 그야말로 고사리의 메카이다. 1996년, 제주대학교 생물학과 김문홍 교수팀은 선흘곶자왈에서 처음 보는 고사리를 발견한다. 신종이었다. 이후, 2001년 세계적인 식물학술지 택손(TAXON)에 관련 논문이 게재되면서 세계 식물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게 된다. 그런데 통상 있는 신종 발견만으로 그치는 게 아니었다. 그보다 더 위에 있는 속(屬, genus) 자체가 아예 새로운 것이었다. 바로 제주고사리삼이다. 즉, 전 세계적으로 제주고사리삼속에 속하는 식물은 제주고사
"걸어서 행복해져라. 걸어서 건강해져라. 오래 사는 최선의 방법은 끊임없이, 목적을 갖고 걷는 것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찰스 디킨스의 말이다. 제주의 대표 도보여행길 올레길을 걷다보면 대문호의 말처럼 '건강'과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할 수 있다. 제주의 '역사·문화'다. 걸으면서 건강과 행복, 게다가 배움도 얻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제주를 한 바퀴 잇는 올레길 437㎞ 곳곳에 남아 있는 역사, 문화유산과 흔적들을 만나보자. ◇ 제주 자연풍광 담은 보물 '탐라순력도' 올레길을 걷다보면 탁 트인 바다와 오름 곳곳에 숨어있는 절경 등에 저절로 감탄을 하게되곤 한다. 동시에 '지금 봐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그 옛날에는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돋기도 한다. 이를 조금이나마 해소해 줄 수 있는 게 바로 조선시대 제주의 모습을 그린 기록 화첩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보물 제652-6호)다. 조선 숙종 1702년 3월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형상이 도내 각 고을 순시를 비롯해 한 해 동안 거행했던 여러 행사 장면을 화공(畵工) 김남길에게 그리게 하고 간략한 설명을 곁들여 만든 화첩이다. 43면으로 된 가로 35.5㎝, 세로 5
제주자연의벗은 지난 6월 창립총회에서 일반 시민과 회원의 뜻을 모아 제주의 생물대표로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제주고사리삼(학명 : Mankyua chejuense)을 공동대표로 선출했다. 제주자연의벗 공동대표인 제주고사리삼은 어떻게 생긴 식물일까? 2001년 제주고사리삼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이후 연구자들에 의해 논문, 사진 등을 통해 제주고사리삼의 생태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식물이 살아가는 모양이나 상태, 즉 제주고사리삼의 생태는 어떤 모습일까? 연구자들의 논문과 직접 관찰한 것을 토대로 여러 가지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제주고사리삼은 세계적으로 속(genus) 자체가 우리나라 제주도 동북지역 곶자왈에만 분포하는 특산속 식물이다. 이 종은 제주대학교 김문홍 교수가 1996년 10월 당시 북제주군 구좌읍 묘산봉 인근에서 채집한 것이 최초이다. 그 후 수차례 조사와 연구를 통해 2001년 11월에 전북대학교 선병윤 교수 등 4명의 식물학자들이 세계 최고 권위의 식물분류학잡지인 택손(Taxon)지에 ‘고사리삼(고사리삼과) : 대한민국 제주도산 새로운 속 양치식물’이란 논문을 게재함으로써 국제학회에 공식보고하게 되었다. 제주고사리삼의 학명은 양치식물 연구의 거
[※ 편집자 주 = 제주에는 섬이라는 지리적 여건으로 생성된 독특한 문화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세대가 바뀌고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지만, 독특한 문화와 함께 제주의 정체성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고 불안합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후진적이고 변방의 문화에 불과하다며 천대받았던 제주문화.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속에서 피폐해진 정신을 치유하고 환경과 더불어 공존하는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제주문화가 재조명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시'라는 우리말은 '하던 것을 되풀이해서'란 뜻 외에 '방법이나 방향을 고쳐서 새로이' 또는 '하다가 그친 것을 계속해서'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다시! 제주문화를 돌아보고 새롭게 계승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제주문화가 우리 삶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계승해 나갈 방법을 고민합니다.] 제주를 대표하는 상징물 하면 돌하르방, 해녀, 한라산, 조랑말 등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또 하나 '감귤' 역시 빼놓을 수 없다. 2022 제주감귤박람회가 지난 10일 개막, 전시·학술·문화·체험 행사 등을 통해 제주 감귤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
제주의 가을은 감귤 빛으로 물든다. 예로부터 제주를 대표하는 10가지 풍광 중 하나로 '귤림추색'(橘林秋色)이라고 했다. 깊어가는 가을 사방에 주렁주렁 매달린 귤로 금빛 풍광을 이룬다는 뜻이다. 돌담 너머 짙푸른 잎 사이로 반짝이는 귤빛은 울긋불긋 물든 단풍잎만큼이나 아름다운 색감을 연출한다. 황금빛 감귤이야말로 제주의 진짜 가을 색이다. 제주의 감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잘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것이 제주 감귤이다. 제주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재배되는 귤은 온주감귤이다. 온주(溫州)는 중국 절강성 남동부 해안에 있는 항구도시로, 이 지역에서 유래된 감귤을 온주감귤이라 일컫는다. 일본에서도 '온슈미캉'이라고 하는데 오래전에 온주감귤이 조선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보고 있다. 온주감귤은 수확 시기에 따라 '극조생'(極早生) 감귤, '조생'(早生) 감귤, '중만생'(中晩生) 감귤로 나뉜다. 극조생 감귤은 가장 빨리 수확하는 것으로 10월 중순부터 수확 출하한다. 일반 조생보다 당도는 다소 떨어지지만 가장 먼저 출하되기 때문에 싱싱하고 상큼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조생 감귤은 11월 중순부터 12월 말까지 수확하는 것으로, 가장 많이 재배하는
곶자왈은 남과 북의 식물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따뜻한 곳에 사는 식물인 남방계 식물과 추운 곳에 사는 식물인 북방계 식물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것은 제주도 생성의 역사와 곶자왈의 지질․지형적 특성이 결합한 결과이다. 제주도는 불과 1만여년 전에야 섬이 되었다. - 1만년은 인간의 시간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시간이지만 지질학적 시간으로는 찰나이다. - 즉, 그 이전에는 섬이 아닌 대륙의 일부였다. 빙하기가 끝나고 간빙기가 되면서 물이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섬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제주가 섬이 되기 이전에는 북방계 식물과 남방계 식물이 제주에 분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간빙기가 되고 제주가 따뜻해져가자 추운 곳을 좋아하는 북방계 식물은 기온이 낮은 한라산으로 자리를 이동하게 된다. 당연히 따뜻한 저지대의 북방계 식물은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한라산의 시로미, 구상나무, 암매는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들은 북방계 식물로서 한라산 일대에서만 명맥을 이어가게 된 것이다. 시로미 열매는 시베리아의 북극곰이 좋아하는 열매이다. 즉, 빙하기 때 제주로 내려왔던 추운 북쪽 지방의 식물이 간빙기가 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한라
2001년, 세계 최초로 제주고사리삼이 제주에서 발견됐다. 제주고사리삼은 지구상에서 선흘곶자왈 일대에만 분포하는 특산속 식물로서(1속 1종) 보전가치가 매우 높다. 제주고사리삼은 선흘곶자왈 일대의 건습지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서만 발견된다. 그 이유는 제주고사리삼이 매우 까다롭고 독특한 지질적·생태적 조건을 갖고 있는 곳에서만 제한적으로 자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높은 가치에도 불구하고 제주고사리삼의 분포지인 선흘곶자왈 일대는 도내 곶자왈 중에서도 개발 사업이 가장 많이 이뤄진 곳 중의 하나다. 더군다나 아직까지 제주고사리삼의 전수조사도 없었을 뿐더러 보호지역 지정조차 이뤄지지 않았고 최근에도 선흘곶자왈을 개발하는 제주자연체험파크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에, 제주자연의벗은 지난 6월 창립총회 때 제주고사리삼을 공동대표로 선출하기도 했다. 제주자연의벗 생태환경 기획시리즈 연재 두 번째 주제로 제주고사리삼으로 정했다. 앞으로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세계 유일의 신속(new genus) ‘제주고사리삼’은 선흘곶에서만 자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자그만 관속식물은 왜 선흘곶이라고 하는 곶자왈의 제한된 공간에서만 살 수 있는 것일
[※ 편집자 주 = 제주에는 섬이라는 지리적 여건으로 생성된 독특한 문화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세대가 바뀌고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지만, 독특한 문화와 함께 제주의 정체성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고 불안합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후진적이고 변방의 문화에 불과하다며 천대받았던 제주문화.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속에서 피폐해진 정신을 치유하고 환경과 더불어 공존하는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제주문화가 재조명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시'라는 우리말은 '하던 것을 되풀이해서'란 뜻 외에 '방법이나 방향을 고쳐서 새로이' 또는 '하다가 그친 것을 계속해서'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다시! 제주문화를 돌아보고 새롭게 계승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연합뉴스는 이번 기획 연재를 통해 제주문화가 우리 삶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계승해 나갈 방법을 고민합니다.] 600년 가까이 제주의 희로애락을 함께한 관덕정(觀德亭). 현존하는 제주의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자 제주의 가장 중요한 문화재(보물 제322호) 중 하나로 꼽힌다. 우리는 역사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관덕정이 제주에서
[※ 편집자 주 = 제주에는 섬이라는 지리적 여건으로 생성된 독특한 문화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세대가 바뀌고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지만, 독특한 문화와 함께 제주의 정체성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고 불안합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후진적이고 변방의 문화에 불과하다며 천대받았던 제주문화.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속에서 피폐해진 정신을 치유하고 환경과 더불어 공존하는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제주문화가 재조명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시'라는 우리말은 '하던 것을 되풀이해서'란 뜻 외에 '방법이나 방향을 고쳐서 새로이' 또는 '하다가 그친 것을 계속해서'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다시! 제주문화를 돌아보고 새롭게 계승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연합뉴스는 이번 기획 연재를 통해 제주문화가 우리 삶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계승해 나갈 방법을 고민합니다.] 과거 제주는 유배의 섬이었다. 죄질에 따라 유배길의 거리가 달랐던 만큼 제주는 중죄인만이 가는 '창살 없는 감옥'이자 '피하고 싶은 변방'이었다 임금도 신하도 피해갈 수 없었던 제주 유배. 하지만 오늘날 제주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