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습감괘(習坎卦) 감(坎)은 구덩이, 항정이다. 파생하여 위험, 평탄치 못하다 뜻을 갖는다. 인생은 태어나자마자 고통을 받는다고 말한다. 어딘가 억지스러움이 있음을 피할 수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이치에 맞는다. 그렇다. 인생의 길에는 밝은 빛만 있는 게 아니다. 울퉁불퉁하다가도 가끔은 빛을 비춘다. 그때, 고개를 숙이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물이 흘러가서 가득차지 않으니 중용의 도를 견지하고 정도를 지켜라. 꾸준하게 나아가라. 발걸음을 내딛기 힘들 정도로 곤경에 처하면 어떻게 하여야할까? 인생 여정 중 언제 어디서나 험난한 걸림돌을 만나게 된다. 남송 시인 양만리(楊萬里)의 시 한 편 보자. 인생 여정 중 만나는 어려움을 말하고 있다. “고개를 내려오면 어려움이 없다는 말 하지 마시게, 행인을 속여 자못 기쁘게 만드는 것이라오. 바야흐로 만 개의 산이 둘러싼 속에 들어가 보니, 산 하나가 우리를 내보내자 산 하나가 또 가로막는 구려.”1)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인생의 위험 지대를 벗어날 수 있을까? “태산이 눈앞에서 무너져도 얼굴빛은 편안히 변함이 없다.” 이러한 기백을 가질 수 있을까. 이런 정신의 경지는 분명 평범한 것이 아니다. 필시 위험한
『주역』은 말한다 : 비상시기에 비상한 수단을 가지고 비상한 일을 하라. 한 가지 방법에만 구애되지 말라. 용감히 창조하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거리낌 없이 얘기해 보자. 무슨 일을 하던 간에 사람은 모두 자신이 성공하기를 바라지 않더냐. 그런데 성공은 사람에게 쉽사리 웃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사업에 대한 추구가 광명을 향한 행진이라고 한다면 실패라는 거꾸로 선 그림자는 그림자처럼 어디를 가든 따라오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보자. 투자자는 파산의 위험을 감수하여야 한다. 경기 참가자는 도태할 수 있다는 걱정이 생길 수 있다. 시험을 보는 사람은 낙방할 우려가 있고 과학 연구자는 ‘심기만하고 수확하지 못하는’ 지경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 그렇게 실패는 그림자처럼 우리를 따라온다. 그런데 실패란 두렵기는 하지만 실제로 우리를 훼멸시키는 것은 실패 그 자체가 아닐 경우가 많다. 실패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태도가 문제일 경우가 많다. 어떤 일을 하던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아니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실패가 도래한 후에 우리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다면 다음번에 문을 두드리는 것은 어쩌면 성공일 가능성이 많다. 유감인 것은, 성공이 문
◆ 대과괘(大過卦) 대과(大過)는 상규를 넘어선다는 뜻을 나타낸다. ‘진리는 왕왕 소수의 손에 장악’되기 때문에 군자는 ‘홀로 서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하지 말라’고 자주 말한다. 바로 자신이 발전할 결정적인 순간에 주눅 들지 말아야 한다. 위축돼서는 안 된다. 소심해져서도 안 된다. 용감하게 돌진하고 용감하게 맞서야한다.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자기에게 속한 천지를 개척할 수 있다. 너무 소심해서 이것도 겁나고 저것도 두려우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사람의 일생은 비상시기가 결정적인 순간이 되기도 한다.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우리가 안전하게 그 문턱을 넘어설 수 있느냐를 보면 된다. 교묘하게도 비상시기에 호방한 본성이 드러날 수 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하지 않던가. 비상시국이 군웅의 재능이 나타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넘어야 하는 문제를 잡아내고 잘 처리할 수 있으면 성공도 순리적으로 펼쳐지게 되리라. 기회를 붙잡는 것은 그리 쉬운 게 아니다. 제대로 파악해야만 한다. 용감하게 맞서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주역』은 말한다. “못이 나무를 없애는 것이 대과(大過)이니, 군
◆ 이괘(頤卦) 이(頤)의 본뜻은 턱이다. 파생하여 양육, 봉양의 뜻을 갖는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바쁘게 뛰어다닐 수밖에 없다. 가정을 위하여 바쁘고 부모처자를 걱정하여야 한다. 이 사회에서 모든 가정은 양육을 필요로 한다. 이것들은 우리 자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자기 힘으로 살아가야한다. 세상 경험을 쌓고 살 길을 찾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사람은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자력갱생하여야 한다. 재부를 창출하여야 한다.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여야 한다. 놀기 좋아하고 일하기 싫어해서는 안 된다. 먹는 것만 밝혀서는 안 된다. 빈들거려서도 안 된다. 가족에게 부담이 돼서는 안 된다. 『주역』은 말한다. “이(頤)는 곧게 하면 길하니, 길러주며 스스로 음식[구실(口實)]을 구하는 것을 살펴보아야 한다.” 무슨 말인가? 부양하는 일을 점을 쳐서 물으니[정(貞)] 길하다[길(吉)]는 뜻이다. 부양하는 일을 관찰하니 스스로 먹을 것을 강구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오늘날은 경제 독립의 사회다. 경제적으로 독립하여야 비로소 매력을 발할 수 있다. 가정에서도 발언권이나 결정권을 가질 수 있다. 그렇기에 자력갱생하여야 한다. 어려움을 견디며 창업하려는
필립스(Philips)회사는 오랜 기간 인력자원을 회사 발전의 중요한 기점으로 삼았다. 업무의 고속적인 발전을 유지하려고 필립스는 전문적으로 명석한 인재 발굴 전략 조치를 만들었다. 그중 현지의 인재를 흡수하고 배양하려고 필립스는 중국의 인재를 전략적으로 중시하고 중용하였다. 100명의 사장급 현지 인재를 배양하려고 필립스는 우수하며 발전 잠재력을 갖춘 젊은 인재를 전폭적으로 끌어들였다. 내부 인재를 배양하고 발전시키는 데에도 중점을 두고 그들에게 필립스 발전 책략에 만족시키는 동시에 자기 직업의 앞길을 개선하도록 만들었다. 예를 들어 특별히 인재 발전 센터를 만들어 원래 분산되어 있는 인력자원을 서비스 기능으로 집중시켰다. ‘TOTAL’ 발전계획을 통하여 중급 관리인재를 회사의 정책결정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였다. 지도 및 관리 능력 방면에 인재를 배양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하여 미래의 지도급 인물이 되도록 도왔다. 필립스회사도 ‘본토 인재 국제화’ 전략 목표를 실천하기 시작하였다. 걸출한 중국인 사원을 해외에 파견하였다. 훈련과 실제 업무를 진행하면서 전 세계에 걸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중국에서 해외로 갔다. 그렇게 고급 인재를 배양하였다. 필립스회사의
◆ 대축괘(大畜卦) 대축(大畜)은 풍성, 풍작의 축적이다. 풍작을 거두려면 천시, 지리, 인화가 모두 갖춰져야 한다. 인화가 중요하고도 중요하다. 풍작에는 인재의 도움이 필요하다. 유능한 인재를 모아야 한다. 선을 쌓고 덕을 행해야 한다. 그래야 끊임없이 축적된다. 단체가 강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지도자가 되어 더 큰 성적을 거두려고 한다면 곁에 자신을 후원해줄 인재와 끝까지 목숨을 걸어줄 지사가 필요하다. 동시에 자기의 덕행을 끊임없이 닦아야 한다. 덕행이 높으면 높을수록 사업도 순리대로 풀 수 있다. 『주역』은 말한다. “대축은 곧음이 이롭고(이로우니), 집에서 밥을 먹지 않으면(아서) 길하니(고),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 무슨 말인가? 풍성하게 축적되니 정도를 굳게 지키는 데에 이롭다. 어질고 재능 있는 사람을 곤궁하게 집에서 생계를 이어가게 만들지 말고 마땅히 조정으로 불러내어 국가의 봉록을 먹으면서 재능으로 국가에 공헌하게 하여야 길하고 큰 내를 건너는 데에 이롭다는 뜻이다. ‘홍루몽중인(紅樓夢中人, 홍루몽 배우를 선발하는 중국 대형오디션 활동)’ 오디션은 기적을 만들어 냈다. 2주 동안 홈페이지 클릭 수가 이천 만을 돌파하였다.
물질생활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오늘날은 그런 금욕주의 성격을 지닌 ‘공안락처(孔顔樂處)’1)는 어쩌면 과하게 제창할 가치는 없다하더라도 안회가 도달한 경지는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냉정하게 논하면 우리 대부분은 엄격한 의미에서 군자도 아니요 철두철미한 소인도 아니다. 늘 그 둘 사이에 놓여있다. 바로 그렇기에 우리는 ‘탄탕탕(坦蕩蕩)’한 흉금도 지니고 있고 ‘장척척(長戚戚)’한 체험도 했다.2) 그러면서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도대체 어떤 상태가 더 본질적이고 더 행복하며 더 의의가 있는지 진정으로 깨우치고 이해하게 된 것이다.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개인적 수양을 끊임없이 하여야 한다. 모든 사람은 어쩌면 악마의 일면과 천사의 일면을 다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끝없이 수련하면서 자기 정신적 탐욕과 투쟁하여야 한다.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기 일생 동안 어떤 방면에서라도 업적을 세워야 한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하여야 한다. 탐욕을 너무 부려서는 안 된다.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부족한 면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다. 평상심으로 타인을 대하고 평상심으로 자신을 보면서 삶에 있어 너무
◆ 무망괘(无妄卦) 망(妄), 황당하다, 터무니없다, 상궤를 벗어나다 뜻이다. 무망(无妄)은 황당하지 않다, 상궤를 벗어나지 않다, 속이지 않다 뜻이다. 자아를 표현해내야 한다. 객관적이어야 하고 진실하여야 한다. 한 말에 책임지고 말한 대로 행동하여야 한다. 일을 함에 정정당당하고 광명정대하여야 한다. 하늘을 떠받치고 땅 위에 우뚝 서야 한다. 위선적이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유명한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The Emperor's New Clothes)』이 이야기이다 : 벌거벗은 임금님이 의장대의 호위를 받으며 거리로 나섰다. 도성의 사람들은 앞 다퉈 임금님의 새 옷을 보러 나왔다. 그들은 소리쳤다. “우리 임금님의 새 옷이 정말 예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옷이다!” 이처럼 우스꽝스럽다. 그러면서도 슬프기도 하고 가엽기도 하다. 이것은 무지와 권력의 압제로 만들어진 집단 허위(거짓)다. 사람됨은 솔직하여야 한다. 솔직하고 본분을 지켜야 착실한 삶을 살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거짓되고 비열하면서도 도덕군자인양 점잔을 뺀다면 세상은 얼마나 무섭게 되겠는가. 『주역』은 말한다. “무망은 크게 형통하고 곧게 함이 이로우니, 바르지 않으면 허물이 있을
◆ 복괘(復卦) 복(復)은 복귀하다, 반복하다. 잘못을 저질렀지만 제때에 돌아오면 형통하다. 잘못을 고집해 깨닫지 못하여 헤매지 말라. 산에 호랑이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산으로 가는 것은 어리석다.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기어이 그 일을 하려 들지 말라. 잘못해 옆길로 빠졌는데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하면 후회막급일지니. 잘못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으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옛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 B.C544~484)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는 똑같은 강물 속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변화 이외에 영원한 것은 없다, 변화 이외에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말도 있다. “사람은 같은 곳에서 두 번 넘어져서는 안 된다.”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잘못을 저질렀으면 고쳐야 한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고 다시 잘못을 저지르면 바보일 뿐이다. 『주역』은 말한다. “돌아옴에 혼미하여 흉하니, 재앙이 있어 군사를 동원하는 데에 쓰면 마침내 크게 패하고 그 임금에게까지 흉하여 십년이 될 때까지 가지 못할 것이다.” 방향을 잃고서도 반복하면 아주 위험하다. 재난이다. 만약
◆ 박괘(剝卦) 박(剝)은 싹둑 자르다, 벗겨내다, 쇠패(衰敗)하다 뜻이다. “삼십년은 황하의 동쪽이요 삼십년은 황하의 서쪽이라.”(『유림외사(儒林外史)』)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것처럼 세상사는 돌고 도는 것이다. 발전과 쇠패는 결국 상대적이다. 정상적이다. 발전했다고 우쭐거릴 필요 없고 쇠패했다고 의기소침할 필요 없다. 태연하게 맞이하라. 시대의 추세에 순응하라. 적절하게 도움을 구하면 난관을 빨리 벗어날 수 있다. 쇠패하게 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것이 다 ‘연기처럼 없어지거나 사라지’게 된다. 얼마나 많은 산이 평지가 됐는가? 높다란 건물이 얼마나 많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가. 그렇다. 견고한 성벽도 무너질 때가 있다. 아무리 완벽하다 하여도 결국은 쇠패(衰敗)할 시간은 도래한다. 속세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생겨나고 사라진다. 당신이 사물 발전의 규율을 파악했다면 쇠패는 늦출 수 있다. 심지어 쇠퇴(衰退)해 가는 형세를 만회할 수 있다. 쇠패를 마주하면 우리는 시대의 추세에 순응하면 된다. 『주역』은 말한다. “박(剝)은 가는 것이 이롭지 않다.” “박(剝)은 깎아냄이다. 부드러움이 굳셈을 변화시킨 것이니, ‘가는 것이 이롭
사교의 상황이 허락만 된다면 특별한 옷을 입고 모두의 주의를 끌 수 있도록 해도 된다. 그러면 타인이 멀리에서 우리를 보더라도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있다. 어쩌면 상대방이 어떤 구실을 찾아 곁으로 오면서 물을 수도 있다. “죄송하지만, 제가 당신을 주의하여 봤는데, …… 입으신 게 뭐지요?” 이 방법은 여성에게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주의하여야 할 것이 있다. 의복의 독특성이 상궤를 너무 벗어나면 안 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타인에게 환심을 사려고 별짓을 다 한다는 나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너무 최신 유행만을 따라가면서 유별난 옷차림을 하면 타인이 가볍고 천박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더 심하게 말하면 웃기게 볼 수도 있다. 반면에 복식이 너무 시대에 뒤떨어지면 사람들이 융통성 없는 수구이고 낡아빠진 독단가로 여길 수 있다. 정결하면서도 적절한 복장 의용은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게 된다. 시기적절한 차림은 타인의 마음속 지위를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일종의 예의이기도 하다. 오늘날은 개성을 중시하는 사회다. 형상은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좋은 형상을 이룰 수 있을까? 첫째, 신용을 지킨다. 타인에게 동의하거나 승낙한
◆ 비괘(賁卦) 비(賁)는 문식하다, 꾸미다 이다. 정치, 경제 제도 등을 포함한 인류의 생활방식은 바로 인류의 문식이다. 그래서 인문(人文)이라 한다. 사람의 복장, 형상, 기질, 수양은 인문에 속한다. 바로 인문이 있기에 인류의 광범위한 교류와 소통이 있다. 몸가짐과 옷차림이 맞지 아니하면 어떻게 할까? 개인 형상은 점포의 외관과 같다. 개인의 형상이 좋고 나쁨은 사람 간 교제의 성패를 직접적으로 결정한다. 개인 형상은 자신이 끊임없이 노력하여 자신의 도덕수양을 충실히 높임으로서 반영된다. 그래서 옛 사람이 말했다. “뿌리가 없으면 제대로 서지 못하고, 무늬가 없으면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다.”(『예기禮記·예기禮器』) 우리는 살면서 어느 지도자는 친화력이 강하고 어떤 사람은 붙임성이 좋아 모두가 그와 교류하기를 원한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이것이 개인형상이 비교적 좋다는 표현이다. 개인형상은 하루사이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좋은 개인형상은 세월이 쌓여서 만들어진다. 좋은 방면을 끊임없이 타인에게 드러내면서 좋지 않은 점은 점차 개선해 나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좋은 개인형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언행을 주의하여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