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 미국 코카콜라사 아시아 담당 사장이 은밀히 제주도를 찾았다. 제주도지사 집무실에서 우근민 당시 지사와 마주한 그는 이렇게 제안했다.
"대가는 충분히 치르겠다. 제주산 생수의 판매권을 우리에게 달라." 물론 그들이 최종적으로 얻은 답은 "노(No)"였다.
하지만 2년 뒤인 2004년 1월 이번에는 같은 회사 북미담당 수석부회장이 서철건 당시 제주개발공사 사장을 찾아왔다. 제주개발공사는 제주산 생수를 독점 생산하는 제주도 출자기업. 서 사장도 같은 제의를 받았다.
물론 똑같은 “노(No)”란 답을 듣긴 했지만 그만큼 집요했다. 제주산 생수의 품질과 성장 가능성에 대해 세계적 다국적 기업 역시 군침을 흘렸다.
‘물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제주삼다수’ 판권을 둘러싼 대회전이다.
부동의 먹는 샘물시장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삼다수’의 국내 유통시장 맹주 자리를 놓고 국내 음료기업들의 일촉즉발 대전의 막이 올랐다. 대형 유통사들까지 가세, 격전이 예고됐다.
제주도개발공사는 이달 21일부터 8월 31일까지 제주도 이외 지역 삼다수 독점 유통권 사업자 선정 입찰을 위한 공고에 들어갔다.
현재 제주삼다수의 유통시스템은 크게 세가지다. 제주도내와 제주도외 지역 3개 대형마트(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와 기업형 슈퍼마켓(SSM), 그리고 이를 제외한 제주도외 지역 유통 등 3종류다.
이번 입찰대상은 제주개발공사가 직접 유통에 나선 두 경우를 제외한 도외 유통망을 통한 판매 권한이다.
현재 제주도 이외 지역 삼다수 독점 유통권을 갖고 있는 곳은 광동제약이다. 하지만 이 독점 유통권은 올 연말인 12월24일 종료된다. 이에 따라 위탁판매 사업자 재선정 절차에 들어간 것이다.
삼다수는 현재 생수시장 페트(PET) 병 분야에선 독보적 1위다. 시장조사업체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삼다수의 생수시장 페트병(PET)병 부문 점유율은 40%나 된다. 생수시장 2위 경쟁을 벌이고 있는 농심의 ‘백산수’와 롯데의 ‘아이시스’ 둘 모두 시장점유율이 10% 남짓이다.
게다가 국내 먹는샘물 시장이 연평균 11%씩 성장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만큼 제주삼다수의 시장경쟁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미 2016년 시장규모가 7000억원으로 2020년에는 1조원대에 이를 것이란 추정까지 있다.
그렇기에 삼다수 유통권을 거머쥔다면 어느 업체라도 단숨에 먹는샘물 시장 1위 기업으로 부상할 것이란 예상은 상식이다. 지난해 삼다수의 총매출은 2415억. 이 가운데 도외 유통 사업자인 광동제약이 올린 매출은 1837억원이다. 치열한 시장쟁탈전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시장쟁탈전에 나설 기업으론 1998년 제주삼다수 출시부터 2012년까지 장기간 삼다수 판권을 보유했던 농심과 현 유통사업자인 광동제약, 생수·탄산수 사업으로 덩치를 키우고 있는 롯데, LG생활건강 등 대기업은 물론 웅진식품과 풀무원 등 식음료기업까지 가세할 것이란 관측이 무성하다.
여기에 국내 유통망 최강자 신세계 이마트 등 유통업체까지 입찰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흘러나오고 있다.
물론 2012년 광동제약이 도외 유통권을 따낼 무렵 지금 거론하고 있는 대다수 기업이 이 ‘물의 전쟁’에서 한판 격전을 치렀다.
이번 입찰전쟁엔 무엇보다 현 사업자인 광동제약이 사활을 걸고 덤빌 것으로 예상된다. 2012년 계약 당시 유통권 보장기간은 4년이었지만 매출하락 등 큰 변동이 없을 경우 1년 연장이 가능한 조건에 따라 올 연말로 계약기간을 연장받았다. 업계에선 “삼다수 판권으로 단숨에 먹는샘물 2000억대 매출시장에 진입한데다 기업 매출의 상당부분을 차지한 마당에 이를 포기할 수 있겠냐”고 반문하며 광동제약의 ‘전투력’을 가늠할 정도다.
소비자들의 ‘농심 삼다수’로 오해할 정도로 당초 삼다수 출시부터 판권을 쥐고 있었던 농심의 패자부활전도 예상된다. 어이없게 광동제약에 고배를 마신 터라 분루를 삼키고 따로 ‘백산수’ 브랜드를 출시했지만 시장점유을이 고작 10% 남짓이어서 과거 삼다수의 영광만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여러 경로로 확인한 결과 “아직 입장을 정리하지 못했다”는 말로 고심을 드러냈다.
게다가 농심으로선 2011년 말 유통권 계약해지 당시 제주도개발공사와 소송전까지 치른 마당이어서 ‘감정의 골’이 생긴 실정이다. 대한상사중재원이 제주개발공사의 손을 들어줬고, 이어진 소송도 대법원까지 간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농심의 삼다수에 대한 애착은 크다는 걸 방증한다.
‘아이시스’ 브랜드로 시장에 진출한 롯데 역시 입찰 참여가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생수시장 경쟁사에게 도외 독점 유통권을 넘길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분위기다. 그보단 이마트 등 대형 유통기업이 나설 경우 “시장점유율 확대에 더 기여할 것”이란 관측도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이마트는 이런 분위기를 의식해선지 연초 제주에서 ‘소주전쟁’을 벌이던 향토 업체 중 한 곳인 ㈜제주소주를 인수, 새로운 소주시장 진출을 예고한 상태다.
2000억 ‘물의 전쟁’이 최종 본선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누구에게 승리의 여신이 미소를 지을지 제주도는 물론 국내 호사가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제이누리=양성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