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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해녀, 그 영원한 유산을 향한 몸부림 ... 물거품이 되어버린 해녀의 꿈

 

제주도 속담에 ‘보목동 강아지는 눈이 오면 짖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기온이 따뜻하단 얘기다. 겨울에도 여간해서는 눈이 내리지 않으니, 강아지 생애에 몇 번이나 눈을 목격해 볼 것인가? 그러니 어쩌다가 눈가루라도 날리면 ‘이 무슨 난린가’ 싶어서 요란하게 짖어대는 것이리라.

 

이렇게 따뜻한 겨울을 지낸 보목동 감귤은 차가운 바닷바람에 잘 절어져서 새콤함과 달콤함이 천상의 궁합을 이룬다. 게다가 껍질이 단단하게 여물어서 저장도 그만인 탓에 한 번 먹어본 사람들은 단골을 자처한다. 그래서 보목동은 감귤수확이 12월에 집중된다. 조금이라도 햇볕과 바람을 더 쬐어서 단맛이 속살 깊은 곳까지 스며들게 하려는 연유다.

 

그러므로 1월이 되면 보목동 바다는 해녀들의 소라채취로 부산해진다. 겨울 기온이 제주의 다른 지역보다 2∼3도 높은 곳이라 눈이 내리는 날에도 해녀들은 바다로 나간다. 어쩌면 눈 내리는 날의 물질은 비장해서 더 아름다운 풍경이기도 하다.

 

섶섬을 배경으로 해서 감귤색 태왁들이 점점이 흩어지면 은은한 평화로움마저 느껴진다. 내게는 봄이나 여름보다 한층 더 물질이 그리워지는 때다. 망실이가 미어지게 잡은 소라를 성창가에 저장해 놓고서, 좀망살이 가득 들어 있는 해삼을 어깨에 걸치고 전사처럼 씩씩하게 걸어 나오는 해녀들. 아, 전장의 장군과도 같은 그들은 그렇게도 되고 싶은 나의 영웅들이다.

 

 

그래서 나는 인턴십을 마친 후에도 멘토와 어촌계장, 해녀 회장, 그리고 얼굴을 익힌 몇몇 해녀 분들에게 ‘꼭 해녀가 되고 싶다’는 간절한 속내를 솔직하게 내비쳤다. 법환좀녀마을해녀학교 교장선생님도 직접 어촌계장에게, ‘우리 학생을 해녀로 꼭 받아달라’고 부탁하고 사정도 하였다.

 

바닷가 대청소를 하는 날, 교장선생님은 일부러 찐빵을 한 아름 사가지고 와서는 세 그룹으로 흩어져 있는 동군, 중군, 서군의 해녀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였다. ‘학교가 배출한 제1회 학생이니 꼭 좀 해녀로 받아줍서’라면서. 그런데 문제는 멘토나 회장만이 아니라 어촌계 해녀들이 모두 만장일치로 신규 해녀의 가입을 동의해 주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만장일치란 어느 조직에서나 무슨 일에나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마침내 총회가 열리는 날 아침, 떨리는 가슴을 여미고서 어촌계 사무실로 나갔다. 해녀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들어오는 입구에 서서 허리를 깊숙이 구푸렸다. 최대한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서, ‘삼춘들이영 같이 물질허게 해줍서 예’라고 간절하게 인사를 하였다.

 

그러나, 총회 결과는 부결이었다. 이유는 ‘해녀수가 늘어나면 개인 몫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보목동은 재적 해녀수가 100명쯤 되는 곳이다. 이중에서 나이가 많거나 몸이 불편해서 성게물질만 하는 분들을 빼면 50명 정도가 활동적인 해녀들이다. 내가 보기에는 거기에 한 명쯤 더 들어간들 무슨 차이가 있으랴 싶은데, 해녀들 입장에선 당신들만 물질해서 벌어먹기에도 이미 바다는 턱없이 메마른 밭이었다.

 

이렇게 나의 해녀 꿈은 1년 만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아니, 엄격히 말하면 한수풀해녀학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8년 동안 품어온 소원이 산산이 부서져버린 셈이다.

 

다행히 공천포와 망장포는 인턴들을 모두 어촌계의 정식 해녀로 받아주었다. 게다가 망장포는 동네 총각도 해남으로 어촌계에 가입시켜 물질을 함께하고 있다. 워낙에 해녀 수가 적은데다가 대부분 연령들이 70∼80세라, 혹여 대가 끊길까 봐 특단의 결정을 내린 거란다.

 

법환좀녀마을해녀학교를 나온 학생들 중에서는 신풍리 3명, 남원 1명, 공천포 2명, 망장포 1명 등 총 7명이 신규 해녀로 등록이 되었다. 절반은 육지에서 귀촌해 들어온 새내기 도민들이다. 그러고 보면 해녀조직이 패쇄적이라는 것은 고정관념이 아닐까 싶다. 여건만 된다면 해남까지도 받아들이는 열린 공동체가 아닌가.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 다시 시작하는 해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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