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대통령 선거일인 지난 3일 오전 제주시 삼도1동 중앙초 체육관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하고 있다. [연합뉴스]](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728/art_17519582241221_cfa4bd.jpg?iqs=0.769597587565935)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지난달 3일 새벽 5시.
초여름의 선선한 공기 속 제주시 삼도2동 제2투표소(제주남초)에 하나둘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21대 대통령선거 본투표가 시작되기 직전의 풍경이었다.
정당 참관인과 투표 사무원,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오전 5시 30분, 개시 준비가 본격화되자 사무원은 참관인을 상대로 투표지와 도장, 봉인 스티커를 하나하나 들어 보이며 설명했다. 봉인작업은 군더더기 없이 진행됐고, 투표소는 긴장감 속에서도 질서를 유지했다.
하지만 평온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전 6시 35분. 한 50대 남성이 조용히 투표소에 들어섰다. 신분증을 내민 그에게 여성 사무원이 선거인명부를 대조하던 순간, 전산 시스템에는 이미 '사전투표 완료'로 명시돼 있었다.
"혹시 사전투표 하지 않으셨어요?"
사무원의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안 했습니다"라고 답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사무원은 옆 동료와 눈짓을 주고받고는 다시 물었다. 그리고 재차 "29일에 혹시 사전투표하지 않으셨어요?"라고 물었다.
남성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신분증을 챙겨 빠르게 투표소를 빠져나갔다.
현장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참관인과 사무원들 사이에선 "이거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중투표 시도 맞죠?"라는 말이 오갔지만 하필 그 시점에 선거관리관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총괄 책임자가 없는 투표소는 10여 분간 정적에 잠긴 채 누구도 선뜻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투표소에서의 관리와 대응을 총괄하는 선거관리관은 선관위의 별도 교육을 이수한 뒤 지정되는 책임자다. 현장 전반에 대한 판단과 권한을 갖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 자리가 비어 있었고, 투표소는 일시적으로 무주공산 상태였다.
현장에서 이 상황을 지켜본 기자는 선거관리관에게 즉각적인 대응 여부를 물었다.
돌아온 답은 "현재 상황을 검토한 뒤 보고하겠다"는 원론적 발언뿐이었다. 중앙선관위나 경찰에 수사 요청을 했는지를 묻자 "절차와 메뉴얼을 확인 중"이라는 답변이 반복됐다.
결국 기자는 언론인으로서 공익적 판단 하에 이 상황을 기사화했다. 보도가 나간 뒤에야 경찰 고발과 선관위의 공식 조치가 뒤따랐다. 그런데 이 사안에 대한 행정기관의 다음 반응은 예상을 뒤엎었다.
![. 본투표일인 지난달 3일 삼도2동 제2투표소 투표함이다. [제이누리 DB]](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728/art_17519583071216_dc2316.jpg?iqs=0.2988551486267481)
이틀 뒤인 6월 5일, 기자에게 제주시선관위 선거담당관의 전화가 걸려왔다. 보도된 시간대가 정확하지 않다는 점을 확인하려는 취지였지만 통화는 무려 14분 넘게 이어졌고, 핵심은 다른 데 있었다.
"기자님이 보도하지 않았다면 좀 더 평온하게 선거가 진행됐을 겁니다."
선관위 담당관은 '혼란 유발'의 책임을 보도에 돌렸다. 기자가 "현장에서는 누구도 조치를 하지 않았고, 공정선거 감시 차원의 보도였다"고 설명하자 선관위는 "우리는 어차피 고발했을 것"이라며 뒤늦은 조치를 정당화했다.
기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반박했다. 참관인과 사무원, 그리고 기자 본인까지 모두 이중투표 시도의 정황을 목격했지만 현장에 있어야 할 관리관은 자리에 없었고, 공식적인 조치는 30분 가까이 지연됐다. 만약 현장에서 기사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사건은 그대로 묻힐 가능성도 있었다.
제주시선관위가 이후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선 시간기록마저 오락가락했다. 실제로 사건은 오전 6시 39분경 마무리됐으나 선관위는 첫 보도자료에 48분으로 표기했고, 이후에는 49분으로 수정해 배포했다. 이 같은 시간 오차는 사건 처리의 정확성과 일관성에도 의문을 낳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관위는 '시간 오차'는 인정하면서도 혼란의 책임은 여전히 기자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또 통화 말미에서 담당관은 다시 이렇게 말했다.
"그날 현장이 워낙 스포트라이트를 받다 보니 혼란스러웠어요. 기자님이 안 계셨더라면 좀 더 부드럽게 지나갔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당시 현장엔 관리관이 없었고, 사무원들은 우왕좌왕했다. 기자뿐만 아니라 다른 참관인도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사안이 언론 보도를 통해 외부에 알려진 뒤에야 경찰 고발과 공식 수사가 시작됐다. 선거가 끝난 후 선관위는 감시자를 향해 책임을 되묻는 전화를 걸었고, 곧바로 '공직선거법 위반 경고장'을 발송했다.
![본지 소속기자가 제주시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받은 '공직선거법' 위반행위에 대한 경고 공문이다. [제이누리 DB]](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728/art_17519583910624_76e3b4.jpg?iqs=0.6767853516287345)
기자는 선거 전과 후 두 차례에 걸쳐 선관위에 참관 자격 여부를 질의했다. 중앙선관위는 물론 제주시선관위도 "직업에 따른 제한은 없다"고 분명히 답변했다. 실제 통화에서도 선거담당관은 "참관인은 직업 제한이 없다"고 확인해줬다. 이에 따라 기자는 정당의 추천을 받아 명단에 포함됐고, 사전 교육과 현장 배치도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뒤 제주시선관위는 돌연 태도를 바꿔 "상시 고용 언론인은 참관 자격이 없다"며 경고장을 발송했다. 공직선거법 제53조 제1항 제8호 및 제161조 제7항을 근거로 든 조치였다.
그러나 해당 조항은 본래 공직선거 후보자 제한 규정이다. 이를 참관 자격에까지 확장 적용하는 것은 법리적 목적과 구조상 큰 차이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 조항이 참관 활동에 직접적으로 적용되기에는 법적 근거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게다가 투표 참관인은 단순한 방청인이 아니라 정당 추천을 통해 공정선거를 감시하는 법적 감시자다. 그 활동은 선거의 투명성을 위한 제도적 장치다. 언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자격을 제한할 명확한 법적 근거는 없다.
![대구지방법원 2022고합317 판결문 중 양형의 이유 내용이다. [출처=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728/art_17519585425479_c7eaed.jpg?iqs=0.1292823317445957)
그런데도 제주시선관위는 뒤늦은 경고 조치의 근거로 대구지방법원 2022고합317 판결을 언급하며 "언론인이 투표 참관인이 될 수 없다는 판례가 이미 나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당 사건은 실상과 전혀 달랐다.
당시 사건의 핵심은 선거사무장이 언론인 겸 인터넷신문 발행인을 참관인으로 등록시키는 과정에서 부정이 있었다는 내용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참관 활동 자체가 처벌 대상은 아니었고, 해당 언론인이 상시 고용 상태였는지도 명확히 판단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투표 참관인 자격 위반으로 인한 공직선거법 위반죄에 대해 '양형 기준이 없다'고 법원이 직접 언급한 점은 해당 조항에 대한 법적 불명확성을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그럼에도 제주시선관위는 "해당 판결을 정확히 검토하지 않았다"면서도 "언론인도 처벌받은 사례가 있다"고 주장해 경고 조치를 정당화했다.
이 같은 대응은 사실상 법적 해석보다 선례 오독에 가까운 판단이다.
중앙선관위도 "해당 조항이 적용 대상이 될 수는 있다"면서도 "최종 판단은 각 관할 선관위가 해야 한다"는 유보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법 해석과 행정 판단 모두 일관성을 잃은 셈이다.
참관 활동을 통해 위법 정황을 지적한 언론인에게는 경고장이 돌아왔다. 반면 당시 투표소의 부실한 대응과 관리관의 부재에 대해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참관 제도는 선거의 투명성을 담보하는 공적 장치다. 감시자가 없다면 공정성도 없다. 그런데 그 감시자에게 자격 논란을 제기하고, 감시의 결과를 보도한 데 대해 책임을 묻는다면 그 제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번 사안은 단순히 언론인의 자격 문제를 넘어서 있다. 이는 제도가 지켜야 할 철학과 기준의 문제다. 공정한 선거는 절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감시의 눈, 질문의 권리, 기록의 자유가 함께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런데 지금, 그 기본이 흔들리고 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