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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해녀, 그 영원한 유산을 향한 몸부림 ... 인류무형문화유산, '제주 해녀문화'

 

이 점에서 2017년 1월 1일 새벽 0시20분(한국시각)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린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무형유산위) 회의의 심의에서 ‘제주 해녀문화’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공식 등재된 점은 제주해녀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낭보이지 않을 수 없다.

 

이로써 ‘제주 해녀문화’는 한국의 19번째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되었다. 문화재청에 의하면 무형유산위가 ‘제주 해녀문화’의 등재를 확정하게 된 기본토대는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하고, 자연친화적으로 지속가능한 환경을 유지해왔으며, 관련 지식과 기술이 공동체를 통해 전승된다’는 점에 있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희소가치가 있는 제주 해녀들의 고유한 공동체 문화를 보존하고 전승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제주도에서는 2011년부터 제주해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해 왔다. 지금까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현황을 보면 2015년말 기준, 전 세계적으로 119개국 342건이 등재돼 있다. 우리나라는 종묘제례, 강릉단오제, 처용무, 제주도의 칠머리당 영등굿 등 18건이 등재돼 있다.

 

여기에서 검토되는 제주해녀문화는 해녀의 물질 기술을 비롯해, 바다 생태환경에 적응하며 축적된 오랜 경험과 지식, 다양한 해녀공동체 조직과 의례 등이 포함 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한국 해녀의 존재는 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의 고려사편에 보면, '탐라 구당사 윤응균이 큰 진주 2개를 바쳤는데, 별처럼 빛났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이것을 '야명주'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써 학자들은 제주 사람들이 바다에서 잠수를 해서 진주를 캔 것으로 추론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제주에서 진상되는 전복관련 기록이 세종, 성종, 연산, 중종 등으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세조때 제주목사로 부임한 기건이 '해녀들이 물질을 해서 전복을 바치는 걸 너무 괴롭게 여기니 3년 동안 전복을 먹지 않았다'는 대목이다.

 

또한 영조 때 임금이 동부승지 한억증을 입시케 하고 제주에서 전복을 캐는 폐단에 대해 하문하고 전교하기를 "옛사람이 말하기를 소반의 밥이 낱알 하나하나가 신고(辛苦)의 결집인 줄 누가 알랴? 하였는데, 소반의 전복도 또한 그러하다"고 하였다는 기록이 눈에 띈다. 이 또한 제주 사람들이 바다에서 전복 캐는 일을 매우 고통스럽게 여겼다는 기존 기록을 뒷받침하는 구절이다.

 

한편, 제주해녀는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뉴욕타임스(NYT)가 2005년 2월 15일 인터넷판에서 'South Korea's 'Sea Women' Trap Prey and Turn Tables(한국의 해녀들은 해산물을 잡아 삶을 향상시켜 왔다)'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고 있다.

 

요점은 한 때 집안을 이끌었던 '해녀'가 관광산업의 발전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내용인 즉, ‘제주 해녀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용감한 잠수부들이다. 이들은 8~10살 처음 바다에서 해초를 캐기 시작하고, 한창 때에는 40피트(12m) 이상의 물속에서 2분 이상 숨을 참으며 해산물을 채취한다.

 

1970년대 후반까지 제주 해녀들은 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해 일본으로 수출, 제주시에 집을 짓고 자식들을 대학에 보낼 정도였다. 하지만, 17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제주해녀가 이제는 종말을 바라보고 있다. 왜냐하면 2003년 현재 제주도에 등록된 5650명의 해녀 중 85%가 50세 이상이며, 30대 이하는 단지 2%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관광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남성들에게 보다 많은 일자리를 주고 있고, 여성들은 식당이나 민박 등을 경영하게 됨으로써 해녀의 수가 더욱 줄어들고 있다. 우도에서 물질을 하는 75세 할머니 해녀는 "우리는 끝"이라며 "해녀일은 너무 힘들기 때문에 딸에게는 해녀를 하지 말라고 한다"며, 해녀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그리고 약 10년이 지난 2014년 3월 30일, NYT는 '사라지는 제주 해녀들'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는 제주 해녀(Sea women)를 ‘한국 최초의 워킹 맘(working mom: 일하는 엄마)’으로 소개하면서 한국 여성의 독립성과 강인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직업으로 해석하고 있다.

 

'제주해녀들은 하루에 100번 이상 바다 밑으로 들어가서 맨손으로 해산물들을 채취했다. 호흡 장비도 없이 물안경만 쓰고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겨울 바다에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그러나 경제적 기여도에 비해 사회적 대우는 매우 낮았다.

 

18세기 고문서에는 마른전복을 세금으로 내지 못했던 해녀들이 관리들로부터 매를 맞았고, 심지어는 전복을 캐기 위해 임신한 상태에서 바다에 들어가야 했던 일도 있었다. 최근 들어서는 해녀의 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

 

사실, 1960년대 초반 제주 여성의 21%는 전문 잠수능력을 갖춘 해녀였고, 그들이 제주지역 어업 수익의 60%를 생산해냈다. 당시 2만6000명에 달했던 해녀의 수가, 현재 4500명 수준으로 감소했다.이제 제주도의 젊은 여성들은 그들의 어머니와 할머니처럼 차가운 바다에 뛰어드는 대신 리조트나 렌터카 센터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니 현재 남아있는 해녀들의 84%가 60대 이상 노인층이다. 제주도 수산담당 공무원에 의하면, 새로운 인원이 충원되지 않는 이상 이대로 가다가는 20년 안에 해녀가 사라질 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세계의 대표적인 신문으로부터 주목을 받으며 거듭하여 제기된 위기를 넘어서 제주해녀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 무엇이 어떻게 좋아질까? 우리는 왜 제주해녀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를 갈망하면서 그토록 온 도민이 하나가 되어서 여기까지 달려왔을까?

 

지난 5년간의 대장정을 진행해 온 제주도 관계자에 의하면, 무엇보다도 예산 확보 등의 명분이 대폭 확충됨으로써 해녀지원사업이 한층 더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란다. 해녀의 날을 지정해서 자긍심도 높이고, 도내 어촌계에 유네스코 동판을 설치하여 해녀문화 전승·보존을 더욱 촉진하면서 말이다. 한수풀과 법환마을 등 2개 해녀학교를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하게 되리라.

 

또한 인류무형문화유산 평가기구에 의하면 제주 지역에 한정된 지식 기반의 무형유산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며, 자연환경의 보전 및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강화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서 무형유산으로서 여성의 일이 갖는 중요성에 대한 세계적인 인식을 제고하고, 해녀 공동체 및 유사한 관습을 보유한 여타 다른 공동체문화 간에 대화를 촉진하며, 인간의 창의성에 대한 인식을 장려하게 될 것이다.

 

특히 해녀는 풍부한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므로 제주해녀문화는 시와 소설·드라마·영화·음악·공연 등 다양한 장르에서 인기 있는 소재가 되어 장차 그 잠재력을 마음껏 펼쳐내지 않을까.

 

사실 제주 해녀문화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은 이유는 지역 공동체가 지닌 문화적 다양성의 본질적 측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안전과 풍어를 위한 의식, 선배가 후배에게 전해주는 잠수기술과 책임감, 공동작업을 통해 거둔 수익으로 사회적 응집력을 높이는 사회적 책임활동 등이 인류유산으로 남길만한 가치가 되는 것이다.

 

또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중 여성이 일궈낸 문화로는 세계 첫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서 그 의미가 더욱 특별해진다. 거듭 강조하기는 제주해녀문화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코자 하는 목적은 ‘제주여성으로서의 대표성을 지닌 해녀들의 문화를 보존하고 존속시킴으로써 제주인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제주도의 문화자원으로 활용할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생태환경과 공존하기 위한 노력을 한층 더 체계적으로 기울이기 위함이다.

 

이 점은 2014년 5월 제주에서 개최된 제28차 전문직세계여성연맹(BPW: Business & Professional Women) 세계대회에서도 이미 수차례나 언급되어진 사실이다. 당시 BPW 세계연맹 회장이었던 프레다(Freda Mirikliss)는 개회사에서 제주해녀는 ‘현대여성의 롤 모델이며, 특별한 기술을 가진 전문직으로서 자생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지역경제를 이끌어 왔다’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 회상해 보아도 여전히 가슴 뜨거운 일은, 2008년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BPW 세계대회에서 2014년 대회를 한국으로 유치하기 위한 프레젠테이션 현장이다.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함께 해녀의 독특한 직업 세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자 세계의 전문직 여성들이 일제히 환호하며 박수를 쳐대던 감동, 그 감격스런 현장 말이다.

 

‘호이 호오잇’ 하며 숨비질 해 들어가는 해녀의 물질풍경이 그들에게 강력하고 이국적인 호기심과 호소력을 발산하면서 숨을 멎게 하던 그 순간을. 바로 그 광경이 끝난 후 BPW 한국연맹은 멕시코와 핀란드에게 연속적으로 패배해 온 불운을 딛고서 도전자인 이집트를 94 대 28로 압승하는 쾌거를 이뤘다. 2014년 세계대회가 제주도로 유치되던 그 순간만은, 제주해녀가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제치고 세계인의 불가사이로 비쳐지지 않았을까?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 다시 시작하는 해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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