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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한라산 방목 ... 여름엔 공동목장에서 방목, 겨울엔 마을에서 사육

 

사람이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이 나거든 제주도로 보내라던 옛 조선 속어(俗語)에 잇는 바와 가티 제주도는 실로 조선 종량(種良) 마산지(馬産地)이다. 실지로 가보니 소(牛)도 다른데 못지 안케 그 두수(頭數) 사만구백 여로 전 조선 축우(畜牛)의 삼십퍼센트 강(强)을 점하엿스니 전국에 제 일위며 마필 두수는 이만 이천 여로 전 조선 총수(摠數)의 사십퍼센트 강(强)이니 전국 제 이위다.

 

본도 목마 사우(飼牛)의 유래를 살펴보면 전설에서 본바와 가티 그 유래가 오랜 것은 사실일 것이다. 사승(史乘)에 의하면 고려 충렬왕 삼년 정축(丁丑)에 처음 목축을 시작하엿다 하엿고 원(元)나라 달로화적(達魯花赤)이 우마 수십두를 다리고 조천(朝天)에 상륙하야 마우(馬牛) 목장 이십 여개를 설정하고 감목관(監牧官)을 두어 기하(基下)에 우감(牛監) 마감(馬監)의 별관(別官)으로 하야금 직접 목자(牧子)를 지도케 하야 관용(官用) 우마를 사육식혀 량우준마(良牛駿馬)를 다수 산출해 오다가 최근 육칠십년 전에 관유(官有)우마는 민간에 배부하게 되어 현재에 일르럿다 한다.

 

일반적 방목식(放牧式)은 사사(舍飼) 계절적 방목, 종년방목(終年放牧) 삼종(三種)이 유(有)한대 제주도는 대부분이 종년방목(終年放牧)이나 동계(冬季) 북풍(北風)과 적설(積雪)이 비교적 심(甚)한 북사면(北斜面)에서는 극한기(極寒期)만 사사(舍飼)를 하고 또 일부 승마(乘馬) 견용(䭾用)에 사용하는 것은 촌락 부근에 두고 사사(舍飼) 방목을 겸(兼)하니 목축의 삼양식(三樣式)을 혼용(混用)하는 모양이다(조선일보, 1939. 09. 07).

 

제주지역에서 가장 대표적인 방목은 공동목장에서 이루어 졌던 계절적 방목으로 지리학적으로 이목(移牧)에 해당된다. 즉, 겨울철에는 저지(해안마을)에서 목축을 하다가 여름이 되면 중산간지로 이동해 가축을 사육하는 형태이다.

 

제주도는 해안부터 한라산 정상까지 수직적 지형환경이기 때문에 겨울철에 온난한 해안 취락지역에서 방목한 후 새로운 풀이 돋아나는 양력 4월부터는 다시 중산간지역 공동목장으로 우마를 이동시켜 방목을 하는 것이다.

 

일정 계절(여름~가을) 동안 공동목장에서 방목한 후 추석이 지나면 겨울을 지낼 ‘촐’(꼴)을 베어 건초로 만든 다음, 음력 9월경 공동목장의 우마들을 해안 저지대의 축사로 몰고 와 키운다.

 

공동목장에서 이루어진 이목은 일명 ‘번치기 목축’이라고 한다. 번치기 목축은 마을 사람들끼리 일정한 차례로 순번을 정하여 들과 산이나 공동목장에서 방목시킨 우마를 관리하는 형태라 할 수 있다.

 

한편 공동목장의 방목과 관련하여 ‘방둔’, ‘간목’, ‘캐파장’, ‘번곡’ 이라는 용어들이 있다. 방둔은 우마를 공동목장으로 올려 여름 동안 방목하는 것이며 겨울이 되어 우마가 공동목장의 야산에서 생활하기 어렵게 되면 마을로 이끌고 와서 사육하는 것을 ‘간목’이라 한다.

 

우마의 수가 3~4마리인 경우에는 축사를 지어 간목하였지만 그 수가 많을 때는 인근 자기 밭에 가둔 다음 ‘촐(건초)’을 주며 사육했다. 공동목장에 방목할때는 별도로 목감(牧監)을 두고 우마를 관리하게 하였고, 목감(캐파장)에게는 우마의 두수에 따라 보리쌀로 그 품삯을 지급하였는데 이를 ‘번곡’이라 했다.

 

목축지(牧畜地) 즉 목장으로 말하면 산간지대가 대부분으로 현재 한라산을 중심으로 이백미-삼백미(二百米-三百米)에서 경사 변환선(變換線) 지점인 육백미(六百米) 부근에 지(至)하는 산복대상(山腹臺狀) 토지 폭이 좁은 데는 사모(四粍), 광부 팔모(廣部 八粍)-십모(十粍)의 대상(帶狀)이 목축 구역이다(조선일보 1937. 09. 05).

 

제주지역에서는 중산간 지대 방목이 널리 행해져 왔다. 주로 해발 200~300 미터에서 600 미터에 이르는 지역에서 방목하며, 농번기에는 여러 가족이 연합하여 우마를 만들어 가족 교대로 책임을 맡는다.

 

이럴 경우 종일 감시자를 둔다. 그러다 농번기가 지나면 감시의 책임이 각자의 가족에게로 돌아가지만 매일 항상 옆에 붙어서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망보러 가는 정도로 우마를 자유롭게 방목했다.

 

겨울이 되면 풀을 따라 한라 산정 부근까지 올라갔던 우마들은 눈 때문에 움직이기 곤란하여 하산할 수 없으므로 마소들을 모아 일정한 휴한지에 몰아넣었다.

 

산간지대에서의 방목은 때때로 살펴보는 정도로 완전히 우마의 자유에 맡겨둔다. 한적한 산중, 특히 상잣성 위에서 방목하는 우마는 점점 산위로 올라가 겨울에 큰 눈을 만나 죽는 경우도 있었지만, 늘 방목하던 훈련된 우마들은 산정 가까이 올라가지 않았으며 가을이 되면 스스로 내려와 얼어 죽지 않았다.

 

해안 농경지 휴한지(休閑地)까지도 이들 우마의 활천지(活天地)이다. 관목시대(官牧時代)에 설정된 목장은 육만정보(町步)가 되엿다는데 이 구별은 상록삼림지대(上綠森林地帶)와의 경계에는 상장성(上場城)이라 칭하야 부근에 산재한 화산역(火山礫)을 주서 모아 석담(石垣)을 성(城)처럼 둘러싸고 하부 중간지대(中間地帶)와의 교계(交界)에도 하장성(下場城)이라 하야 역시 돌담을 둘너싸고 방목 우마의 타 지역의 침입을 방지하던 것은 지금도 상존해 잇다.

 

최근에 와서는 이 석담(石垣)을 놉히도 두어 대규모적으로 개축(改築)하엿스며 각 등산로 출입구에는 반다시 큰 재목으로 격자형(格子型)으로 짠 문을 만들어 큰 빗장을 거러 두어 통래(通來)하는 사람은 자유로 출입하게 되엿스되 우마는 마음대로 못나가게 되어 잇다 동리(洞里) 근처 휴한지 방목구(放牧區)에서도 이 우마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야 석담은 물론 골목 어구(於口)마다 나무빗장을 맨드러 둔 것은 도처에 볼 수 잇다(조선일보 1937. 09. 05).

 

테우리란 목축에 종사하는 목자(牧者)를 의미하는 제주어이다. 이들 테우리들은 관리하는 가축의 종류에 따라 소테우리, 말테우리라 부른다. 테우리들은 자신의 우마를 키우며, 일정한 보수를 받고 다른 사람들의 우마들을 키우거나 마을 공동목장에 고용되어 우마를 키우기도 했다.

 

테우리들은 대체로 음력 3월 청명(淸明)에 우마를 공동목장에 올린 다음 음력 9월 상강(霜降)이후 하늬바람이 불어 공동목장에 풀이 마를 때까지 우마를 관리한다. 인근의 해안마을이나 중산간 마을에 거주하면서 공동목장으로 올라가 우마의 방목상태를 관찰하거나 공동목장 내에 만들어진 ‘테우리 막’에 일시적으로 거주하기도 했다.

 

제주도 목축에는 어데까지 던지 목동(牧童)이 수종(隨從)치 안는 것이 특색이다. 우마 한 가지 한 장소에 혼입방목(混入放牧)한다. 문자 그대로 막 나아 먹이는 방목이다. 자타(自他) 우마의 소속을 명료(明瞭)히 하기 위해서는 소, 말귀에다 표식(標識)을 해두거나 몸에다 낙인(烙印)을 처 둔다. 구(駒), 독(犢)는 어미 우마의 수종(隨從)을 보아 그 소속을 구별한다(조선일보, 1939. 09. 07).

 

낙인은 자형(字型)이나 도형(圖形)이 새겨진 쇠붙이를 달구어 가축에 찍는 일종의 쇠도장을 의미한다. 제주지역에서 낙인은 조선시대 십소장(十所場) 운영을 위한 마정(馬政)과 관련된 것으로 말의 생산, 사육, 유통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관행이다.

 

낙인의 자형과 도형 표시는 국마(國馬)와 사마(私馬)로 구별하였고 국마를 사육하는 관설(국영)목장에는 천자문의 순서인 천(天), 지(地), 현(玄), 황(黃) 등의 자형을 낙인으로 이용하였다.

 

낙인을 찍는 위치는 대부분 대퇴부다. 간혹 귀에 하는 경우도 있다. 말에는 대체로 귀를 자르는 방식으로 구별하지만 때로는 표를 차용하기도 한다. 새로 태어난 새끼를 자기 것으로 확인하는 일은 엉덩이에 낙인을 찍거나 귀표를 해놓는 방법을 택했다.

 

낙인은 무쇠를 가지고 자기의 성이나 정해진 약자를 만든 것인데 이것을 불에 달구어서 짐승의 네발을 묶고 넘어뜨린 다음 엉덩이를 지진다. 니켈 귀표를 하는 것은 나중에 이루어진 방법으로 귀를 ‘V'자나 'W'자로 잘라 내었으며 보통 시월 첫 자일(子日)에 제를 지낸 다음 시행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 서귀포 출생. 제주대 사범대를 나왔으나 교단에 서지 않고 동국대에서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에서 사회복지학 박사(2011) 학위를 받았다. 제주도 경제특보에 이어 지금은 지역산업육성 및 기업지원 전담기관인 제주테크노파크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겸임교수로 대학, 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국제자유도시의 경제학』(2004),『사회적 자본과 복지거버넌스』 (2013) 등이 있으며『문화콘텐츠기술과 제주관광산업의 융복합화연구』(2010),『제주형 첨단제조업 발굴 및 산업별 육성전략연구』(2013),『제주자원기반 융복합산업화 기획연구』(2011) 등 보고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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