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계단을 오르내릴 때 얼마나 조심하는가. 출퇴근 시간, 늦었다면서 지하철 승강장 계단을 급히 뛰어 내려가지는 않는가. 혹은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고 앞은 보지도 않은 채 계단을 갈지(之)자로 종횡무진하진 않는가.
평상시에도 이런 행동은 썩 추천할 만하지 않지만 그 장소가 계단이라면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자칫하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어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계단과 형사처벌의 상관관계를 짚어봤다. 변호사닷컴의 생활법률, 이재현 IBS법률사무소 변호사가 답을 줬다.
한때 계단은 참 쓸모가 없었다. 사람들이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좀 다르다. 많이 걸을수록 건강해진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엘리베이터 사용을 줄이고 걷는 이들이 늘었다. 실제로 계단은 공짜로 무산소 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최적의 운동기구다.
문제는 계단이 그리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소소한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바쁜 출퇴근 시간 시간에 쫓겨 빠르게 계단을 오르내리다 사람들, 고개를 숙이고 '갈지(之)’자로 움직이는 스마트폰족들과 부딪히는 건 흔한 일이다. 앞서 걸어가는 사람의 신발 뒤축을 밟거나 들고 있던 짐이나 우산 등으로 상대방의 손이나 발을 치는 경우도 숱하다.
계단에서 자신의 잘못으로 자신만 다친다면 문제될 건 없다. 하지만 내 부주의로 다른 사람이 다쳤다면 문제가 커진다. 물론 사과나 인사를 통해 상황이 종료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중한 사건으로 커지는 경우도 있다. 사례 하나를 보자.
퇴근길에 무리하게 지하철 승강장 계단을 뛰어 내려가던 A씨. 막 도착하려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였는데, 순간 균형을 잃으면서 앞서 걸어가던 B씨를 실수로 밀어넘어뜨렸다. 밀린 B씨는 A씨와 함께 계단에서 굴렀고, B씨는 손목이 골절됐다.
A씨는 B씨에게 곧바로 사과했다. 하지만 부상이 컸기 때문에 B씨는 화를 가라앉히지 못했고, 끝내 A씨를 신고했다. 지하철 승강장 내에서 일어난 일이라 주변엔 목격자도 많았고, 계단을 비춘 CCTV도 있었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잘잘못은 어떻게 가려야 할까.
일단 법적 책임은 A씨에게 있다. 계단을 오르내릴 땐 주변에 장애물이 없는지 확인해야 하는 ‘주의의무’가 요구된다. B씨에게도 이런 의무가 있지만 뒤에서 오는 이를 확인할 의무까지는 없다. 따라서 A씨가 B씨의 손해를 전적으로 배상해야 한다. 실제로 A씨는 민사상 책임을 졌다. 보험사를 통해 B씨에게 치료비와 위자료, 일실수입(휴업손해) 등을 지급했다.
문제는 형사상 처벌이었다. A씨는 과실치상죄(과실에 의해 상대의 신체에 손해를 입힌 죄ㆍ형법 제267조)로 벌금형의 약식명령처분을 받았다. B씨와 합의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과실치상죄의 경우, 반의사불벌죄이기 때문에 피해당사자가 가해자를 처벌하겠다는 의사표시를 철회하면 경찰 수사도 종결돼 불기소처분(검사가 공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된다.
의도치 않은 사고였기 때문에 A씨로선 이 상황이 억울할 수 있지만 느닷없이 A씨에게 떠밀려 손목이 부러진 B씨의 사정도 이해가 된다. 다만, 우리가 여기서 조심해야 할 건 고의성이 없더라도 상해의 법적책임은 가볍지 않다는 점이다.
지하철 승강장 에스컬레이터에서 한쪽으로 비켜서 있는 이들 옆으로 걸어가면서 어깨나 가방으로 툭툭 치고도 그냥 가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 역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는 행동이다. 기왕이면 좁디좁은 에스컬레이터에선 걸음을 멈추는 게 좋지 않을까. [본사 제휴 The Scoop=이재현 IBS법률사무소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