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가히 ‘부채공화국’으로 불릴 만하다. 가계빚과 기업부채 규모가 각각 국내총생산(GDP)을 웃돌며 세계 1~3위권이다. 부채 증가 속도도 다른 나라보다 훨씬 빠르다. 가계, 기업 가릴 것 없이 부채 총량과 증가 속도 모두 위험하다. 내수와 수출이 동반 부진하며 경제성장률은 1%대를 맴도는데 물가가 잡히지도 않고 고금리가 지속되니 가계도, 개인사업자인 자영업도, 기업들도 불어나는 부채와 이자 부담에 짓눌려 신음한다.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여러 금융통계로 입증된다. 대출을 3건 이상 끌어 쓴 자영업 다중채무자가 177만8000명으로 역대 최대다. 이들의 대출 잔액 743조9000억원도 최대인 데다 연체가 급증하고 있다. 2분기 연체액은 13조2000억원, 1년 전의 2.5배다. 연체율도 1년 새 0.75%에서 1.78%로 2.4배 뛰었다. 가계도 빚과 연체의 늪에 빠졌다. 꺾이지 않는 대출 수요로 빚은 계속 불어난다. 3분기 주택담보대출이 17조3000억원 증가했다. 정부의 대출 규제 관련 엇박자 정책과 집값 떠받치기가 빚내 집을 사자는 ‘영끌’ 심리를 자극했다. 가계대출에 카드사용액을 합친 9월말 가계신용 1875조6000억원도 사상 최대다. 게다가 은행
정부가 ‘주 69시간 노동’ 논란을 빚은 근로시간 개편 원안을 포기하고 우회로를 선택했다. 현행 주 52시간제의 틀은 유지하되 원하는 일부 업종과 직종에 한해서 연장근로 단위를 확대하는 방안이다. 대상 업종·직종, 주당 상한 근로시간은 실태조사와 사회적 대화를 통해 결정하자는 것이다. 이로써 주간 단위로 관리하는 근로시간을 월이나 반기, 연간 관리로 확대하려던 정부 정책은 무산됐다. 정부가 늦게나마 잘못된 정책 방향을 인정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는 개편안을 만들기로 한 것은 다행이다. 6월부터 사회적 대화를 거부해온 한국노총이 노사정 대화 참여를 선언한 것도 긍정적이다. 정부가 지난 3월 내놓은 근로제도 개편은 주 52시간제(기본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에서는 일부 업종에서 일감을 기한 내 마무리할 수 없는 애로를 해소하자는 뜻에서 추진됐다. 1주 40시간 범위 내에서 특정 주 52시간, 특정 일 12시간을 초과할 수 없는 것을 월·분기·반기·연 등으로 유연화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주 최대 근로시간이 69시간까지 늘어날 수 있다며 반발이 거셌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물론 MZ노조도 반대했다. 다수 여론조사에서 ‘불규칙한 장시간 노동으로
총선거가 몇달 남지 않았음을 예고하듯 정치권이 바빠졌다. 10월 말부터 정부와 여당 국민의힘은 잇따라 굵직한 정책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중에는 국가 미래와 지속 가능성 확보에 대한 성찰 없이 급조하거나 민감한 핵심 이슈를 빠뜨린 맹탕정책이 존재한다. 원칙과 일관성 없이 우왕좌왕하거나 선거에서의 표를 노린 미끼 정책도 있다. 시장에 악영향을 미치고 국가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는 시대역행적 대책도 끼어들었다. 일요일인 5일 오후 임시 금융위원회가 열려 증권시장 공매도 금지 조치안을 의결했다. 공매도 금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유럽 재정위기, 2020년 코로나19 사태 등 세차례 시행됐다. 이번에는 그런 위기 상황이 아님에도 금지해 총선용 선심 카드라는 비판을 받는다. 금융위는 “공매도는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강조해왔다. 그런데 여당이 “김포 다음은 공매도”라며 압박하자 백기를 든 모양새다. 개인투자자 표를 얻어 보려는 정략적 계산이 시장 원칙과 국제적 추세에 어긋나는 정책을 낳았고, 증시는 온탕냉탕을 오가는 혼란을 빚었다. 금융당국과 검찰은 지난해 7월 개인에게 불리한 제도를 개선하고 불법 공매도에 대한 적발과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수도권 쏠림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 고질병이다. 경제는 물론 교육·의료를 비롯한 인프라가 서울 등 수도권에 집중되고, 이에 따라 부와 성장의 양극화가 심화하는 악순환이 고착화하고 있다. 저출산 문제까지 겹쳐 전국 시군구 절반 이상이 소멸위험지역으로 거론되면서 국토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이 화두로 등장한 지 오래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해 윤석열 정부가 의욕적으로 출범한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는 1일 ‘제1차 지방시대 종합계획(2023~2027년)’을 발표했다. 2004년 이후 따로 수립해온 국가균형발전 5개년 계획과 지방분권 5개년 종합실행계획을 포괄했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을 4대 ‘초광역권(충청권, 광주·전남권, 대구·경북권, 부산·울산·경남권)’과 3대 ‘특별자치권(강원권·전북권·제주권)’으로 묶은 첫 초광역권 발전계획이다. 이는 지자체들이 자율적으로 마련한 것으로 지역 간 협력을 바탕으로 권역마다 특화된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교통과 사회기반시설을 확충해 접근성을 높이는 사업을 담았다. 지역 안에서 고용을 창출해 서울로 가지 않고도 경제활동이 가능한 정주 여건을 마련하기로 했다. 지방시대위는 “지방정부, 중앙정부가 ‘원팀’으로 지방시대를 구현할 것으로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올해 1.9%로 2%를 밑돌고, 내년에는 1.7%로 더 내려갈 것이라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추정했다. 잠재성장률은 물가상승 등 부작용 없이 한 나라가 노동·자본을 총동원해 이룰 수 있는 최대 성장률로 경제의 기초체력을 보여준다. OECD가 한국의 성장 잠재력을 2% 미만으로 추산한 것은 처음이다. 저출산·고령화·혁신 부족 등 구조적 문제들이 겹쳐 노동·자본·자원의 생산요소를 최대한 가동해도 인플레이션을 비롯한 경기 과열을 감수하지 않는 한 경제성장률이 1%대 중후반을 넘기 어렵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10년 사이 반토막 났다. 더구나 내년에는 경제규모가 한국의 13배에 이르는 미국의 잠재성장률(1.9%)보다도 낮아지리란 예측이다. 주요 7개국(G7) 중 캐나다·이탈리아·영국 등 성장 잠재력이 한국보다 낮게 평가되던 나라의 잠재성장률이 반등하는 것과 거꾸로다. 이러다가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G7 국가에도 역전당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2021∼2022년 잠재성장률을 ‘2% 내외’로 본다. 한은이 추정한 잠재성장률은 2001∼2005년 5.0∼5.2%, 2006∼2010년 4.1∼4.2%, 2011∼2015년 3.1∼3.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19일 기준금리를 현 수준(연 3.5%)으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2·4·5·7·8월에 이어 여섯차례 연속 동결이다. 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한은의 딜레마가 1월 이후 9개월째 이어졌다. 그만큼 한국 경제가 ‘긴축이냐 완화냐’ 어느 한 방향의 통화정책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복합위기라는 방증이다. 급증하는 가계부채와 원·달러 환율 상승, 사상 최대인 2%포인트로 벌어진 미국과의 금리 격차, 다시 오르는 물가 등은 금리인상 압박 요인이다. 그러나 경기 회복이 더딘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터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달으며 불확실성이 커졌다. 경제의 성장 동력인 수출은 다소 회복하고 있지만, 내수는 고물가에 파묻혀 기진맥진이다. 정부나 한은이 기대해온 ‘상저하고’ 경기회복이 사실상 물 건너간 상황에서 경기위축과 이자부담 가중을 감수하면서까지 금리 인상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경기가 나쁘면 물가라도 안정돼야 할 텐데 인플레이션이 재연되는 조짐이다. 지난 7월 2.3%로 연중 저점을 찍으며 안정되는가 싶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월 3.4%, 9월에는 3.7%로 올라섰다. 이는 경기가 홀로 호황
1997년 말 닥친 외환위기를 흔히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로 부르듯 IMF는 한국인에게 엄한 시어머니 국제기구로 통한다. 그도 그럴 것이 외화곳간이 바닥나 국가가 부도날 처지에서 IMF로부터 긴급구제금융을 수혈받은 한국으로선 IMF의 시장개방과 구조조정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 깐깐하던 IMF가 최근 한국 경제를 박하게 평가하고 있어 찜찜하다. IMF는 10일 발표한 세계 경제전망에서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1.4%로 유지하는 한편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2.4%에서 2.2%로 낮췄다. 우리 경제가 올해 1%대에 이어 내년에도 2%대 초반의 저성장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다. 문제는 내년 성장률 2.2%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IMF는 지난해 10월만 해도 한국의 내년 성장률을 2.7%로 전망했다. 하지만 올해 1월(2.6%)→4월(2.4%)→7월(2.4%)에 이어 이번에 2.2%로 끌어내렸다. 올해 성장률도 당초 지난해 4월 2.9%로 전망됐던 것이 계속 하향 조정되면서 1.4%로 반토막 났다. 더욱이 이번 전망에는 최근 발발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 등 중동 위기 요인은 반영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사
추석 연휴 푹 쉬고 지난 4일 개장한 한국 금융시장이 미국발 날벼락을 맞았다. 주가는 급락하고 원·달러 환율이 치솟았다.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들이 대량 매도에 나서며 코스피지수 2400선이 위협받았다. 코스닥지수 하락폭은 더 컸다. 두 시장의 시가총액이 하루 사이 62조7923억원 증발했다. 4일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4.2원 급등(원화가치 하락)하며 연고점을 경신했다. 이날 종가 환율 1363.5원은 지난해 11월 10일 이후 약 11개월 만에 최고치다. 가히 ‘검은 수요일’로 불릴 만했다. 한국 금융시장이 요동친 데는 치솟는 미국 국채 금리 영향이 크다. 세계 시장금리의 기준(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미 국채 금리가 16년 만에 최고 수준(3일 연 4.8%)으로 급등하며 글로벌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고금리 기조가 더 높게 더 오래(higher for longer)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한 결과다. 연준은 지난 9월 금리를 동결하면서 연내 추가 금리인상을 강력 시사했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연내 끝날 것이란 기대는 사라지고, 고금리 상황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우세해졌다. 미국 금리가 7%
1420억원.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등 큰 선거를 두차례 치른 2022년, 정당들에 지급한 국고보조금 규모다. 사상 최대였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양대 정당이 각각 600억원 넘는 국고보조금을 받았다. 정의당·국민의당·기본소득당·시대전환도 수십억원에서 수천만원의 보조금을 받았다. 국회의원이 없는 민생당에도 18억원을 지급했다. 당에 대한 국고보조금은 국가가 정당을 보호 육성하기 위해 지급하는 것이다(정치자금법 제3조 6호). 정당 보조금은 1980년 제정한 제5공화국 헌법에 처음 명문화한 이후 정당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가 됐다. 보조금에는 선거에 관계없이 매해 분기별로 지급하는 경상보조금과 선거가 있을 때 득표율 등에 따라 지급하는 선거보조금이 있다. 국민 세금으로 조성하는 막대한 국고보조금을 받는 여야 정당들은 과연 국가가 보호 육성할 만한 가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여야 거대 정당들은 각자 가고 싶은 데로만 달리면서 국회를 파행시키고 정국을 경색시키면서 국민에게 ‘정치 스트레스’를 안기고 있다. 이를 상징하는 큰 일이 9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잇따라 벌어졌다.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
치솟은 물가 때문에 가계살림이 버거운데, 나라살림도 못지않게 심각하다. 올해 세금이 정부가 예산을 짜며 예측한 것보다 큰 폭으로 덜 걷히기 때문이다. 나라살림 밑천인 국민 세금이 부족하면 국채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빚을 내거나 외환시장의 수급 안정을 위해 마련한 외국환평형기금 등 다른 데서 돌려써야 한다. 올 1~7월 국세 수입은 217조6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3조4000억원 적다. 예산을 편성할 때 설정한 국세 수입 목표(400조5000억원) 대비 얼마나 걷혔는지 보여주는 세수 진도율은 54.3%. 이 또한 지난해보다 11. 6%포인트 낮다. 이런 추세라면 연말까지 걷히는 세금은 당초 세수 추계보다 60조원 정도 적은 340조원대에 그칠 전망이다. 세수 오차율이 15%나 된다. 2021년 17.8%(61조3000억원), 2022년 13.3%(52조5000억원)에 이은 두자릿수 오차다. 2000년 이후 세수 오차율이 평균 4%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올해도 세수 전망은 완전히 빗나갔다. 3년 연속 두자릿수 오차율 기록은 1988~1990년 이후 33년 만이다. 올해 세수 오차는 반도체 경기 불황으로 대기업 실적이 악화하면서 법인세가 덜 걷힌 데다
안정되는 듯했던 물가가 다시 뛰며 불안해졌다. 8월 소비자물가지수가 1년 전보다 3.4% 올랐다. 6~7월 두달 연속 2%대였던 물가상승률이 석달 만에 3%대로 올라섰다. 폭염·폭우 여파로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며 영향을 미쳤다. 국제유가가 다시 오른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추석이 코앞인데 ‘금사과’로 불릴 정도로 명절 성수품인 과일값이 크게 올랐다. 올가을 과일 가격은 봄철 저온 피해와 여름철 호우의 영향으로 작황이 부진해 지난해보다 전반적으로 비쌀 것으로 관측됐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전망). 게다가 국제유가는 9월 들어 더 큰 폭으로 뛰었다.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연말까지 원유 감산을 연장하기로 결정하자 10개월 만에 다시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섰다.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동절기 물가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물가가 다시 상승하는데 성장은 계속 둔화하는 모습이다.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1분기 대비 0.6% 증가했다. 2분기 연속 0%대 성장인 데다 내용도 좋지 않다. 소비와 투자가 위축된 가운데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큰 폭으로 줄면서 힘겹게 성장세를 이어간 ‘불황형 성장’이다. 고금리에 따른
정부가 656조9000억원 규모로 편성한 내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올해보다 18조2000억원 많다. 증가율이 2.8%로 재정통계를 정비한 2005년 이후 가장 낮다. 직전 문재인 정부 시절 증가율(8.7%)은 물론 이명박·박근혜 정부 평균치(5% 중반)에도 못 미친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 정부가 푹 빠졌던 ‘재정 만능주의’를 단호하게 배격했다”고 밝혔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선거의 해에 긴축예산을 편성한 것은 쉽지 않은 결단이다. 2017년 660조원이던 국가채무는 2022년 1000조원을 넘어섰다. 반면 올 상반기 국세 수입은 지난해보다 39조원 줄었다. 세수가 부족한 판에 건전재정 기조를 지키려는 고육책으로도 여겨진다. 그러나 올해 예산(5.1% 증가)도 긴축으로 인식되는데 내년 예산안 증가율을 더 낮춘 것은 긴축 속도가 과한 측면이 있다.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1%대 저성장에 직면한 상황에서 재정긴축이 경기회복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정 만능주의’를 배격한다며 ‘긴축 만능주의’로 기우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반도체 경기 침체와 중국 경제의 성장세 둔화 등으로 내년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가 낮아지는 등 불확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