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모처럼 박수를 받았다. 기업인들이 감개무량해했다. 미국에서 열리는 가전ㆍ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0을 돌아보던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만세’를 외쳤다. 이른바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ㆍ신용정보법ㆍ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마침내 9일 국회 문턱을 넘자 나온 반응이다.
사실 국회가 경쟁국들보다 앞서 일을 한 것도 아니다. 2018년 11월 법안이 발의된 지 14개월 만의 늑장 국회 통과였다. 정치권이 진즉 심의 처리해야 마땅한 일을 정쟁을 일삼으며 방치하다 뒤늦게 통과시킨 것을 두고 경제계가 만세를 부르고, 감사 인사를 전한 것이다.
빅데이터는 ‘4차 산업혁명의 쌀과 원유’로 불릴 정도로 미래 신산업의 핵심자원이다. 데이터 3법 통과로 각종 데이터를 더욱 폭넓게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인공지능(AI) 등 데이터를 활용한 신산업 분야의 새로운 사업모델 개발은 물론 기존 산업에서도 고객 수요와 시장 흐름을 빠르게 파악하고 대응하는 데 큰 보탬이 될 것이다.
기존 개인정보보호법으론 누구 정보인지 알아볼 수 없도록 비식별(가명假名정보) 처리해도 이를 당사자 동의 없이 다른 곳에 제공할 수 없었다. 어느 기업이 축적한 데이터를 다른 기업과 공유할 수 없어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어려웠다.
데이터 3법 통과로 이제 여러 분야 기업들이 다양한 형태로 협업할 수 있게 됐다. 은행이나 신용카드사에 축적된 금융 데이터와 스마트폰 기반 위치정보를 조합한 고객 맞춤형 서비스가 등장할 것이다. AI기술 전문업체와 데이터를 가진 일반업체가 협업해 새로운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길도 열릴 것이다.
경제계가 데이터 3법의 신속한 국회 처리를 호소한 것은 4차 산업혁명의 요체인 빅데이터 활용길이 막혀 관련 산업의 경쟁력이 뒤졌기 때문이다. 국회 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AI 기술력은 미국 대비 80%, 유럽의 90%, 일본의 86%에 그친다. 중국에도 뒤처져 기술력이 중국의 88% 수준으로 평가됐다.
국내 기업들의 손발이 규제에 묶여 있는 상황에서 구글ㆍ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이 고객 데이터를 활용한 서비스로 한국 시장을 잠식했다. 역차별 해소가 시급한데도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과 선거법 개정 등 정치적 이슈로 여야가 대치하면서 국회 처리가 지연됐다.
데이터 3법 통과는 특히 AI 업계에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AI 성능을 개선하려면 머신러닝(기계학습)이나 딥 러닝(deep learningㆍ심층학습)을 통해 AI를 가르쳐야 한다.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이 관련 데이터다. 양질의 데이터가 많아야 이를 기반으로 학습한 AI가 향상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 데이터를 저장하고 활용하는 클라우드 업계도 데이터 3법 통과를 크게 반긴다.
이제 기업들이 데이터를 합법적으로 제공ㆍ활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새로운 큰 시장이 열릴 것이다. 이참에 데이터에 대한 사회 인식도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기업들뿐만 아니라 개인도 자신의 데이터가 소중함을 인식하고 합당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이 자신의 데이터(개인정보 등)를 제공하고 보상받는 길도 열려야 할 것이다.
데이터 3법 통과로 여러 부처에 산재된 개인정보 보호기능이 중앙행정기관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 일원화된다. 위원장은 장관급이다. 개인정보 감독기구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개인정보 보호 컨트롤타워이자 조사ㆍ처분권을 갖는 권익보호기관으로서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수행해 시민단체들이 염려하는 개인정보 침해 소지를 차단해야 할 것이다.
지난해 국내 벤처 투자규모가 4조원을 넘어서는 등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이번 법 통과로 데이터산업은 물론 연관 분야인 유통ㆍ금융ㆍ제조ㆍ물류산업 투자도 늘어날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통과된 데이터 3법이 경제 활성화의 마중물이 되도록 정부는 데이터 활용과 보호에 대한 시행령 개정 등 후속작업을 빠르고 빈틈없이 진행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정부와 공공기관이 보유한 각종 빅데이터를 적극 개방 공유함으로써 데이터경제 플랫폼 구축의 선봉에 서야 한다. 그래야 문재인 정부가 혁신성장 전략으로 강조하는 ‘데이터 경제’ ‘AI강국’ 전략도 성과를 낼 수 있다. 비록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 산업계가 데이터경제로 속도를 높여 달려가도록 정부와 정치가 제 일을 해야 한다.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