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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 공동기획] ⑤유족 사례로 짚어본 4.3의 과제
군사재판 어머니는 무죄, 일반재판 아버지는 재심도 요원

 

제주 중산간에 있었지만 멀리 내다보면 바다가 보이는 마을이었다. 주민들은 70여명 안팎에 가구수도 20가구가 채 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이었다.하지만 그 마을에도 어김없이 4.3의 광풍이 몰아쳤다. 

 

“양력으로 1948년 10월11일 쯤이었다고 들었어. 토벌대가 와서 마을을 다 불질러버리고 마을에 살던 사람들도 각지로 다 흩어져버렸지. 한 20일 정도 있다가는 그 옆 마을도 다 불살라져버리고, 마을사람들이 다 (애월읍)수산리쪽으로 가서 살다가 한 3년 후에 와서 마을을 다시 재건했지”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에 거주하는 강철훈씨(63)는 자신의 할머니와 외삼촌들로부터 전해들었던, 마을을 휩쓸고 간 4.3의 이야기를 그렇게 전했다. 

 

그 광풍 속에서 강씨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군경에게 끌려가 다시는 고향땅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는 4.3 당시 일반재판을 받고 경상북도 김천 형무소로 끌려가 그곳에서 행방불명됐다. 어머니 역시 군사재판을 받고 전주형무소로 끌려갔다가 다시 서울 마포형무소로 이송됐고, 그 후의 행방은 알 수 없게 됐다. 

 

강씨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끌려갈 때까지만 해도 부부관계가 아니었다.  “같은 마을에 살면서 가끔씩 얼굴만 보던 사이일 것”이라고, 강씨는 그렇게 말했다. 

 

강씨의 할머니는 끌려갔던 자신의 아들이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형무소 쪽에 돈을 찔러주면 잡혀간 아들이 더 빨리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말에 키우던 소까지 팔아 돈을 보내기도 했다. 소 판 돈에 아들이 돌아오진 않았지만, 그래도 할머니는 아들이 살아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끌려간지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도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집안의 대는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5~6촌 떨어진 조카의 아들이었던 강씨를 손자로 데려왔다.

 

강씨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후에 할머니에 의해 혼인신고가 이뤄졌다. 자신의 아들을 결혼도 하지 못한 상태로 남겨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강씨는 그렇게 행방불명이 된 후에야 부부가 된 아버지와 어머니를 두고 할머니의 손에 컸다. 할머니에게서 4.3의 아픔을 보고 자랐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렇게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키워갔다. 

 

“외삼촌 말을 들어보면 어머니는 동네에서 밭에 다니다가 길가에서 군경에게 붙들렸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끌려가서 아직까지 아무 소식도 없어. 이때까지…” 강씨는 그렇게 말하면서 흐느꼈다.

 

그렇게 끌려간 어머니는 그 후 7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서야 아무 죄 없이 끌려갔다는 사실이 법원으로부터 확정됐다. 지난달 29일 4.3특별법 개정에 따라 이뤄진 첫번째 직권재심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40명 중에 강씨의 어머니가 있었다. 

 

 

“재판이 있고 난 후 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표석에 있는 어머니 이름 앞에 가서 결과를 전해드렸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무죄라고 하니까 4.3의 멍에를 벗어던져버리시라고, 그렇게 전해드렸어”

 

강씨의 어머니는 그렇게 명예를 회복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명예회복은 아직까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군사재판을 받아 4.3특별법에 따른 직권재심 대상이었던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일반재판을 받아 직권재심 대상이 아니다. 다만 유족들과 4.3관련 단체의 노력으로 지난해 11월 강씨 아버지를 포함한 14명의 재심청구가 이뤄졌고 지난 2월 재심개시 결정까지 나왔다. 하지만 검찰에서 이 결정에 제동을 걸었다. 지난달 11일 제주지방검찰에서 재심개시결정에 항고를 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도내 사회 곳곳에서 ‘잘못된 공권력의 행사’라는 비판이 빗발쳤다. 강씨 아버지를 포함한 희생자들에 대한 신속한 재심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하지만 강씨는 “아직까지 법원에서도, 검찰에서도 아무 반응이 없다”며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현재 강씨 아버지와 같이 4.3 당시 일반재판을 통해 억울하게 수형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은 모두 1800여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군사재판 수형인들과는 달리 직권재심 대상이 아니라 재심결정까지 여러 어려움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강씨 아버지와 같이 검찰의 항고로 재심이 결정되는 것부터 요원한 일이 될 수도 있다. 대부분이 고령인 희생자와 유족들의 입장에서 이 부분이 더욱 어려운 점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반재판 수형자들의 직권재심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도민사회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지속적으로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 4.3희생자추념식에 참석했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나 여영국 정의당 대표 등도 일반재판 수형자들의 직권재심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런 정치권의 약속이 언제 현실로 나타날지도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아버지를 생각하며 강씨가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부분에는 이에 대한 근심도 묻어나오고 있었다. [미디어제주=고원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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