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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 창가에서] 코로나19 때문에 3년만에 찾은 몽골 진료실에서

오늘은 진료를 시작하고 3일째. 부지런히 준비를 하고 주민들을 맞는다. 아침 9시부터 진료를 시작하는데 사람들은 새벽부터 먼 길을 와서 진료소 앞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다.

 

“어디가 아프세요?“ 

"콩팥이 아파요. 심장도 아프고... 소화가 안 되면서 음식을 먹으면 배가 아파요.”

 

몽골 진료 풍경

 

몽골에 진료를 온 지 나는 15년 됐고, 내가 속한 열린의사회는 올해로 25년째다. 그동안 진료하는 상황도 많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말을 타거나 모터사이클을 타고 오던 모습에서 승용차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몽골 사람들은 아픈 상태를 얘기할 때 장기 이름을 대는 경우가 많다.

“콩팥이 아파요.“

”심장이 아파요.“

”췌장이 아파요.“

”쓸개가 아파요.“

”간이 안 좋아요."

 

처음 몽골에 와서 진료할 때는 깜짝 놀라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분들의 표현에 익숙해져서 슬기롭게 문진을 하게 되었다.

 

실제로 몽골 사람들에게는 콩팥돌(신장결석)이나 쓸개돌(담낭결석)이 많다. 채소가 흔하지 않고 양고기를 중심으로 한 육식을 기본으로 많이 하다보니 콜레스테롤 섭취가 많다. 콜레스테롤은 결석의 기본 성분이다.

 

이런 질병이 아니라면 위에서 말하는 증상들은 ‘콩팥이 아프다는 것은 등이나 허리 통증', '심장 부위 통증은 왼쪽 가슴 근육이 결린다는 것', '췌장, 쓸개, 간이 안 좋다는 것은 위장이 안 좋다는 것' 이렇게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이분들은 허리나 손과 무릎 관절염이 많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거친 일을 해서 그런가? 이제는 유목 생활을 하는 것도 많이 줄었을 텐데.....

 

알타이산맥 끝자락 고비

 

진료 첫날은 우리가 머무는 동네 주민들이 주로 와서 진료를 받았다. 이틀째부터는 반경 50~100km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내가 사는 제주도가 동서로 73km, 남북으로 31km이니 인근 주민들이 어찌어찌 연락을 주고받으며 왔다면 제주도 크기 건너편 마을에서 왔다는 뜻이다.

 

몽골은 울란바토르 수도 이외에 21개의 '아이막'이라는 우리의 도(道)에 해당하는 행정구역이 있다. 그 밑에 총 330개의 '솜'이라는 군(郡)이 있고, '바크'라고 하는 1568개 읍(邑)이 있다.

 

몽골 인구가 340만 명인데, 150만 명 정도가 수도인 울란바토르에 살며, 나머지는 넓은 초원과 북쪽 산림지역, 남쪽의 고비 지역에 흩어져 있다.

 

우리가 있는 곳은 고비 사막 남쪽에 있는 곳으로, 인구 3000명 정도의 어문고비(Omnogovi) 아이막의 '불간 솜'(Bulgan soum)이라는 곳이다.

 

고비 지역은 몽골과 중국 네이멍구에 걸쳐 있고, 알타이산맥 동쪽 끝자락을 달려 동서로 뻗은 곳으로 총 길이가 1600km에 달한다. 고비란 '비가 오지 않는 척박한 땅’이라는 뜻이다. 이 고비 지역은 3개의 아이막으로 이루어진다. 돈드고비 아이막(중앙고비), 도른고비 아이막(동고비)과 우리가 있는 어믄고비 아이막(남고비)이다.

 

흔히 고비 지역을 고비 사막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라고 현지인들은 말한다. 비가 거의 오지 않을 정도이지만 모래와 자갈이 섞여 있는 거친 초원이 대부분으로, 모래가 있는 사막은 그중에서 길이 160km, 폭은 5~30km 정도를 말한다. 사막은 알타이산맥 북쪽에 길게 뻗어있다. 여기에는 서남아시아나 북아프리카에 있는 단봉낙타와 달리 쌍봉낙타를 키운다.

 

오지인 이곳으로 우리가 오기까지는 여느 때처럼 험난했다. 공항에 내려서 부리나케 차량을 타고 12~15시간 걸려서 남쪽으로 600km정도를 달려서 밤 10시 넘어 도착했다. 한국이라면 5시간 정도면 갈 거리이지만 중간에 아스팔트 도로가 끝나면서부터 200여킬로미터를 울퉁불퉁 풀이 드문 초원과 자갈길을 가야 한다. 가다가 길을 잃는 것은 흔한 일이다. 알타이산맥 동쪽 끝자락을 지나 사막 지역을 돌아 도착한 곳이 위에서 말한 ‘불간 솜' 지역이다.

 

몽골 마을들은 이곳처럼 넓은 초원에 드문드문 형성되어 있다. 우리가 있는 곳의 낮은 언덕에 올라가서 보아도 사방 50km 안에는 마을이라곤 없다. 그러니 인근에서 3~4시간 걸려서 진료 한번 받으러 왔다는 말은 시야에서도 안 보이는 먼 곳에서 왔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진료를 허술하게 할 수 있으랴.

 

우리를 믿고 오는 환자들

 

보통은 태어난 지 몇 달 된 갓난아이부터 80대 어르신까지 여러 진료를 하게 된다. 치과는 진료 특성상 입을 계속 벌려야 하기 때문에 복도에서 코로나19 신속항원 검사를 하고 들여보내는데, 보통 하루에 2~3명씩 확진자가 나오고 어쩔 수 없이 돌려보내야 했다. 그 외는 진료 내용 구분 없이 보게 된다.

 

어느날 옆 방이 소란하다. 알고 보니 숨을 헐떡이며 금방이라도 어떻게 될 것 같은 환자가 진료받으러 왔다. 단장님인 이영미 선생님이 급히 진찰을 하고 초음파도 해봤지만 특별한 소인은 보이지 않는다. 안정을 취하고 급히 종합병원으로 보냈는데, 도 수준의 아이막이라고 해도 중환자를 다룰 수준이 못되어 아마 울란바토르까지 수백 킬로미터를 가든지, 집으로 돌려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할머니가 내 진료를 받으러 왔다. 태어나면서부터 심한 뇌성마비에, 지적장애까지 가진 5살짜리 남자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한국에서 의사들이 왔다길래 고칠 수 있는지 50km 넘는 곳에서 왔단다. 하지만 우리가 아니 그 상태는 완전히 불치병이어서 방법이 없다는 걸 현대의학이라도 고칠 수 없다는 걸 할머니는 아는지 모르는지 한 줄기 희망을 가지고 왔는데 안타까울 뿐.

 

몇 년 전 말을 타다가 떨어져 하반신 마비가 되어 휠체어를 타고 온 50대 남성, 간암이나 간경화를 가지고 오는 사람들까지 힘든 분들도 여럿 들어온다. 안타깝게도 열심히 종합병원을 다니라는 말밖에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몽골은 일부 사립학교를 제외하고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을 하고 있다. 의료도 동네 병원부터 종합병원까지 무상의료를 시행하고 있으며, 군 단위 지역마다 보건소 수준의 병원들이 존재한다. 1990년대 이후 무너졌지만, 옛 소련 다음으로 두 번째로 사회주의 국가를 이룬 나라다운 모습이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진료기록부를 가지고 다닌다. 비록 키릴 문자로 적혔지만 상세하게 건강상의 문제나 진료 내용들이 적혀있고, 필요에 따라서는 X-ray 사진도 가지고 있게 한다. 우리도 그런 의료체계나 전자 건강기록을 가지도록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문제는 치료기술이 아직은 모자라고, 약품도 부족해서 충분한 치료를 해주고 있지 못하다. 우리가 갈 때마다 멀리서라도 사람들이 찾아오는 이유이다. 당뇨나 고혈압 약을 받으러 초원에서 양을 키우다 군에 있는 병원에 왔더니 그 흔한 약이 없어서 기다리다가 우리에게 왔다는 분도 있을 정도이다.

 

다시 고비 사막을 돌아가며

 

3일 정도 진료를 마치니 군 지역 주민들이나 인근 주민들의 진료는 거의 마치게 된다. 며칠 동안 800여 명의 진료를 거쳤다. 몽골과 같은 개발도상국의 진료를 의료봉사 형식으로 하는 것에서 특정 지역을 선택하고 몽골이 가지고 있는 좋은 의료체계를 이용해서 건강증진을 이루는 모델 사업을 했으면 좋겠다. 한국도 60~70년대 미국이 그런 모습으로 도왔던 것처럼.....

 

약 한 방울에도 고마워하는 주민들, 예 칭기스칸의 영광을 자부심으로 사는 사람들, 아직은 때 묻지 않은 초원... 여기에 앞으로 10년 이내에 달라졌으면 하는 우리의 의료활동을 그려보며 다시 이동할 준비를 한다. 고비 사막의 노란 모래 언덕을 넘어 다시 북쪽으로 향하는 우리 일행들에게 왼편으로 해가 지며 손을 흔든다.

 

고비 사막 넘어 오지로 힘들게 진료하러 동행한 이영미(가정의학과), 최정철(이비인후과), 이원웅 (응급의학과), 김범석(치과), 허진경(치과) 선생님들과 김귀선, 이하옥, 김희정, 최명화 간호사님, 김경선, 김순옥, 홍은수, 김태희, 임재현, 곽민주, 고동우, 이혜지, 오은주, 유하늘 자원봉사자님들과 박인철, 정그루 스텝 여러분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힘든 일정을 모두 건강하게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병수 가정의학과 의사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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