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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차 위원회서 '녹두출판 편집장 사건' 및 일본여행 후 불법연행 제주도민 등 34건 조사

제주4·3 사건을 다룬 서사시 시인 이산하의 '한라산'을 출판해 간첩으로 몰린 '녹두출판 편집장 사건'에 대한 진실화해위의 조사가 이뤄진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지난 21일 제57차 위원회에서 '녹두출판 편집장 사건'에 대해 조사 개시를 결정했다고 26일 밝혔다.

 

이산하 시인(본명 이상백)의 장편서사시 '한라산'은 군사정권 시절인 1987년 3월 녹두출판의 사회과학전문지 '녹두서평'에 실려 4·3사건의 실상을 처음 폭로한 작품이다.

 

치안본부는 이산하 시인 검거를 위해 추적수사를 하던 중 녹두출판사 관계자들로 수사를 확대했다. 

 

이에 녹두출판사 김영호 발행인과 신형식 전무 겸 편집장이 1987년 4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거·구속되고, 이산하 시인도 같은해 11월 체포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신씨에게는 북한 공작원의 지시를 받아 이적표현물을 제작해 배포한 혐의가 적용됐다. 신씨는 1988년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과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았다. 이 시인도 1987년 11월 체포돼 징역 1년 6월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 시인은 노태우 정권이던 1988년 특사로 풀려났다. 이어 그는 다시 재야단체인 전민련 편집실에 들어가 활동했다. 그때 같이 활동하던 사람들이 이부영·김근태·이태복·이인영·민병두·정봉주 등이다. 그리고 제주에서 4·3연구소와 함께 생존자들을 만나 증언을 채록하면서 2년을 보냈다. 다시 서울로 온 그는 참여연대 국제인권센터에서 인권 대중지 <사람이 사람에게>라는 잡지를 창간했다. 그때 편집위원이 유시민·한홍구 등이다. 1992년 현기영 소설가의 주례로 재야단체 민청련 선전국 후배와 결혼했다.

 

전국 고교 문학상을 휩쓸던 그는 문학상 수상 성적으로 1979년 대학(경희대) 국문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1982년 <시운동>에 연작시 <존재의 놀이>로 등단했지만 1996년에야 겨우 대학 졸업장을 받았다.

그는 현재 <문학뉴스> 편집위원, <유레카> 편집위원장과 진보 인터넷 매체인 <민플러스>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신씨는 당시 치안본부가 자신을 불법연행·구금하고 가혹행위를 해 간첩으로 조작했다며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한편 진실화해위는 1980년대 일본여행 후 불법연행·구금됐다가 고문에 못 이겨 간첩으로 몰렸던 제주도민 고(故) 김모 씨에 대한 조사도 벌인다. 

 

김씨는 1981년 일본 오사카로 여행을 다녀온 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관계자를 만나 간첩행위를 했다는 허위 밀고를 당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았다.

 

진실화해위가 이번에 조사 개시를 결정한 사건은 이를 포함해 모두 34건이다. [제이누리=이주영 기자]

 

다음은 이산하 시인 <한라산> 전문.

 

혓바닥을 깨물 통곡 없이는 갈 수 없는 땅
발가락을 자를 분노 없이는 오를 수 없는 산
백두산에서
한라산에서
지리산에서
무등산에서
그리고 피어린 한반도의 산하 구석구석에서
민족해방과 조국통일을 위하여
장렬히 산화해 가신 모든 혁명전사들에게
이 시를 바친다.

 

1.

지금으로부터 어언 120여 년 전
동아시아의 미해군 전략요충지로 조선이 결정된 지
80년의 모진 세월이 흐른 1945년 불볕 여름
한 손엔 ‘빵’과 또 한 손엔 ‘해방군’의 탈을 쓰고
발톱까지 무장한 채 당당하게 상륙한 미제국주의자들은
마침내 순결한 조선의 하늘과 푸른 산하를
두 토막으로 분질러 놓았다.
그리고 다시 40여 년의 기나긴 세월이 흘렀건만
일본 총독부가 미대사관으로 바뀌었을 뿐
미국의 ‘창살 없는 감옥’
이 식민지 산하는 조금도 변한 것이 없었다.
그리하여 미제국주의 침략사 120여 년
다시 써야할 피어린 민족해방투쟁의 한국현대사
압제의 사슬을 이빨로 뚝, 뚝 끊으며
붉은 피로 얼룩진 그 장엄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우리 어찌 잊을 것인가.
바람 부는 대로 쓰러지는 풀잎이 아니라면
결코 그들의 노예가 아니라면
우리 어찌 보고만 있을 것인가.

 

2.

이 땅은 아메리카의 한 주(州)
그들의 병영에서 짐승처럼 사육되어 왔던 수많은 날들
그 수많은 신음의 밤들을 누가 잊을 것인가.
누가 잊으라고 하는가.
1948년 4월 3일 ‘제2의 모스크바’
밤마다 먼저 간 동지들의 피를 묻고
살을 묻고
뼈를 묻는
혹한의 한라산, 그 눈 덮인 산하
붉은 피를 흘리며 끝내 숨져간
이름 없는 혁명전사들의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끝내 이어지는 저 붉은 핏자국을 누가 잊는가.
누가 잊을 것을 강요하는가.

동상으로 썩어문드러진 발가락을 자르고
뼈를 깎는 모진 고문과 추위에
여성전사들의 생리마저 얼어붙는 밤
그들은 기어이 갔다.
총알 박힌 다리를 절룩거리며
동지의 어깨에 매달려
진지로 돌아가다
진지로 돌아가다
끝내 쓰러져버린 그들은 갔다.
아-
기어이 갈 곳으로 가고야 마는가.
혓바닥을 깨물 통곡 없이는 갈 수 없는 땅
발가락을 자를 분노 없이는 오를 수 없는 산
제주도의 혁명전사들은 그렇게 갔다.
미제의 각을 뜨다가
적들의 심장에 불을 지르다가
끝내 다 뜨지 못한 채
끝내 다 지르지 못한 채
한줌 피 묻은 뼛가루로 날아갔다.

적과 더불어 싸워서 죽은
우리의 죽음을 슬퍼 말아라.
깃발을 덮어다오.
인공(人共)의 깃발을
그 밑에 죽기를 맹세한 깃발
….

 

3.

30여년 만에 걸어보는 이 학살의 숲은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산등성이마다 뼛가루처럼 쌓여있는 흰 눈이며
나뭇가지마다 암호를 주고받는 새들의 울음소리며
멀리 사람 실은 배 한 척
돌 실은 배 한 척 떠나는 바다며
굶주린 배를 움켜쥔 채 허겁지겁 땅을 파헤쳐
씹고 또 씹었던 이 풀뿌리와 나무껍질이며
마지막 남은 낙엽마저 가솔린 냄새를 풍기며 불탔던
이 학살의 숲은
그러나 아직도 총소리로 가득하다.

움직이는 것은 모두 우리의 적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보고 쏘았지만
그들은 보지 않고 쏘았다.
학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날
하늘에서는 미군 정찰기가 살인예고장을 살포하고
바다에서는 미군 함대가 경적을 울리고
육지에서는 술 취한 기마대가 총칼을 휘두르며
모든 처형장을 진두지휘하던 그날
‘한국판 KKK단’인 서북청년단이 아편에 취한 채
한림의 금악리를 빨갱이 마을로 지목해
80여 남녀 중학생들을 금악벌판으로 끌고 가
집단총살하고 수장한 다음
서귀포 정방폭포와 천지연폭포로 몰려가
빨치산의 젊은 아내와 딸들을 발가벗겨
나무와 바위에 묶어 표창연습으로 삼다가
마침내
모두 대검으로 젖가슴을 잘라 폭포 속으로 던져버린 그날
석양에 물들어가는 사라봉 봉수대 솔숲에서는
또다른 서청의 극우반공청년들이 하느님을 외치며
감자꽃 같은 처녀들을 윤간한 뒤 생매장해버린 그 가을 숲
서귀포 임시감옥 취조실에서는
빨치산과 그 내통자들의 손톱과 발톱 밑에 못을 박고
몽키스패너로 혓바닥까지 뽑아버린 그날

바로 그날
관덕정 인민광장에서는 사지가 갈가리 찢어져
목이 잘린 얼굴은 얼굴대로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몸통은 몸통대로
전봇대 위에 전시되어 있었다.
“이것이 바로 빨갱이다!”
“빨갱이의 종말은 이렇다!”
강제로 끌려나와 광장을 가득 메운 도민들에게
미친(美親)놈들이 니뽄도로 시체들을 쿡쿡 쑤시며 소리쳤다.

처참하게 찢어져 형체조차 분간할 수 없었지만
도민들은 속으로 속으로만 어림잡았다.
저건 이덕구
저건 김운민
저건 김병남
저건 남 진
저건 박남해…
통곡도 오열도 없었다.
도대체 사람이어야 통곡이라도 하지,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결코 죽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것은 푸줏간에 걸린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
한 개의 총알이 심장을 뚫고 간 것은
차라리 행복한 죽음이리라.
바다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이
한라산을 미친 듯이 뒤흔들었다.

“미군은 즉각 철수하라!”
“이승만 매국도당을 타도하자!”
“조국통일 만세!”
“제주 빨치산 만세!”

핏빛 석양이 관덕정 인민광장 위로 지고 있었다.
산은 다시 한 번 알몸이 되고
그 빈숲에 그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살아 흘러가고
죽어 흘러가고
마침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흘러갔다.
몸 가릴 곳 하나 없는 이 참혹한 겨울 숲
마지막 몇 사람이 기적처럼 살아 걷는
이 학살의 숲
누가 그날을 기억하지 않는가.

 

4.

돌려주자.
오늘도 노란 유채꽃이 칼날을 물고 잠들어 있는
아- 피의 섬 제주도, 그 4․3이여.
우리의 심장에서 피어나는 이 진달래꽃을
그 누가 꺾을 수 있으랴.
돌려주자.
기름진 지주와 자본가의 살을 죽창에 꽂아
그들에게 돌려주자.
공장의 프레스에 잘려나간 노동자들의 손가락을
포크레인에 찍힌 철거민의 팔과 다리를
밭을 갈아엎고 농약 속으로 사라져간 농민들의
그 골수에 사무친 원한을
그리고 푸른 5월의 광주를 짐승처럼 짓밟고 간
저 피 묻은 원수들을
찢어
갈가리 찢어서

‘조국 아메리카’의 후예들에게 돌려주자.

그리하여
미제국주의자들은 똑똑히 들어라.
우체통이 빨간 것은
우리 인민의 사상이 빨갱이에 물든 탓이 아니라
바로 너희 양키들 때문임을
우리 한반도 인민들의 피가 붉은 것도
바로 너희들 때문임을
그리고 침묵하라.
피로 맺어진 ‘혈맹우방’이여.
그대들이 두 눈 뜨고 살아있는 한
우리는 잠들 수가 없다.
너희들의 칼날 위에서
우리는 결코 잠들 수가 없다.

그 누구도 잠들 수 없는 이 해방의 산하에
싹둑 잘려나간 손가락들이
아직도 펄펄 살아 뛰는
붉은 피가 있어
농약 먹은 가슴으로 타오르는
싯붉은 피가 있어
민족해방의 불꽃으로
조국통일의 불꽃으로
이 헐벗고 굶주린 노동자 농민들의 여윈 손들이
마침내 혁명의 숲을 이룰 때까지
저 간악한 미제의 각을 뜨고
저 미친(美親) 매국노들의 심장에 불벼락을 안겨주자!
아직도 눈을 감지 못한 조국의 영혼들에게
적들의 시체를 넘고 넘어 동지들의 원수를 갚아주자!
그리하여 천 년의 세월이 흐를지라도
결코 용서하지도 말고
결코 잊지도 말자!

 

5.

오늘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
그 아름다운 제주도의 신혼여행지들은 모두
우리가 묵념해야 할 학살의 장소이다.
그곳에 핀 노란 유채꽃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그 꽃들은 모두 칼날을 물고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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