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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여인들의 생활필수품 … 용도에 따라 이름도 제각각
"체계적 조사 통해 대그릇 문화 역사 기록으로 남겨야"

 

옛 제주 사람들의 생활필수품 구덕과 차롱.

 

구덕과 차롱은 대나무를 주재료로 만든 '대그릇'(竹器)으로, 오늘날 바구니 또는 그릇 용도로 쓰였다.

 

일상생활에서의 다양한 쓰임새로 인해 구덕과 차롱에는 제주인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잊히고 사라지는 구덕과 차롱에 얽힌 생활문화와 전통을 잇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2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 구덕 없이는 아기 키우기도 힘들어

 

"웡이 자랑 자랑 자랑 우리 애기 잘도 잘다

어서 자랑 어서 자랑 자랑 자랑

저래 가는 검둥개야 이래 오는 검둥개야

우리 애기 재와도라 느네 애기 재와주마

(중략)

ᄒᆞᆫ저 먹엉 ᄒᆞᆫ저 자랑

ᄒᆞᆫ저 먹엉 자불어사 니네 어멍 물질 가곡

니네 아방 밧디 가곡 헐꺼 아니가"(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제주문화대전')

 

제주민요 중 일종의 자장가라 할 수 있는 '애기구덕 흥그는 소리'의 일부다.

 

애기구덕에 아기를 눕히고 흔들어 잠재우는 모습은 옛날 제주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었다.

 

애기구덕을 지고 밭이든 바다든 어디에든 나가 일을 하며 아이를 돌봐야 했던 제주의 여인들.

 

지나가는 검둥개에게조차 아기를 재워달라 부탁하고, '얼른 먹고 자야 너의 엄마 물질 가고 너의 아빠 밭에 갈 것 아니겠니'라고 아기를 타이르듯 부르는 민요에서 가난과 궁핍에서 벗어나려는 엄마의 조급한 심정이 느껴진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그 옛날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서는 아기를 빨리 잠재워 놓고 근근이 일을 해야만 했다.

 

애기구덕은 아기를 키우는 제주 여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활도구였다.

 

대나무 등으로 만든 '구덕'은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생활도구로, 바구니를 뜻하는 제주어다.

 

대체로 굵은 새끼줄을 구덕에 연결해 여인들은 항상 등에 지고 다녔다.

 

제주 사람들은 물건을 나를 때 머리에 이고 나르는 일이 없었고, 등에 지고 나르는 게 일반적이었다.

 

바람 많고 돌이 많은 화산섬의 특성상 타지역에서 처럼 머리에 물건을 이고 나르는 건 불편함을 넘어 위험한 일이었다.

 

1520년 제주도에 유배 온 김정은 저서 '제주풍토록'에서 '부이부대'(負而不戴, 등짐은 지되 머리에 이지는 않는다)라 말하며 독특한 제주의 풍습을 소개했다.

 

구덕은 그 쓰임새가 너무나도 많아 용도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예를 들어 지하수의 존재를 모르던 그 옛날 마을 해안가 용천수에서 물을 긷는 물허벅을 넣고 다니는 바구니여서 '물구덕', 잠녀(해녀)들이 물질할 때 테왁을 넣어 지고 다닌다고 해서 '잠녀구덕' 또는 '테왁구덕', 아기를 재울 때 사용한다고 해서 '애기구덕'이라 했다.

 

또 제사나 명절 등 제상에 바칠 제물을 넣어 다니는 '제물구덕', 빨래감을 넣고 다니는 '세답구덕' 등이다.

 

이외에도 구덕의 크기, 모양, 지역 등에 따라 다양한 이름이 존재한다.

 

 

◇ 구덕·차롱 속에 담긴 제주인의 삶

 

대나무로 짠 작은 바구니인 '차롱' 역시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전통 생활도구다.

 

'구덕'이 아기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물건을 담아 운반할 때 썼다면 '차롱'은 주로 음식물을 넣는 작은 바구니 또는 그릇 역할을 했다.

 

뚜껑이 없는 구덕과 다르게 차롱은 뚜껑이 달린 것이 특징이다.

 

연초 제주 곳곳에서 행해지는 마을제 등에서는 정성껏 마련한 음식이 담긴 차롱을 지금도 볼 수 있다.

 

이른 아침부터 마을 주민들은 술과 밥, 과일, 떡, 생선 등을 차롱에 담아 신에게 바치고 치성을 드린다.

 

음식이 담긴 차롱이 제단에 가지런히 놓인 모습이나 신당 주변 돌담에 차롱을 운반하며 등에 지고 온 구덕 등이 가득 쌓아 올려진 걸 보면 여전히 제주의 전통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차롱 역시 용도에 따라 이름이 다양하다.

 

제사나 명절, 또는 마을제를 지낼 때 제물을 넣는 '제물차롱', 떡을 넣는 '떡차롱', 밥을 넣는 데 쓰는 '밥차롱', 산적 따위의 적(炙)을 넣는 적차롱이 있다.

 

적차롱은 또 고기산적을 주로 넣기 때문에 고기차롱이라 부르기도 한다.

 

 

차롱은 일종의 도시락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1∼2인용 도시락 이름으로 '동고령' 또는 '밥당석'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기도 했다.

 

테우리('목동'을 뜻하는 제주어)들이 산과 들에 방목해 키우던 마소를 돌보러 갈 때 밥을 넣어 들고 다니는 차롱이라 해서 '테우리차반지'라 했다.

 

'이버지차롱'에 얽힌 이야기도 재미있다.

 

'이버지'는 혼례를 치를 당시 신랑과 신부를 맞이하는 양가에서 정성을 담은 음식을 사돈댁에 보낸다는 뜻의 '이바지'를 일컫는다.

 

제주에선 혼례 때만 먹을 수 있던 가장 귀한 음식인 돼지고기 삶은 음식을 담아 사돈댁에 보낼 때 차롱에 담아 보냈는데 이것이 일명 '이버지 음식'이다. 신부 집이 가난하면 결혼식에 쓸 음식인 돼지고기, 계란, 술 따위를 신랑 집에서 미리 신부 집으로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구덕과 차롱에 붙여진 다양한 이름과 용도를 보다 보면 자연스레 옛 제주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그려진다.

 

출산한 뒤 사나흘 만에 일을 나서면서도 아기를 키워야 했던 제주의 강인한 어머니의 모습, 어려운 살림 속에도 서로에 대한 배려를 잃지 않았던 마을 공동체의 모습, 가정과 마을을 지켜주는 조상과 제주의 신(神)들에게 정성을 다했던 사람들의 신앙, 물이 귀한 제주에서 하루에도 여러 차례 물을 길으러 물구덕을 지고 먼 길을 다녀야 했던 아낙네들의 수고로움 등이다.

 

 

이러한 구덕과 차롱은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다시 손주에게로 대물림돼 쓰였고,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장만해주던 생활필수품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구덕과 차롱은 플라스틱 그릇에 밀려 박물관에 가서야 볼 수 있는 사라져 가는 유물이 되고 있다.

 

구덕과 차롱에 대해 연구한 김순자 제주학연구센터 센터장은 "구덕과 차롱을 썼던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세상을 떠나면서 이제는 구경하는 것 조차 힘들어졌고 대그릇(대나무로 만든 그릇)에 얽힌 생활문화도 점차 잊혀가고 있다"며 "제주의 대그릇 문화에 대한 올바른 정리를 위해 마을별로 그 쓰임과 용도, 이름, 만드는 법 등과 관련한 체계적인 조사를 통해 구덕과 차롱의 역사를 기록으로나마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변지철 기자]

 

[※ 이 기사는 '제주도 구덕과 차롱 이름'(김순자, 영주어문 제18집 2009), '제주 사람들의 삶과 언어(김순자, 한그루 2018) 등 논문과 책자를 참고해 제주의 전통 생활도구인 '구덕'과 '차롱'을 소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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