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산 돼지고기로 원산지가 둔갑하는 상황이 우려되고 있다. 제주도가 규제를 풀고 단속을 강화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생산자 단체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15일 제주도에 따르면 지난 5일부터 돼지고기 이분도체(二分屠體) 반입금지 조치가 해제돼 제주도에 들어오는 다른 지역 생산 돼지고기 품목이 확대됐다.
이분도체는 도축 돼지의 머리, 내장, 꼬리 등을 제거하고 부위와 상관없이 절반으로 자른 형태다.
제주도는 2022년 8월 도내 돼지고기 생산자단체의 건의를 받아 이분도체의 반입을 금지하고 포장육만 허용했다. '유통질서 확립' 차원의 반입금지 조치였다.
하지만 제주도의 위임 범위를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상위법에 반하는 등 위법소지가 있다는 법리 자문이 나왔다. 결국 제주도는 이번에 반입금지 조치를 해제했다.
'제주도 반출·반입 가축 및 그 생산물 등에 관한 방역조례'에 따라 반입금지는 유통 질서 확립이 아닌 가축전염병의 확산 방지를 위해서만 가능하다.
이분도체 돼지고기 반입이 허용되면서 제주도는 제주항만의 차단방역 수준을 높이고 제주산 돼지고기로 원산지를 둔갑하는 행위를 방지하도록 제도개선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도는 ▲다른 시·도산 돼지고기 반입 신고제 운영 ▲제주산 돼지고기 인증점(274개소) 누리집(홈페이지) 공개 ▲원산지 위반단속 등 축산물 이력 관리 강화를 위한 자치경찰단, 농산물품질관리원 등 유관기관과의 공조체계를 구축한다.
사전 신고를 거쳐 돼지고기 이분도체를 반입한 업체에 대해서는 특별 관리가 이뤄진다.
돼지고기 이분도체 반입 차량은 반입 시 사전 신고해야 하며 축산차량에 준하는 차량소독 등 특별 방역 관리를 받게 된다.
도는 또 돼지고기 이분도체 반·출입 규정 위반 행위에 대한 과태료 부과 규정도 강화하기로 했다.
제주도는 가축전염병 청정지역 유지를 위해 가축전염병이 발생하지 않은 시·도에 한해서만 돼지고기 이분 도체 반입을 허용한다.
도는 축산물위해요소중점관리 기준(HACCP)에 따라 돼지고기 이분도체 운반차량과 살아있는 돼지 운반차량의 이동구간이 엄격히 구분돼있어 일각에서 제기하는 상호 접촉으로 인한 오염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강재섭 제주도 농축산식품국장은 “가축방역 및 둔갑 판매 등의 우려를 해소하도록 제도를 강화해 가축방역 운영체계를 더욱 견고히 하고 제주산 축산물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한한돈협회 제주도협의회와 제주양돈협회는 이날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다른 지역 이분도체 반입금지 해제 결정으로 가축전염병이 창궐할 경우 제주 축산업의 종말로 이어질 것"이라며 "악성 가축전염병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농가·도민사회의 경제적 피해를 방지할 수 있도록 이번 고시를 재고하라"고 제주도에 요구했다.
협의회는 "이분도체는 도축장에서 곧바로 제주로 옮겨지기 때문에 차량이나 운전자 등에 의한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이 높다"며 "타 시·도산 이분도체 반입 허용은 제주 축산업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타 시·도산 돼지고기가 제주산으로 둔갑해 도민과 관광객들을 우롱할 수 있으며, 육지로 역 반출될 경우 제주산 청정 축산물의 이미지가 추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제주도는 반입금지 조치 해제에 앞서 유관기관, 생산자단체, 이해관계자 등과 회의 및 면담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설명하며 이해를 구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다른 시·도에서 제주도로 반입된 돼지고기 포장육은 39만4000톤(7288마리)으로 도내 돼지 도축 물량(88만3000여 마리)의 0.82% 수준이다. [제이누리=오신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