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대표 봄 축제인 '제주들불축제'가 올해 기상 악화로 중도 취소되자 지역 사회 내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축제 명칭과 정체성 문제부터 천문학적 예산 집행까지, 여러 갈래의 비판이 동시에 제기되는 상황이다. 2025 제주들불축제 개막일인 14일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일대가 방문객과 차량으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313/art_17427744181154_d422cf.jpg)
제주의 대표 봄 축제인 '제주들불축제'가 올해 기상 악화로 중도 취소되자 지역 사회 내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축제 명칭과 정체성 문제부터 천문학적 예산 집행까지, 여러 갈래의 비판이 동시에 제기되는 상황이다.
지난 14일부터 사흘간 열릴 예정이던 ‘제27회 제주들불축제’는 태풍급 강풍으로 사실상 무산됐다. 다만 일부 행사는 분산 개최 형식으로 열어 축제를 마무리했다.
2년 만에 열린 이번 축제는 '불 없는 들불축제'로 기획돼 주목받았지만 디지털 전환 시도마저 완전히 구현되지 못한 채 아쉽게 막을 내렸다.
제주들불축제는 1997년 '정월대보름 들불축제'로 시작됐다. 제주 전통 목축문화인 '방애'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마을 단위로 불을 놓던 풍습을 축제로 발전시킨 것이다. 그러나 환경오염과 산불 위험성,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축제의 핵심 콘텐츠인 ‘오름 불놓기’는 해마다 논란의 중심에 섰다.
특히 2022년에는 전국적인 산불 재난으로 축제가 전면 취소됐고, 2023년에는 산불경보로 불놓기 행사가 급히 철회됐다. 환경단체와 도민 청원 등 반대 여론이 거세지면서 제주시는 올해부터 '불놓기'를 과감히 제외하고 디지털 미디어아트를 결합한 '빛 중심 축제'로 방향을 전환했다.
하지만 축제 둘째 날인 지난 15일 강풍과 비로 새별오름 일대는 사실상 행사 불능 상태가 됐고, 하이라이트였던 '디지털 불빛 쇼'도 제대로 시연되지 못한 채 취소됐다.
올해 축제에 투입된 예산은 모두 18억원이다. 그 중 15억원은 지역업체와의 사전 계약을 통해 집행 예정이었다. 실제로 많은 예산은 축제가 취소됐음에도 불구하고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는 "계약서상 천재지변 시에도 비용 지급 조항이 포함돼 있는 경우가 있어 조항별로 정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디지털 불 놓기', '복합 미디어 아트쇼' 등 핵심 프로그램뿐 아니라 홍보물 제작, 셔틀버스 운영, 무대 설치 등 각종 기반 시설에도 이미 예산과 인력이 투입된 상황이다. 읍·면·동 자생 단체들도 각종 부스 준비 및 운영 비용에서 손해를 입어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 2025 제주들불축제 이틀째인 지난 15일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일대 행사장이 강풍으로 아수라장이 돼 있다. 제주시는 이날 오전 행사 전면 취소를 공지했다. [연합뉴스]](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313/art_17427744418294_c2a123.jpg)
기후변화로 불가능해진 '오름 불놓기' 대신 '빛'으로 전환한 들불축제에 대해 정체성 논란도 거세다.
일부 도민과 네티즌은 "명칭은 들불인데 실상은 빛 축제", "정체성도 콘셉트도 없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제주들불축제'가 아니라 새로운 이름과 구성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앞서 제주녹색당은 지난해 4월 도민 749명의 서명을 받아 들불축제 내 '오름 불놓기' 폐지를 요구했고, 이에 따라 숙의형 원탁회의 운영위원회가 꾸려져 같은 해 9월 '생태적 가치' 중심의 축제 전환을 권고했다. 제주시는 이를 수용해 올해 ‘불 없는 들불축제’를 기획했지만, 축제 자체가 무산되며 오히려 혼란만 가중됐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제주도의회는 주민 청구에 따라 '들불축제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도는 상위법과의 충돌을 이유로 재의를 요구하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 조례는 오름 불놓기 행사 여부를 시장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하되 기상 악화 시 일정 변경을 가능하게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도가 불놓기에 사실상 부정적 입장을 고수하면서 해당 조례는 다음 달 4일 도의회 본회의에 재상정될 예정이다.
도의회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으면 공포가 가능하다. 하지만 '불 없는 들불축제'가 기대와 달리 성과 없이 끝난 상황에서 조례안 통과 가능성은 더 불투명해졌다.
최근 5년간 세 차례나 기상 악화로 차질을 빚은 들불축제는 개최 시기와 운영 방식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태민 제주도의회 문화관광체육위원장은 "전통과 현대의 축제가 공존할 수 있도록 행정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며 "제주들불축제가 고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시대 변화에 맞게 발전할 수 있도록 면밀한 운영 방향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통의 재해석'을 구현, 명성을 떨쳤던 제주들불축제가 다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2025 제주들불축제 개막일인 14일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꼭대기에서 참가자들이 미니 콘서트를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313/art_1742774428487_5d816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