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어요리. 해안선이 갯바위 위주로 구성된 제주에서는 필자가 어린시절이었던 7~80년대만 해도 갯바위 낚시를 하면 어김없이 서너마리씩 올라오던 고기가 있었다. 제주사람들이 ‘복쟁이’라고 부르는 ‘복어“다. 보통은 아이들 손바닥만 한 녀석이 볼을 잔뜩 부풀려진 채로 잡혀 올라오곤 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복어의 독에 대해서 동네 어른들에게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은 얘기가 있어서 아이들은 ”에잇 재수 없어!!“라면서 다시 바다로 던져 버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복쟁인 독 들어시난 먹으민 죽은다(복어는 독이 있으니 먹으면 죽는다.)“ 라고 말씀들은 했지만 어른들은 복어를 잡으면 버리지 않고 집으로 가져가서 국을 끓여 시원하다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드시곤 했고 아이들은 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수저를 들길 꺼려하곤 했다. 복어는 제주바다에서 지천으로 잡히던 흔한 바닷고기였고 맹독을 품고 있는 고기였다. 실제로 90년대 초반 까지도 전국의 참복은 전량 제주에서 잡혔다고 알려져 있고 특히 일제강점기에 제주시내 일본인 조계였던 칠성로에 복어 요리전
최근의 식당 창업자들이나 운영자들 중에는 극히 일부지만 자신의 상품에 정체성을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알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가르쳐 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 토박이들조차 젊은 세대는 경험이 없고 중.장년층도 자신들이 먹어온 음식에 담긴 의미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업자들이 선택하는 방법은 제주의 식재료를 최대한 사용해서 제주의 음식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런 식당을 로컬푸드 전문점이라 한다.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정성에 소비자들은 화답하고 있다. 신규 식당이고 메뉴 또한 양식이거나 일식, 또는 퓨전인데도 불구하고 손님들이 모여드는 곳이 그런 곳인 경우가 많다. 그런 노력이 지속되어 두세대 이상을 지나다 보면 향토음식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중도에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자만하여 지속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욕심이 화를 부르는 법이다. 어쨌든 로컬푸드전문이라는 간판들이 늘어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식재료에 그만큼 신경을 쓴다는 표시이니 미식가들에게는 이 또한 반길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들도 속사정을 보면 그렇게 좋아할
제주 향토음식산업이 이렇게 잘못된 길을 가게 된 원인은 산업화 초기부터 발생하고 있었다. 1970년대 초반 한반도 서남해안의 대기근으로 인해 제주로 대거 이주해온 호남사람들이 정착하면서 이들이 제주의 외식산업의 초기 시장을 형성하게 된다. 제주사람들은 제주의 음식을 상품화 한다는 것을 엄두도 내지 않았던 시기였다. 80년대로 접어들며 관광이 활성화되면서 관광객들에게 제주 향토음식을 팔아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이들은 제주의 전통적인 음식을 별로 접해보지 못했던 탓에 제주향토음식에 대한 이해가 없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정체불명의 제주향토음식을 창조해 낸다. 70년대에는 이미 새마을운동으로 과거의 전통을 폐습이라 하여 모조리 기억에서조차 삭제시키던 시기였고 주로 제주 시가지에 집중해서 살고 있던 그들은 제주의 전통 음식문화를 접할 기회가 없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제주의 식재료에 자신들의 고향에서 해먹던 조리방법을 접목시킨 것이다. 그러나 제주의 식재료는 그들이 먹었던 식재료와 달랐고 그래서 그들이 원하는 맛을 만들어내기 어려웠고 결국 일부 음식을 빼고는 식재료 또한 그들의 고향에서 공수해 오기에 이른다. 그렇게 만들어진 제주의 향토음
▲ 갈치조림. 음식은 시대적으로 계속 변화한다. 사람들의 생활환경의 변화, 지구 환경의 변화, 과학의 발달 등 외적인 요인에 따라 시대적으로 선호하는 맛의 기호가 달라지고 심미적 감각 또한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향토음식도 시대에 따른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달라질 수도 있고, 새로운 향토음식이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향토음식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향토음식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최소한 한 세대라고 할 수 있는 30년이 두어번은 지나야 비로소 향토음식으로 정착할 수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마산 아구찜이나 부산의 돼지국밥이나 밀면, 강릉 아바이순대, 춘천 닭갈비, 통영의 충무 김밥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모두 해방 이후의 격변의 시기에 새로이 만들어진 지역의 향토음식들이다. 그래서 음식의 기원을 기록하는 일이 중요하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시작된 외식상품인지 증명이 되면 세월이 지나 지역의 향토음식으로 자리잡게 되는 확실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향토음식의 변화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경우가 많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제주의 고기국수가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식재
며칠 전 서울에서 제주음식문화에 대한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두 달 전 출간된 나의 책 ‘제주식탁’을 기초로 제주의 고유한 음식문화에 대한 해설 형식의 강연이었다. 행사장은 비교적 넓은 공간이라서 코로나19 방역을 위하여 넉넉한 간격으로 자리가 배치되었고 원래 100여명 이상이 자리할 수 있는 공간에 50여명의 서울사람들이 자리를 메웠다. 2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동안 쉼 없는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강연 뒤 몇몇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그동안 제주를 자주 왕래하면서 본인들이 먹었던 음식들의 정체는 무엇이었나를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 서울에서도 조금씩 제주음식 전문점이라는 간판이 늘고 있는데 진짜 제주음식인지 궁금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주사람들이 전통적으로 먹었던 음식들은 새마을운동 시대를 거치고 산업화, 현대화 되는 과정에서 대부분 사라져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를 찾은 방문객들이 ‘제주에서 제주음식을 먹는 행위’가 결코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제주의 외식업계 종사자들은 모두 자신이 파는 것이 &lsqu
▲ '자연그대로 농민장터'에 펼쳐진 농산물 좌판. 매주 토요일을 기다린다. 농민장터에 가기 위함이다. 농민이 직접 일주일 동안 열심히 자라준 농산물을 솎아서 들고 나와 1m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좌판 위에 늘어놓고 앉아 있는 장터다. 접이식 천막 대여섯 동을 쳐 놓고 그늘을 만들어 너댓 시간동안 장 판을 벌이고 팔리다 남은 못난이들은 서로 주고받으며 파장할 때까지 사람다움이 넘치는 장터다. ‘자연그대로 농민장터’는 지난 5월 노형동 끝자락인 월광로 서쪽 끝자락에 개설된 한살림 제주 담을장 매장 뒤편에서 매주 토요일 열린다. 제주 담을장은 매월 첫째주 토요일 열리는 플리마켓(Flea Market)이다. 플리마켓과 농민장터는 다르다. 담을장에도 참석하지만 농민장터는 이미 1년 이상 자생해온 농부들만의 장터다. 플리마켓은 말 그대로 ‘벼룩시장’이다. 원래는 중고물품들을 형식 없이 늘어놓고 파는 임시개설 시장이지만 지금은 온갖 물건을 다 만날 수 있는 도깨비시장으로 불린다. 개인 셀러들이 모여서 소규모 좌판을 펼쳐 놓고 중고물품은 물론이고 직접 제작한 수제물품들을 위주로 판매한다
▲ 최근에 재현한 옛날 몸국 나는 몸국을 끓여서 판다. 왜 하필 몸국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인기가 없는 음식을 굳이 선택한 이유를 묻는 것이다. 내가 몸국을 끓이는 이유는 제주사람들의 정체성을 잘 표현하는 음식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꼬맹이시절 내가 다니던 북초등학교 앞 골목에 ‘부자집’이라는 식당이 있었다. 나의 할머니는 그 곳 몸국을 무척 좋아하셨고 가끔, 한 달에 한번 정도 내게 냄비를 들려서 받아오게 하셨다. 그런데 그 식당 앞으로 가면 고약한 냄새가 늘 코를 괴롭혔다. 항상 냄새는 났지만 유독 지독할 때가 있었다. 그 냄새는 돼지 내장을 직접 손질하면서 어쩔 수 없이 처리해야하는 돈분 냄새였고 한번 밴 냄새는 쉽게 사라지지 않아서 늘 어느 정도 냄새가 났던 것이고 심한 날은 마침 내장을 손질할 때 갔던 탓이었다. 그러나 그 역한 냄새에도 불구하고 단골이 많았다. 할머니는 그 냄새가 믿음을 주는 냄새라고 하셨다. 내장을 비롯한 모든 재료를 직접 손질하고 음식을 만드는 증거라는 것이었다. 간혹 그 식당에서 몸국을 먹을 때가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집 식탁에서 몸국을 받아 앉으면 그 냄새가 나지 않
▲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장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제주의 맛과 문화, 그리고 멋을 되찾으려는 시도입니다.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장이 필자로 나섭니다. 그의 이름을 내건 ‘미담(味談)’입니다. 말 그대로 ‘맛 이야기’입니다. 수많은 ‘제주 첫’ 타이틀의 소유자인 김지순 명인을 모친으로 둔 그가 지난 30여년 어머니 곁에서 보고 배운 ‘제주의 맛, 그리고 요리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가 그동안 익히고 깨우친 체험·체화의 영역이 ‘제주음식문화’란 간판으로 소개됩니다. 잊혀진 제주의 맛과 멋의 세계, 그리고 그 안에 감춰진 우리네 삶의 역사, 아울러 우리 먹거리가 탄생하게 된 비결이 이제 여러분 곁으로 격주에 한번 다가갑니다. 많은 애독바랍니다./ 편집자 주 내 어머니, 김지순 여사는 ‘제주 최초’라는 타이틀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제주 최초의 요리를 가르치는 대학교수였고 제주 최초로 대중들에게 요리 강습(요즘 말로는 ‘쿠킹 클래스’라고 하는)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