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제주의 맛과 문화, 그리고 멋을 되찾으려는 시도입니다.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장이 필자로 나섭니다. 그의 이름을 내건 ‘미담(味談)’입니다. 말 그대로 ‘맛 이야기’입니다. 수많은 ‘제주 첫’ 타이틀의 소유자인 김지순 명인을 모친으로 둔 그가 지난 30여년 어머니 곁에서 보고 배운 ‘제주의 맛, 그리고 요리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가 그동안 익히고 깨우친 체험·체화의 영역이 ‘제주음식문화’란 간판으로 소개됩니다. 잊혀진 제주의 맛과 멋의 세계, 그리고 그 안에 감춰진 우리네 삶의 역사, 아울러 우리 먹거리가 탄생하게 된 비결이 이제 여러분 곁으로 격주에 한번 다가갑니다. 많은 애독바랍니다./ 편집자 주
내 어머니, 김지순 여사는 ‘제주 최초’라는 타이틀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제주 최초의 요리를 가르치는 대학교수였고 제주 최초로 대중들에게 요리 강습(요즘 말로는 ‘쿠킹 클래스’라고 하는)을 진행했다. 제주 최초로 요리프로그램 전국방송의 출연자였으며 제주 최초로 전국요리대회에 나가서 대상을 수상했다. 제주 최초로 외국(미국, 유럽, 일본 등)에 가서 제주의 음식을 가르쳤으며 제주 최초(1985년)로 요리학원을 운영했다. 또 제주 최초로 제주의 전통 향토음식을 만드는 요리 책을 발간했고, 제주 최초로 향토음식명인으로 지정 받으셨다.
1970년부터 시작한 어머니의 전문 요리연구가로서의 생활은 당연히 가족들에게도 영향을 주었고 특히 둘째아들인 나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코흘리개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은 배부름과 맛이 있고 없음을 얘기 할 때 나는 이 맛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고 어떤 재료가 사용되었으며 어떻게 만들었을까를 고민하거나 들여다보는 것이 이미 습관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에게 보고하기 위함이었다. 신기하게도 어머니는 내가 이야기하는 모든 음식에 대해 알고 있었고 보충 설명을 해 주시곤 했다. 그렇게 자연스레 음식에 대한 기본적인 학습이 10살 이전에 이미 시작 되었던 것이다.
1975년, 제주 칼호텔에서 뷔페를 처음 시작했을 때로 기억한다. 그것이 공식적으로 제주 최초의 뷔페 행사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제주 유일의 요리 선생이었던 어머니가 호텔의 초대를 받았고 나는 손을 잡고 따라 나섰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호텔, 엄청 높은 천장과 넓은 방에 압도당하며 들어섰는데 내 눈에 띈 한쪽 벽에 늘어선 긴 테이블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마어마한 음식이 진설(?)되어 있었고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더구나 하얀 조리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조리장님의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는 친절한 설명에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그날 어떤 음식을 얼마나 어떻게 먹었는지는 아무런 기억도 없다. 그저 놀란 기억밖에......
다음날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경험을 얘기 했던 나는 그날부터 ‘거짓깔장시(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렸다. 그 땐 그런 시절이었다. 특히 제주의 70년대는 하루 세끼 밥만 먹어도 감사한 시절인데 음식을 쌓아놓고 골라 먹는다는 것은 그나마 비교적 윤택한 생활을 누렸던 ‘성 안의 아이들’이 다녔던 ‘북초등학교’였지만 어린아이들 누구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과연 누가 내 말을 믿어 줄 수 있었겠나.
그 이후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나만의 경험으로 간직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또래 아이들에게 공통의 화제가 되기에는 공상과학영화같은 주제였기 때문이었다. 최근 몇 해 전에 중화요리가 화두가 되면서 관심을 끌었던 ‘멘포샤’나 2000년대 초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여기저기 생기면서 일반에 소개되었던 시칠리의 향토음식인 ‘아란치니’도 이미 1970년대, 나의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음식이었다. 폭신한 스펀지케익에 생크림을 바르고 딸기를 올린 생크림케익을 집에서 만들어 보셨고 다양한 양채류로 샐러드를 만들고 드레싱을 달리하며 다양한 요리를 집에서 실습하고 개발해 보시면 내가 시식 요원이었던 셈이었다.
그렇게 너무 일찍 음식에 대한 문화적 쇼크를 경험한 내게 있어 어린 나이임에도 음식은 그때 이미 단순한 먹을 것이 아니고 연구 대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지 않았고 미디어가 발달하고 통신산업의 발달로 전세계 음식들이 모니터안으로 모여 들었을 때도 어지간한 음식들은 이미 내 기억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본격적으로 맛의 세계로 입문한 것은 대략 90년대 초반의 일이다. 그러나 30여년의 세월동안 어머니의 영향으로 스스로 놓지 않았던 음식문화에 대한 공부가 있었기에 늦은 나이였지만 낯설지 않은 분야였고 좀 더 깊이 있게 빠져들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고향을 떠나 10여 년 동안 독특한 몇 가지 경험을 다진 후 돌아온 제주에서 새롭게 시작한 미식 세계의 공부는 자연스럽게 내가 추구할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가장 제주다운 음식 문화의 재발견’이었다.
음식을 문화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당시에는 학계의 몇 분을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전통적인 음식문화에 대한 오래된 기록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종가집 규방문화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제주에서 오래 전부터 존재해 온 음식문화에 대하여 공부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그때 이미 30여 년간 선 연구를 해 오셨던 어머니의 자료들이 있어서 망설임 없이 다가설 수 있는 분야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주 자연과 그 속에서 얻어진 독특한 음식문화가 한반도의 다른 지방과 분명한 차별성이 있음을 느끼고 있었고, 그것들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음에 대한 불만이 스스로에게 쌓여 있어 그것을 해소해 보려는 의도가 더 컸음을 지나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제주 음식에 대한 공부는 늪에 빠진 듯이 빨려 들어감을 느끼며 10여년이 흘러갔고 그 사이 2000년에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을 만들어 자료를 적립해 나갔으며 그 이후 조금씩 얕은 공부의 결과물들을 활자화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중 앞에 나서기 위해서는 현대인들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제주 음식 문화에 대한 해석과 전통성을 증명하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비교군이 필요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외국과 다른 지역의 음식문화와 특히 산업화 되는 과정의 다양한 사례들을 들여다 봐야 했다. 아울러 미래의 음식관련 산업이 추구해야 할 과제에 대한 공부도 게을리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내게 주어진 과제는 광범위해 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요리학원과 제과학원을 운영하면서 그 분야에 입문하는 제자들에게 보다 넓은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었기에 음식과 관련한 다양한 세계를 어떤 식으로든 경험해 보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고 그렇게 폭 넓게 공부를 해 왔다.
25년이 넘게 정진해 온 음식관련 분야의 수련은 어린 시절 경험했던 것처럼 일반인들의 눈에는 뵈지 않는 부분까지 보게 만들었다. 관점이 다른 시선으로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음식 문화와 식품산업, 외식산업은 물론이고 식재료의 생산과 가공, 유통상의 드러나지 않은 부분들까지 바라보며 분석하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비자들이 민주시민으로서 알아야 할 부분들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일을 언제부턴가 하고 있었다.
연재를 제안받고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다양한 음식관련 분야를 자유롭게 유영하며 나의 경험과 정보를 독자들과 공유하려 한다. 그 주제는 제주의 전통음식일 수도 있고, 음식의 인문학적인 요소나 산업화 과정의 모순에 대해서 토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대인들의 식습관에 대한 색다른 관점이나 관심가질 만큼 의미 있는 외식산업현장의 모습을 그려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다른 문화, 예술과의 연계성이나 시사성을 찾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주장, 추론은 피하겠지만 모든 독자가 공감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우리 모두가 생각해 볼만한 화두를 감히 던져보려는 것이다.
결국 음식을 맛보는 사람들의 다양한 오감과 감흥에 대한 이야기, 그래서 양용진의 ‘미담(味談)’이라 제호를 달아본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