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워?" "수줍어?" "그거 사랑 아냐?" ☞ 오동명은? =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역사소설 <불멸의 제국> 소설 <소원이 성취되는 정원> 소설 <장군어미귀향가>등을 냈다. 4년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었다.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현재는 지리산 주변에 보금자리를 마련, 세상의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런 건 어떨까요? 잠시 생각해보는 시간입니다. 잠시 쉬어가는 페이지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무심결에 다가오는 순간! 그래도 그 순간은 우리에게 잠시의 ‘되돌아봄’을 안겨줍니다. 잠시라도 멈추는 건 어떨까요? 그 찰나의 순간을 오동명의 세밀화로 살펴봅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수없이 존재했던 과거로부터 내일을 다시금 돌이켜봅니다./ 편집자 주 "엄마, 힘내! 내가 있잖아." "엄마가 있어 내가 있듯이!" ☞ 오동명은? =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역사소설 <불멸의 제국> 소설 <소원이 성취되는 정원> 소설 <장군어미귀향가>등을 냈다. 4년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이런 건 어떨까요? 잠시 생각해보는 시간입니다. 잠시 쉬어가는 페이지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무심결에 다가오는 순간! 그래도 그 순간은 우리에게 잠시의 ‘되돌아봄’을 안겨줍니다. 잠시라도 멈추는 건 어떨까요? 그 찰나의 순간을 오동명의 세밀화로 살펴봅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수없이 존재했던 과거로부터 내일을 다시금 돌이켜봅니다./ 편집자 주 "난 꽃이 아닌데...." "난 꽃으로 보이는 걸? 단향기까지 나!" ☞ 오동명은? =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역사소설 <불멸의 제국> 소설 <소원이 성취되는 정원> 소설 <장군어미귀향가>등을 냈다. 4년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제이누리>의 새해 웹소설 연재를 시작합니다. 지난해 신개념 웹연재소설 [라이브카페-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를 연재해 인기를 거둔 오동명 작가의 신작입니다. 문명의 이기에 짓눌린 현대의 일상을 다룬 환상과 추억의 판타지 소설 [옛 우표첩]입니다. 기존의 연재와 달리 거꾸로 추억을 더듬어 가는 소급형 연재가 이번 소설의 특징입니다. 신개념 소설의 재미를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연재를 시작하기에 앞서 ...... 아래로만 흐르는 강물을 굳이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를 떠올려봅니다. 강물은 시간이고 세월이란 생각이 듭니다. 물이 같은 물줄기를 다시 찾아오는 일은 결코 없다고 해서입니다. 흘러버리면, 흘려버리면 그만인 것, 시간이고 세월이기에 강물입니다. 그러나 다시 거슬러 찾아간다는 연어는 기억이고 추억이란 생각이 듭니다. 귀소라는 본능에 이끌린 되찾기이기에 기억도 추억도 본능입니다. 우리도 연어나 제비나 개미나 게나 기러기나 벌이나 거북처럼 본능의 존재입니다. 지금 적든 많든, 나이가 든다는 것은 추억거리, 그러니까 되찾기의 쌓기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을 바라봅니다. 손에 잡힌 자그마한 기계가 추억의 저
5. 예의 공중목욕탕에 갈 때마다 드는 불쾌감은 공공의식 또는 대중의식의 수준으로까지 비약하게 되는데 종종 이웃 일본과 비교되곤 한다.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는 수건들이며 씻지도 않고 탕에 바로 들어오는 이들, 남의 귀에 거슬리는 시끄러운 대화 등이 그렇다. 이는 한국의 공중목욕탕 풍경이며 일본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철저한 관리의 나라인 일본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엄한 통제사회에서 비롯된 관습이기에 역사까지 싸잡아 부러워할 것까지는 없지만 어떻든 현재 그들의 관습은 남을 배려하는 문화로 정착되면서 일본인의 정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2011년 3월 지진과 쓰나미로 폐허가 된 일본은 다른 면에서 세계를 한 번 더 놀라게 했다. 그들의 정연한 공중질서 때문이다. 비인간적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그들은 지나치게 침착했는데, 이로써 더 큰 혼란과 소요를 막을 수가 있었고 그 근간에는 자기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어릴 적의 가정교육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그렇다. 일본은 취학 전 아동에게 가정에서부터 남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교육을 부모로부터 철저하게 받는다고 한다. 우리는 어떤가? 비교해보면, 한국은 부모
4. 자유 ‘자유롭다는 말은 번번이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위험을 무릅쓰고 돌이킬 수 없는 것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는 뜻이다.’(키에르케고르) 이집트 전설에 나온다는 이야기 하나. 만물을 관장하려니 신은 너무 신경 쓸 게 많았나보다. 해서 ‘결정하는 힘’의 비서를 두기로 했다. 비서를 구해야했다. 가까이에 있는 천사에게 맡기려하니 이대로가 좋다며 천사는 거절했다. 다시 듬직한 큰 바위에게 맡기려하니 자연에 순응하고 살겠다며 역시 고개를 저었다. 모두 거절하자 신은 가장 별 볼일 없게 생긴 인간에게 물었다. “결정하는 힘을 네게 주려한다. 하겠느냐? 일단 하게 되면 되 물릴 수는 없다. 너의 첫 결정은 이를 수락하느냐 마느냐, 이다. 강요하지 않겠다.” 호기심 많고 늘 상상과 공상 속에서 살던 인간은 신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 한편 인간은 단순해서 ‘결정의 힘’이 단지 권한만 주어지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결정하는 순간 책임도 따른다는 사실을 훗날 알게 되었다. ▲ 부모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은 많지만 그 중 가장 소중한 사랑은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아이들이 부모를
▲ 도서관에 있다 보면 어린이집 아이들을 보곤 한다. 도서관 견학 또는 체험이라는 데 둘러보고 가는 게 고작이다. 도서관에서 잠시라도 집과는 달리 많은 책들 중에 한 권을 맘대로 골라 읽어보게 하는 것이 진정한 체험이지 않을까. 요즘 별별 체험은 많다. 하지만 체험이 소위 스팩 쌓기의 하나쯤이 되는 듯하다. 어린이집 선생들의 안내에 따라온 그 아이들과 스스로 책을 넘기는 아이의 표정이 비교된다. 견학하는 아이들에게서는 무표정, 또 다른 아이에게서는 진지함이 보인다. 3. 행복 한자가 다른 ‘가정’은, 부부를 중심으로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사는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의 가정(家庭)과 집안 살림을 다스리는 일의 가정(家政)이 구별돼 있지만, 한글로는 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내포하고 있다. 혈연관계의 가장 작은 집단을 꾸려가는 일, 또는 집안 살림을 다스리며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이 바로 가정이다. 엄마는 딸이 어렸을 때 자주 데리고 다녔던 도서관을 가족 모두 함께 가자고 했다. 도서관을 가보면 어린 자녀와 동행한 엄마가 대부분이다. 중학생 이상의 자녀를 두고 있는 엄마는 자녀를 학원에 빼앗긴 뒤 도서관에로의 발길도
▲ 아이들의 시소놀이. 아이는 서기와 걷기를 통해 처음으로 균형을 몸으로 깨우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마도 시소를 통해 남과의 균형맞추기를 해보지 않을까. 시소 위에서는 경쟁이 아닌 어우러짐으로 타인을 이해하게 된다고 믿고 싶다. 물론 아이들의 잠재의식 안에서. 2. 사랑 재수를 시작하는 딸보다도 엄마의 히스테리가 더 심하다. 이 히스테리는 절망에서 비롯된다. 1년 전과 다른 엄마의 얼굴에서 딸은 웃음을 볼 수가 없다. 당연히 최고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이 웃음으로 얼굴에 피어났던 1년 전과는 달리, 좌절을 겪은 뒤의 불신감은 얼굴뿐 아니라 마음에서 웃음을 앗아갔다. 어느 날, 딸이 체해 먹은 것을 다 토해내고 말았다. 1년 전이었다면 등을 두드려주고 배를 쓰다듬어주며 유난했을 엄마는 약 한 알과 작은 약병을 딸의 손에 건네지도 않고 식탁에 내려놓는다. 엄마의 손에는 신경질이 잔뜩 붙어있다. 탁. 사물(식탁)도 그 감정을 표현한다. 아빠가 약을 받아 딸의 등을 도닥여주며, “오늘 하루 학원은 쉬어라.” 엄마가 폭발하고 만다. “당신이 당신 딸 평생 책임지고 데리고 살 거야?” 참견이 될 것 같아 묵묵히 보
▲ 아이들은 스스로 더 잘 논다. 어른들이 장난감, 놀잇감을 주면 오히려 아이들의 무한상상을 죽일 수가 있다. 모래로 밥을 짓고 반찬도 만들어 밥상까지 차려놓으며 자기들만의 놀이에 집중한다. 손님을 초대하기도 한다. 이런 아이들에게 대다수 어른-부모나 선생-들은 손 더러워지고 옷 지저분해진다고 못하게 한다. 1. 희망 어른이 다 됐네. 부쩍 큰 키로 어른처럼 자란 딸의 뒷모습을 오랜만에 보고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딸에게서 갓 태어난 아기를 본다. 딸이 뒤돌아본다. 손을 흔들어 보인다. ‘시험 잘 보고 올 테니 엄마 걱정 마!’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렇게 시험장 교실로 사라진 딸이지만 엄마 마음 안엔 갓난아기로 운동장을 가로질러 아장아장 걷고 있다. ‘희망’이란 꽃말을 지닌 앙증맞은 프리뮬러 화분들을 색깔별로, 모양별로 병원 회복실 창가에 나란히 진열해놓고 엄마와 딸을 기다리던 아빠도 운동장에 서 있다. 희망 딸 마중의 시작이었다. 자식맞이는 부모에게 지상 최고의 선물이었다. “아들이 아니라서 실망했어?” 위풍당당행진곡을 불룩한 배 가까이 들이대고 틀어줬던 아빠에게 엄마가 묻는다.
▲ 아이들이 한데 모여 자기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기 위해 봉숭아꽃과 잎을 작은 절구통에 모아 찧고 있다. 긴장할 수 있기에 행복한 우리의 아이들 ‘누군가 불확실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껴안으라고 내게 말해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예측가능한 길의 바깥으로 내려서야만, 고정관념에 의문을 던져야만, 그리고 세상을 기회와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곳으로 바라보아야만 진정 멋진 일들이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 내게 말해줬더라면?’(티나 실리그) 아이가 우리의 희망입니다. 가정이든 사회든 아이로서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때입니다. 아이를 살리는 일은 가정도 사회도 살리는 일입니다. 아이의 목에 도금 가짜 금은동메달 대신 순금일 수 있을 희망의 목걸이를 걸어줘야 합니다. 아이의 가슴에 엉터리 스티커 대신 희망의 배지를 달아줘야 합니다. 우리 아이를 제대로 멋지게 키우고 싶은 마음을 가졌던, 우리 아이들 앞에서 온전하고도 멋진 부모이길 바라던, 지난날들을 떠올리며 이 글을 씁니다. 그렇게도 사랑한다면서 소홀하진 않았나? 지나쳐버렸다지만 과거라는 것은 회상하기에 언제나 현재입니다. 나의 추억은 대체로 ‘아픔’으로 떠오
-1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아빠에게 다시 전화를 넣었다. “오랜만이구나. 웬 일이니? 별 일 없지? 잘 지내거라. 아빠는 잘 지낸다.” 낮은 톤의 느린 목소리는 여전했다. 나는 묻고 싶은 말을 해버렸다. “아빠는 왜 엄마랑 결혼했어요?” 허허허,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웃는 소리 또한 낮고 느렸다. “사랑했으니까 하지 않았겠니? 세상에 불변이란 없다. 모두 변하기 마련이지. 하물며 사람 마음이야... 엄마는 가훈까지 ‘또바기’ 라며 늘 처음과 똑같길 바랐지. 나도 엄마로부터 처음 들어본 단어인데. 또바기란 ‘한결같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구나. 이건 불가능한 일이며 정체 같은 거라 오히려 썩게 만들고 말 것이다. 흐르지 않는 물과 같은 것이라고 할까. 욕심이지 결코 이성적이랄 수는 없지. 이성이란 게 뭐냐? 불협화음을 만들지 않는 거 아니겠느냐. 그리고 엄마는 엄마 살고 싶은 삶을 살았다. 엄마에게 늘 묶여있던 너희들도 이제 엄마로부터 자유로워져 봐라. 죽은 사람에겐 안 된 말이지만 어쩌겠냐. 사실인 걸.” 나는 전화를 바로 끊고 싶었지만 또 물었다.
0 “엄마는 우리에게 신화를 남기고 가셨다.” 뜬금없이 오빠가 말했다. 나는 오빠를 따라 시골길을 걷고 있었다. 길을 따라 노란 애기똥풀이 피어있었다. “애기똥풀로부터 사열을 받고 있는 것 같네.” 오빠와 나는 콩열매 같이 가늘고 길쭉하게 매달린 애기똥풀 씨방 하나를 만져보았다. “이것도 폴록폴록 말랑말랑하지 않아? 아기살처럼.” 나는 엄마가 우리에게 보여주려 했던 풍선덩쿨을 만지고 있는 듯 애기똥풀을 맞이하고 있었다. 문득 삶은 맞이하는 것이라는 다소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맞이하는 것이란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살짝만 눌러도 터질 걸? 노랑물이 나와. 마치 애기똥 같이.” 오빠는 평소 오빠답지 않게 소년처럼 나를 앞질러 시골 좁은 길을 달렸다. 어릴 적 엄마랑 갔던 강촌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달려가는 오빠 등 뒤에 나는 소리를 질렀다. “버스는 운전해봤어?” 오빠는 대답 않고 몇 발짝 앞으로 더 달리더니 돌아서 뒷걸음질로 다시 달렸다. 고개를 저으면서, 두 팔을 펼치면서. “상상은 상상만으로도 족해.” 오빠가 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