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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신개념 웹연재소설] 옛 우표첩(37.마지막회)

-1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아빠에게 다시 전화를 넣었다.

 

“오랜만이구나. 웬 일이니? 별 일 없지? 잘 지내거라. 아빠는 잘 지낸다.”

 

낮은 톤의 느린 목소리는 여전했다. 나는 묻고 싶은 말을 해버렸다.

 

“아빠는 왜 엄마랑 결혼했어요?”

 

허허허,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웃는 소리 또한 낮고 느렸다.

 

“사랑했으니까 하지 않았겠니? 세상에 불변이란 없다. 모두 변하기 마련이지. 하물며 사람 마음이야... 엄마는 가훈까지 ‘또바기’ 라며 늘 처음과 똑같길 바랐지. 나도 엄마로부터 처음 들어본 단어인데. 또바기란 ‘한결같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구나. 이건 불가능한 일이며 정체 같은 거라 오히려 썩게 만들고 말 것이다. 흐르지 않는 물과 같은 것이라고 할까. 욕심이지 결코 이성적이랄 수는 없지. 이성이란 게 뭐냐? 불협화음을 만들지 않는 거 아니겠느냐. 그리고 엄마는 엄마 살고 싶은 삶을 살았다. 엄마에게 늘 묶여있던 너희들도 이제 엄마로부터 자유로워져 봐라. 죽은 사람에겐 안 된 말이지만 어쩌겠냐. 사실인 걸.”

 

나는 전화를 바로 끊고 싶었지만 또 물었다.

 

“예술가라고 아직도 생각하세요? 미대 나오면 다 예술가인가요? 그리고 예술가들은 그렇게 막 맘대로 살아도 된다고 누가 그러던가요? 그럼, 결혼 같은 것은 하지 말았어야 하고 우리 같은 아이들은 세상에 내놓지 말았어야 하지 않나요? 책임도 지지 못할 것을 일부터 저지르고 마는 게 그게 예술가들이 하는 짓인가요? 아빠를 이해해보려 했는데... 아버지를 내 기억에서 몽땅 지워버릴 겁니다. 아버지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 몽땅요!”

 

“끊지 마라. 내가 너희를 자식이라고 어떻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겠니. 인간은 어떤 존재든 다 존중되어야 하고 존중 받아야 하는 거란다. 그러니 각자 나름대로 사는 게 그것이 온당한 것이지. 구속은 물론 참견도 아주 나쁜 죄가 될 것이야. 자유로워야 한다. 내 자신이 자유롭고자 한다면 남들의 자유도 인정해줘야지. 가족이라고 예외일 순 없지. 아니냐?”

 

“그런데 왜 나보고 잘 지내라고 한 건가요? 잘 지내라는 게 도대체 아빠에겐 무슨 의미가 있는데요?”

 

허허허, 또 그 웃음이 들려왔다. 짜증나게 하는 웃음, 뭐랄까, 남이 웃으면 무조건 따라 웃어주는 배려의 웃음? 아니다. 웃음으로서 남들도 웃게 만들겠다는 자의적 웃음? 이것도 아니다. 의례상의 웃음, 맞다 이거다. 딸에게도 이러다니...

 

“잘 지내라는 말이 뭐 잘못된 것이라도 있니. 미국 가더니 많이 비틀어졌구나. 고생을 많이 한 게지.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고 하니 네가 그랬나보구나. 언제 미국으로 돌아가니? 한국에 완전히 돌아왔느냐? 엄마도 없으니 그러려무나.”

 

짧은 한 마디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가족이란 인연도 끊고 싶었다.

 

“아빠나 그런 식으로 잘 지내세요.”

 

 

미국으로 떠나기 전 날, 그 폐교로 혼자 다시 간다.

 

“엄마, 그래도 난 딸이지만 여자이기도 하잖아. 내겐 다 털어놓고 살지 그랬어. 왜 한국여자들은 세상이 변했다 하면서도 혼자 다 삭히고 살려고만 하지? 한국여자들 변한 건 집안 전자제품 살림 번드르르하게 바뀐 거구 얼굴 빤질해지게 만들어준다는 화장품, 화장대 위에 채워놓고 허리 굵어진 것뿐인가? 엄마도 참 바보야. 내가 엄마 말, 엄마 마음을 들어주지도 못하는 바보 딸인 줄 알았어? 뭐야 도대체!”

 

나는 화가 나서 눈물이 펑펑 솟구친다.

 

“기껏 풍선덩쿨로나 환생하려고, 그런 신화나 전설 따위를 우리에게 남겨주려고 고작 여자로 태어났냐고? 엄만 죽어서도 가면을 쓰고 있는 거 알아? 난 여긴 다시 안 올 거야. 내 엄마가 바보인 게 난 너무 싫다. 왜 그렇게 살았냐고? 왜 그렇게 살아야 했냐고? 왜 죽어, 죽긴 왜 죽어? 엄마가 왜 죽어? 죽어야 한다면 아빠가 죽어야지. 난 엄마 같이 절대 그런 바보로는 안 살 거야. 결혼도 안 해. 사랑도 안 해! 사랑? 그게 엄마를 고작 바보로 만들었잖아. 엄마, 내년 봄에 풍선덩쿨로라도 세상엔 다시 오지 마라. 난 다시 여기 오지 않겠지만 말야. 엄마, 저승에 세상이 따로 있다면 엄마의 삶을 거기선 살아라, 제발.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자식이 보기에도 좋거든.”

 

나는 엄마가 재로 묻힌 땅 위를 두 손에 흙을 담아 덮고 있다.

 

“이번에 한국겨울이 무척 추울 거라던데.”

 

나는 땅을 덮으려고 두 손에 담아 모은 흙을 가슴에 안는다.

 

“엄마,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당신은 인간으로서는 실패했을지 모르지만 엄마로서는 성공했어요. 엄마가 바보라니, 아냐 절대. 하지만 아빠하고 그렇게 바라던 대화를 우리하고는 왜 하지 않으려 했어? 우리가 아빠 같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렇다면 엄만 진짜 바보다.”

 

나는 흙을 움켜 안고 또 울어버리고 만다.

 

“엄마, 나 엄마가 만들어준 의사노릇, 제대로 하고 살아볼게. 나, 다시 미국으로 간다. 미국으로 가면 피부과나 내과 전공을 더 추가해야겠어. 아프리카나 동남아에서는 이 분야가 더 필요로 한다네. 그래, 엄마, 나, 문귀희가 말야, 나 자신에 먼저 감동할 줄 아는 사람이 될 거야. 엄마, 엄마의 딸, 내가 맞지?”

 

나는 한동안 한줌의 흙이 되었을 엄마를 내려다본다. 그 위로 눈물이 주룩 꽃에 물주듯이 떨어진다.

 

“기다린 김에 더 좀 기다려주지 못하고, 내 엄마는 정말 바보다. 바보. 볼 수가 없잖아, 엄마를. 가여운 내 엄마를 딸이 안아줄 수도 없게 엄마가 만들어버렸잖아. 엄만 정말 엄마 맘대로였어.”

 

귀 안으로 바람이 스친다. ‘귀희야.’

 

지독하고 냉정한 엄마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엄마도 아빠처럼 자유롭게 내버려뒀다면 나의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자유롭게 나를 내버려뒀다면? 아슬하단 생각에 닭살이 돋는다. 아찔해서 몸이 오싹 오그라들고 만다. 돌이켜보면 원망스러웠던 엄마가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다.

 

인천공항이다.

 

“엄마, 나 다시 내 제자리로 간다. 근데 돌아갈 내 자리가 엄마 자리 같네. 엄마가 살고 싶었을 그 자리 말야. 엄마가 그랬지? 엄마가 죽어 남길 건 오빠와 나라고. 엄마가 우리에게 전이돼 있는 거 알지? 내 몸속에 살아있다구. 내 몸에서 엄마가 꿈틀거리고 있어. 엄마, 사랑해. 정말 보고 싶다. 안아주고 싶은데, 엄마 어딨어?”

 

마치 엄마가 다시 ‘귀희야’ 부르며 달려올 것 같아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또 두리번거린다. 삼십 분 후면 탑승해야 한다. 또 한국을 떠난다. 십삼 년 전에도 서둘렀다. 엄마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밖엔 없었다. 13년이 지난 지금 나를 또 서두르게 한다. 오빠에게 전화를 건다.

 

“귀희구나. 여덟시 십 분에 출발한다고 했지? 공항에서 헤어지고 싶었지만 그러면 더 슬플 것 같아서. 네 앞에서 울고 말 것 같아 혼자 보냈다. 우리 슬프지 않기로 했잖니. 대신 지금 엄마한테 와 있단다. 귀희가 간다고 말씀드려줘야지 않겠니? 근데 난 그랬다. 귀희가 돌아왔다고, 엄마에게 돌아왔다고.”

 

“오빠, 울어? 우리 전에도 안 울었지만 더 울고 살지 않아도 되잖아. 우리의 엄마가 참 고맙지 않니? 그래, 엄마의 죽음이 없었다면 우리가 늘 그래왔듯이 엄마를 원망만 하고 계속 살게 될지도 몰랐는데. 그래서 엄마가 신화로 우리에게 다가온 거야. 신화나 전설은 꼭 사람을 죽이더라. 하기야 부활하거나 환생시키기도 하지만. 오빠, 나,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어디로 가든 엄마가 나의 간호사가 되어 늘 곁에서 나를 도와줄 거라고 말야. 의사와 간호사인 딸과 엄마, 아주 든든한 배필이지? 참 오빠, 오빠 참 멋지더라. 아이들 앞에서 의자를 만들어주는 그 손이 얼마나 멋지고 예쁜지 알아? 책만 든 곱디고운 오빠 손에 날카로운 톱이 들려있고 무지막지한 망치가 쥐어있고... 오빠, 그 때 보니까 정말 진지하더라. 오빠가 참 사랑스러웠어. 나중에 만나면 이 고운 나의 오빠, 이번엔 내가 안아줄게. 오빠, 우리 그렇게 자기 얼굴을 웃게 해주며 지내다가 또 보자.”

 

탑승하라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여객기는 이륙해 구름 속을 파고든다. 창 밖으로 내려다보려다가 말고 의자를 뒤로 제켜 두 발을 쭈욱 앞으로 뻗는다. 눈을 감는다. 두 눈에서 눈물이 나온다. 그대로 내버려둔다. 그러다가 잠이 든다. 깨어보니 엄마의 팔베개에 누워있다.

 

“비행기 안에서 꺼내보렴.”

 

오빠가 손에 쥐어준 작은 상자를 등가방에서 꺼낸다. 반지다. 편지가 들어있다.

 

엄마가 늘 끼고 계시던 반지다. 엄마가 직접 사서 낀 듯하다. 엄마도 남들에게 사랑 받고 사는 아내로 보이고 싶지 않았을까 싶다. 엄마의 일기에도 쓰여 있었지? ‘내 손에 어울리지 않게 다이아몬드반지라니. 하지만 끼고 싶다.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사랑 받게 될 날이 오겠지. 이렇게 살다보면, 이렇게 이렇게.’

 

엄마 손을 내가 언제 보았지? 본 적이나 있었나? 맞춰본 적도 없었는데 결혼반지 손가락에 꼭 들어맞는다. 그러고 보니 키도 비슷하고 몸매도 야윈 것까지 엄마랑 나는 같았다. 같은 데도 모르고 있었다니.

 

‘엄마, 내 손가락에도 꼭 맞네.’

 

없는 엄마에게서 엄마를 빼닮은 나를 본다. 엄마 닮은 나에게로 없는 엄마가 다가온다.

 

‘귀희는 사랑 받는 여자일 거야.’

 

LA에 도착해 바로 UA Express 산타페 행 국내 여객기로 갈아탄다. 없는 아버지를 찾아 한국으로 가던 셀마 툴을 만나러 간다. 그녀는 엄마와 줄곧 살았다.

 

“엄마는 늘 사랑을 품고 살았어. 아빠가 늘 곁에 있는 듯이 하고 살았어. 아빠하고 만난 시간은 채 한 달도 못 되게 짧았다지만, 아빠랑 전혀 다르게 생긴 나를 보고 언제나 내가 아빠를 꼭 닮았다고 했어.”

 

내가,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을까? 물었던 기억이 난다. 셀마가 대답했다.

 

“아빠가 그랬데. ‘당신은 나의 신 같다.’고 엄마에게 말했데. 엄마는 이 말을 내게 해주면서 ‘믿는 사람을 신이 저버릴 순 없지.’라고 말했어.”

 

산타페로 가는 내내 나는 엄마를 더듬는다. 엄마를 찾아가는 길에 울컥한 그리움이 한 순간에 가시더니 그 빈 가슴 속을 채워오는 것이 있다.

 

나도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싶다는.

 

나도 누군가의 엄마가 되고 싶다는.

 

결코 결혼이나 사랑은 않겠다던 나였는데.

 

여객기 창밖을 메우던 뭉게구름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그 아래로 별스런 세계가 눈으로 들어와 채운다. 검게도 보이고 붉게도 보이는 흙의 땅들이 펼쳐있다.

 

‘태초에도 저랬을까.’

 

눈을 감는다. 밝고 환한 붉은 끼를 띤 한 줄의 띠가 노란 끼의 작은 몸체로 스멀스멀 기어든다.

 

‘엄마의 몸속에서 내가 저랬을까.’

 

스르르 잠이 몰려온다. 글=오동명, 그림=정세리/ 끝

 

*** 지금까지 오동명의 신개념 웹소설 <옛 우표첩>을 애독해주신 독자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엣 우표첩>은 연재물의 마지막편에서 그 전편으로 훑어가는 방식의 신개념 연재였습니다. 그 묘미는 아래의 관련기사를 거꾸로 훑다보면 다시 느끼실 수 있습니다. <제이누리>는 창간 2주년을 맞아 더 재미있고, 더 독특한 연재물로 다시 여러분을 찾아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제이누리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전 제주에 정착,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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