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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시평] 지방권력과 폭력조직의 연계, 검.경이 밝혀야 할 '실체적 진실'

 

1998년 민선 2기 6·4지방선거가 마무리되고 고작 며칠 뒤였다. 천주교 제주교구 노형성당에서 ‘중대한’ 기자회견이 있다는 연락이 왔다. 회견을 주도한 이는 당시 제주의 정의구현사제단을 이끌고 있는 임문철 신부였다. ‘선거판의 중대한 비리를 폭로할 것’이라는 예고가 있었다. 중앙·지방언론사를 가릴 것 없이 모두가 현장으로 내달렸다.

 

회견의 주인공은 손모(당시 31세)란 한 청년이었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누군가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그의 입에선 말 그대로 충격적인 폭로가 터져 나왔다. “당선자인 우근민 후보 수행비서 박모씨로부터 700만원을 받았다. 조직과 유권자를 관리하기 위한 돈으로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고 난 뒤 소외감이 밀려오고, 이런 잘못된 선거는 고쳐져야 한다는 생각에 양심선언을 한다”고 밝혔다. 충격이었다. 사실이라면 우 후보의 당선은 무효가 될 사안이었다. 엄연히 금품살포이자 유권자 매수에 해당하는 선거법 위반이었기 때문이다. 중앙일간지 기자이던 그 시절 마감시간에 맞춰 서둘러 기사를 송고하느라 허둥댈 수 밖에 없었다.

 

기사를 보내고 차분히 기억을 더듬다보니 돈을 받았다는 회견의 주인공은 얼굴이 기억나는 중학동창이었다. 연락을 시도해봤지만 도무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는 어찌된 일인지 도지사 후보의 선거법 위반을 그렇게 당당히 폭로해놓고 이후 어떤 수사 현장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검찰이 불렀는데 아예 행방을 감췄는지 아니면 아예 검찰선에서 그의 존재를 지웠는지 지금도 알 길이 없다. 그저 검찰의 공식답변은 “폭로자가 검찰의 수사에 응하지 않고 사라졌다”는 것 뿐이었다. 그 시절 검찰의 답변은 이렇듯 말이 안되는 것 투성이었다.

 

물론 그 이후에도 그랬지만 그 시절 선거는 광기어린 불법의 난장판이었다. 6·4선거를 이틀 앞둔 6월2일 제주에선 경쟁후보간 대규모 군중유세가 펼쳐졌다. 지금과 달리 대규모 야외유세에 모인 군중수를 놓고 지지도와 세를 가늠하던 시기다. 선관위는 6월2일 우근민 후보 측의 종합경기장 유세를 모니터링 한 뒤 “79대의 전세버스를 이용, 조직적인 유세군중 동원이 벌어졌다”는 혐의를 적발해 검찰에 고발했다. 그 사건은 우근민 후보 측 자원봉사자인 이모씨가 구속되고 4명이 불구속입건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그해 6월25일 제주지검의 중간수사결과는 동원된 버스가 무려 132대나 된다는 사실만을 확인했을 뿐 몇 명이 책임지는 선에서 끝났다.

 

 

이제 그 6·4선거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마당에 폭로기자회견을 한 손모 청년의 행적을 쫓는 건 기자들만이 아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한 변호사는 그를 적극적으로 달래고 설득하며 그가 법정에서 제대로 진술할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이미 ‘도지사의 권력’이 된 당선자 그룹으로부터 그를 분리, 부정선거의 실체를 낱낱이 밝히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는 그 시절 당선자였던 우근민 후보의 경쟁상대 신구범 후보의 법률자문역 이승용 변호사다.

 

이리 보면 이승용 변호사의 행동은 선거 상대방을 낙선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일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런 성정의 인물이 아니다. 특정정파에 매몰되는 인물이 아니다. 그 시절 제주에선 보기 드문 중견검사 출신 이 변호사는 사실 정의감이 강했다. 학창시절과 그의 검사시절을 기억하는 주변인들은 누구나 그 평가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제주에 대한 사랑도 남달랐다. 제주에선 그리 오래도록 질곡이었던 ‘4·3’에 대해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천착해왔다. 1999년 말 당시의 여당과 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와 한나라당이 합의, ‘4·3특별법’ 법안 초안을 만들기도 전인 1998년 7월2일 그는 이미 한 편의 논문을 써냈다. 그 논문의 제목은 ‘4·3, 그 문제와 해결의 법적 측면’이다. 4·3 희생자들의 원혼을 위무하고 유족을 대우하기 위한 그의 고민이 절절히 담겨 있다.

 

 

이 변호사는 1999년 11월 5일 오전 6시 48분 시신으로 발견됐다. 제주시 삼도2동 북초등학교 옆 체신아파트 앞에 주차된 자신의 쏘나타 차량 운전석에서다. 서울 동부지검, 부산지검 검사를 지낸 당시 꽤나 제주에서 이름을 날리던 고(故) 이승용(당시 45·제주시 일도2동) 변호사의 시신은 처참했다. 가슴과 배, 왼쪽 팔꿈치에 예리한 흉기로 찔린 듯한 외상이 확인됐다.

 

당시 이씨를 부검한 부검의는 이씨가 누군가로부터 살해당한 것으로 보았다. 부검 결과 직접적인 사인은 심장 관통에 의한 과다출혈이었고, 왼쪽 팔꿈치 관통상은 방어하는 과정에서 흉기에 찔려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는 소견이 나왔다. 차량 주변엔 그가 흘린 피가 흥건했다. 사건현장은 아수라장이었고, 용의자는 단서를 전혀 남기지 않았다. 인적이 드문 새벽에 일어난 사건이었고 목격자도 없었다. 더욱이 살해도구나 뚜렷한 증거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폐쇄회로(CC)TV도 대중화되지 않아 사건 현장에 없었다. 도무지 용의자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당시 피해자가 변호사란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파문은 컸다. 항간에는 수임사건에 대한 불만 혹은 원한에 의한 계획적 살인이 아니냐는 소문이 나돌았다. 하물며 애꿋게도 유족인 그의 아내가 용의선상에 오르기도 했다. 경찰은 당일 행적을 토대로 수사를 이어갔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사건이 점차 미궁으로 빠져 들어가자 경찰은 폭력배나 불량배와 시비가 붙어 우발적으로 피살됐을 가능성에 초점을 다시 맞춰 현상금 1000만원을 내걸고 전단지 1만여장을 돌렸다. 그러나 이 역시 무위로 끝났다. 결국 전담수사본부가 1년 만에 전격 해체되면서 용의자 검거에 실패하고 말았다. 몇 년 뒤 이 변호사의 아내와 가족은 제주생활을 청산, 남편의 고향 제주를 떠났다.

 

영구미제 사건이 될 뻔한 이 변호사 피살사건은 돌연 전환점을 찾았다. 지난해 중순의 일이다. 최근 구속된 김모(55)씨가 지난해 6월 SBS ‘그것이 알고싶다’ 프로그램에서 살인을 교사했다고 자백하는 취지의 주장을 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제주지역 폭력조직 유탁파의 전 행동대원 김씨는 지난해 6월 27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인터뷰에서 1999년 10월 당시 조직 두목인 백모씨로부터 범행 지시를 받았고, 동갑내기 손모씨에게 이 변호사 살해를 교사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곧바로 재수사에 착수했다. 지난 4월 인터폴에 해외에 있는 김씨에 대한 적색수배 요청을 했다. 김씨는 캄보디아에 체류하다가 지난 6월 23일 불법체류 혐의로 현지에서 검거됐다. 뒤이어 지난 5일 추방이 결정돼 18일 국내로 강제 송환됐다.

 

그가 왜 방송에 출연했는지 이유도 수사과정에서 드러났다. 구속된 김씨는 “사건 당시 이 변호사의 가족이 용의자 선상에 올랐다. 방송 출연을 통해 그에 대한 억울함을 풀어준 뒤 유족 측으로부터 사례비를 받아서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오기 위한 여비를 마련하려고 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그러나 선후관계를 들여다보면 이 변호사 살인사건의 직접 피의자는 김씨일 가능성이 높다. 김씨가 두목의 지시를 받았다던 1999년 10월 두목 백씨는 교도소에 복역 중이었고, 살인을 한 것으로 지목된 손씨는 1998년 8월20일 연동에서 강도사건으로 입건돼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체를 밝혀줄 손씨는 2014년 사망했다. 2008년 사망한 두목 백씨도 이미 고인이 돼 김씨 주장의 신빙성은 더 검증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황으로만 놓고 보더라도 이제 이승용 변호사 피살사건은 정면승부를 걸어야 할 시점에 놓였다. 정면승부의 대상은 실체적 진실이다. ‘공소시효 완성’ 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핵심은 캄보디아에서 압송된 피의자 김씨가 살인교사가 아닌 직접 살인을 했는지 여부가 아니다. 그가 살인자란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왜 그가 이 범행에 가담했는가가 더 중요하다. 살인교사라 할지라도 그에게 범행을 지시했고, 지시하도록 만든 이유가 있을 것이며 그 배후는 당연히 드러나야 이 사건은 그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이 된다.

 

검·경수사권 조정의 국면에 검찰은 “경찰과 협력하며 이 사건을 주시하고 있다”는 이례적 발표를 했다. 폭로 기자회견을 한 한 청년이 돌연 행적을 감춰도, 대규모 버스동원 실태가 나와도 잔챙이 꼬리 자르듯 사건을 덮어 끝냈던 과거의 검찰이 지금은 아니길 바란다. 허둥지둥 수사에 아무런 수사단서도 발견하지 못하고 수사력에 한계를 보였던 20여년 전 경찰과 지금의 경찰은 다를 것이라고 본다. 지금까지 나온 얘기만으로도 누구나 지방권력과 토호, 폭력조직의 연계정황이 뚜렷한데 기껏 한명을 사법처리하는 것만으로 끝내서 될 일인가?

 

그것만으론 이 사건은 진실과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제 그 배후가 누군지 찾아낼 ‘골든타임’이 다가왔다. 살인의 배후는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 이 기회마저 놓친다면 우린 ‘악의 세력’들에게 패배를 인정하는 꼴이 된다. 검·경찰의 분투를 빈다. [제이누리=양성철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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