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25일은 어느덧 김택화 화백의 서거 17주기를 맞는 날이다. 참으로 세월의 빠른 흐름에 무상함을 느끼는 시간, 먼저 떠나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그가 제주에 남긴 예술혼을 다시 새겨보는 자리를 마련하고 한다. 김택화는 천성이 화가라는 이름에 걸 맞는 인물이었다. 제주에서는 ‘택화화실’, ‘택화풍’이라고 그를 지칭하던 대명사가 있어 그의 스타일을 대변했었다. 언제라도 떠오르는 그의 첫 인상은 그림이 곧 그였다는 생각이다. 아담한 키에 평소 챙이 없는 모자를 즐겨 쓰고 말을 매우 적게 하면서 빙긋 웃기만 하는 스타일은 모르는 누가 봐도 딱 첫 눈에 화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 스타일은 환경이 만드는 것이다. 몰두하는 일의 깊이가 클수록 그것의 그림자가 덧씌워지는 법이니까. 우리는 그것을 ‘한 몸 되기’라고 하며 그 사람이 풍기는 인상으로 남는다. 인상은 자주 대하는 대상의 영향을 받아서 점점 그것을 다루는 행위자의 특성을 갖게 된다. 김택화는 ‘처음이 많은 화가’이다. 사람들은 ‘처음이 많은 화가’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할 것이다. 처음이란 시작, 기원처럼 시간적 의미로서의 출발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원이란 ‘원인의 이유를 설명하는 발단’이 되거나 무엇인가 ‘설명하기에 충분한 시작’이라는 의미가 있다. 화가에게 행위나 사건의 시작이란, 어떤 의도한 주제를 첫 번째로 수행하는 것, 미술활동을 말하는데 화가라면 당연하게 창작에 대한 발표, 즉 전시 행위가 되는 것이다. 거기에는 특정 장소성과 함께 시간성의 의미를 포함하게 된다. 김택화에게 ‘처음’의 의미는 제주인이라는 특정 장소성(고향)에 기반하면서 처음의 시간성(언제)이 어디서,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졌느냐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 지금의 의미는 그 처음이 주는 의미와는 다르겠지만 화단이 형성되지 못한 초기 제주의 상황으로 볼 때 이런 처음의 의미는 미술사적인 맥락에서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누가, 무엇을, 어디서, 시작했는가? 제주미술인으로서 김택화가 처음 시도한 미술활동을 네 가지를 정리하면, 제주 극장 간판을 공동(김택화, 고영만)으로 처음, 제주 추상화가로서 처음, 상품 디자인을 처음, 올레를 그린 화가로 처음인 것이다. 1) 현대극장 성길사한(징기스칸) 간판 중학생으론 처음 1950년대 한국전쟁기에 김택화는 오현중학교를 다녔고, 고영만은 제주중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로 지내면서 사라봉, 용두암 등 제주시 곳곳에 스케치를 다녔다. 당시만 해도 배고픈 시절에 중학생에게 돈이 있을 턱이 없었다. 둘은 마침 현대극장으로부터 극장간판을 그려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 귀한 시대였고 약간의 수고비를 준다는 말에 둘은 솔깃하여 합작으로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영화 포스터의 내용은 ‘성길사한’, 곧 징기스칸이었다. 먼저 고영만이 징기스칸의 얼굴과 싸움 장면을 그리면, 김택화는 남겨둔 빈 공간에 새로 글씨로 크게 ‘성길사한’이라고 썼다. 두 사람은 거의 하루 종일 그려서 약간의 돈을 받으면 주변에 있는 중국식 찐빵을 맛나게 사먹었다. 중학생이 극장 간판을 그리게 된 것은 간판을 그리던 육지 사람이 어떤 사정으로 인해 자리에 없자 대용으로 급하게 극장간판을 그리게 된 것이다. 사람에게 이별은 언제나 있다. 만남과 헤어짐은 경우를 달리해서 반복될 뿐 그것을 거부하지는 못한다. 김택화가 서울로 떠나기 전인 1957년 8월 14일부터 20일까지 고영만에게 만날 날을 기약하면서 둘은 일주일간 제주시 오아시스 다방에서 2인전을 열었다. 2) 제주 추상화가로서 처음, 멍 때리는 추상화 <작품 7> 고영만은 중학교를 졸업하여 제주 사범학교로 진학하고, 김택화는 형님이 체신청에서 근무하는 서울로 가서 전보 배달로 고학을 하며 홍익대학교에 입학했다. 누구보다 부지런했던 김택화는 아침 일찍 다른 학생들이 등교 하기 전에 늘 뎃생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학생이었다. 1962년 22세의 김택화는 대학교 2학년생이었다. 당시 국전은 11회를 맞았는데 김택화가 추상화 작품 <작품 7>을 출품하여 특선을 받은 것이다. 당시의 회화부문 특선은 모두 23명이었고 이들에게서 대상과 문교부장관상이 가려지는 구조였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이 23명의 특선자 중에는 제주와 연관된 사람들이 있었다. 김택화의 스승 홍종명, 현재 저지 현대미술관에 전시관이 마련돼 있는 박광진, 전 제주대 교수 강길원이 그들이다. 11회전 심사위원은 15명, 이들 중 김환기, 박수근, 장리석 등이 속해 있었다. 1962년의 미술계 이슈는 매우 뜨거웠다. 무엇보다도 당시 진보적인 종합지 『사상계』에서 국전을 새롭게 재조명한 것이었다. 이름하여 국전 ‘선외선’이다. 이 국전 ‘선외선’은 1949년부터 시작된 국전의 공정성을 재점검하기 위해 박정희 군사쿠데타 이듬 해인 1962년 국전 11회부터 처음 시작한 것이다. 이전 국전 10회전을 넘기면서 온갖 비리가 노출돼 세상에서는 미술계에 대한 불신 풍조가 팽배하자, 그것의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 상징적으로 수상작을 제대로 평가해보자고 마련한 심사였다. 이 심사는 미술계에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사상계』에서 내세운 심사위원은 5명이었는데 국전 심사위원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조각가 백문기, 서양화가 박서보, 미술평론가 이경성, 동양화가 박래현, 서양화가 김영주 등이 그들이다. 심사 방식은 이들 5명이 각자 자신이 볼 때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작품 1점을 골라 평을 하는 것이었다. 국전 11회전에 출품된 작품을 ‘심사위원들이 내가 좋아하는 작품’으로 선정하여 국전 ‘선외선’으로 『사상계』에 화보를 싣는 것이다. 김택화의 <작품 7>은 심사위원 박서보에게 채택되어 작품 추천평을 받을 수 있었다. “김택화의 <작품 7>을 나는 기꺼이 추천한다. 흔히 빠지기 쉬운 추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의 핵을 이루는 것은 바로 멍한 점, 이것이 그의 예술내용을 형성한다. 외향적 발산보다는 내향적 집념형. 하나 흠이 있다면 긴박감이 허술하다고나 할까. 22세의 작품치고는 그 세계가 놀랄만큼 성숙하다"라고 추천사를 썼다. 김택화의 <작품 7>은 뜨거운 추상이라고 하여 서정적인 추상을 말하는 것이다. 짙은 갈옷의 색이 화산암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화면 중심을 비켜 위와 옆으로 약간 치우쳐 어두운 색으로 덧나듯 굵은 선이 흐르고 중간 상하로 그어진 선 사이로 발색된 노란계열의 색이 은은하다. 이 작품은 매우 차분하여 굳은 화산 대지로도 보이고 완고하고 뚝심있게 묵시(默視)로써 세상을 보는 듯하다. 무거운 기운이 내려앉아서 우리에게 불편한 마음을 전해준다. 제주로부터 전해지는 암울한 마음이 오래도록 응고된 채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당시에 가난에 허덕이던 그의 삶도 역시 그렇고. 3) 그라(래)픽 디자인전 처음, 한라산 소주 라벨디자인을 해 김택화는 국전 11회전 특선 이후 낙향하여 제주에서 몇 번의 전시를 가졌다. 1963년 7월 뉴욕 다방에서 개인전을 연 후 이듬해 7월에는 다시 춘홍다방에서 개인전을, 그리고 1965년 8월 제주 화가로서는 처음으로 ‘그라픽 디자인전’을 길다방에서 열수 있었다. 아마도 서울 생활의 영향으로 상표 디자인에도 관심을 가진 것으로 생각된다. 몇 안 되는 향토 기업 가운데 대표적인 주식회사로는 한라산 소주가 있었다. 당시 소주는 24도 짜리와 21도 짜리 희석식 맑은 술을 팔았다. 한라산 소주의 그림은 남쪽에서 본 한라산으로 머리에 흰눈이 쌓인 모습이었고 그 흰눈 때문에 하늘은 더욱 파랗게 보였다. 겨울이면 그 술병이 춥게 느껴지고 더운 여름에는 시원하게 느껴지는데 술을 마셔서 취기가 오를 수록 그 술병의 디자인은 더욱 진가를 발휘했다. 몸이 열이나 더워지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시원한 느낌을 주어 소주를 더 마실 수 있었다. 사람들은 한라산 술병을 보면서 원시적이랄까, 마치 북한 술병 같다는 말을 자주 했다. 1994년 필자는 김택화 화백과 함께 지인 4명이서 세종갤러리 전시 오픈을 마치고 시민회관 동쪽 작은 주막에서 한라산 소주를 마신 적이 있었다. 그때 김택화 화백이 한라산 디자인 라벨(label)에 대해 말해주어 나는 그제서야 한라산 라벨 디자인이 그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번은 한라산 소주 회사에서 푸른 색 라벨 대신 연두색 디자인에 금색 글씨로 디자인을 바꾼 적이 있었다. 기억하기로는 1년도 안 돼 다시 김택화 디자인 라벨로 컴백하여 오늘에 이른다. 소문에 의하면 소주 소비량이 연두색 라벨이 파란색 디자인만 못하다는 것이었다. 취할수록 시원한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4) 올레를 그린 화가로서 처음 변화란 과거를 잃어버리는 것의 시작이고, 정체(停滯)란 미래가 없는 것을 말함이다. 변화나 정체 모두 출발은 현실에서 시작되니 현재를 밟고 선 우리에게 이 둘다 변화이자 멈춤으로써 방식이 다른 것일 뿐이다. 하나는 있던 것을 지워버리고 기억에 남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있던 것 위에 쌓아서 새로 경험해야하는 것이다. 어느 것이 좋고 나쁜지는 기억과 경험에서 익숙한 것들 먼저 떠오를 것이다. 지난 것은 아름답게 느껴지고 다가오는 것은 신선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무상함과 기대는 가는 방향이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같은 것이다. 모든 기대도 끝내 무상하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올레는 초가 건축의 한 구조이다. 원래는 마소 관리, 바람 막음, 경계 구분, 구조의 ᄀᆞᆸ가름을 위한 것이다. 올레는 새로운 이름으로 제주도 전역의 길로 거듭났다. 2007년 첫 코스를 개통한 이래 5년 여 만인 2012년 마지막 21코스를 완성했다. 모든 것은 가지를 벋는다. 변화의 물결을 막을 수 없지만 또 막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은 새로 만들어지지만 그것도 시간이 가면 자연스럽게 정착되고 사라진다. 결국 시간이 그것을 정리하기 때문이다. 제주 전역이 올레가 된 지금, 1965년 김택화는 제주에 귀향하면서부터 구상으로 방향을 바꾼 뒤 1978년까지는 인물이나 정물, 부분적으로 배와 풍경, 절경을 많이 그렸으나 1979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제주도 전체로 작품의 장소와 소재를 넓혀 나갔다. 그후 아름다운 제주 풍광에 홀려 제주도 전역을 캔버스에 담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른 지금은 본의 아니게 그때 그린 그의 그림들이 최초로 올레를 그린 작품이 되었다. 마을 길, 집올레, 초가, 오름, 해안, 포구,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모든 절경 지점이 그의 작품의 대상이 되었다. 현재 김택화미술관에 전시돼 있는 작품들 앞에 서면, 보는 사람이 마치 올렛길을 걷다 잠시 멈추어 서서 마을 안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것도 40~50년전 옛 올렛길을 말이다. 길은 길을 따라가고 가다가 멈출 곳인 폭낭을 바로 돌아 마을의 집올레로 들어가면 아침의 강렬한 햇살에 깨어나는 제주의 마을과 초가를 볼 수 있다. 다시 햇살은 마을을 넘어 잠녀들과 함께 해안으로 가서 바다의 여(礖)에게 말을 건다. 햇살은 다시 포구를 비추면서 아침에 바다에서 들어온 배를 따스하게 비춘다. 특히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 올레는 제주의 폭낭, 초가와 올레를 기록화로 삼을 수 있을 만큼 많이 그렸다. 폭낭, 눌, 돌담, 배, 사구(沙丘), 해변, 파도, 마을길, 정주석, 초가, 폭설과 잔설, 바다 용암들, 구름과 바람마져 그에게 소중한 제주의 풍경이었고, 그것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 시간과 때를 맞춰서 모두 새롭게 태어난다. 풍토의 새로움은 화가의 독창성을 부추긴다. 1984년 6월 동인미술관에서 지난 한 해 동안 그린 작품들을 모아 마련한 열 번째 개인전에서 그는 고백처럼 자신의 심경을 말하고 있다. “이곳 고향 산천 속에서 살아온 제가 그동안 무수히 스쳐지나 다니면서도 미쳐 느껴 볼 수 없었던 그 소박하고 사랑스러운 아름다움들을 손이 닿는데로 마음이 가는데로 표현해 보았습니다만 다니면 다닐수록, 그리면 그릴수록 조그마하게만 생각되어지던 섬 덩어리가 이토록 거대하고 무한한 것의 놀라움에 가슴설레일 뿐입니다.” 김택화는 작은 섬으로 알았던 제주가 거대한 우주처럼 무한한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크고 작은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참새에게는 독수리가 크고 개미에게는 참새가 큰 것처럼 크기란 존재자의 규모에 대한 체적(體積)으로 느끼는 비례일 뿐이다. 작다고 생각할 때는 작아보여도 크다고 인식하게 되면, 또 그것을 바라보는 당사자의 시선은 확장된다. 공간이 작다고해도 그 공간을 확장해서 해석할 수 있는 눈이 열려있다면 그 공간은 무한대와 다름 없을 것이다. 김택화는 작은 것에서 대우주를 보는 눈을 가진 화가였다. 자연이 회귀하는 것처럼 올레의 화가도 추상화에서 구상화로 돌아왔다가 만년에는 또 다시 구상화가 점점 해체의 길을 가면서 공간이 생략되고 사라지는 감멸기법(減滅技法)을 추구했다. 마치 화면이 지워지면서 실제 공간으로 연결되는 느낌이 되도록 점점 사라지는 작업을 하던 김택화 자신도 스스로 자연으로 돌아갔다. 2006년 6월 25일의 일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 김택화= 1940년 용담 2동 출신으로 제주북교, 오현중, 서울 동북고, 홍익대 미대 회화과를 중퇴했다. 1962년 홍익대 2학년 때 국전 11회에 국전 특선을 하고 1964년 추상화 그룹 ‘오리진 회화협회’ 창립 맴버로 활동했다. 홍익대 미대 2학년 때 학비문제로 중퇴하여 부득불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1965년 제주에 내려와서 구상으로 작업을 바꾸었다. 귀향 직후 신성여고 미술교사와 1974년부터 줄곧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출강했다. 한국미술협회 제주지회장, 제주예총지부장, 제주도립미술관 건립추진준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함덕에 김택화미술관이 있다. 제주도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공립 김택화미술관을 추진중에 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 곤괘(困卦) 곤(困)은 빈곤(貧困), 초라하게 되다, 영락(零落)하다 뜻이다. 피곤할 때는 충분하게 쉬면 된다. 빈곤할 때에는 패기가 있어야 한다. 곤란을 당했을 때는 열심히 공부하여야 한다. 어찌 할 도리가 없을 때 와신상담하여야 한다. 인생을 웃으며 살아야 한다. 곤궁해져 영락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구덩이가 많으면 곤궁해진다. 어려워지기 때문에 곤궁해지는 것이다. 어찌 할 수 없다. 올랐으나 그치지 않으면 궁해진다. 이것은 좋아지지만 곤궁해지는 것이다. 물극필반1)이다. 곤(困)은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한다. 쓰러진다. 영락이다. 『주역』은 말한다 : 당신이 곤궁해졌을 때 재난을 당하지 않고 싶고 막힘없이 통하고 싶으면, 반드시 냉정하게 대하여야 한다. 몸은 영락했지만 스스로 그 안에서 여전히 기쁨을 느껴야 한다. 마음이 불타는 듯 초초해서는 안 된다. 자기의 이상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 와신상담하여야 한다. 중정(中正)의 원칙을 견지하여야 한다. 2천 년 전에 장강 하류에 2개의 국가가 있었다. 오(吳)와 월(越)이다. 둘은 상대를 정복하려고 자기 국가를 부강 시키려 노력하였다. 회계(會稽) 전투에서 월나라가 패한다. 월왕 구천(句踐)은 어찌 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오왕 부차(夫差)에게 강화를 구할 방법밖에 없었다. 부인과 함께 오나라에 가서 오왕의 노복이 되겠다고 했다. 오나라 대신들은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는 월나라를 멸해야 된다고 권했다. 승리에 취한 오왕은 교만해져서 여러 건의를 듣지 않고 구천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구천 부부는 오나라에서 조악한 포의를 입고 돌집에 살면서 오왕의 말을 기르기도 하고 쌀을 찧고 맷돌질도 하면서 굴욕의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오나라에서 3년을 견디고 나서야 자기 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귀국한 후에 월왕 구천은 원수를 갚고 원한을 풀려는 각오를 한 순간도 잊지 않았다. 낮에는 친히 나가 밭을 갈고 저녁에는 섶나무 위에서 잠을 잤다. 방에 담낭도 하나 걸어놓았다. 자신에게 회계전투에서 패배한 치욕을 잊지 않도록 밥을 먹을 때마다 쓰디 쓴 담낭의 맛을 봤다. 20여 년을 노력해 월나라는 강국이 됐다. 그때서야 출병해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고심하며 스스로 분발시키고 와신상담해, 10년은 인구를 늘리고 10년을 훈육하였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1년, 2년, 아니 10년을 기다릴 수 있다! 고심하며 분발시키고 와신상담한다면 시간은 영원히 당신이 가지고 있는 왕자다운 풍모를 덮을 수 없다. 승리하려는 갈망을 절대 없앨 수 없다! “봉황의 열반, 불속에 뛰어들어 거듭 태어난다.”2) 봉황은 오백 년에 한 번씩 인간 세상의 모든 나쁜 것들을 가지고 불 속으로 뛰어들어 아름답게 삶을 끝내고 인간 세상을 상서로움과 행복으로 바꾸어 준다. 봉황은 아라비아 신화에 나오는 불사조로 500년마다 향나무 가지에 불붙여 자신을 불사른 후 다시 태어난다고 한다. 그렇기에 봉황이 자신을 불사른 후, 불속의 고통을 견뎌내고 더 강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거듭난다. 거듭 태어난 봉황이 불속에서 날개를 치며 하늘을 날 때 그 찬란한 빛이 비추는 것이 어찌 우리 두 눈뿐이겠는가? 그것은 잔혹한 아름다움이다. 희망의 아름다움이다. 1) 물극필반(物極必反), 사물의 전개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한다는 뜻이다. 흥망성쇠는 반복하는 것이므로 어떤 일을 할 때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세강필약(勢强必弱, 세력이 강성하면 반드시 약해지기 마련이다)과 연결해, ‘물극필반,세필강약’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도덕경》에 나오는 물장즉노(物壯則老, 만물은 장성했다가는 쇠퇴하기 마련이다)와 같은 의미다. 2) 鳳凰涅槃,浴火重生.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비싸면 품질이 좋을까. ‘가격=품질’이라는 공식이 모두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 가격이 비싸야 품질이 좋다고 인식하는 시장은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면 가격이 상승할수록 제품을 더 특별하다고 인식해 수요가 증가하는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는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는 지금 같은 불황기에도 먹힐까.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이들도 많겠지만, 답은 ‘그렇다’이다.‘ 샤넬 클래식 플랩백’은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의 대표 제품 중 하나다. 1929년 손으로 가방을 들고 다녀야 했던 여성들의 불편함을 주목한 코코 샤넬이 군인의 방에서 영감을 얻어 어깨에 멜 수 있는 긴 스트랩을 적용해 디자인한 것이 그 시작이다. 샤넬 클래식 플랩백은 샤넬이 가격 인상을 단행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제품이기도 하다. 그 결과 2019년 792만원(라지 사이즈 기준)이던 클래식 플랩백의 가격은 2023년 현재 1570만원이다. 4년 사이 98.2%나 가격이 뛰어 이젠 경차 한 대 가격과 맞먹는다. 지난해에만 네차례(1·3·8·11월)가격을 올리고 올해도 벌써 두차례(3·5월) 가격 인상을 단행한 샤넬이지만 가격이 무섭게 올랐다고 수요가 꺾이진 않는다. 가격이 오르고 올라도 샤넬을 손에 넣기 위한 오픈런은 계속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가격을 품질 또는 수량의 지표로 인식하곤 한다. 높은 가격을 지불하면 그만큼 제품의 품질이 좋거나 많은 양을 받을 거라고 인식한단 얘기다.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감소하는 일반적인 경제법칙과 달리 이런 인식을 갖고 있으면 오히려 수요가 능가한다. 미국의 19세기 경제학자 베블런(Thorstein Bunde Veblen)은 그의 유명한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이런 현상을 적시한 바 있다. 가격이 오르면 제품을 고급이거나 특별한 것으로 인식해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을 그의 이름에서 따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라고 부르는 이유다. 베블런에 따르면 그 배경에는 비싼 가격을 지불할 수 있는 재력과 지위를 과시하려는 유한계급의 과시성향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어떤 제품이 베블런 효과의 대상이 될까. 고급 자동차나 디자이너 의류, 빈티지 와인, 모던 아트, 보석류, 호텔이, 크루즈 등이 주요 대상이 된다. 베블런 효과가 나타나는 제품엔 세가지 공통점도 있다. 첫째, 사람들에게 잘 보일 수 있는 제품이어야 한다. 대면이든 SNS에서든 과시용으로 적절한 것이어야 한다. 둘째, 소비자가 제품 품질을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워야 한다. 그래야 가격을 품질의 지표로 더욱 신뢰하기 때문이다. 셋째, 희소성을 가져야 한다. 고가의 가격을 지불하면서 아무나 그 특별한 지위나 재력, 취향을 얻게 되는 제품은 큰 의미가 없다. 요즘 같은 불황기에도 이런 베블런 효과는 개의치 않고 작동한다. 어느 사회에나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지불해 주목받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작게는 고급 레스토랑이나 유기농 슈퍼마켓을 고집하는 것에서부터 크게는 고급 자동차나 고급 별장을 소유하는 것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베블런 효과가 작용한다. 물론 보는 사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준다는 부작용도 있다. 하지만 부자들의 지갑을 열고자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매우 유용한 전략 중 하나다. 그렇다면 업체들은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무조건 가격을 올릴 게 아니라 제품에 어떤 ‘특별하고 우수한 희소성’이 있는지 알려야 그들의 지갑을 열 수 있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경자 가톨릭대 교수·김미란 기자]
약속 - 크리스틴 페잉 첸(Christine Peiying Chen) 너는-- 비를 내릴 수 없는 구름, 떨어질 수 없는 별, 지지 않는 달 내려오지 못하는 눈송이, 사라지지 않는 가락-- 그리고 제목 페이지에 남아있는 한 구절이다. 싸락눈만큼 많은 알약을 먹어도, 통증은 하얀 점처럼 날카롭다. 넘어지면 안 돼, 내가 도착하기 전에 약속했듯이 고개를 숙여 장미꽃 냄새를 맡고 내 시를 읊어봐-- 덫에 걸린 호랑이, 잠시 평원에서 쉬고 있는 너, 인내심을 가져: 나는 이미 가는 중이야. Promise (By Christine Peiying Chen) You are-- A cloud that cannot rain, A star that cannot fall, a moon that cannot set A snowflake that cannot come down, a melody that cannot wander away-- And a verse lingering on the title page. Even if the pills you have to take as much as snow, The pain is as sharp as the white spot You mustn't fall, before I arrive As you have promised me Please lower your head to sniff the roses, and intone my verses-- You, a trapped tiger resting in plain momentarily, be patient: I am already on my way. ◆ 크리스틴 페잉 첸(Christine Peiying Chen) = 의료 전문가이자 뉴질랜드 신문의 칼럼니스트이다. 2022년에는 호주 시드니 포에트리 페스티벌(Sydney Poetry Festival)의 조직 및 출판에 참여하여 특별 공헌상을 받았다. 그는 2021년과 2019년에 뉴질랜드 문학상(중국 문학)을 두 번 수상했다. 2023년 세계 시의 날 축제의 국제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2023년도 국영 '카자흐 문학(Kazakh literature)' 에서는 중앙아시아 문학을 번역하고 홍보한 그녀의 경험을 소개하는 인터뷰 기사가 다루어졌다. 현재 뉴질랜드 중국 작가 협회(New Zealand Chinese Writers Association)의 편집장 겸 이사다. 그의 최신 시는 중국어(대만, 2023)로 출판되었으며, 일부 작품은 '무상의 영역을 넘어(Crossing the Realm of Impermanence)' (시드니, 2022) 선집에 발표되었다. ☞ 강병철 작가 = 1993년 제주문인협회가 주최하는 소설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2016년 『시문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2년 제주대에서 국제정치전공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 특별연구원, 인터넷 신문 ‘제주인뉴스’ 대표이사, (사)이어도연구회 연구실장 및 연구이사, 충남대 국방연구소 연구교수, 제주국제대 특임교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제주통일교육센터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33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이며 국제펜투옥작가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제34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으로 재선임됐다. 국제펜투옥작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의 대표적인 위구르족 작가 중의 한 명인 누르무헴메트 야신(Nurmuhemmet Yasin)의 「야생 비둘기(WILD PIGEON)」를 번역 『펜 문학 겨울호』(2009)에 소개했다. 2022년에는 베트남 신문에 시 ‘나비의 꿈’이 소개됐다. ‘이어도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이어도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 ‘이어도로 간 어머니’로 월간 ‘문학세계’에서 주관한 ‘제11회 문학세계 문학상’ 소설부문 대상을 받았다. 한국시문학문인회에서 주관하는 제19회 ‘푸른시학상’을 수상했다. 강병철 박사의 시와 단편소설은 베트남, 그리스, 중국 등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소개되고 있다. 최근엔 중국의 계간 문학지 《국제시가번역(国际诗歌翻译)》에도 강 작가의 시 두편이 소개되었다.
"뭐가 그렇게 좋아?" "너랑 이렇게 같이 있잖아!" ☞ 오동명은? =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역사소설 <불멸의 제국> 소설 <소원이 성취되는 정원> 소설 <장군어미귀향가>등을 냈다. 4년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었다.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현재는 지리산 주변에 보금자리를 마련, 세상의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풀어내고 있다.
변호사 일을 수년째 하다 보니 여러 기관에서 법률 사례 강연을 해 달라고 요청을 받는 일이 많다. 그래서 평소 의뢰인들과 어떤 상담을 해 왔는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고 반복된 주제마다 있을 법한 사례를 구성, 강의안을 만들었다. 이 강의안으로 수년째 강연을 하고 있다. 그런데 여러 개의 주제 중 유독 청중들의 관심과 분노를 유발하여 질문이 끊이지 않는 주제가 있다. 민법에서의 ‘점유취득시효’라는 제도다. 민법 제245조에 의하면, 2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부동산을 점유하는 자는 등기함으로써 그 소유권을 취득한다고 기재되어 있다. 즉, 돌담을 기준으로 자기의 땅인 줄 알고 20년 이상 점유를 해 왔다면, 실제로 그 땅의 본인 소유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소유권자를 상대로 소유권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보통 이러한 주제를 사례로 구성할 때, A가 B의 땅을 자기의 땅으로 착각하여 20년 이상 점유를 한 경우 점유취득시효가 완성되어 소유권을 청구할 있다는 형식으로 구성을 하여 강의를 하게 된다. 그런데, 유독 이 사례에서 많은 청중들로부터 원성을 듣게 되고, 심지어 어떤 노인 분은 나쁜 변호사라고 하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셨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들어보면, 이 제도가 선량한 국민들의 재산권을 빼앗는 악법이어서 일반인들의 법감정에도 반하고, 이를 소개하는 변호사도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에서는 위와 같이 일반인들의 법감정과 동떨어진 점유취득시효제도를 왜 도입한 것일까? 이에 대해서 대법원은 부동산에 대한 취득시효 제도의 존재이유는 부동산을 점유하는 상태가 오랫동안 계속된 경우 권리자로서의 외형을 지닌 사실상태를 존중하여 이를 진실한 권리관계로 높여 보호함으로써 법질서의 안정을 기하고, 장기간 지속된 사실상태는 진실한 권리관계와 일치될 개연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여 권리관계에 관한 분쟁이 생긴 경우 점유자의 증명곤란을 구제하려는 데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대법원 2016. 10. 27., 선고, 2016다224596, 판결] 즉, 적어도 20년 이상 지속되어온 사실 관계는 존중되어야 하고, 이를 법으로 보호하여 법질서의 안정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 나는 수년간 청중들로부터 원성을 들으면서도 왜 점유취득시효 제도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일까? 나의 작은 바람은 일반인들이 점유취득시효제도를 제대로 알고, 이를 통해서 남의 땅을 빼앗으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땅을 빼앗기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법조문을 보면 민법에는 <'2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공연'하게 '부동산을 점유'하는 자는 등기한다>고 단순하게 기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난 수십 년간 이 제도를 통하여 남의 부동산을 빼앗으려는 자와 절대로 뺏기지 않으려는 자 사이에 쟁점이 있다. 20년은 어떻게 봐야 되는지, 소유의 의사가 무엇인지, 평온·공연하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부동산을 점유하는 행태가 무엇인지 등에 대하여 수많은 법적 분쟁이 발생해 왔고, 이로 인하여 그 동안 쌓인 판례의 양은 어마어마하게 방대하다. 즉, 이 제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공부를 하다보면, 어떤 입장에 처하게 되더라도 잘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찾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물론 점유취득시효 제도를 이해하고 공부하는 것은 나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법감정에 반한다고 막연하게 위 제도만을 탓할게 아니라, 나의 경우에도 점유취득시효제도와 관련이 있는지 인터넷으로 검색도 해보고, 책도 찾아보는 작은 관심이 나의 재산권을 지키고 행사하는 중요한 자세가 아닐까. 나의 재산은 가만히 있다고 유지.보존되지는 않는다. ☞홍광우는? = 대한변호사협회 부동산 및 형사전문변호사다. 현재 서귀포경찰서에서 경미범죄심사위원회 시민위원, 선도심사위원회 전문위원, 수사민원 상담센터 법률상담 변호사 업무를 맡고 있다. 또 서귀포시교육청 지방공무원인사위원회 위원, 서귀포지역 건축사회 법률자문위원회 위원, 서귀포시 노인복지관 고충처리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름드리 큰 나무도 털끝만한 작은 싹에서 생기고 ; 아홉 층의 높은 대(臺)도 터 닦기에서 이루어진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도덕경』) “큰 곳에서 착안하고 작은 것에서 착수하라.” 큰 목표를 가지고 관찰하고 작은 곳부터 손을 대라는 말이다. 모두 큰 것과 작은 것의 변증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큰일은 작은 일에서 시작하라. 작은 일은 큰일과 이어져 있다.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보라. 작은 모래알 속에서 천지를 보라. 물 한 방울 속에서 태양을 보라.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사람은 유순하고 겸손하며 정밀한 가운데서 세밀함을 구해야만이 해가 중천에 떠 있는 것 같이 사업이 발전하여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다. 축적되지 않으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은, 원천이 없는 물과 뿌리가 없는 나무나 다름없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못하면 축적 또한 사막 중의 작은 개울이나 다름없다. 이것이 승괘(升卦)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첫 번째다. 승(升)에 대하여 『주역』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 온유하고 유순하기에 큰 인물을 만날 수 있다. 추천, 발탁될 수 있다. 그래서 승진한다고 했다. 『주역』은 말한다. “올라가는 도는 반드시 대인을 따라야 한다.” 많은 사람은 특별한 배경이 없다. 자신의 능력도 뛰어나지 않다. 경영자의 얼굴빛을 봐야하는 나날이다. 어떤 때에는 단꿈을 꾸기도 한다 : 어느 날 갑자기 귀인이 나타난다. 자신을 보살펴 주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벼락출세한다. 사실, 여태껏 우리가 주의하여 좋은 인맥을 맺어나갔다면 삶에 귀인이 늘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귀인은 우리 친구이거나 동료이거나 어쩌면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일 수도 있다. 직업상의 귀인은 누구일까? 사장? 상사? ……아니면 어깨를 스치며 지나간 낯선 사람? 전문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렇다 : 대부분의 사람(33.61%)은 주위 모든 사람이 귀인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이외에 친구(19.13%), 상사(17.63%), 업무에서 협력하는 동료(11.95%)라고 생각하였다. 이외에, 대부분의 사람이 직장에 같이 있는 동료 모두가 귀인이라고 생각한다는 데에 동의하지만, 남성 대다수는 친구 중에서 귀인이 존재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였다. 많은 여성은 상사를 잠재적인 귀인으로 뽑고 있었다. 지역으로 나누어 볼 때, 북경인은 친구 중에서 귀인을 얻을 수 있는 인연이 많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상해인은 귀인을 만날 인연은 상사나 사장에게 기회가 많다고 생각하였다. 남방의 심천, 광주 일대에서는 상사와 친구가 반반을 차지하였다. 학력으로 보면, 전문대와 대학 학력자는 귀인을 만날 인연이 친구와 상사의 기회가 균등하게 있다고 보았고 ; 석사와 박사 학력자는 자신과 사장의 관계를 더 중시하였다. 사장이 미래에 자신의 승진이나 발전에 증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연구가 알려주는 것은 이렇다 : 당신과 세상의 어떤 사람도 그 사이에는 4명밖에 존재하지 않는다.1) 당신과 상대방이 어디에 있든 어떤 국가든 무슨 인종이든 어떤 피부색을 가지고 있든 상관없다. 당신과 낯선 사람 사이에는 4명만 존재한다. 즉 4명만 통하면 세상 모든 사람을 알 수 있다. 이상하게 여기지는 말라. 당신과 부시 혹은 빈 라덴 사이에도 4명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기묘한 6명 연결고리 중에서 두 번째 사람은 결국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어쩌면 당신의 부모일수도 있고 아니면 당신의 대학 동창일수 있다. 더 나아가 당신이 일하고 있는 사무실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청소부 아주머니일수도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라, 청소를 도와주는 아주머니의 인맥이 당신을 부시나 빈 라덴과 연결시킬 수 있다는 것, 기묘하지 않은가? 찬스와 귀인은 적당한 시기에 출현하는 적당한 사람, 사물의 조합체이다. 우리는 그런 완전하면서도 아름다운 교묘한 조합이 언제 나타날 것인가, 하는 것은 제어할 방법이 없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인맥을 통제하면서 스스로 더 많은 가능성을 창조해 내는 것뿐이다. 인맥이 좋다는 것은 다리 8개를 가진 문어와 같다. 모든 문어는 매일 매시간 끊임없이 모이고 뒤얽힌다. 단지 우리 자신이 알아차리지 못하고 마음을 두지 않기 때문에 귀인과 어깨만 스치고 지나쳤을 따름이다! 인맥 중의 지위가 높고 귀한 사람만 바라보고 있지는 말아야 한다. 귀한 사람만 바라보다가는 다른 더 많은 보통사람을 홀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당한 시기에 어떤 보통사람이 대세가 완전히 바뀌어 당신의 귀인이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주의하여야 할 것이 있다. 아무 성의도 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인맥은 제로와 같다. 인맥은 오랜 기간 동안의 축적이며 응집이다. 이것이 바로 『주역』 중의 ‘승(升)’의 지혜다. ***** 升卦 ䷭ : 지풍승(地風升) 곤괘(坤卦: ☷)상 손괘(巽卦: ☴)하 승은 크게 형통하여 이것으로 대인을 만나니 근심하지 말고 남쪽으로 가면 길하다.(升,元亨,用見大人,勿恤,南征,吉.) 「상전」에서 말하였다 : 땅속에서 나무가 나오는 것이 승(升)이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 덕을 순리대로 하며 작은 것을 쌓아 높고 크게 한다.(象曰,地中生木,升,君子以,順德,積小以高大.) 올라가는 도는 반드시 대인을 따라야 한다.(凡升之道,必由大人.) [傳] 승괘(升卦䷭)는 「서괘전」에서 “췌(萃)는 모이는 것이다. 모여서 올라가는 것을 승이라고 하기 때문에 승괘로 받았다”라고 했다. 사물이 쌓이고 모여서 더욱 높고 커진 것은 모여서 올라가므로 승(升)이니, 이 때문에 췌괘(萃卦䷬) 다음에 온다. 괘의 모양은 곤괘(坤卦☷)가 상괘이고 손괘(巽卦☴)가 하괘이다. 나무가 땅 아래 있으니 땅 속에서 나오는 나무이다. 나무가 땅 속에서 나와 자라면서 더욱 높아지는 것이 승괘(升卦䷭)의 상이다. 1) 6단계 분리 이론(six degrees of separation), 1967년 미국 하버드대 스탠리 밀그램 교수가 주장한 이론으로 6명만 거치면 서로 서로 모두 연결된다는 내용이다. 그는 임의로 추출한 160명을 대상으로 먼 도시의 특정인에게 편지를 전달토록 부탁했는데 평균 5.5명을 거쳐 편지가 도달한 사실을 알아냈다 : “당신과 모르는 어떤 사람 사이에 6사람 이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많아도 6명만 통하면 어떤 모르는 사람도 알 수 있다.” 이 이론을 근거로 당신과 세상의 어떤 사람도 그 사이에는 4명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식품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가공식품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식품첨가물은 식품을 가공하거나 조리할 때 식품의 품질 유지 및 향상, 변하거나 상하는 것 방지, 맛·향·색 향상, 조직감 부여 및 유지 등의 목적으로 식품 본래의 성분 이외에 첨가하는 물질을 말한다. 예부터 인류는 동·식물에서 얻은 천연 색소나 향료 등을 식품에 넣어왔다. 또한 우리 민족도 두부를 제조할 때 콩물에 간수를 첨가하고, 소석회로 곤약을 만드는 등 식품첨가물은 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다. 자연으로부터 얻어진 식품첨가물은 현재까지도 다양한 가공식품에 사용되고 있고, 산업혁명 이후 과학의 발전으로 화학적으로 합성된 식품첨가물이 개발되어 이 중 국제적으로 전문가들에 의해 안전하다고 인정된 것들만 현재 식품에 허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매우 엄격한 평가과정을 거쳐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입증된 물질만 식품첨가물로 허가하고 있다. 또한 여러 종류의 식품들을 같이 먹다 보면 식품첨가물의 섭취량이 계속 누적되어 과잉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가공식품마다 각 식품첨가물을 1일섭취허용량보다 훨씬 적은 양만 넣을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다. 즉 안전하다고 과학적으로 인정받은 물질만 식품첨가물로 허가되고 사용량도 정해놓은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품첨가물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다. 식품첨가물은 크게 천연 첨가물과 화학 합성물로 나눌 수 있다. 천연 첨가물이 자연의 동·식물이나 광물에서 유효 성분을 추출하고 분리·정제하여 얻어낸 물질이라면 화학 합성물은 화학반응을 통해 만든 것이다. 화학 합성물에는 원래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을 화학적으로 만든 것과 자연에 없던 물질을 새로이 화학 합성한 것이 있다. 그러면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을 왜 화학적으로 만들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커피 음료는 커피 원두를 추출해서 만드는데 이 과정에서 향이 잘 날아가기 때문에 나중에 따로 커피향을 첨가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천연 향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화학 합성한 향을 넣는 제품도 있다. 아는 커피 원두로부터 직접 커피향을 추출하려면 많은 재료비가 들기 때문에 과학자들이 커피향의 화학 구조를 밝혀내고 이를 공장에서 합성하여 대량생산함으로써 비용을 크게 낮추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비타민 C의 경우에도 화학적으로 합성한 것과 레몬 같은 천연 식물에서 추출하여 만든 것이 있는데 가격에서 차이가 난다. 이렇듯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을 합성하여 만든 것은 서로 화학 구조가 동일하기 때문에 화학적으로 합성하였더라도 정제 과정에서 불순물이 잔류하지 않는다면 안전성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식품첨가물의 유해성 논란은 원래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을 화학적으로 합성한 것들에서 많이 제기되고 있다. 즉 인류가 일상에서 접해오지 않았던 물질에 대한 불안감이 있는 것이다. 식품첨가물의 사용으로 식품의 보존성이 향상되어 식품 재료가 버려지는 것을 많이 줄일 수 있었고, 가공식품의 기호(맛, 향, 색) 및 품질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 안전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어 왔다. 식품첨가물에 대한 우려로는 체질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식품첨가물의 과다섭취에 의한 알레르기 유발 가능성, 식품첨가물에 함유되어 있는 불순물이 인체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 식품 본래의 성분과 반응하여 유해 물질을 생성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한 가지 식품 첨가물은 문제가 없지만 두 종류 이상의 첨가물을 동시에 사용하면 화학 반응으로 유해 물질이 만들어 지는 경우가 드물게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합성 비타민 C와 식품의 부패를 막아주는 합성 보존료인 안식향산나트륨(벤조산나트륨)을 각각 사용했을 때는 독성이 없으나 둘을 혼합하면 조건에 따라 화학 반응을 통해 미량이지만 유독 물질인 벤젠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알려졌고, 실제로 두 물질이 함께 들어있는 제품이 회수된 적도 있어 기업에서도 합성 보존료의 사용을 줄여가는 추세이다. 최근에는 식품첨가물을 다량 함유한 초가공식품을 자주 섭취하면 염증, 심혈관 질환, 치매의 위험도를 높일 수 있고, 인지 능력도 저하될 수 있다는 논문이 발표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를 둔 가정이나 화학 물질에 민감한 체질을 가진 가족이 있다면 가급적 식품첨가물이 들어있는 가공식품의 섭취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가공식품을 먹더라도 자연에 없는 물질을 화학 합성한 식품첨가물이 들어 있는 제품은 피하고 천연 유래의 식품첨가물이 들어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 그렇지만 일반 소비자들이 식품 포장이나 용기에 표시되어 있는 원재료의 이름만 보고 식품첨가물을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단 가정의 주방에서 전혀 볼 수 없는 재료이거나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면 식품첨가물일 가능성이 높고, 원재료가 어려운 화학명으로 표시되어 있다면 화학 합성한 식품첨가물로 의심해 보아야 한다. 보다 정확하게 알고 싶다면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해당 식품첨가물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 좋겠다. 건강한 사람이라도 어떤 식품이든 많이 먹는 것은 건강에 좋지 않기 때문에 식품첨가물의 과도한 섭취 역시 피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식품첨가물을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잘 활용하는 현명한 소비를 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콜라에 단맛을 내기 위해 설탕과 과당을 넣거나 또는 칼로리가 거의 없는 아세설팜칼륨, 아스파탐, 수크랄로스 등을 첨가하는데 이들 모두 식품첨가물이다. 다만 설탕과 과당은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이고 아세설팜칼륨 등은 화학적으로 합성한 감미료라는 차이가 있다. 과도한 설탕 또는 과당의 섭취는 당뇨와 비만 등 대사증후군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당뇨가 있거나 다이어트가 필요한 경우 콜라를 마시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꼭 먹어야겠다면 합성감미료가 들어있는 쪽이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예전에 비해 기업들도 천연지향적인 소비 추세에 맞춰 가공식품에 들어가는 식품첨가물을 천연 유래의 것들로 대체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캔디의 알록달록한 색소도 황색O호, 적색O호와 같은 합성 타르색소가 아니라 비트, 당근, 케일, 토마토 등의 식용 식물로부터 얻은 천연 색소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많은 식품첨가물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기업에서도 가공식품에 들어가는 식품첨가물의 양과 종류를 줄이는데 노력함으로써 소비자들의 우려를 해소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가공식품을 많이 먹게 되면 식품첨가물도 문제지만 나트륨, 당, 지방 등도 과잉 섭취하게 되어 영양불균형이 올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자연친화적이고 균형 잡힌 식습관을 갖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 김동청 교수는? = 연세대 생화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대학원 생화학과 이학석사 및 서울대 대학원 농화학과 농학박사를 취득했다. 대상㈜ 중앙연구소 선임연구원, 순천제일대 조교수, 영국 캠브리지대 방문연구원, 성균관대 기초과학연구소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청운대 인천캠퍼스 화학생명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식품기술사 자격도 갖고 있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긴 후 시원하게 맥주 한잔을 들이켜는 남성과 집안 청소를 마친 후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는 여성. 우리에게 익숙한 장면들이고, TV 광고에서 흔히 접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이를 다시 말하면 남녀의 성역할이 우리에게 고정돼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광고계에선 이런 고정관념을 바꾸고 성평등을 강조하는 광고가 한번씩 화제를 모으고 있다. 월드컵 축구경기가 있는 날, 저마다 가족 또는 친구들과 TV 앞에 모여든다. 긴장감 넘치는 경기가 이어지자 누군가는 주먹을 불끈 쥐고, 또 다른 누군가는 엉덩이를 들썩인다. 아이는 마치 축구선수라도 된 것처럼 축구공을 꼭 품고 경기를 시청한다. 5년 전, 중동의 한 나라에서 공개한 국내 대기업 TV 광고다. 월드컵을 앞두고 해당 국가에서 TV 판매량을 늘려볼 생각으로 제작한 광고였는데,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누리꾼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광고 내용이 문제였다. 화질 좋은 TV로 월드컵을 함께 즐기라는 취지로 만든 광고였지만 누리꾼들은 광고 속에 등장하는 남성과 여성의 확연하게 다른 행동을 문제 삼았다. 남성들이 축구경기에 집중하고 열광하는 동안 옆에 앉은 여성들은 아이에게 간식을 건네거나 잡담하거나 뜨개질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리꾼들은 “성 역할의 고정관념을 강조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광고”라고 지적하며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문제를 거론했다. 광고는 기업과 브랜드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매출을 늘리기 위해 소비자를 설득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당연히 소비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여서 주목을 끌어야 하고 소비자의 니즈와 문제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어필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한 사회의 보편화한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을 따를 수밖에 없는데, TV 회사 입장에선 가부장제가 강한 중동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광고였을 테니 억울했을 법도 하다. 우리나라에도 “광고에 성차별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광고모델을 예로 들어보자. 남성에겐 주로 ‘힘’ ‘도전’ ‘성취’ ‘전문성’이라는 키워드를, 여성에겐 ‘아름다움’ ‘배려’ ‘공감’ ‘화합’ 등의 키워드를 적용한다. 전문성을 강조해야 하는 법무법인이나 병원, 금융 분야의 광고에 여성모델보다는 남성모델이 더 많이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엔 가정생활을 묘사하는 장면을 보자. 아내는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남편은 거실에서 아이들과 놀거나 서재에서 일을 한다. 이런 점은 광고뿐만 아니라 더빙한 외화에서도 나타나는데, 남편은 아내에게 반말을 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경어를 사용하는 게 다반사다. 많은 광고가 여전히 고정된 성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반대로 소비자의 가치와 행동을 바꾸고 사회 또는 문화를 이끄는 광고도 있다. 혁신적인 가치를 담은 광고는 기업과 브랜드의 이미지에 들어가고, 소수의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들이 이를 확산한다. 영국의 미용ㆍ위생용품 브랜드 도브(Dove)의 ‘Real Beauty Campaign’이 대표적인 예다. 도브의 광고는 평범한 여성이 화장과 기술적인 보정을 거쳐 얼마나 멋진 여성으로 변신하는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실제(real)가 아닌 왜곡된 미의 표준에 어떻게 세뇌돼 자신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지를 일깨워준다. 양성평등 측면에선 아직 보편적이지 않지만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고 있기는 하다. 남성이 전기밥솥과 샐러드소스를 광고하고 여성 격투기 선수가 스포츠 의류를 광고하는 식으로 말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보면 1970~ 1980년대 남성화장품 광고모델은 암벽을 타거나 거친 바다에서 요트를 몰며 사나이의 야망과 파워, 세계를 향한 도전을 외쳤다. 지금은 어떤가. 남성미 넘치는 모델 대신 희고 고운 피부를 자랑하는 예쁜 모델이 등장한다. 세계적인 호텔 체인인 힐튼호텔이 몇년 전 중산층 백인들이 주로 등장하던 호텔 광고에 게이커플과 다문화가족을 모델로 세운 것도 이런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앞서 언급했던 광고의 주요 목적은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그런 이유로 사회 구성원 다수가 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와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해당 제품을 소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와 인권, 평등과 관련한 이슈는 조금 다르다. 소수의 누군가가 문제를 제기하면 급속도로 확산하고, 결국 다수가 수용한다. 비록 다수의 소비자가 깨닫지 못하고 있더라도 이런 바람직한 가치를 구현하고, 소비자를 설득할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보다 탁월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성평등을 주제로 하는 광고, 펨버타이징(feminism+advertising)이라고 말한다. 이를 두고 논란도 호응도 많지만, 기업들이 매출 증대 이상의 가치를 얻고 싶다면 고민해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 젠더 감수성이 점점 중요해지는 시대엔 더욱 그렇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경자 가톨릭대 교수·김미란 기자]
이 끝은 - 앨리슨 그레이허스트(Allison Grayhurst) 이 끝은 후손이다. 돌보고 아끼는 대상으로, 일정 기간 작동한 독특한 패턴을 깨고, 이제는 오로지 상처만을 남기는 것을. 이 자손은 음악적이며, 실천과 기도를 작곡하며, 세부 사항에 대해 갈망을 하며 소독하고 청소한다. 이 기쁨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 부담스럽지 않은 활동, 기대와 의무로부터 면역되며 지키는 개도 없다. 이 집은 살았던 집, 모든 죽은 것들이 다시 죽었으며 더 깊게, 마침내 여기에서 새로워졌다. 믿음은 정확한 목적지, 접시를 핥으며 반짝반짝 빛나서 남은 것은 경외와 자비, 내 앞에서 부풀어 오르는 밝기 속에서 단순함을 소화하고 있다. 시작할 때처럼 다시 당신을 가지고 있다, 처음으로 당신의 얼굴을 목격했을 때 머리카락과 눈을 사랑했으며 과거에는 책에서 훔쳐만 볼 수 있었던 기쁨을 이제는 내가 독자적으로 소유한다. 나무들이 절벽 위에 늘어서 있다. 내 뒤에는 정상이 있다. 어리석은 희망들이 신성의 명령과 일치한다. 무거운 막대들이 떨어지고, 핀과 같이 가벼워진다. 달과 태양이 가득 차서 명확하게 보인다. 같은 아침 하늘에. This end (By Allison Grayhurst) This end is an offspring to tend to and adore, breaking through distinctive patterns that worked for a while, but now, only harm. This offspring is musical, composing practices and prayers, hungering for the details to disinfect and clean. This joy is unspoken, activity with no burdensome description, uninfected with expectations, obligations or the guarding dog. This house has been lived in, all things that have died have died again, deeper, and finally here, renewed. Faith is the exact destination, lapping the plate sparkling so all that is left is awe and mercy, digesting simplicity in the swelling brightness before me. I have you again like at the start when I first witnessed your face and hair and eyes and loved you with a bliss that in the past I could only steal from books but now I owned, uniquely as my own. Trees hang over the cliff. Behind me is the summit. My foolish hopes align with divinity’s commands. Bars are dropped, lightweight like pins. Moon and sun full, clearly visible in the same morning sky. ◆ 앨리슨 그레이허스트(Allison Grayhurst) = 캐나다 시인 연맹의 회원으로 그녀는 가족과 함께 토론토에 살고 있다. 그녀의 작품은 'Best of the Net'에 5번 지명되었으며 525개 이상의 국제 저널에 1375편 이상의 시를 발표했다. 그녀는 시집 25권과 챕북 6권을 출간했다. 그녀는 또한 점토 조각 작업도 한다. ☞ 강병철 작가 = 1993년 제주문인협회가 주최하는 소설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2016년 『시문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2년 제주대에서 국제정치전공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 특별연구원, 인터넷 신문 ‘제주인뉴스’ 대표이사, (사)이어도연구회 연구실장 및 연구이사, 충남대 국방연구소 연구교수, 제주국제대 특임교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제주통일교육센터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33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이며 국제펜투옥작가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제34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으로 재선임됐다. 국제펜투옥작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의 대표적인 위구르족 작가 중의 한 명인 누르무헴메트 야신(Nurmuhemmet Yasin)의 「야생 비둘기(WILD PIGEON)」를 번역 『펜 문학 겨울호』(2009)에 소개했다. 2022년에는 베트남 신문에 시 ‘나비의 꿈’이 소개됐다. ‘이어도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이어도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 ‘이어도로 간 어머니’로 월간 ‘문학세계’에서 주관한 ‘제11회 문학세계 문학상’ 소설부문 대상을 받았다. 한국시문학문인회에서 주관하는 제19회 ‘푸른시학상’을 수상했다. 강병철 박사의 시와 단편소설은 베트남, 그리스, 중국 등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소개되고 있다. 최근엔 중국의 계간 문학지 《국제시가번역(国际诗歌翻译)》에도 강 작가의 시 두편이 소개되었다.
새로운 사건을 소개받게 되면 우선 하는 일이 있다. 의뢰인과의 상담을 통하여 사건의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게 시작이다. 의뢰인들은 정말 천차만별이다. 이해가 잘 되도록 설명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말하는 본인도 사건에 대하여 파악이 안 되는 경우에는 설명이 뒤죽박죽이다. 무슨 이야기인지 한참을 듣다가 겨우 이야기의 줄기를 잡게 된다. 사건 내용 자체도 정말 다양해서 10분 만에 모든 설명이 끝나는 간단한 사건도 있는가 하면, 사실관계가 복잡해 한 시간을 넘게 들어도 상담의 끝이 안 나는 사건이 있다. 처음부터 사건내용을 타이핑을 쳐서 정리해서 오시는 의뢰인도 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의뢰인도 나름대로 정리를 하면서 타이핑을 쳤을 것이기에 이해하기에도 편하고, 변호사로서는 귀로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는 눈으로 서류를 읽는 것이 시간도 절약된다. 직업 특성상 독해에 특화되었기에 정리된 내용을 읽는 것이 더 좋다. 사건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의뢰인이 가장 잘 안다. 이는 너무나 당연하다. 의뢰인 자신이 직접 겪은 사실이기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변호사로서는 의뢰인의 말을 100% 신뢰할 수는 없다. 형사사건이라면 자기방어의 본능 때문인지 중요한 내용을 숨기기도 하고 각색하기도 하며, 민사사건이라면 주로 자기 입장에서만 사건을 바라보기 때문에 객관적일 수 없다. 그래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서 집요하게 추궁해보기도 하고, 일부러 부딪혀 논쟁을 벌여 보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의아했던 부분이 이해가 되기도 하고, 의심이 더 깊어지기도 한다. 만약 사건이 납득할 수 없으면 글로 표현할 수 없기에 서면이 작성될 수 없고, 순탄하게 재판을 진행할 수 없어 수임을 거절한다. 변호사로서 여러 유형의 사건을 진행하며 느낀 점 중 하나는 재판에서는 사실관계 확정이 우선이고, 법리적인 판단은 뒤에 따라 온다는 것이다. 계약서와 같이 객관적인 증거만 하나 있으면 쉽게 해결될 사건이, 증거라고는 마땅한 것이 아무것도 없고 오직 당사자의 진술뿐이며, 그조차도 변호사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사실관계를 유리하게 확정하고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관계가 확정이 안 되면 재판이 흔들린다. 그래서 의뢰인의 이야기 자체는 믿음이 가더라도, 핵심적인 사항에 관하여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사건은 맡기가 꺼려진다. 상담 과정에서 좋지 않은 결과가 예상되는 사건도 맡기 어렵다. 높은 확률로 이길 것이라고 생각해서 자신 있게 맡은 사건도 지는 경우가 생기는데, 심지어 지는 사건이라고 판단했음에도 의뢰인과의 관계(예컨대, 여러 사무실에서 거절하여서 더 이상 상담을 받으러 돌아다니기 힘들다며 “져도 좋으니 맡아달라”고 의뢰인이 간청하는 경우나 지인의 사건이어서 거절할 수 없는 경우)나 또는 일말의 기대로 맡게 되는 사건(재판이라고 하여 항상 진실에 부합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기에, 법리적인 부분을 파고들어 다퉈보는 경우)의 경우에는 여지가 없다. 물론 질 것이라고 판단하는 사건에서도 당사자 사이에 화해나 조정이 이루어져 '무승부'가 되거나, 예상치도 못했던 부분이 쟁점으로 떠올라서 승소하는 경우도 있기는 있다. 이러한 경우는 요행일 뿐, 수임한 사건을 처리하며 과거의 나를 원망할 미래의 내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의 나는 단호하게 승소할 가능성이 없는 사건의 수임을 거절하고 있다. 결국 변호사에게 있어서 상담은 시작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끝이라고도 생각한다. 가능한 정확한 상담을 통해 본인이 맡아서 처리할 수 있는 사건인지, 그 결과까지도 예측해야 한다. 물론 예상대로 끝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훈련과 반복을 통하여 점차 예측력이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시작인 상담에서부터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시작이 좋으면, 끝도 좋다. /한동명 법무법인 더바로 변호사
"이 비가 그치면 사라질... " ☞ 오동명은? =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역사소설 <불멸의 제국> 소설 <소원이 성취되는 정원> 소설 <장군어미귀향가>등을 냈다. 4년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었다.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현재는 지리산 주변에 보금자리를 마련, 세상의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풀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