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짜리 흑인학생을 ‘성추행’한 혐의를 두고 알로이시우스 수녀와 플린 신부는 거칠게 충돌한다. 드러난 사실(fact)은 간단하다. 수업 중에 플린 신부의 호출을 받아 사제관에서 플린 신부를 ‘독대’하고 온 학생의 입에서 술 냄새가 나고, 학생이 불안해했다는 것이다. 그럼 사실이 곧 진실일까. 플린 신부는 육식, 포도주, 담배를 즐긴다. 플린 신부가 사제실에서 남학생과 독대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의 기호(嗜好)에 관한 사실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진실(truth)’이 달라진다. 플린 신부를 학생들을 아끼고, 그저 유쾌하고 호탕한 인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실들은 반대로 플린 신부의 성향을 탐욕적이고 쾌락적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서 해석하면 플린 신부가 ‘아동 성추행’을 했으리라고 추정할 수도 있고 그것이 알로이시우스 수녀에겐 ‘진실’이 된다. 사실과 진실이라는 말은 비슷한 말 같지만, 실은 정반대 의미를 갖고 있다. 사실은 변하지 않고 고정적이지만, 진실은 유동적이다. 사실은 눈에 보이지만 진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영역이다. 진실이란 존재하는 사실을 해석하는 것이다. 해석은 사람마다 주관적이어
통계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들 살아가는 모습과 경제활동이 담겨 있다. 여러 개념과 수치로 나타나는 것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하느냐는 정책 담당자와 정치권의 몫이다. 각종 경제지표와 사회지표가 전하는 의미를 제대로 읽고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 정책이 신뢰를 얻고, 정부와 정당 등 정치집단의 실력도 인정받는다. 매달 나오는 통계이지만, 9일 발표된 7월 고용동향은 우리나라 고용시장이 처한 현실과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먼저 취업자 수 증가폭이 급감했다. 올해 들어 월 30만~40만명을 유지하던 것이 7월에 21만1000명으로 뚝 떨어졌다. 코로나19 사태로 취업시장이 얼어붙었던 2021년 2월 이후 29개월 만의 최소 증가폭이다. 정부는 7월에 집중호우가 잦았고, 건설경기가 위축되는 등 계절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구조적 문제점이 적지 않다. 사회 전반의 고령화와 더불어 고용시장도 늙어가고 있다. 20만명대에 그친 취업자 수 증가마저 60세 이상 고령층이 주도했다. 60세 이상 취업자 증가폭이 29만8000명으로 전체 취업자 증가폭을 넘어섰다. 나머지 연령층은 되레 8만7000명 줄었다. 특히 새로 고용시장에 진입하는
올 여름은 특별하게 무덥다. 100세 노인에게는 가혹할 정도다. 전국에 폭염특보가 발효된 가운데, 오늘 오후 1시 30분 현재, 온도계는 섭씨 32도 너머를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기상청에 의하면 햇볕에 의해 기온이 오르고 습도도 높아 체감온도는 35도가 넘는다. 그러면 그렇지! 오, 참을 수 없는 한낮의 무더위여! 전반적으로 올해 8월의 체감온도는 예년의 8월 평균기온보다 다소 높을 것으로 예보되고 있다. 하지만, 기상청 통계를 들여다보면, 지난 7월 10일 오후 1시 21분 제주(북부)의 일 최고기온은 37.3도를 기록하였다. 이는 제주기상청이 기상관측을 시작한 1923년 이후 7월 기록으로는 역대 2위, 전체 기록으로는 역대 4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참고로, 제주지방기상청의 전체 일 최고기온 최고치 역대 순위 1위는 2022년 8월 10일 37.5도, 2위 1942년 7월 25일 37.5도, 3위 1998년 8월 15일 37.4도, 4위 2023년 7월 10일 37.3도 등이다. 7월과 8월이 키재기를 하듯이 낮 최고기온의 신기록 기록을 주고받는 형국이다. 심리적으로는 7월보다 8월이 더 무덥고, 오늘보다 내일이 한층 무더울 것으로 보인다. 아, 이
알로이시우스 수녀의 극단적인 ‘의심’은 명쾌하게 해결되지 못한 채 영화가 끝난다. 플린 신부는 알로이시우스 수녀의 의심을 이기지 못한 채 결국 사임한다. 교구를 떠난 플린 신부가 다시는 사제를 못하게 됐다면 알로이시우스 수녀의 ‘완승’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플린 신부는 다른 교구로 옮겨 간다. 표면적으로 보면 플린 신부의 ‘의혹’을 증명하지는 못했지만 결국 플린 신부가 교구를 떠났으니 알로이시우스 수녀의 ‘절반의 승리’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알로이시우스 수녀로선 속 터지게도 플린 신부는 다른 교구로 영전(榮轉)해 이동한다. 알로이시우스 수녀의 ‘사실상의 패배’라고 할 수밖에 없다. 플린 신부의 영전 소식을 알게 된 알로이시우스 수녀는 혼란스럽고 참담하다. 그럼에도 알로이시우스 수녀는 플린 신부가 ‘흑인아동 성추행범’이라는 자신의 의심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알로이시우스 수녀는 제임스 수녀를 붙잡고 “나는 그 사람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고, 아직도 그 사람이 의심스러운 것을 어쩔 수 없다”고 비장하게 말한다. 문득 ‘지동설’을 주장하다 종교재판에서 ‘지동설’을 입증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주장이 잘못됐다
교회 할머니가 하늘로 가셨다. 1921년 3월 13일에 이 땅에 왔으니, 한 세기가 넘는 삶의 여정을 완주하신 셈이다. 100년을 살아도 우리 인생은,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이슬처럼 순간이다.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이별을 고하는 발인예배에서, 80세 아들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눈을 감는다. 어느덧 어머니를 닮아버린 딸들은, 한없이 눈물을 흘린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하며 영정을 품어 안은 장손도 고개를 숙인다. 이만하면 호상(好喪)이 아닌가 싶은데, 현실의 장례식에선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을 읊을 수가 없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는 말은, 사자(死者)의 언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머니 생각에 목이 멨다. 2023년 3월 22일 생. 이제는 교회에서 가장 연장자시다. 얼마나 외로우실까. 고향마을에서도 홀로 100세시다. 어느덧 어머니 입에서 ‘부택이 어멍은 102살이랜 호여라’는 말이 사라졌다. 지금쯤은 104세가 더 되셨을 테니..., 어머니 생각에도 그 이상은 무리이신 게다. 다만, 여름 장례식은 피해야지 싶은 바람이 간절해진다. 얼마나 여름에 장례를 치르
뉴욕시에서 가톨릭 교단이 운영하는 한 중학교에서 젊은 제임스 수녀가 역사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어느날 수업시간에 학교의 주임 신부인 플린 신부가 흑인 학생 한명을 사제실로 호출한다. 플린 신부를 만나고 교실로 돌아온 중학교 2학년 흑인 학생 입에서는 술 냄새가 나고, 매우 혼란스러운 기색이다. 제임스 수녀는 이 ‘사소한’ 사건을 교장선생님이기도 한 알로이시우스 수녀에게 보고한다. 영화 ‘다우트’에서 벌어지는 의심의 광풍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플린 신부를 만나고 온 그 학생에게서 왜 술 냄새가 났는지, 왜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는지 여러 해석이 가능한 일이다. 플린 신부의 해명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성당 미사를 돕는 일을 맡고 있는 이 학생이 미사에 사용되는 미사주를 몰래 마시는 것을 알고 불러 훈계했다. 이 학생은 가정문제로 우울해서 미사주를 훔쳐 마셨다.” 이 해명이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별것도 아닌 사건이다. 그러나 플린 신부가 눈엣가시와 같았던 알로이시우스 수녀는 플린 신부를 공격하기 위해 이를 극단적으로 확대해석한다. ‘돼먹지 못한 진보적인 신부들이 대개 그렇듯 플린 신부도 본래 동성애자였으며, 플린 신부는 이 학교에 부임하자마자 따돌림당
올 2분기 경제성장률이 0.6%로 1분기(0.3%)보다 높아지며 플러스를 유지했지만 속내는 문제투성이다. 1분기 성장을 이끌었던 소비가 감소로 돌아섰다. 설비·건설투자 증가율도 마이너스다. 1분기 플러스였던 수출도 줄었다. 그럼에도 경제가 성장한 것은 국제유가 하락 등의 영향으로 수입이 수출보다 더 많이 감소한 덕분이다. 결국 2분기 경제성적표는 장부상 숫자만 괜찮게 보인 ‘불황형 성장’이다. 수출이 계속 감소하는 데다 소비와 투자도 함께 빨간불이 켜져 하반기 경기 반등 전망이 어두워졌다. ‘상저하고(上低下高, 상반기에는 어렵고 하반기에 나아짐)’를 외쳐온 정부가 무색하게 ‘잘해야 상저하중(上低下中)’으로 진행되는 모습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주요국 및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높이면서도 한국은 낮춘 이유다. 특히 IMF는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부터 5회 연속 하향 조정했다. 지난해 4월 2.9%로 전망했던 것이 이번에 1.4%로 반토막 났다. 대다수 국가들이 회복세인데 한국만 역주행이다. IMF 전망이 현실화하면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2% 수준인 잠재성장률보다 한참 내려간다. ‘잃어버린 30년’ 불황을 겪은 일본과 같은 성장률을 기록
전화가 왔다. “여기는 동사무소인데요, 김성춘 할머니께서 청려장 대상이십니다. 신청하실 건가요?” “물론이우다……. 고맙수다....” 오랜만에 들려 온 기쁜 소식이다. ‘가문의 영광’이라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하지만 나지막하게 절제된 목소리에, 그만 나의 고조된 감정이 어색해지고 만다. 만 백세가, 어디 보통 일인가?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면서 도달한 건데... 얼마나 대단하고, 감사하고, 귀하고, 드문 일인가.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00살까지 생존할 확률은 여성이 약 5.6%, 남성이 1.5%에 불과하다. 이왕이면 목소리에 좀 리듬을 넣어서 ‘축하합니다!'라고 말해주면 좀 좋을까. 드디어 우리 어머니도 청려장을 받게 되시나 보다. 우리나라는 1993년부터 노인의 날(10월 2일)에, 100세를 맞은 노인들에게 대통령 명의의 청려장을 드리고 있다. 청려장은 예로부터 건강과 장수를 상징해, 일명 ‘장수지팡이’로 불린다. 김부식의 ‘삼국사기’(권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상)에 따르면, ‘봄 정월에 김유신이 퇴로하기를 청하매, (임금이) 허락하지 아니하고, 궤장을 내리었다.’ ‘퇴노’는 관직에서 물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고령을 이유로 관직에서 떠나기를
플린 신부는 새로 부임한 교구의 수녀원장 알로이시우스 수녀가 ‘이유 없이’ 자신에게 무척이나 적대적이라는 것을 감지하고 수녀원장실로 찾아가 대화를 시도한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에게 ‘아동 성추행’이라는 무시무시한 혐의가 씌워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수녀원장실에서 플린 신부와 알로이시우스 수녀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다. 그 논쟁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점점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논쟁은 격렬한데 논쟁이 왠지 논리적이지 않아서다. ‘아동 성추행’ 혐의를 아무리 부인해도 알로이시우스 수녀의 의심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플린 신부가 뭔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갑자기 태세를 전환해 공격모드로 나선다. 플린 신부 : “그래 좋다. 나도 가끔 죄를 지을 때가 있다. 그러는 당신은 정말 완전무결하고 한번도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는가?” 알로이시우스 수녀 : “물론 나도 죄를 짓는다. 그때마다 나는 신 앞에 내 죄를 고백하고 회개한다.” 플린 신부 : “바로 그거다. 나도 죄를 지으면 신께 고백하고 회개한다. 그러면 된 게 아닌가?” 알로이시우스 수녀 : “아니다. 용서받을 수 있는 죄도 있고, 용서받을 수 없는 죄도 있다. 당신의 죄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
최저임금위원회 심의는 거의 이런 식이다. 위원회는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각 9명씩 총 27명으로 구성된다. 먼저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 양측 모두 상대방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안을 제시한다. 근로자위원은 통상 두자릿수 인상안을, 사용자위원은 동결 내지 아주 낮은 인상안을 내놓는다. 노사 양측이 ‘아니면 말고’ 식으로 처음 요구하는 안의 격차가 워낙 큰 데다 여간해서 서로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노사 양측은 회의를 여러 차례 하고, 수정안도 내지만 간극을 좁히지 못한 채 법정 심의기한(6월 29일)을 넘긴다. 시간을 끌며 벼랑 끝 전술로 버티다가 이듬해 최저임금 공포일에 몰려 밤샘회의 끝에 공익위원 중재안(조정안)을 놓고 표 대결을 벌인다. 이때 노사 양측 가운데 어느 한쪽이 반발하며 퇴장한다. 최저임금은 결국 공익위원 중재안대로 결정되고, 노사 모두 불만을 토로하는 성명전을 벌인다. 1988년 제도 시행 이후 노사 합의로 결정한 것이 7번, 법정 시한을 지킨 것이 9번뿐인 이유다. 2024년 최저임금이 19일 새벽 6시쯤 시간당 9860원으로 결정됐다. 올해보다 2.5% (240원) 인상된 것으로 월급(월 209시간 근무)으로는 주휴수당 포함 20
어머니와 함께 살아 온 지 20년이다. 지난 3월에 만 백 세를 넘기시고, 101세를 살아가시는 어머니. 요즘은, 해가 떨어지면서 하늘 끝에 남기고 간 황혼처럼 어둠의 그림자에 잠길 때가 많다. 누워 있으면 숨 쉬는 게 버거우신지, 벽에 기대어 계실 때도 자주 있다. “어머니, 이추룩 앉앙 이시민 몸이 버치난, 그자 펜안허게 누웡 이십서(이렇게 앉아 있으면 몸이 버거우니까, 그냥 편안하게 누워 계세요)”라고 하면, “고만 이시라게, 홑썰만 숨 돌령 누우키여...(잠깐 있어라. 조금만 숨을 돌려서 누울테니)”라고 하신다. 아, 이제는 삶이 무거우신 게다. 기력이 다하여 숨을 쉬기 조차 버거우시니.... 문득, 어머니와 함께 지나 온 시간들을 되돌아 본다. 어머니가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어머니는 2남7녀의 자녀들 중에서, 왜 장남도 장녀도 막내도 아닌 내게로 오셨을까? 요즘 들어 살이 많이 빠져서 주름이 깊어진 얼굴. 고단한 어머니를 무심한 내가 들여다 본다. 지나온 삶의 흔적들이 주름진 고랑마다 화석처럼 남아 있다. “무사 나 얼굴엔 이추룩 시거멍헌 것들이 초기추룩 피엄신고(왜 내 얼굴에는 이렇게 시커먼 것들이 버섯처럼 피어날까) 이?’라면서 화장대에 비
영화는 뉴욕시 브롱크스 교구에 주임 신부로 새로 부임한 플린 신부의 첫 강론으로 시작한다. 모두 새로 부임한 주임 신부의 첫 강론에 귀를 기울인다. 플린 신부는 “하늘의 별자리를 의심하지 말아야 하듯 하나님의 말씀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당연하면서도 훌륭한 말을 남긴다. 경청하고 있던 신도들 모두 고개를 끄덕이지만, 유독 한 사람만 다르게 행동한다. 다름 아닌 알로이시우스 수녀다. 알로이시우스 수녀는 플린 신부의 강론을 듣지 않는다. 그저 예배석을 돌아다니며 자세가 불량하거나 딴짓하는 학생들을 단속하고 쥐어박을 뿐이다. ‘진보적인’ 신부의 강론 따윈 듣고 싶지 않다는 ‘보수적인’ 수녀원장의 소극적인 저항인 듯하다. 거기까지는 심정적으로 이해가 된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면서 플린 신부를 적대하는 알로이시우스 수녀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조금씩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플린 신부의 강론이 끝나고 알로이시우스 수녀는 자신의 심복인 제임스 수녀에게 ‘플린 신부의 강론이 어땠냐’고 묻는다. 편견 없는 젊은 제임스 수녀는 훌륭했다고 답한다. 알로이시우스 수녀가 듣기에도 플린 신부의 강론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진보적’인 신부라 해도 그 ‘진보성’이 하나님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