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算數, 지금의 수학)’ 시간, 비좁은 교실 하나에 백 명 가까이 빽빽이 들어앉은 코흘리개들은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자를 대고 서투른 솜씨로 갖가지 ‘네모꼴’을 그립니다. 그 다음에는 서로 마주 보는 ‘꼭짓점’을 이어 ‘맞모금’을 긋습니다. 그러면서 ‘바른네모꼴’이나 ‘긴네모꼴’과는 달리 ‘마름모꼴’이나 ‘사다리꼴’에서는 ‘맞모금’의 길이가 서로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네모꼴을 맞모금에 맞춰 절반으로 나누면 세모꼴 두 개가 되지요. 다음은 ‘자연(지금의 과학) 시간, 선생님께서는 우리 눈에 보이는 일곱 가지 빛 말고도 다른 빛이 더 있다고 하십니다. 무지갯빛 맨 위에 있는 빨간빛 바깥쪽으로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넘빨강살’이 있고, 맨 밑 보랏빛 바깥으로는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넘보라살’이 있다는 것이지요. 엄연한 빛인데도 눈에 안 보이는 이 빛들이 열을 전하기도 하고 살균작
제가 ‘국민학교’(현 초등학교)에 다니던 1960년대에는 텔레비전조차 귀했던지라, 애 어른 가릴 것 없이 라디오가 좋은 동무였습니다. 노상 틀어 놓는 4구식 진공관 라디오에서는 ‘강화 도련님’ 같은 연속방송극뿐 아니라 뉴스, 다큐멘터리 등과 아울러, 이미자나 남진, 톰 존스, 베토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노래와 음악이 흘러나오곤 했지요. 그 무렵 제가 인상 깊게 들었던 곡 가운데 브람스의 ‘대학축전 서곡(Academic Festival Overture)’이 있습니다. 독일의 한 대학에서 브람스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준다고 하자 그 기념으로 작곡했다는 밝고 경쾌한 곡입니다. 브람스 - ‘대학축전 서곡(Academic Festival Overture)’ 듣기 <블로그> 그런데 나중에 대학에 들어와 보니 5월마다 ‘축전(祝典)’이 아닌 ‘축제(祝祭)’가 벌어졌습니다. 저 곡 하나 때문만은 아니지만 ‘축전’이 더 익숙했던 저로서는 ‘축제’란 말이 영 목에 가시처럼 걸렸지만, 다들 그렇게
1. 다음과 같은 것들은 두 가지 표기가 다 가능합니다. 다만 표기에 따라 뜻이 달라지지요. 이 차이를 이해할 수 있다면 다른 것들도 충분히 이해가 될 듯싶습니다.(‘보기 3’은 사이시옷을 쓰지는 않지만, 사잇소리 현상 유무에 따라 뜻이 달라지므로 이해를 돕기 위해 예로 들었습니다.) 보기 1) 나무집[나무집] : 나무로 지은 집 나뭇집[나무찝] : 나무를 파는 집 보기 2) 고기배[고기배] : 물고기의 배 부분 고깃배[고기빼] : 물고기를 잡는 배. 어선. 보기 3) 칼집[칼집] : 요리를 할 때 양념이 잘 배도록 칼로 살짝 엔 자국 칼집[칼찝] : 칼날이 상하지 않도록 꽂아 보관하는 도구 2. 갈비 요리를 파는 집은 ‘갈비집’인가, ‘갈빗집’인가 이 경우 [갈비집], [갈비찝] 중 어느 발음이 옳은지 국립국어원에서도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이미 ‘갈비집’으로 2003년 신어목록에 올라간 모양인데, 2007년에는 ‘갈빗집’으로 쓸 수도 있다고 답변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진작에 표제어가 된 ‘통닭집’, &
지난번에는 사이시옷을 써야 하는 경우를 따져보았습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사이시옷을 쓰지 않는 경우를 살펴봅시다. 1. 앞말에 받침이 있을 때는 뒷말이 된소리가 되거나 ‘ㄴ’ 소리가 덧붙여 나더라도, 즉 사잇소리 현상이 일어나더라도 쓰지 않습니다. 이미 받침이 있기 때문에 사이시옷을 쓸 자리가 없어서라고 생각하면 쉽겠지요. 보기) 강가, 집세, 돈줄, 집안일, 들일 2. 뒷말이 된소리나 거센소리로 시작할 때는 사이시옷을 쓰지 않습니다. 대개 이 규정을 잘 몰라서 사이시옷을 잘못 쓰는 때가 많습니다. 보기) 아래편, 위턱, 위층, 뒤처리, 어깨뼈, 뒤끝, 이쑤시개, 반대쪽 참고) ‘첫째’ ‘셋째’ ‘넷째’ 등은 뒷소리가 된소리인데도 사이시옷이 붙지 않았느냐고 의문을 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원래 ‘ㅅ’으로 끝나는 ‘첫’, ‘셋’, ‘넷’이라는 단어에 접미사 ‘-째’를 붙인 것이므로 사잇소리 현상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3. 지난번에 얘기했듯이 한자어끼리 어
사이시옷은 '사잇소리 현상'이 나타날 때 씁니다. ‘사잇소리 현상’이란 “두 말을 합쳐 복합명사를 이룰 때 뒷말 첫소리가 된소리가 되거나 두 말 사이에 ‘ㄴ’ 발음이 덧나는 현상”을 뜻합니다. 그러나 한글맞춤법에 사이시옷 규정이 있다 하더라도 일일이 다 기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사잇소리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쏭달쏭한 말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뿐 아니라 저처럼 수십 년 동안 우리말을 이리저리 살펴가며 써 온 사람들조차 종종 헷갈리곤 합니다. 그러나 기껏 우리말 이야기를 꺼내 놓고 사이시옷을 다루지 않을 수는 없기에 좀 복잡하더라도 지금부터 세 번으로 나누어 사이시옷을 다루려고 합니다. 먼저 사이시옷을 써야 하는 경우를 알아봅시다. 1. 사이시옷은 먼저 순우리말끼리 어울린 합성어에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나는 경우, ㉠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가 될 때 씁니다. 보기) 귓밥, 콧대, 나룻배, 냇가, 바닷가, 윗글, 윗집, 아랫집, 국숫집, 맷돌, 모깃불, 못자리, 부싯돌, 잿더미, 햇볕, 햇살, 혓바닥, 혓바늘, 보랏빛, 고깃국, 순댓국, 선짓국, 김칫국, 빨랫줄, 촛불 ㉡ 뒷말의
얼마 전에 귀농한 선배 한 분이 “양념이란 말이 ‘음식을 약처럼 생각하라'는 ‘약념(藥念)’에서 왔다는 설이 있던데, 맞는 얘기인지 궁금하다.”고 해서 좀 찾아보았습니다. 먼저 ‘양념’의 표준국어대사전 풀이를 보니 우리가 아는 정도여서 특별한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약념’을 찾아보니 이렇게 나옵니다. “약념 「명사」 『옛말』 양념. 향미료. 예) 染 초지령 소곰 和 약념≪물보 하:3≫“ ‘초지령(초간장의 옛말)과 소금을 섞은 것을 약념이라고 한다.’ 정도로 풀이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러한 내용이 실린 ‘물보(物譜)’란 책은 조선 후기 학자 이가환과 그 아들이 1802년에 펴낸, 사물의 이름을 정리한 일종의 사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약념’에 한자가 따로 표기되어 있지 않은 걸로 보아 ‘약념(藥念)’이란 말은 사람들이 좋은 뜻의 한자를 골라 대충 끼워 맞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차라리 ‘물들인다, 적신다, 담근다’는 뜻이 있는
‘프랑스(France)’를 흔히 ‘불란서(佛蘭西)’라고들 하는데, 이는 중국말로는 ‘France’에 아주 가깝게 발음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말로 읽으면 별로 비슷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불란서’라는 말은 중국 사람들이 ‘France’를 자기네 말에 가깝게 옮긴 한자를 다시 우리 식으로 읽은, 기형적인 발음인 셈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그냥 우리말로 ‘프랑스’라고 쓰고 그대로 읽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구라파(歐羅巴;Europe)’, ‘희랍(希臘;Greece)’, ‘나전(羅甸;Latin)’, ‘서전(瑞典;Sweden)’, ‘서반아(西班牙;Spain)’, ‘정말(丁抹;Denmark)’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히 ‘유럽’, ‘그리스’, ‘라틴’, ‘스웨덴’, ‘스페인’, &lsquo
① 오늘이 몇 월 몇 일(며칠)이냐? ② 너 입학식이 몇 일(며칠) 남았냐? ③ 자네 부산에서 몇 일(며칠)이나 머물렀지? ④ 저 몇 일(며칠) 동안 여행 좀 다녀올게요. 위 예문들에 나온 ‘몇 일(며칠)’을 살펴봅시다. ①에서 물은 것은 날짜입니다. 따라서 “오늘은 1월 24일입니다.” 이런 식으로 대답해야겠지요. ②는 지금부터 해당 날짜까지 남은 날을 뜻하는 것이니 “예, 사흘 남았습니다.”와 같이 답하면 될 겁니다. ③은 기간을 뜻하는 것이니 “사흘 동안 있었습니다.” 정도면 되겠지요. ④는 오랫동안은 아니나 얼마 동안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가 곤란한 기간을 뜻합니다. 그러면 ①~④는 어떻게 쓰는 것이 옳을까요? 경우에 따라 달리 써야 할까요, 아니면 통일하여 한 가지로만 쓰면 될까요? 맞춤법에 웬만큼 자신이 있다는 사람들도 막상 글을 쓸 때면 이 두 가지를 놓고 헷갈리곤 합니다. 이게 참 알쏭달쏭하거든요. ‘몇 일? 아니지, ‘며칠?…….’ ①의 경우는 ‘몇 월’에 맞추어야 하니 &lsqu
‘옹졸하고 간사하여 눈앞의 작은 이익만 좇는 사람’을 ‘소인배(小人輩)’라고 합니다. 이와 반대되는 뜻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마음 씀씀이가 너그럽고 여유로운 사람’을 ‘대인배(大人輩)’라고 일컫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대인배’라는 말은 사전에도 없을 뿐 아니라 이치에도 맞지 않는 말이기에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소인’들은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이익을 줄 만한 곳을 찾느라 남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떼 지어 우르르 몰려다니므로 ‘무리, 패거리’라는 부정적인 뜻으로 ‘배(輩)’ 자를 붙이는 게 적절합니다. ‘간신배, 폭력배, 모리배, 정상배, 시정잡배, 선후배’ 등이 바로 그 보기입니다. 이처럼 저만 아는 '소인'들에 비해 ‘큰사람’은 개인의 이해관계보다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여 양심껏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러하기에 ‘큰사람’은 작은 이익에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 당당하며, 굳이 남의 도움을 얻으려 하지도
‘되다’, ‘됐다’ 대신 ‘돼다’, ‘됬다’ 식으로 ‘되-’와 ‘돼-’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을 간단히 구별하려면, 그것이 ‘되어’의 준말인지를 확인해 보세요. ‘되어’의 준말로 볼 수 있으면 ‘돼-’, 아니라면 ‘되-’입니다. ‘되-’는 동사 ‘되다’의 어간입니다. 따라서 반드시 그 뒤에 어미가 이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돼-’는 ‘되-’에 어미 ‘-어’가 붙은 ‘되어’의 준말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안 돼.”처럼 다른 어미를 덧붙이지 않고 그것만으로 독립하여 쓸 수 있습니다. 문제를 몇 개 풀어 봅시다. 둘 중에서 맞는 표기를 고르세요. ㉠ 얼굴이 안됬구나. / 얼굴이 안됐구나. ㉡ 그거 잘됀 일이다. / 그거 잘된 일이다. ㉢ 이제 Ǎ
“외로워 외로워서 못살겠어요. 하늘과 땅 사이에 나 혼자…….” 거의 오십 년쯤 전인 1960년대 중반, 배호에 앞서 나이 서른을 못 채우고 요절한 가수 차중락이 불러 한창 인기를 끈 이 노래, ‘사랑의 종말’을 아직도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차중락은 물론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번안한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으로 더 유명하지만, 저는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시절 처음 들은 이 ‘사랑의 종말’을 아직도 무척 좋아합니다. 다시 십여 년 뒤인 1970년대, 윤수일이라는 가수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아름다워, 아름다워, 그대 모습이 아름다워…….” ‘외로워’나 ‘아름다워’는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지만 당시의 맞춤법에는 어긋난 표기였습니다. 1989년 한글맞춤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ㅂ’불규칙용언의 경우 모음조화 규칙에 따라 ‘외로와’나 ‘아름다와’로 쓰는 것이 바른 표기법이었거든요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우리말 톺아보기’입니다. 톺아본다는 건 샅샅이 살펴보는 것입니다. 늘상 쓰는 우리말이지만 사실 경우에 안맞게, 본뜻과 다르게, 잘못된 표기로 혼탁·혼란스러운 일이 많습니다. 말과 글은 곧 우리의 문화입니다. 우리의 정신을 만들어가는 숨결입니다. 세계시장에서도 자랑스러운 우리의 말과 글, 그 언어의 품격을 되돌아봅니다. 올바른 우리말과 글의 사용례를 ‘쪽집게’식으로 진단합니다. 30여년 서울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하며 숱한 ‘우리말 바로쓰기’ 강좌·연재를 한 우리말 전문가 김효곤 교사가 연재를 맡았습니다. /편집자 주 비온 다음 날 아침, 거짓말처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손에 잡힐 듯 밝은 햇살과 더불어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말갛고 푸른 하늘이 문득 한눈 가득 비칠 때 절로 떠오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어느덧 칠순을 바라보는 가수 송창식의 시원한 목소리가 일품인 노래, ‘푸르른 날’입니다. 다들 알고 있듯이 그 유명한 시인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