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귀농한 선배 한 분이 “양념이란 말이 ‘음식을 약처럼 생각하라'는 ‘약념(藥念)’에서 왔다는 설이 있던데, 맞는 얘기인지 궁금하다.”고 해서 좀 찾아보았습니다.
먼저 ‘양념’의 표준국어대사전 풀이를 보니 우리가 아는 정도여서 특별한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약념’을 찾아보니 이렇게 나옵니다.
“약념 「명사」 『옛말』 양념. 향미료.
예) 染 초지령 소곰 和 약념≪물보 하:3≫“
‘초지령(초간장의 옛말)과 소금을 섞은 것을 약념이라고 한다.’ 정도로 풀이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러한 내용이 실린 ‘물보(物譜)’란 책은 조선 후기 학자 이가환과 그 아들이 1802년에 펴낸, 사물의 이름을 정리한 일종의 사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약념’에 한자가 따로 표기되어 있지 않은 걸로 보아 ‘약념(藥念)’이란 말은 사람들이 좋은 뜻의 한자를 골라 대충 끼워 맞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차라리 ‘물들인다, 적신다, 담근다’는 뜻이 있는 ‘염(染)’이나 양념에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인 소금, 즉 ‘염(鹽)’이라는 한자를 넣었다면 모를까, ‘양념’에 난데없이 ‘약(藥)’이나 ‘념(念)’을 갖다 붙이는 건 당최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입니다. 겨우 몇십 년 전만 해도 영양이고 건강이고 따질 것 없이 굶주림을 면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던 것이 우리네 삶 아니었던가요?
이런 식으로 어떤 말의 유래를 학문적 연구나 사실과는 상관 없이 그럴듯하게 끼워 맞춰 설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것을 ‘민간어원(民間語源)’이라고 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은 ‘행주치마’가 임진왜란의 격전지 ‘행주산성’에서 유래했다든지, ‘화냥년’이 병자호란 때 ‘환향녀(還鄕女)’에서 왔다든지, ‘생각’을 ‘생각(生覺)’이라고 한다든지 하는 것들인데, 이는 대개 사대부들의 한자와 한문에 대한 의존성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마디로 억지로 꿰어 맞춘 한자라는 말씀이지요.
참고로 민간어원의 유명한 예로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도 흔히 먹는 ‘햄버거(hamburger)’를 들 수 있습니다.
'햄버거'는 보통 돼지고기를 가공한 '햄'을 빵 사이에 끼워 넣은 음식으로 생각하는데, 실제로 햄버거에 끼워 넣은 것은 고기를 잘라 만든 ‘햄’ 이 아닌 고기를 다져 만든 ‘패티(patty, 다진 고기)‘입니다. 그런데도 '햄버거'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기원이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지요.
과거 바쁘게 일하던 함부르크 뱃사람들은 다진 돼지고기에 채소 등을 섞어 구운 음식으로 끼니를 대충 때웠답니다. 그것을 ‘함부르크식 스테이크(Hamburger steak)’라고 했는데, 예전 경양식집 차림표에 흔히 등장하는 ‘함박스테이크’가 바로 그것이지요.(저는 어렸을 때 어떤 음식인지 늘 궁금했지만 아쉽게도 먹어보지는 못했습니다.)
이것이 이민자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온 후 누군가 빵을 갈라 그 사이에 ‘함부르크식 스테이크’를 끼워 팔면서 미국식으로 발음한 ‘햄버거’란 이름과 함께 널리 퍼지게 됐습니다. 이 때부터 사람들은 ‘햄버거’에서 ‘함부르크’는 잊고 ‘햄’만을 떠올리게 된 것입니다.
이후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치즈버거’ ‘피시버거’ ‘치킨버거’ 등도 나타났습니다. 나아가 우리나라에 와서는 ‘김치버거’ ‘불고기버거’ ‘밥버거’까지 만들어지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말의 근원을 따져 본다면 ‘Hamburg-er’로 나누어야지 ‘Ham-burger’로 나누는 것은 곤란합니다.
써 놓고 보니 ‘우리말’ 아닌 ‘영어 이야기’가 되어 버렸네요. 하지만 어차피 우리도 많이 쓰는 말이니까 그 근원을 찾아본다 해서 나쁠 건 없겠죠. [김효곤/ 서울 둔촌고등학교 교사]
☞김효곤은?
=연세대 국문과를 나와 35년여 고교 국어교사를 하고 있다. 청년기 교사시절엔 전교조신문(현 교육희망)의 기자생활도 했다. 월간 <우리교육> 기자와 출판부장, <교육희망> 교열부장도 맡았었다. 1989년 이후 민주언론운동협의회가 주최하는 대학언론 강좌를 비롯해 전국 여러 대학 학보사와 교지 편집위원회, 한겨레문화센터, 여러 신문사 등에서 대학생·기자·일반인을 상대로 우리말과 글쓰기를 강의했다. <전교조신문>, <우리교육>, <독서평설>, <빨간펜> 등 정기간행물에 우리말 바로쓰기, 글쓰기, 논술 강좌 등을 연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