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백 소장은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투병생활을 해왔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이며 발인은 19일 오전 7시다. 사진은 1992년, 시위 도중 백골단의 구타에 숨진 명지대생 강경대(1972-1991) 열사 1주기 추모식. [사진=민족사진연구회}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투병 끝에 15일 영면했다. 향년 89세. 서울대병원에 따르면 백 소장은 이날 오전 입원 중 별세했다. 그는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생활을 이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백 소장은 1932년 황해도 은율군 동부리 출생으로, 1950년대부터 농민과 빈민운동 등 한국 사회운동 전반에 적극 참여했다. 1960년대에는 한일협정 반대 투쟁을 계기로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백 소장은 1967년 통일문제연구소의 모태인 '백범사상연구소'를 세웠으며, 3선 개헌 반대와 유신 철폐 등 활동에도 참여했다. 1974년에는 유신헌법 철폐 100만인 서명 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옥살이를 했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독자 민중후보로 출마했지만 김영삼·김
▲ 김지훈 전 제민일보 대표이사 원로 언론인 김지훈 전 제민일보 대표이사가 27일 새벽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고인은 제주신문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 KBS제주방송국 기자, 제주신문 사회부장․체육부장․편집국장 서리, 제민일보 대표이사․사장․부회장, 한국기자협회 제주도지부장, 제주언론인클럽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80년 전두환 정권 시절 정권에 항거하다 강제해직을 당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노태우 정부 시절 언론계에 복귀해 제주언론계의 중추 역할을 했다. 그가 남긴 발자취를 기억하는 후배들이 그의 업적을 기려 2019년 제주언론인클럽 창립 20주년을 기념, 고인에게 제1회 제주언론인상 특별상을 수여했다. 빈소는 부민장례식장 3층. 발인은 29일 오전 6시30분이다. [제이누리=양성철 기자] ▲ 1990년 6월 2일 『제민일보』 제1호가 나오던 순간. 맨 왼쪽 김지훈 당시 대표이사가 신문을 펼쳐들고 있다. [제이누리DB]
▲ 송성대 제주대 명예교수 송성대 제주대 명예교수가 10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8세. 송 명예교수는 경희대(지리학 이학사)를 나와 동대 대학원에서 인문지리전공 이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74년부터 1977년까지 오현고 교사로 재직하다 1980년부터 제주대에서 시간강사로 활동했다. 제주대에서 30년여 동안 재직하면서 연구 활동과 후학 양성을 위해 힘썼다.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소장, 제주대 사범대학 지리교육과 교수, 제주대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제주도의 생활과 지역정신문화를 조명한 ‘제주인의 해민정신’(1996), 공저 ‘제주지리론’(2010) 등이 있다. 2010년에는 제주도문화상 학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제주대를 떠난 후에는 이어도연구회에서 상임연구원으로 활동했다. 빈소는 제주S중앙병원 장례식장 6분향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2일이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 김창열 화백 / 사진출처 = http://www.kimtschang-yeul.com/ '물방울 작가'로 널리 알려진 세계적 화가 김창열 화백이 지난 5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지난해 10월부터 11월 말까지 서울 삼청로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은 생전 마지막 전시가 됐다. 김 화백은 ‘물방울’ 작품 작가로 프랑스를 비롯해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우리나라 현대미술 1세대 원로작가다. 40여 년 동안 ‘물방울 화가’로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구축한 ‘작품 브랜드’가 세계적이다. 김 화백은 1925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출생했다. 1948~1950년까지 서울대 미대에서 공부했다. 6·25전쟁 당시 1952년부터 1953년까지 약 1년 6개월 동안 제주에서 피난생활을 했다. 제주시와 애월, 함덕 등에서 거주하면서 제주와 인연을 맺게 됐다. ▲ 김창열 화백의 작품 'Black Rain'. [제이누리DB] 그는 1966~1968년 뉴욕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판화를
▲ 강신정 전 제주도의회 의장 강신정 전 제주도의회 의장이 지난 3일 숙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82세. 강 전 의장은 제주도내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흔치 않은 정치인중 하나였다. 제5·6대 제주도의원을 역임했고 제6대 의회에서 전반기 의장을 지낸 그다. 그는 1996년부터 연말연시나 명절 때가 되면 그의 지역구였던 건입동과 화북동, 삼양동, 봉개동 소외된 이웃들에게 쌀을 전달했다. 그 때마다 10kg 들이 수백포대를 경로당과 주민센터에 보내 홀로 사는 노인, 소년소녀가장 등에게 온정의 손길을 보냈다. 그는 1995년 제5대 도의원선거에 출마하면서 “(당선되면) 의정활동비를 모아 지역사회에 돌려드리겠다”고 공약했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약속을 지켰다. 그의 '약속이행'은 의정활동에서 물러난 뒤에서 계속됐다. 2002년 의회에서 나왔지만 주변의 이웃들에게 보내던 온정의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무려 25년의 세월이었다. 그는 과거 "비록 작은 정성이지만 힘들고 어려운 분들이 쌀을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멈출 수 없었다"며 "힘닿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뉴시스] 한국 경제성장을 이끈 재계 거목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이 회장은 6년 투병 끝에 별세했다. 이 회장은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한 뒤 6년간 투병해왔다. 당시 이 회장은 자택에서 급성 심근경색을 일으켜 인근 순천향대학 서울병원으로 옮겨져 심폐소생술(CPR)을 받았다. 이후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져 막힌 심혈관을 넓혀주는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고 심폐기능이 정상을 되찾자 입원 9일 만에 중환자실에서 병원 20층에 있는 VIP 병실로 옮겨져 장기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타계했다. 삼성전자는 "장례는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지난 1942년 1월9일 대구에서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부친 사후 핵심 경영권을 승계 받아 무역 중심이던 회사의 방향성을 전자산업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삼성그룹을 글로벌 유수의 기업으로 변모시킨 경영인으로 평가 받는다. 이 회장은 부산사범부속초등학교를 다니다가 1953년 일본에 유학했고, 다시
▲ 김봉오 제주문화원장. 김봉오 제주문화원장이 지난 10일 오전 별세했다. 김봉오 원장은 2015년 제7대 제주문화원장으로 취임해 지난해 연임에 성공, 제8대 제주문화원장을 역임했다. 김 원장은 제주문화원 창립 이래 향토사료 발간과 시민을 위한 교육사업, 문화행사와 축제 등 사업 외연을 확장하면서 대내외적으로 문화원 이미지를 신장시켰다는 평을 받아왔다. 또 제주시관광축제추진협의회 위원장을 맡아 성공적인 제주들불축제를 이끌었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2016 대한민국 문화원상’ 축제·문화행사 부분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제주산업정보대(현 제주국제대) 교수, 제주도문화관광해설사협회장, 제주도주민자치위원회협의회장 등을 지냈고 제주시관광축제조직위원장을 맡아왔다. 빈소는 제주시 연북로 부민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12일이다. [제이누리=이주영 기자]
▲ 제주도옹기장 고달순 보유자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14호 제주도옹기장 불대장 고달순 보유자(대정읍 신평리)가 7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7세. 故 고달순 보유자는 70년간 제주옹기 제작에 종사하며 옹기의 보존․전승에 힘 써왔다. 그는 1960년대부터 가마에 불을 때기 시작해 故 강신원 불대장과 함께 2008년부터 2011년까지 1년에 1회씩 큰불을 때왔다. 그릇을 보면서 불때기 상태를 진단할 수 있을 정도로 기량이 탁월해 지난해 8월 보유자로 인정됐다. 제주도 옹기장은 질대장(흙을 선별하고 고르는 기능), 도공장(기물을 성형하는 기능), 불대장(불을 때어 굽는 기능), 굴대장(가마를 만들고 관리하는 기능)으로 구분해 전승 구도를 유지해 왔다. 질대장에는 이윤옥, 도공장에는 부창래, 굴대장에는 김정근이 인정돼 활동하고 있다. 고인의 빈소는 부민장례식장으로 발인은 오는 10일이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 현길언 소설가. [사진=뉴시스] 제주출신 원로 소설가 현길언(80) 전 한양대 국제문화대학 한국언어문학과 교수가 지난 10일 오후 9시께 별세했다. 한양대 국제문화대학은 11일 현 전 교수의 별세 소식을 전했다. 현 전 교수는 수개월 전부터 암투병으로 항암치료를 받고 있었다. 현길언 전 교수는 1940년 제주 출신으로 1980년 '현대문학'에 '성 무너지는 소리'와 '급장선거'로 등단했다. 현 전 교수 작품의 출발점은 고향인 제주도의 역사와 주민들의 삶이다. 1984년 '광정당기', 1987년 '그믐밤의 제의' 등은 제주도 영웅담을 소설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1982년 '귀향', '우리들의 조부님', 1984년 '먼훗날' 등은 1948년 제주 4·3사건의 상처를 소설화하고 해당 사건의 역사적 재규명을 시도한 작품으로 일컬어진다. 이외에 '그 때 나는 열한 살이었다' 등 어린이 문학작품과 '한국현대소설론', '현진건소설 연구', '한국소설의 분석적 이해
▲ 고 김재호 전 제주도의회 의장. 김재호 전 제주도의회 의장이 20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서귀포시 하원동 출신인 김 전의장은 오현고(1회)를 졸업, 1956년 중문면의회 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민주당 제주도당 부위원장, 제15대 김대중 대통령후보 선대본부장, 새정치국민회의 제주도지부 부지부장, 제6대 제주도의회 의장, 민주당 상임고문 등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2남1녀가 있다. 빈소는 서귀포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24일 오전 7시다. 장지는 서귀포시 하원동 가족묘지다. [제이누리=이주영 기자]
▲ 고 장옥순씨(95) 장옥순 김만덕상 수상자가 지난 9일 별세했다. 향년 95세. 장옥순 수상자는 활발한 여성단체 활동으로 지역사회발전에 기여해왔다. 그는 1961년 도내 6개 읍면에 18곳의 간이휴게소를 설치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제주의 '쉰다리'를 ‘만덕요쿠르트’로 이름 붙여 판매해 장애인승강기 설치를 위한 기금으로 전달하는 등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나눔과 봉사를 실천해 온 공로로 1995년 제16회 김만덕상을 수상했다. 빈소는 부민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13일 오전 8시다. 장지는 오라동 선영이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 고 양동주씨가 생전 서울역 고가도에서 한 때를 보내던 장면이다. 1980년대 핫이슈였던 미국 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의 주역 중 한명인 제주출신 양동주씨가 13일 타계했다. 향년 55세. 고인은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재학 시절 사회문제에 눈을 떠 학살사태를 빚은 광주민주화 운동의 배후 책임을 묻는 시위·농성에 가담했다. 그의 인생사의 한 획은 1985년 5월 23일부터 4일간 이어진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이었다. 전국 대학생 대표조직인 전국학생총연합(전학련ㆍ全學聯)의 삼민투쟁위윈회(삼민투) 산하 ‘광주학살원흉처단투쟁위원회’ 소속의 서울지역 5개 대학생 73명이 서울 중구 소재 미국문화원 2층 도서관을 점거하고 농성에 돌입했다. 점거 직후 학생들이 내건 요구사항은 광주사태 책임에 대한 미국의 공개사과와 이를 위한 미 대사와의 면담 및 내·외신 기자회견 보장이었다. 농성 나흘째인 26일 학생들은 자진해서 농성을 해제했다. 농성 해제 후 연행된 73명 중 25명이 28일 오후 구속됐고, 구류 43명, 훈방 5명으로 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은 일단락됐다. 고인은 당시 투쟁위원장이었던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