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노파가 여자 시체의 머리칼을 뽑아 가발을 만들어 판다. 죽은 여자는 뱀을 말려 어포로 속여 팔던 여자다. 직장을 잃은 한 남자는 머리칼을 뽑던 노파의 옷을 벗겨 달아난다. 문루에 버려진 갓난아기를 데려가는 남자를 보며 사람들은 그가 아기를 삶아먹기 위해 가져간다고 의심한다. 환란의 헤이안 시대 라쇼몽에서 벌어진 참상이다. ▲ 상황논리란 욕감과 게으름, 그리고 무능에 대한 '비겁한 변명'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끊이지 않는 전란과 기근, 그리고 역병까지 마치 ‘재앙 3종세트’와 같은 혼동 속 헤이안 시대(약 800~1200년), 서울의 남대문에 해당할 법한 수도 헤이안쿄(平安京, 현재의 교토)의 대문 ‘라쇼몽’의 무너져가는 문루에서 벌어지는 ‘삽화’들이 시대의 참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가히 토마스 홉스(Thomas Hobbs)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All against all)’의 극적인 장면들이다. 17세기 영국의 법학자이자 사상가였던 토마스 홉스는 인간의 본성을 지극히 이기적이
▲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2기 경제팀은 정책 목표를 분명하게 세우고, 결단력 있게 추진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직職을 걸고' 일해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경제팀이 안 보인다. 정부의 경제정책도 먹혀들지 않는다. 투자ㆍ생산ㆍ고용 등 주요 경제지표가 극심한 부진에 빠진 데다 한국 경제를 먹여 살리는 수출마저 넉달째 감소세인데도 경제팀도, 정책도 중심을 잡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3년차를 맞아 성과를 보여주기는커녕 정책 혼선과 잡음으로 시장의 신뢰를 잃고 있다. 문재인 정부 2기 경제팀의 컨트롤타워인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19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다. 경제정책을 총괄하고 부처 이견을 조정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텐데 기획재정부 스스로 세제ㆍ예산ㆍ정책 등 3대 핵심 기능에서 우왕좌왕하며 불확실성을 더한다. 대표적 사례가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 논란이다. 올해로 도입 20년째인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는 지하경제 양성화의 일등공신이자 봉급생활자의 합리적 절세 수단이다. 그 존폐나 공제한도 축소는 중산층과 서민층의 세금이 왔다갔다 하는 중대 사안이다. 폭발성이 큰 문제를 경제부총리가 납세자의 날 기
일본 헤이안 시대, 전염병과 대기근이 닥친 수도 교토에는 굶고 병들어 죽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산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을 처리하다 못해 아무 데나 버리게 되고 도시 외곽문인 라쇼몽의 다락은 시체 유기 명소가 된다. ‘비단결 같은 삶’을 갈구하는 ‘라쇼몽羅生門’이라는 이름이 역설적이다 못해 소름 끼치는 장면이다. ▲ 모두 진정한 반성은 보이지 않고 오직 처벌을 조금이라도 덜 받기 위한 자기 합리화의 이유만 무성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영화 ‘라쇼몽’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두 단편소설 「라쇼몽羅生門」과 「덤불 속藪の中」이 원작이다. ‘덤불 속’이 사실상 영화 스토리의 중심이다. 반면 같은 제목의 소설 라쇼몽은 영화의 스토리와 큰 연관은 없다. 그러나 라쇼몽은 덤불 숲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이해하는 데 있어 그 배경 역할을 한다. 라쇼몽은 일본 헤이안 시대의 수도였던 교토의 외곽문이다. 수년간의 대기근, 화재, 그리고 전염병 등으로 죽은 사람들이 넘쳐나자 라쇼몽의 다락은 시체를 유기하는 장소가 돼 버린다. 영화 속 라쇼몽에는 다락의
▲ 미세먼지는 과거 정권 탓도, 현 정권 탓도 아니다. 역대 정권 모두의 책임이다. 사회와 가정도 나서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3월은 미세먼지랑 함께 왔다. 최악의 미세먼지는 봄과 새 학기를 맞는 설렘과 숨 쉴 자유를 앗아갔다. 미세먼지는 국민의 심신 건강을 저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제까지 질식시킨다. 잿빛 공포에 사람들이 외출을 자제하자 외식ㆍ관광 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고용ㆍ투자에 이어 수출까지 부진한 상황에서 지난해 경제성장을 지탱했던 소비도 위축되는 상황이다. 미세먼지는 장기적으로 기업의 생산활동도 저해한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제품은 미세먼지에 노출되면 불량률이 높아진다. 항공산업에선 비행기 결항이나 기체 세척비용 증가 피해가 예상된다. 자동차ㆍ조선업의 경우 미세먼지가 심한 날엔 도장작업을 못한다. 일각에선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염 사태에 버금가는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한다. 메르스 사태 당시에도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움직이거나 외부 활동을 자제하자 내수와 관광산업 등에 영향을 미쳐 성장률을 갉아먹었다. 문제는 미세먼지로 인한 대기오염이 올 한해로 끝나지 않을 만성 위협이라는 점이다. 매해 상
▲ 기대했던 하노이발 봄바람은 불지 않았다. 정부가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향후 대응책을 면밀히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사진=연합뉴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됐다는 소식에 2월 28일 주식시장이 출렁였다. 특히 남북 경제협력 관련주들이 급락했다. 코스피지수는 40포인트 하락했다. 중국 제조업 경기가 부진한 것과 맞물려 아시아 주요국 증시도 영향을 받았다. 예상하지 못한 충격적인 결과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2차 정상회담은 두 정상의 공동 합의문 없이 불발됐다. 북한의 구체적 비핵화 일정과 미국의 상응 조치를 담을 것으로 예상됐던 하노이 선언도 무산됐다. 합의 실패의 이유는 북한이 취할 비핵화 조치와 제재완화 등 미국의 상응 조치 간 조합에 대한 이견으로 전해진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 대가로 전면적 제재완화를 요구했다. 미국은 영변 핵시설 해체 외 더 많은 비핵화 조치를 요구했다. 실무회담에서 합의문을 조율하지 못한 채 두 정상이 만나 큰 틀의 합의를 꾀하는 톱 다운(Top-down) 방식에서도 접점을 찾지 못했다. 향후 실무협상이 재개돼도 입장차 좁히기가 쉽지 않을 수 있는 배경이다.
▲ 고용참사와 빈부격차가 심화하는 지금 한국 경제와 정치에 공히 필요한 것은 활력과 혁신이다. [사진=연합뉴스] 경제 상황이 갈수록 악화하는데도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약칭 소주성) 정책을 고집하면서 국민의 시름을 더하고 있다. 새해 초 설렘과 기대를 갖게 하는 ‘새해 효과’ 나 ‘1월 효과’는커녕 아직 2월인데도 벌써 몇달이 지난 것 같은 피로를 느끼게 한다. 1월 실업자(122만명)가 1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혹독한 고용한파가 몰아닥쳤다. 취약계층 소득을 끌어올려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소주성’ 정책 의도와 거꾸로 지난해 4분기 하위 20% 빈곤층 소득은 17.7% 감소했다. 그 결과, 소득하위 20%와 상위 20%의 월평균소득 격차(5분위 배율)가 5.47배로 2003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크게 벌어졌다. 소득 양극화를 심화시킨 핵심 요인은 일자리였다. 늘어난 상용 근로자는 그나마 소득상위 가구가 주로 차지했고, 소득하위 가구는 줄어든 임시직에서도 밀려났다.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과 근로시간 단축 등 핵심 소주성 정책이 임시·일용직과
▲ 인간은 '자기 자신도 속이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일본 영화계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감독의 ‘라쇼몽羅生門(1951년)’ 전쟁이 난무하던 일본의 헤이안 시대(794~1185년) 숲속에서 일어난 한 살인사건을 그렸다. 등장인물 모두가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여느 추리극과 달리 이 영화는 서로가 자신이 살인사건의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묘한 상황이 벌어진다. ‘라쇼몽’은 일본의 대표 문인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의 단편 「라쇼몬」(1915년)과 「덤불속」(1921년)을 원작으로 한 일본의 고전영화다. 아키라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쓴 이 영화는 1951년 아카데미상 특별명예상과 베네치아 영화제 대상을 수상하며 일본 영화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도적 다조마루, 사무라이(이미 죽었으나 무당이 그의 영혼을 증인으로 불러낸다), 사무라이의 아내 그리고 목격자인 나무꾼과 스님은 숲속 살인사건의 피의자 혹은 증인, 참고인으로 관아에 끌려 나오거나 출석한다. 그들의 진술은 비선형적으로 복잡하게 전개된다. 이 영화는 등장인물들이 서로 자신이
▲ 문재인 대통령은 기업인들과 만나 적극적인 규제 완화를 약속했다. 하지만 체감할 만한 후속 조치는 보이지 않는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자영업ㆍ소상공인 대표 160여명과 만났다. 중소ㆍ벤처기업(1월 7일), 대기업ㆍ중견기업(1월 15일), 혁신벤처기업(2월 7일)에 이은 경제계와의 네번째 소통자리다. 이로써 새해 초부터 시작된 문 대통령의 경제 행보가 끝나가는 모습이다. 고용한파가 몰아치고 기업투자가 감소하는 등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최고 정치지도자가 기업인들을 만나 현장 목소리를 듣는 것은 의미가 있다. 청와대는 짜인 각본 없이 현안에 대해 묻고 대답하고 토론하는 자리로 마련한 타운홀 형식의 미팅이었음을 강조한다. 과거 정부 대통령들보다 기업인들과 자주 소통함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잇따른 대통령과 기업인의 대화는 만남의 순서와 장소, 대통령의 현실 인식, 대화 이후 후속 조치 등 네가지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첫째, 대통령이 만난 대상의 순서다. 청와대는 자영업ㆍ소상공인 대표를 마지막으로 초청했다. 사실 대통령과 면담이 가장 절실한 쪽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었다. 이들은 이태 연속 두자릿수로
▲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빅 브라더'는 위기의식을 이용해 주민들을 통제한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1949년 소설 「1984」에서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1984년의 디스토피아를 그린다. 오세아니아의 ‘빅 브라더’는 주민을 지배하고 감시한다. 유라시아ㆍ이스타시아 대륙과 전쟁 중이라고 선전하며 위기의식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실제 전쟁 중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주민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빅 브라더는 그렇게 권력을 유지한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이수혁(이병헌 분) 상병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정찰하던 중 지뢰를 밟는다. 꼼짝달싹할 수 없게 된 난감한 상황에서 역시 정찰 중이던 북한의 오경필(송강호 분) 중사가 두려움에 ‘질질 짜는’ 이수혁을 발견하고 지뢰를 제거해주고 돌아간다. 그 인연으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남측 경비병 이수혁과 남성식(김태우 분) 일병은 공동경비구역 북측 초소를 드나들며 오경필, 정우진과 친구처럼 어울린다. 진정한 남북화합이 그곳에서 이뤄진다.
많은 영화에는 주연 못지않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조연들이 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도 인상적인 조연들이 등장한다. 그중 영화 흐름의 물줄기를 쥔 조연은 아니지만 머리를 무겁게 하는 대사의 주인공이 있다. 어깨에 별 하나를 달고 있는 표 장군(기주봉 분)의 이야기다. “이수혁이 좀 봐. 쟤는 혼자서 두 마리나 죽이고 왔잖아!” ▲ 영화 속에서 한국군 수뇌부가 북한군을 세는 단위는 '명'이 아니라 '마리'다. [사진=공동경비구역 JSA 스틸 이미지] 남한의 이수혁 병장과 남성식 일병, 북한의 오경필 중사와 정우진 전사, 그리고 북한군 장교 한 사람이 공동경비구역 북측 초소에서 ‘의문의 합류’ 중 북한군 장교와 정우진 전사가 총격에 사망한다. 북한 오경필 중사는 북측으로 튀고, 남성식 일병은 남측 초소로 도망치고, 다리에 총상을 입은 이수혁 병장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돌아와 구조된다. 북측 초소로 싱겁게 ‘마실’을 다니다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을 크게 만든 이수
수원고등검찰청장(수원고검장) 자리가 대규모 정기인사에도 불구하고 비워져 있다. 왜 그럴까? 최근 법무부는 검사 526명에 대한 승진과 전보를 시켰다. 대법원도 개청을 앞둔 수원고등법원장에 김주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승진시켰고, 부장판사급 이상 69명 등 판사 1043명의 정기 인사를 단행했다. 고위법관 인사는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두번째다. 그런데 당연히 채워야 할 신설 ‘수원고검장’ 자리를 비워둔채 인사가 이뤄지자 법조계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승진시키기 위한 자리로 비워 두었다'는 하마평이 무성하다. 문재인 정권의 1등 공신인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58·사법연수원 23기)을 검찰총장으로 만들기 위한 묘책으로 반드시 고검장에 승진시켜야 문무일 총장 후임으로 앉힐 수가 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2017년 7월 임명됐다. 총장 임기는 2년 단임이라 중임할 수 없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늦어도 6월까지는 새 검찰총장을 임명해야 한다. 검찰은 평검사에 이어 검사장, 고검장 등을 거쳐야 검찰총장이 되는 4단계 서열의식이 강한데다 아직 검사장에 머물고 있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이달중으
▲ 진보.보수의 진영 논리에 구애받지 않고 민생을 돌보는 경제를 회생시킬 실사구시 정책이 필요할 때다. [사진=연합뉴스] 설렘 속에 기대를 갖게 하는 ‘새해 효과’ 없이 1월이 지나갔다. 2월은 긴 설 연휴와 함께 왔다. 즐겁고 신나야 할 텐데 경제 상황도, 정치판도, 사회도 온통 달갑지 않은 뉴스 일색이다. 산업현장의 활력이 급속히 떨어지는 가운데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전선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통계청이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현재와 미래 경기지표인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와 경기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각각 9개월, 7개월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두 지수가 7개월간 동반 하락한 것은 1971 ~1972년 이후 46년 만에 처음이다. 경기선행지수가 상승 반전을 하지 못한 채 장기 하락함은 경기가 ‘V자’ 반등이 아닌 ‘L자’형으로 장기침체 국면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미 지난해 전(全)산업 생산증가율은 1.0 %로 200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설비투자 증가율도 -4.2%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9.6%) 이후 가장 나쁘다. 기업들이 해외에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