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기업 경영자도 격렬한 경쟁 속에서 사업을 성공시키려면 ‘현신양장(賢臣良將)’을 구해야 한다. 보좌해주는 야무진 부하가 있어야 한다. 경영자가 ‘상현(尙賢)’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재능을 기준으로 쓸 만한 인재를 모아야 한다. 그러나 『주역』은 말한다. “사람이 모이면 어지럽고 사물이 모이면 싸우며 일이 모이면 문란하니, 대인이 다스리지 않으면 모임은 다투어 어지럽게 된다.”1) 그렇기에 그저 인재를 모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인새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충분하게 인재를 존중하여야 한다. 소순(蘇洵)도 말한 적이 있다. “인재를 고르고 예로써 대해야 한다.”2) 인재가 기업에서 일하려고 하는 까닭은 그저 수입이 많고 적음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하는 회사의 분위기이다. 높은 소양이 있는 인재는 더욱 서로 이해하고 화합적인 분위기를 창출하기를 원한다. 경영자는 그런 분위기의 창립자이다. 창립자의 가장 좋은 방식은 ‘존중’이다. 그렇기에 경영자는 먼저 ‘존중’하는 것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인재를 존중하고 존중하며 또 존중하여야 한다. 모토롤라 경영자가 말한 적이 있다. “모토롤라의 모든 것은 변할 수 있다. 단지 사람에 대한
◆ 췌괘 췌(萃)는 모이다, 집결하다 뜻이다. 많은 뛰어난 인물이 모이니 영웅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영재가 서로 모이면 반드시 하늘과 땅이 뒤집히듯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 아름다운 미래가 창조된다. 인재가 부족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고상함과 고상함이 모인다. 아름다움과 희망이 모인다. 전국시기에 진(秦)소왕(昭王, BC325~BC251)은 사람됨이 낙관적이었다. 기상이 넘쳐나 원대한 계획을 크게 펼쳐 천하통일을 바랐다. 그러나 천하통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단기(單騎)로 창을 들고 적진에 뛰어들 듯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소왕은 천하의 현재를 끌어 모을 마음을 먹었다. 범저(範雎)는 원래 은사(隱士)였다. 시서와 병법을 두루 익혀 원대한 계략에 뛰어났다. 당시 유명한 현인으로 이름을 떨쳤다. 범저는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다 진(秦)나라에 이르렀다. 진 소왕이 듣고는 범저를 초빙해 부하로 삼고 자신을 위하여 일을 시킬 생각을 했다. 그래서 친히 범저를 찾아갔다. 소왕은 범저를 보자마자 주변에 사람을 물린 후 독대하였다. 소왕이 앞으로 나가 무릎을 꿇고서 가르침을 청했다. “선생을 무엇을 가지고 내게 가르침을 주겠
친구가 가지고 있는 뜻은 대단히 넓다. 부모나 형제자매처럼 간단하지 않다. 친구는 잃음과 동시에 다른 친구를 얻을 수 있다. 가정처럼 보호하는 데에 진력할 필요가 없다. 일단 교류하고 공통의 사상이 뜻하지 않게 통하게 되면 친구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동료와 같이 작업 환경을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 인사 관계도 필요치 않다. 겹쳐 엇갈리는 일환이 없기에 더 쉽게 서로 자신의 업무, 가정, 그리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다. 친구는 가깝기도 하지만 멀어질 수도 있다.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다. 피차간에 변화막측한 올가미를 가지고 있다. 친구는 가까울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동성 간에는 손과 발 같은 형제처럼 될 수 있다고 한다. 이성 간에는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고도 한다. 그렇다. 그것이 친구의 가장 높은 경지다. 그런데 피차간에 그러한 경지에 도달한다면 친구라고 부를 수 없지 않는가. 새로운 어휘를 가지고 형용해야 옳다 보지 않는가. 친구가 되는 과정에는 3가지 구성 요소가 필요하다. 물론 다른 요소도 필요하겠지만 여기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것만 이야기하려 한다. 바로 우의(우정), 좋아함, 사랑이다. 우의(우정)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
◆ 구괘(姤卦) 구(姤)는 약속하지 않고 만나는 것이다. 우연히 상봉하는 것이다. 만남은 인연이다. 찬스다. 좋은 기회이니 성공의 시작이다. 만남이 있어야 혈육 간의 정, 우정, 애정이 있게 된다. 이렇게 본다면 만남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만남이 늘 좋다고만 할 수 없다. 좋지 않은 만남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상대를 식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동무를 사귀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주역』은 우리에게 말한다 : 만물에 두루 미치는 바람처럼 하라. 자신의 부드러움, 배려와 관심, 지혜를 가지고 모든 사람과 만나라. 그러면 좋은 결과가 있게 된다. 만남은 인연이다. 소중하면서도 진귀하고, 쉽게 바꿀 수 없는 인연이다. 인연은 한 번 찬스가 주어지기도 하고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사람사이에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한다. 삶에서 엮어지는 많은 사랑과 원망, 얽히고설킨 정 또한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인과 관계다. 세상은 바둑과 같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만나고 알게 되며, 친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필연이면서 우연이다. 어둠 속에 본래 인연이란 것이 있다. 나는 장강 상류에 살고 그대는 장강 하류에 산다네. 매일
◆ 쾌괘(夬卦) 쾌(夬)는 결(決)의 뜻이다. 일을 하는 데에 결단이 있어야 한다. 과단성이 있어야 한다. 우레같이 맹렬하고 바람같이 신속하여야 한다. 엄격하고 빨라야 한다. 꾸물거려서는 안 된다. 우유부단, 주저주저해서도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전도를 망칠 수 있다. 청춘을 낭비해 버릴 수 있다. 유사 이래로 큰일을 하는 사람은 일을 처리함에 있어 제때에 결단하였다. 마음 내키는 대로 들 수도 있고 놓을 수도 있었다. 능숙하게 감당해 냈다. 기세 드높게 일을 처리해 천지를 감동시켰다. 우유부단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결단을 내릴까 말까할 때에 왕왕 믿음이 부족하고 힘을 발휘하지 못하기도 한다. 『주역』은 말한다 : 사람이나 일을 제거하려 하면 대중 앞에서 그들의 죄를 선포하고 성심으로 민중에게 호소해 힘을 합쳐 승리를 쟁취하여야 한다. 다만 행동하기 전에 자기 영지에 있는 민중에게 먼저 알려 지지를 얻은 후에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소인은 수가 적기는 하지만 교활하고 간사한 꾀가 많다. 행동하기 전에 완전하게 만들 계책을 세우지 않고서 행동하면 위험이 뒤따른다. 힘이 없으면 절대 소인을 처리해서는 안 된다. 굽지 않은 흙벽돌로는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막을
2. 타인에게 베풀었다고 떠벌리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자기 조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 적이 있다. 세상사의 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 그해, 조부는 무척 가난하였다. 큰 눈이 내리는 날, 조부는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집에 가서 돈을 좀 빌려달라고 부탁하였다. 공교롭게도 그날, 그 부자는 기분이 무척 좋은 상태여서 조부에게 거금을 선뜻 내주었다. 그러고는 시원스럽게 말했다 : 가지고 가시오. 돌려줄 필요 없소! 조부는 받아든 돈을 매우 조심스레 싸서는 돈이 급히 필요한 집으로 황급히 달려갔다. 부자는 뒷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더 소리쳤다 : 돌려줄 필요 없소! 이튿날 새벽, 부자가 마당 문을 열어보니 마당에 쌓였던 눈이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기와 위에 쌓였던 눈도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부자가 마을 사람에게 물어본 후에야 조부가 아침부터 깨끗하게 청소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부자는 알게 됐다 : 타인에게 베푼다는 것은 타인을 거지로 만들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부자는 조부를 찾아가 차용증을 써줬다. 조부는 그제야 고마움의 눈물을 흘렸다. 조부는 눈을 쓸어줌으로써 자신의 존엄성을 지켰다. 부자는 조부에게 차용증을 써줌으로써 조부의 존엄성을
◆ 익괘(益卦) 익(益)은 위에서 덜어내어 아래에 보태주는 것이다. 군주를 감손해 신하에게 증익시키는 것이 익(益)이다. 이익이 생겼을 때 자기 사람을 생각하여야 한다. 적당하게 자신의 이익을 덜어서 다른 사람에게 주면 행복이 따라온다. 선행하여야 한다. 즐거이 남에게 베풀어야 한다. 교양 있고 사리에 밝아야 한다. 베풀면 복이 온다. 정도를 걸으면 큰돈을 벌 수 있다. 바로 이른바 ‘군자는 재물을 좋아하되 정당한 방법을 취해야 한다’는 말과 같다. 다른 뜻이 없이 사람을 도우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주역』은 우리에게 말한다. 당신이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마음이 생기거들랑 바로 행동으로 옮기라. 그것이 당신이 이익을 얻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음을 열어 천하에 베풀면 천하가 베풀려는 마음을 갖는다. 인정이 바로 재산이다. 인간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은 인정을 얻고 인연을 맺기 위한 것이다. 타인이 당신에게 인정을 빚졌으면 타인에게 쉽게 일을 부탁할 수 있다. 어떤 때에는 당신이 말을 꺼내지 않았는데도 도와준다. 사람됨이 그처럼 훌륭하게 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인정 넘치게 친교를 맺기를 잘하고 즐거이 타인을 도와주는 것과 관련이 있다. 다른 사람을 도와줄
◆ 손괘(損卦) 손(損)은 감소(減少)다. 적게 하다, 적어지다, 감소하다, 덜다, 줄(이)다, 절약검소, 자아 약속 등으로 인신할 수 있다. 어떤 때는 잠시 감소한 것은 나중에는 오히려 증가하게 된다. 적당한 손해는 미래의 복을 불러올 수도 있다. 물건 하나를 잃으면 다른 물건을 얻게 된다. 이 세상은 이처럼 기묘하다. 손해를 보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주역』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 손해란 결코 온전히 나쁜 것만은 아니다. 평상시에 손해를 봤다면? 자신이 잃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는 타인에게 신임과 존중을 받게 되기도 한다. 결국 우리에게 보답으로 돌아오는 게 더 많을 수도 있다. 손해는 복이다. 사람은 모두 이익을 보려는 본성이 있다. 내가 손해 보면 타인은 이익을 보게 된다. 최대한도로 타인의 적극성을 발양할 수 있게 만들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 우리 사업도 흥성하고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그렇더라도 현실 생활에서 주동적으로 손해 보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어찌 인성의 약점이라고만 말할 것인가. 본래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그것을 거절하기 어디 쉽겠는가? 어찌 대다
◆ 해괘(解卦) 해(解)는 해제하다, 벗어나다 뜻이다. 위험이 도래할 때 우리는 자신을 보호할 줄 알아야 한다. 숨을 때는 숨을 줄 알아야 한다. 숨을 때는 정기(精氣)를 키우고 예기(銳氣)를 모아야 하며 개과자신(改過自新)하여야 한다. 경거망동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해(解)’는 험난함이 풀어져 흩어지는 때이다.”1) 곤경에 처하면 풀 방법을 생각하여야 한다. 높은 산을 만나고 사막을 보았을 때처럼 용감하게 대면하여야 한다. 방법이 있어야만 평안하게 위험한 처지를 벗어날 수 있다. 험지를 막 벗어났다면 우리가 처음 할 일은 휴양생식(休養生息)이다. 『주역』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어려움이 해결된 후 모든 것은 쉽게 하고 평온하게 하여야 하며 백성을 쉬게 하여야 한다 ; 다시는 백성을 번거롭게 하거나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 평탄한 대지처럼 평온은 풍족하게 되는 전조다. 기원전 224년, 진(秦)나라 영정 23년에 왕전(王翦)이 60만 대군을 이끌고 제2차 초(楚)나라 정벌에 나섰다. 초나라도 병력을 모아 항전하였다. 봄에 진나라 군대는 영도(郢都)를 공략하였다. 진(陳) 남쪽과 평여(平輿) 사이의 지대까지 진군한 후 영수(潁水)와 여수(汝水) 사이에서
◆ 건괘(蹇卦) 건(蹇), 『서괘전(序卦傳)』에 말했다. “건은 어려움이다.” 건은 위험, 곤경이다.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고통을 받는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따지고 싶지 않다. 다만 곤란은 확실히 시시때때로 우리 곁에 머물고 있음은 분명하다. 곤란을 대면했을 때 더듬어 생각하고 반성하여야 하고 굳세고 힘이 있고 정직하고 공정하여야 한다. 곤경에 빠졌을 때 어떻게 하여야 할까? 생아편은 본래 좋은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사용해 병을 치료할 수 있다. 그런데 생아편을 아편으로 제조돼 청(淸) 왕조 시기 중국에 유입되었을 때 백성에게 해독을 끼치고 망국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죄악의 검은 마수가 됐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여러 가지 원인에 따라 오늘날 환경은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 많은 물종이 지구에서 멸종되었다. 각양각색의 기괴한 질병이 엄습하고 있다. 자연재해는 차례차례로 끝없이 나타나고 있다.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원흉은 누구인가? 어느 누가 무고하게 사라져간 생명의 영혼을 달랠 수 있는가? 곤경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가? 외계 대자연이요 인위적인 데서 도래하기도 했고 많은 일들은 자초하기도 했다. 황사가 몰려오면 우리는 답답하고
◆ 규괘(睽卦) 규(睽)는 괴팍하다, 위반하다, 대립하다 뜻이다. 사회는 통일되어 있으면서도 대립하기도 한다. 어떤 모순(갈등)도 해결할 수 있는 점이 있다. 바로 ‘같은 점’이다. 같은 점을 찾아내야만 쌍방인식의 일치(공통 인식)를 이룰 수 있다. 세상에 영원한 친구란 없다. 영원한 적도 없다. 구동존이(求同存異, 공통점을 구하고 차이점은 놔둔다. 서로 다른 점은 인정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우리가 까다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다. 천성적으로 의심이 많으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사람마다 다른 배역을 충당할 기회가 있다. 각양각색의 사람과 사귈 기회도 있다. 일하거나 생활하는 가운데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는 도리를 이해하여야 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보호하고 타인을 사랑하여야 한다. 『주역』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 합쳐지면 반드시 떨어지게 되고 떨어지면 반드시 합쳐지며, 같음 속에 다름이 있고 다름 속에 같음이 있다. 사람들과 함께 지낼 때 의견차이가 생기는 것은 필연적이 일이다. 자신과 타인이 의견차이가 있을 때 관건은 시기를 파악해 다름 속에서 같음을 구해야〔이중구동(異中求同)〕 한다. 다름 속에서 같음을 찾는 것은 사람이 처세하는 가장 큰 특징이
◆ 가인괘(家人卦) 가인(家人)은 가정의 성원이다. 가인은 또한 단체다. 단체이기에 규칙이 있다. 규칙이 없다면 어찌 방원(方圓, 모진 것과 둥근 것)1)이 있겠는가? 집에는 집안규칙〔가규(家規)〕이 있고 가문이나 사문에도 그에 따른 규칙이 있다. 단정한 가풍이 있고 자식을 가르치는 데에 적절해야만 아름다운 가정을 창조할 수 있다. 자녀를 잘못 가르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집〔가(家)〕은 지지배배 거리는 둥지다. 애정의 작은 울타리이다. 실패자의 상처를 치료하는 곳이다. 그래서 영국인들이 ‘나의 집은 나의 성’이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집이 진정한 성이 되려면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녀와 자부가 있어야 한다. 화목하게 지내는 형제자매가 있어야 한다. 안과 밖에서 활동하는 가정의 용장이 있어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고 형은 형답고 아우는 아우답고 남편은 남편답고 아내는 아내다움에 집안의 도가 바르게 된다.” 가풍이 바르면 가정이 바르다. 가정이 바르면 국가가 안정된다. 가족에게는 무조건 맹종하라는 불합리한 요구를 하면서 주변 사람에게는 관대한 사람이 있다. 큰 비바람의 충격을 대항할 수 있으면서도 아내의 ‘베갯밑송사’를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