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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의 거지 (25) 아사(雅士, 바르고 깨끗한 선비)와 거지 (7)

거지 은사 마옹항(馬翁恒)

 

거지 무리에 은거하였던 아사(雅士)가 있다. 세상을 업신여기고 스스로 즐기는 유형에 속한다. 청나라 때 봉대(鳳臺)에 마체효(馬體孝)라는 이름의 제생(諸生)이 그런 부류에 속한다.

 

마체효는 성정이 호쾌하고 시원시원하였다. 부부가 모두 시를 읊고 불학을 좋아하였다. 창화하며 즐기다가 참선의 이치를 논하면서 밤새기도 했다. 다년간 강남의 명산대천을 유람하고 난 다음 이름을 광(曠), 호를 옹항(翁恒)이라 고친 후 행적이 묘연해 졌다.

 

나중에 숙천(宿遷)현에서 죽은 거지가 발견되었다. 가슴에 시 한 수를 품고 있었다. 말미에 ‘개은(丐隱) 옹항 절필’이라는 서명이 있었다. 현령은 기이하다 느끼고 매장한 후에 그 시를 새기고 창화시까지 써서 비석을 세웠다. ‘개은(丐隱) 옹항 선생의 묘’라 불렀다.

 

숙천에서 죽은 거지의 절명시가 마체효의 부인 진(晉) 씨에게 전해지자 진 씨가 읽고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죽은 사람은 내 남편이다.”

 

그 시에는 서명이 없었다. 집안사람이 숙천에 가서 대조 확인한 결과 틀림이 없었다.

 

은사가 아니면 뭐라 할까. 벼슬길에 마음을 두지 않고 배움을 버리고 멀리 유람하며 숨어 지내는 거지가 됐으니. ‘속세의 덧없음을 깨달은’ 은사가 아닐는지. 유랑하며 구걸하는 것을 최후의 귀착점으로 삼은 은사일 터이다.

 

모든 것을 하찮게 대하며 걸식을 놀이로 삼은 방탕한 사인(士人)

 

세상사를 벗어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가 있다. 세상을 업신여기며 냉소적 태도를 취했던 사인이 많다. 방탕하기 그지없이 방종하게 지냈던 자들도 대대로 존재한다. 그런 행동 때문에 대부분 풍류 명사가 되었다.

 

국군(國君) 중에 걸식을 재미로 삼은 자도 있었다. 풍류 아사(雅士) 중에도 그런 예가 적지 않다. 모두 세속과 상반되는 변태 행위다. 변형된 마음 상태에서 비롯된, 여러 가지 이상한 행적으로 굴절되게 표현하고 있다.

 

조경종(曹景宗), 자기 공로를 믿고 걸식을 오락으로 삼다

 

남북조시대 양(梁) 왕조에 용감하고 날래어 여러 차례 큰 공을 세운 대장군이 있었다. 성은 조(曹), 이름은 경종(景宗), 자는 자진(子震)으로, 신야(新野, 하남에 있는 지역) 사람이다. 어릴 적부터 말 타기와 활쏘기를 잘했고 사냥을 좋아하였다. 관직이 시중(侍中), 중위장군(中衛將軍), 강주자사(江州刺史)를 역임하였다. 52세에 부임 도중 세상을 떴다.

 

사람됨이 오만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다. 모르는 글자가 있으면 몸을 낮추어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조작하였다.

 

술 마시기를 즐기고 놀기를 좋아하였다. 음력 섣달에 소리를 지르며 길거리로 뛰쳐나가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구걸하는 것을 오락거리로 삼았다. 그런 기회를 틈타 그의 날랜 부하들은 부녀자들을 희롱하고 재물을 약탈하기도 하였다.

 

그런 사실이 계속해서 양 고조(高祖)에게 전해져서야 비로소 조경종이 그런 변태적 유희를 하지 않게 되었다. 황제는 그를 책망하지 않았다. 예전에 고조는 공신을 초청해 연회를 베풀어 과거 이야기를 나누는 주연을 여러 차례 마련하였다. 조경종은 때때로 술에 취하여 본분을 잊어버렸다. 간혹 소관이라 잘못 불렀는데도 황제는 일부러 내버려 두고 그런 말을 듣는 것을 즐길 거리로 삼았다.

 

조경종이 자기 공로를 믿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여러 가지 변태 행위는 당시 황제가 총애하면서 벌어진 일이니, 갖가지 추태를 부린 것도 이상할 것도 없다.

 

명사 배휴(裴休), 탁발 거지가 돼 기원(妓院)에서 구걸하다

 

당나라 때에 서법, 문장으로 유명한 명사 배휴(裴休)는 자가 공미(公美)다. 당 선종(宣宗) 이침(李忱) 때, 대중(大中) 연간에 병부시랑(兵部侍郎)에서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로 진급할 때까지 5년 동안

조운(漕運) 적폐를 개혁하고 방진(方鎭)의 세금 포탈을 제지하면서 정치적 공적을 많이 쌓았다.

 

집안 대대로 불교를 믿었는데 배휴 대에 이르러 더욱 깊어졌다. 아사(雅士) 배휴는 때때로 승복을 입고서 발우를 들고 기원에서 구걸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풍류 일사로 여태껏 남아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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