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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의 거지 (22) 아사(雅士, 바르고 깨끗한 선비)와 거지 (3)

팔기(八旗)1) 자제가 거지로 전락하다

 

진(晉)나라 때 중이(重耳)는 왕공 귀족이었다. 유랑하며 걸식을 경험하는 등의 난관을 뚫고 대업을 이루어 일대 패주, 정치가가 되었다. 명 태조는 구걸했던 경험이 명 왕조를 건립하는 기틀이 되었다.

 

신사(紳士) 계층도 가난 때문에 걸식하며 생계를 유지한 사례가 많다. 예를 들어 청대 동치(同治) 시기에 상군(湘軍)의 유명한 장군, 나중에 복건(福建)제독이 된, 왕명산(王明山)은 어린 시절 상담(湘潭)에서 걸식하다가 나중에서야 군에 입대하였다. 여러 차례 군공을 세워 한때 부귀를 누렸다. 인생은 변화무쌍하다.

 

재미있는 것은 나쁜 일은 계속해 반복하듯이 똑같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청대 건륭(乾隆) 시기에 팔기의 제군(制軍) 출신이 있었다. 부유하게 살다가 궁핍해진 후 거지가 되었다. 부귀했을 때에는 시첩, 하인 할 것 없이 복식이나 음식, 노리개 모두 지극히 사치했고 무절제하게 낭비했다고 전한다. 관직에서 쫓겨나 경사로 돌아갔을 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궁핍해져 있었다. 얼마 없어 한 집 한 집 돌아다니며 걸식하는 거지가 되었다.

 

경사의 왕공 귀인 모두 그를 받아주지 않았는데 대흥(大興) 사람 주문정(朱文正)만이 문지기에게 거절하거나 무시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10일에 한 번씩 구걸하러 들렀다. 그럴 때마다 주문정은 매번 친히 200청부(靑蚨)2)을 선사하였다.

 

어느 날, 그가 또 방문했는데 집에 사람이 없자 자그마한 거울 하나를 도둑질해 갔다. 하인이 거울을 찾지 못하자 제군이 왔었는데 그가 가지고 간 것 같다고 말했다. 주문정은 하인에게 거울을 찾지도 말고 얘기도 퍼뜨리지 말라고 명했다. 그가 다시 오면 그저 차를 내주고 시중들면 된다고 덧붙였다. 이런 대접에 대하여 어떤 사람이 감탄해 말했다.

 

“인생이란 실로 어렵구나. 옛사람은 과도하게 호사하다 궁핍해져 죽었나니.”

 

청나라 사람 설복성(薛福成)이 말했다.

 

“제군은 오래 사는 것보다 일찍이 죽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 사람 볼 체면이 서겠는가.) 예전에 오리를 즐겨 먹는 사람이 있었다고 들었다. 매 끼니 마다 오리를 잡아먹었다. 갑자기 꿈속에서 어떤 지역이 보였는데 연못 속에 수많은 거위가 있는 게 아니가. 연못을 지키는 사람이 저 모든 것이 당신의 입속에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꿈에서 깬 후 기쁨에 넘쳐 오리를 더 남살해 먹었다. 나중에 다시 꿈을 꿨는데 오리가 셀 수 있을 만큼 수가 줄어든 것을 보고 급히 오리를 잡지 말라고 하였다. 마침 그때 그가 병을 앓자 친구들이 먹을 것으로 오리를 보내왔다. 수를 세어보니 꿈속에서 본 오리의 숫자와 맞아떨어지는 게 아닌가. 그래서 놀라 두려움에 떨다 세상을 떠났다. 한탄스러운 것은 사람이 자기 오리를 다 먹어버릴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또 오리가 자기가 없으면 함께 사라질 것이라는 걸 어찌 알겠는가?”

 

은유적으로 제군의 처지와 타락을 탄식하고 있다.

 

어찌 되었든 간에 빈사의 구걸은 박부득이한 일이다. 시정에서 몸을 굽히거나 길거리에서 유랑하기도 하였고 할 수 없어 도둑이 되기도 하였다. 그런 사례가 적지 않다.

 

어떤 사람은 거지였다가 나중에 뜻을 이루어 사림에 들어가 귀한 사람이 되기도 하였다. 그랬을 때 스스로 부끄러운 경력이라고 지워버려서는 안 된다. 이런 때도 있고 저런 때도 있지 않던가. 어찌 모든 것을 덮을 수 있겠는가!

 

거지가 수레에 오르다

 

송(宋)나라 공이정(龔頤正)의 『속석상담(續釋常談)』에 있는 기록이다.

 

“『한관의(漢官儀)』에 기록되어 있다. 장형(張衡)이 말했다 : 명제(明帝)가 평대에 나와 앉아 가림막하고 이부(二府)를 보니 건물이 웅장하고 아름다운데 태위부(太尉府)만 나지막하고 초라하였다. 현종(顯宗)이 동쪽을 돌아보며 탄식하며 말했다. ‘소를 잡아 연회를 베풀더라도 거지에게 일을 관리하도록 맡기지 마라.’”

 

현종은 무슨 생각으로 이 말을 했는지, 본뜻은 무엇인지 마음 쓸 필요는 없다. 거지도 황제가 되지 않던가. 거지가 재상 같은 높은 관직에 오르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옛날에 관리가 너무 빨리 승진하면 ‘거지가 수레를 탔다’라고 비유하고 풍자하였다. 이 전고는 『세어(世語)』에서 나왔다.

 

“관직이 정로장군(征虜將軍), 가절도독강남제군사(假節都督江南諸軍事)에 이렀다.”3)

 

배송지(裴松之)가 『세어』를 빌어 주를 달았다.

 

“선왕(宣王)이 주태(州泰)를 위하여 모임을 만들고서는 상서(尙書) 종요(鍾繇)에게 주태를 놀리라고 하였다, ‘당신은 석갈(釋褐)하고 재상 자리에 오르더니 36일 만에 휘개(麾蓋)를 가진 채 병마(兵馬)를 관장하며 (태수가 되어) 군(郡)을 맡게 되었습니다. 거지가 작은 수레에 오르고서, 어찌 이토록 빨리 달린단 말이요?’”4)

 

이렇듯 역사에 ‘거지가 작은 수레에 올랐던’ 일은 분명 존재한다.

 

여러 아사(雅士)나 귀인이 타락하고 곤궁해져서 거지가 된 사례도 많다. 원(元)나라 때에는 사림의 독서인을 경시하여 말류인 거지 바로 위에 나열하였다. 사회 여러 부류에서 아홉 번째에 해당한다. 이른바 ‘구유십개(九儒十丐)’5)가 그것으로, 얼마나 비천했는지 알 수 있다. 원나라 때 사방득(謝枋得)이 말했다.

 

“우리 대원 전장에 10등급의 사람이 있다. 첫째는 관리, 둘째는 벼슬아치로 앞선 자는 귀한 것이다. 귀한 자는 나라에 이로움이 있다 하겠다. 일곱 번째는 장인, 여덟 번째는 창녀, 아홉 번째는 유학자, 열 번째는 거지다. 나중에 있는 자는 천한 것이다. 천한 자는 나라에 이익이 없다고 하겠다.”6)

 

원나라 때에 독서인의 처지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이것은 일정한 역사 조건 아래의 구체적 상황, 현재와는 다른 시각에서 이루어진 관점이다.

예부터 지금까지를 종관하면 사인(士人) 계층은 대부분 평민 위에 군림하였다. 청고(淸高)하고 풍아(風雅)하다고 자처했던 ‘유한(有閑)’ 계층이다. 하지만 어찌 영원한 게 있으랴. 그들도 곤궁하게 된 후 나락에 빠지면 그 처지는 일반 평민보다도 훨씬 못하였다.

 

“털이 빠진 봉황은 닭보다도 못하다.” 그렇지 않은가.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 팔기(八旗)는 청(淸)나라의 지배 계층인 만주족이 소속되었던 사회, 군사 조직이다. 그 제도를 팔기제라고 부른다. 깃발〔기(旗)〕의 빛에 따라 정황(正黃), 정백(正白), 정홍(正紅), 정람(正藍), 양황(鑲黃), 양백(鑲白), 양홍(鑲紅), 양람(鑲藍) 팔기로 나눴다. 후에 몽골팔기(蒙古八旗)와 한군팔기(漢軍八旗)를 추가 설치하였다. 모든 만주족은 8개의 기 중 하나에 소속되었다. 팔기에 소속된 만주족, 몽골족, 한족은 기인(旗人)이라 불렸으며 청나라 지배계층이 되었다.

2) 청부(靑蚨), 파랑강충이이다. 『회남자(淮南子)』 「만필술(萬畢術)」에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새끼를 잡아오면 어미가 스스로 잡히는 청부(靑蚨)라는 곤충 이야기이다. 어미의 피와 새끼의 피를 서로 다른 돈에 바른다. 자혈(子血)을 바른 돈은 가지고 있고 모혈(母血)을 바른 돈만 사용하면 돈이 나중에 다시 돌아온다고 한다. 그런 까닭인가, 청부는 돈의 다른 이름으로도 쓴다.

3) 『삼국지(三國志)·위지(魏志)·등애전(鄧艾傳)』 부(府) 『주태전(州泰傳)』에 기록돼 있다.

4) 선왕(宣王)은 사마의(司馬懿)이다 ; 종요(鍾繇)는 종요의 아들인 ‘종육(鍾毓)’ 혹은 ‘종회(鍾會)’의 오류다 ; 석갈(釋褐)은 평민의 복장인 ‘갈옷’을 ‘벗는다’ 뜻으로 처음 관직에 부임한다는 말이다 ; 휘개(麾蓋)는 의장용 깃발과 거개(車蓋)다.

5) 미천한 사람, 나약한 지식인(독서인)을 비유한다. 원대(元代)에는 사회적 신분을 관(官), 리(吏), 승(僧), 도(道), 의(醫), 공(工), 렵(獵), 민(民), 유(儒), 개(丐) 등 열 개의 서열로 구분했는데, 이로부터 독서인·지식인을 야유, 조롱하는 말로 쓰였다.

6) 사방득(謝枋得) 『사첩산집(謝疊山集)』 2권 「송방백재귀삼산서(送方伯載歸三山序)」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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