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5 (금)

  • 구름많음동두천 21.9℃
  • 맑음강릉 28.8℃
  • 흐림서울 22.1℃
  • 구름많음대전 24.1℃
  • 구름많음대구 28.8℃
  • 구름많음울산 27.0℃
  • 구름많음광주 24.2℃
  • 흐림부산 23.3℃
  • 구름많음고창 24.1℃
  • 구름많음제주 26.8℃
  • 구름조금강화 23.5℃
  • 구름많음보은 23.4℃
  • 구름많음금산 23.5℃
  • 흐림강진군 24.9℃
  • 구름많음경주시 28.4℃
  • 구름많음거제 24.1℃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의 거지 (18) 제왕(帝王)과 거지 (8)

사정을 이해한 ‘궁불파’는 급한 상황에서 방법을 생각해 냈다. 얼마 전에 굶어 죽을 뻔 할 때 목숨을 구해준 구명은인이 건넨 원보(元寶)를 꺼내어 부인에게 주었다. 원보를 배경으로 해서, 글쪽지를 가지고 거리를 다니면서 원조를 받아 문제를 해결하라 하였다.

 

위에 큰 글씨로 “해내에 유명한 거지 ‘궁불파’가 딸의 몸값으로 10량을 의롭게 원조했다.”라고 써줬다. 그런데 사람들은 거지가 선수를 친 것이 못마땅했던지 거지가 준 원보의 내력이 불분명하다며 아무도 호응하지 않았다. 헛수고가 되어버렸다.

 

‘궁불파’는 어쩔 수 없이 구명은인이 건넨, 함부로 사용하지 말하고 한 금가락지와 새로 구걸해서 얻은 부수입을 함께 부인에게 건네주면서 몸값을 지불해 딸을 집으로 데리고 가라고 하였다.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부인이 궁불파가 준 돈을 가지고 가 몸값을 지불하고 딸을 데리고 오려 할 때 그 향신이 내력을 캐묻고는 부인에게 이튿날 오라하였다. 다음 날, ‘궁불파’가 딸을 데리고 왔는지 확인하려고 부인 집에 갔을 때 한 무리가 달려들어 돈과 양식을 강탈한 강도라면서 부인과 함께 묶어 현의 아문으로 데리고 갔다.

 

알고 보니 반년 전에 고향현에서 돈과 양식을 경성으로 호송하다가 도중에 향마(響馬)1)에게 모두 강탈당했었다. 범인 호송원이 가산을 탕진해 배상하고 원보(元寶)를 만든 후에야 경성으로 호송하여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궁불파’가 건네준 원보 위에는 호송원과 은장(銀匠)의 이름이 교묘하게 새겨져 있었던 것이었다.

 

지현(知縣)은 그것을 근거로 온갖 방법을 동원해 고문을 가하면서 ‘궁불파’에게 허위자백을 받아냈다. 그런 후 부인을 보증인으로 세우니 ‘궁불파’도 이제 죽음을 기다릴 도리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궁불파’가 가지고 있던 물건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이전에 ‘궁불파’는 한 집에 두 번 찾아가 구걸하지 않으며 의협을 행한다는 소문이 퍼져있었다. 그가 산서 태원(太原)에 가서 구걸하기 전부터 그의 이름을 사칭하여 이미 많은 재물을 구걸한 후 떠난 자가 있었다.

 

나중에 진짜 ‘궁불파’가 그곳에 나타나 걸식하자, 현지인들은 사기꾼이라 단정하고 1문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욕주고 푸대접 했다. ‘궁불파’는 배고파서 혼절해 쓰러졌다.

 

현지의 지방 총갑(總甲)2)도 어수선한 기회를 이용해 곳곳에서 세금을 징수하면서 도중에 어부지리를 얻고 있었다. 당일에 유(劉) 씨 성을 가진 창부의 집에 세금을 거두러 갔다. 마침 명기(名妓)가 표객(嫖客) 한 명과 바둑을 두고 있었다. 산동의 거지 ‘궁불파’가 죽었다는 말을 들은 명기는 예전에 그가 은전을 마련해 관을 사서 어머니의 장례를 치렀던 은혜가 떠올랐다.

 

“그저께 걸식하러 왔는데 나를 알아보지 못하더군요. 머무르게 하여 밥 한 끼 차려주고 다음에 다시 오기로 약속도 받았지요. 다시 오면 예전 일을 이야기하고 후하게 갚으려고 했는데, 누가 알았겠습니까, 며칠 못 본 사이에 굶어 죽을 지를.”

 

표객이 전후사정을 알고 나서 같이 온 사람에게 5량 은자를 지방 총갑에게 건네주었다. 관을 마련하여 장례를 치르고 스님을 초청해 망혼을 달래주도록 명했다. 명기는 지방 총갑이 착복할까 염려돼서 집안사람에게 직접 가서 장례를 치러주라고 부탁하였다.

 

관을 들고 갔을 때 다행히도 ‘궁불파’는 절명하지 않고 숨이 붙어있었다. 죽을 먹이자 얼마 없어 깨어났다. 사람에게 부탁해 은인에게 감사의 뜻을 표할 수 있게 데려가 달라고 하여 명기를 찾아갔다. 표객이 그와 명기를 의남매를 맺게 한 후 집에 머물도록 하였다.

 

‘궁불파’가 생각하기를, 기녀에게 공밥을 얻어먹고 유곽 주인의 친속이 되는 것은 절의와 명성을 잃는 짓이요, 10여 년 동안 쌓아온 거지의 공력이 헛되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며칠 지나지 않아 핑계를 대고 떠나려 하였다.

 

떠나려 할 때 표객이 50량이나 되는 대원보를 꺼내어 친히 건네면서 그것을 밑천으로 삼아 장사하고 다시는 걸식하며 다니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사양하다 마지못해 받았다.

 

명기는 예전처럼 아무렇게나 남에게 동냥 줄까 염려되어 금가락지를 빼서 그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은자를 사용할 때마다 금가락지를 보면서 자신이 말한 당부를 잊지 말라는 뜻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아무렇게나 보시하면서 자신은 굶어죽는 경우는 만들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그 물건이 지금, 자신이 목숨을 잃는 재앙이 될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고문에 못 이겨 거짓일지라도 자백해버렸으니 그저 죽음을 기다릴 밖에. 지현은 형방에게 내걸라는 포고에 ‘궁불파’를 도적의 우두머리라 부르고 백성에게 그 도당, 의심스러운 사람과 의심 가는 물건을 고발하라고 명시하였다.

 

그런데 뜻밖에 그날, ‘궁불파’는 지현, 향신, 그 부인, 딸과 함께 경성으로 압송되었다. 하찮은 지방 사건이 천자를 놀래게 했단 말인가? 예측 못한 일이 발생하였다.

 

실제로 정덕 황제 주후조가 친히 보좌에 앉아 심문하는 게 아닌가!

 

먼저 지현에게 물은 후 향신에게 묻고 다시 부인에게 묻고서야 ‘궁불파’에게 물었다. ‘궁불파’는 바닥에 엎드려 처음부터 끝까지 있는 그대로 말하고서는 억울하다고 하였다.

 

갑자기 성상이 고개를 들라하였다. 용안을 보고 원보를 건넨 예전에 만난 표객과 닮지 않았는지 확인해 보라고 하였다. ‘궁불파’는 감히 직언하지 못했다. 결국 황제가 웃으면서 자초지종을 얘기하였다.

 

“만약 짐이 네가 예전에 만난 표객과 닮지 않았다면 그대는 어리석은 관리와 권세를 부리는 향신의 농간 때문에 감옥에서 죽음을 맞았을 것이다. 여기까지 올 수가 없었을 테지. 짐이 사실을 얘기해 주마. 너에게 원보를 건네준 그 표객이 바로 과인이니라.

 

과인은 민간의 이해를 파악하려고 개인적으로 출궁했었느니라. 우연히 태원까지 가게 되어, 유 씨 기녀의 집에서 몇 개월 머물렀기에 성명을 말하기 어렵더구나. 유 씨 기녀조차도 내가 정덕 황제라는 것을 알지 못했으니 먼 곳에 온 손님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고.

 

그날 생각 없이 원보를 네게 건네주고는 가만히 생각해보니, 네게 해가 갈까 염려가 되더구나. 구걸하고 다니는 거지가 원보를 가지고 다니면 어찌 일이 생기지 않겠느냐. 나중에 고양을 유람할 때 포고문을 읽고는 염려한 대로 네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인이 그 지방에서 하루를 더 머물면서 네가 해를 당한 연유를 세세하게 확인하고 경성으로 돌아왔느니라. 경성으로 돌아온 후 관리를 파견하여 너를 구한 것이고.

 

지금은 억울함이 깨끗이 씻겼고 재앙에서도 벗어났다. ‘궁불파’의 뛰어남도 천하가 다 알게 되었다. 짐이 그대에게 권하고 싶은 게 있다. 이후에는 그런 위험 일에 끼어들지 말고 목숨을 유지하여 남은 생애를 배불리 먹으면서 살아가거라.”

 

그런 후에 금의위에게 명하여 지현의 관직을 박탈하고 곤장 40대 형에 처했다. 허실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여 형벌을 바르게 집행하지 않은, 공평무사하지 못한 관리에 대한 경고였다.

 

백성의 자녀를 차지하고 양민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해를 끼쳤으니, 형부에 명하여 향신을 곧바로 참수토록 하였다. 세력을 믿고 백성을 학대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였다.

 

바닥에 엎드려 있는 부인과 딸을 보았다. 비록 오랫동안 고통 받기는 했어도 본래부터 지닌 자색은 감출 수 없었다. 황제가 ‘궁불파’에게 말했다.

 

“그대에게 처자가 없다고 들었다. 저 여인을 보니 복상이구나. 그대가 애당초 저 여인을 위하여 여러 가지 고통을 받았으니, 그대에게 시집가지 않으면 누구에게 시집가겠느냐? 과인이 중매를 설 테니, 경사를 이루도록 하여라.”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 향마(響馬), 북방의 마적(馬賊)으로, 그들이 약탈을 할 때는 먼저 ‘향전(響箭)’을 쏘아 기세를 올렸기 때문에 이렇게 불렸다.

2) 총갑(總甲), 원(元)·명(明) 이래로 사용한 하급 관리 명칭이다. 명(明)·청(清)의 부역제도를 보면 110호를 1리(里)라 하고 리는 10갑(甲)으로 나누었다. 총갑은 관부에서 나누어진 1리의 세금과 노역을 담당하였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추천 반대
추천
1명
100%
반대
0명
0%

총 1명 참여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